그런데 반드시 이기와 이타 이분법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것도 맞습니다. 사람이 천편일률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니까요. 어떤 때는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어떤 때는 이타적으로 행동하기도 하죠. 수전노가 보육원에 기부하면, 이기주의자가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어떤 분은 그 기부도 자신의 행복을 위한 이기적 행동이라고 주장하겠지만, 그렇게 고무줄 늘이듯이 이기적 잣대를 주물이면 테레사 수녀님도 이기주의자가 되겠죠. 즉, 이기주의에 모든 것을 환원하는 생각은 무엇을 설명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과학적 방법론에서 환원주의(reductionism)를 매우 경계합니다. 종교에서는 도움이 됩니다.
지금 말씀드린 그런 사례가 아니고, 이기주의자가 이타주의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가 그렇습니다. 생각을 돕기 위해서, 어떤 사회에 A와 B 두 대안이 있다고 합시다. 자유민주주의 사회입니다. A와 B, 둘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애매모호한 상황이라고 하죠. 그러면 자유주의에 따라서 각자 옳다고 주장하고, 민주주의에 따라서 사회적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A 혹은 B를 지지하는 각 진영에 리더가 있습니다. 각 진영이 서로 자신의 대안을 전체 결정으로 만들려고 노력하겠죠. 그러면 리더를 도와야 합니다. 리더의 목소리가 더 커질 수 있도록 참여해야겠죠. 이것이 자유민주주의적 참여이며, 이기주의자가 이타주의자가 되는 사례가 될 수 있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머릿수 다툼을 흔히 합니다. 선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정책에 있어서도, 민주주의가 다수 지배를 의미하므로, 사람을 더 많이 모으는 정책이 관철될 가능성이 더 크죠. 물론, 대의제에서는 이전 선거에서 이긴 진영의 뜻이 더 존중되지만, 그래도 여론의 향배를 무시하지 못합니다. 뭐, 최근의 미디어법 같은 막가파식 사례가 나오기도 합니다만...
상대적으로 옳은 견해를 갖는 비주류가 외롭게 되는 예를 우리는 흔히 봅니다. 그것은 알게, 모르게 그렇게 될 때가 잦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를 생각해보시죠. 자신이 권위주의 형이라는 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헌법 아래 살고 있으면, 저절로 자유민주주의자가 되는 것은 아니죠. 그렇다면, 특정 상황에서 겉으로는 자유민주주의가 다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소수이고, 권위주의자가 다수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꼭 수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권력 지도까지 포함해서 따질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 이기주의에 기반을 둔 이타주의가 필요합니다. 서로 도와야죠. 장기적 관점에서는 이기적 행위이겠지만, 그 시점에서는 이타적 행위입니다.
주위에서 옳고 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소수나 외톨이가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면, 이기적 이타주의를 한번 발휘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경쟁이 벌어지면 이기는 것이 좋죠, 지는 것보다는. 저는 이기적 이타심을 가능한 한 자주 발휘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제 근본은 자연스럽게 건전한 이기주의에 두고 말입니다.^^
p.s. 이 글은 이준구 교수님의 말씀,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자는 자신의 자유와 권리뿐 아니라, 남의 자유와 권리까지도 조금이라도 침해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용기를 갖고 있어야 해."에서 생각의 나래를 펼쳐서 작성한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모순어법처럼 들렸습니다. 자유주의자는 이기적인데, 남을 위해서 격렬한 투쟁을 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남"은 권위주의자가 아니라 자유주의자였던 것입니다. 빙고! 이미 알고 계셨나요? 그렇다면, 제가 우둔했습니다. ㅜ.ㅜ
좋은 화두를 던져주신 이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생각은 인간 존재의 충분조건이라고 합니다. ^^ 사진은 스탠포드 미술관에서 직접 찍었습니다. 로댕 진품이라고 합니다. 조각품은 진품이 여러 개 있다고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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