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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4월 3일 세계일보 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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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대서양 조약기구(NATO)가 창설된 지 50년이 되었다. NATO는 1949년 북미와 서유럽의 안보 수준을 높이기 위한 동맹기구로서 창설되었고, 소련과 동구권이 공산주의를 포기할 때까지 약 40년 동안 냉전적 평화를 유지하는 한 축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다. 냉전이 끝나자 폐지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NATO는 미국 중심의 패권적 세계질서의 유용한 도구로서 건재함을 이번 유고연방 공습에서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일찍이 마키아벨리나 홉스 등의 현실주의(Realism) 정치이론가들은 인간과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서 안전 혹은 안보를 설파하였다. 존재 그 자체가 보장되지 않으면 다른 어떤 것도 수행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이나 국가는 적의 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당연히 고안한다는 것이다. 현실주의적 주장에 의하면 국제관계 속성상 상대 국가가 강해지면 자국의 안보가 위협을 받는 '안보의 딜레마'가 존재하므로 항상 분쟁의 소지가 있고, 따라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국이 속한 진영의 힘을 과시하여 가상 적국들의 침공을 억제해야만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NATO는 공산권이 소멸할 때까지 서방 국가들의 안보협력 장치로서 그 명성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현실주의적 시각으로 NATO의 유고연방 공습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 유고가 코소보 주민을 비인간적으로 탄압한 데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감행한 이번 군사 작전은, 그로티우스의 국제법 사상이나 칸트의 영구평화론 사상 등이 대표하는 자유주의(Liberalism) 시각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자유주의에 의하면 인간이나 국가가 상호 편의를 도모하여 협력과 평화를 유지할 수 있고, 주권을 가진 국가라도 인간의 자연권을 함부로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칸트는 자유민주주의 공화국들이 전세계 연방체를 형성하면 영구평화가 이룩된다고 주장하였는데, 그러한 이상적인 세상에서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자연권이 함께 존중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유고연방 공습에 대한 미국과 NATO의 명분은 자유주의적 사고에 입각하여 평화를 위해서 타국의 내정에 간섭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유고연방 공습은 NATO가 현실주의에서 자유주의로 그 존재 이유를 재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와 협력을 강조하는 자유주의를 제시한다고 해서 국제관계의 폭력성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또한 보여주고 있다. 역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는 주요 전쟁이 없었던 이유에 대한 궁극적인 답으로서 자유민주주의 자체의 평화적 속성을 지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이번 사태를 통해서 재확인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다른 속성을 지닌 국가와 부닥쳤을 때는 그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특히 미국은 패권적 질서의 주창자로서 필요하다면 전세계 어느 곳에서도 자유민주주 카드와 동반된 무력 사용을 감행하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현실주의를 제시하든 자유주의를 주창하든, 미국 등의 NATO 국가들로서는 무력분쟁에서 지불해야 할 정치적, 경제적 비용과 연관된 숙제를 안고 있다. 일반적으로 분쟁초기에는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지를 보여주더라도, 분쟁이 장기화되면 정치적 지지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을 클린턴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국민의 세금으로 지불되는 전쟁비용을 무한정 쓸 수도 없다. 현재 상황에서 이러한 딜레마를 해결하는 유력한 방법은 적당한 시기에 협상을 통해서 타협하는 것이다. NATO 창설 50주년을 맞아서 NATO의 새로운 이념을 공포하는 행사와 같이 된 이번 무력개입은 그 정도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자칫 잘못하면 현실주의적 무력개입이었던 베트남 전쟁과 유사한 사태가 자유주의 판으로 발칸반도에서 등장하는 악몽을 꿀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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