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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9일 월요일

[단상] 우리나라 남자의 가사 일 돕기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18)

저는 아버지께서 부엌에 들어가서 일하시는 것을 본 적이 한 번밖에 없습니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유교적 가장으로서 여자는 부엌, 남자는 직장을 본거지로 하여서 벗어남이 없어야 된다는 것을 전형적으로 보여주신 분이었습니다. 아마 그것이 제가 중학생이었을 때였을 것입니다. 어머니는 부재중이셨고, 도와주시기로 한 친척이 시골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등교하려고 옷을 차려입고 부엌에 들어가 보니, 그 엄하셨던 아버지께서 제 도시락을 만들고 계셨던 것이 아닙니까. 한 편으로는 충격이었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아버지 모습이 약간 우스꽝스러웠습니다.

"아버지, 제가 하겠습니다."
"내가 하니까 이상하냐?"
그 도시락은 어머니께서 싸주신 것에 비하면 조금 어설픈 모양이었지만, 그래도 뿌듯하게 가져가서 맛있게, 그리고 조금은 서글픈 마음으로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께서 부엌에서 어정쩡하게 일하시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건. 영 아니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아마도 시대, 장소, 사람에 따라서, 가사 일을 남자가 하는 것이 어색할 수도 있고 자연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학 시절, 한국 유학생 부인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한국 남자들은 중국 남자들이 부엌 일을 하는 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던 것 같습니다. 같은 유학생인데도 중국 기혼남 유학생들은 대부분 부엌 일을 했지만, 부인이 있는 한국 남자 유학생들은 거의 부엌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는 분들의 상상에 맡기는 것이 재미있겠습니다. 이 선생님께서는? 쿠키를 잘 만드시고, 장 보시는 특기가 있으시다는 기존 정보가 있다는 정도는 제가 압니다.^^

댓글 1개:

  1. 임형찬
    (2009/07/18 15:25) .....저는 장보기를 즐겨합니다만은 부엌 일이라고는 설겆이 외에는 기술이 없습니다.

    그나저나 중국남자들은 부엌일을 너무 좋아해서 기숙사(취사금지)에서 부엌일을 해서 좀 안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준구
    (2009/07/18 16:47) 한국에 돌아온 후로는 쿠키 잘 안 굽습니다. 애들이 커서 쿠키 수요가 줄기도 했을 뿐 아니라, 여기선 베이커리가 많아 사서 먹기도 편해서 그렇지요.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비밀입니다.

    장보기는 제 특기 중 하나지요. 소민우 군이 아까 올렸던 글에서 말했던 것처럼 매주 해산물, 버섯 구매를 전담합니다. 과일 구매에 관해서는 상담역을 하구요.

    그렇다면 안박사께서는 얼마나 자주 부엌에 들어가십니까? 그리고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가요?

    형찬군, 설겆이를 기술이라고 부를 수 있나? 그건 미숙련 막노동일세.

    안병길
    (2009/07/18 17:52) 선생님께서 물어보시니 영광으로 알고 제 역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하는 가사일은 밥하기, 반찬하기, 설겆이하기, 집안 청소하기, 빨래하기, 장보기, 화단에 물주기, 세차하기, 기타 등등 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단, 하고 싶을 때만 합니다. ^^

    소민우
    (2009/07/18 18:48) 제가 주로하는 것은, 아지노모노가 들어간 밖의 밥이 먹기 싫을 때 요리하는 거, 세탁하기 집안 청소 그리고 다림질등을 합니다. 여기 계신 논객들도 하시겠지만, 식재료 다듬기도 곧잘 합니다.

    소민우
    (2009/07/18 20:31) 오늘 저녁으로 오징어를 볶아 먹었습니다. ^^

    안병길
    (2009/07/18 22:20) 오징어 볶음, 맛있었겠네요... 침 꼴깍.

    이준구
    (2009/07/18 22:55) 안박사 마음만 내키시면 전업주부에 해당하는 역할도 척척인 셈이군요. 대단한 능력이십니다. 구체적으로 비교하진 않겠으나 내가 하는 일보다 더 다양한 것 같은데요.

    젊은 세대에서 아직도 '아지노모토'라는 말 쓰는 녀석이 있나? 그거 나 군대 있을 때 무지 먹었다네. 염적무 국 하나만으로 밥이 넘어가지 않을 때 그걸 넣어 비벼 먹으면 꿀맛이 되지. 그것이 후에 탈모를 일으킨 원인이 되었는지도 몰라.

    신비아
    (2009/07/19 02:56) 두분 모두 대단한 능력이십니다. 제가 하는 가사 일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하십니다.;;;;; 요즘 표현을 빌어 완소훈남들이십니다.ㅎㅎ

    지난번에 들었던 선생님의 가사일에 대해 집에 와서 이야기하니 저희 어머니께서 사모님을 무지 부러워하셨습니다. ㅎㅎ

    이준구
    (2009/07/19 13:48) 안박사처럼 엄격한 가풍하에서 성장하신 분이 이렇게 모범적인 남편의 자세를 갖게 된 배경이 궁금하네요.

    안병길
    (2009/07/19 15:48) 제 나름대로 몇 가지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아버지께서는 예의에는 엄격하셨지만 저에 대해서 간섭을 하시는 편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범생이라서 신경쓰지 않으셨던 면도 있었겠습니다.^^ 어머니는 먀냥 사랑만 베푸시는 스타일이셨구요.

    둘째, 큰 형이 저보다 10 살 많은데, 선생님께서 별로라고 간주하시는 카투사 출신입니다. 게다가 미국 유학 경험까지 있어서 그랬는지, 동생들에게 전혀 위엄을 보이는 스타일이 아니었습니다. 물 한 컵 떠와!가 아니고, 갖다줄래?라는 식이었죠.

    세째, 역시 로체스터의 자유주의 교육과 미국 현장실습이 큰 영항을 미친 것 같습니다. 아내도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가사일을 아내만 하면 자유민주주의에 어긋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제 스스로도 예컨대 설겆이를 하고나면 뿌듯함을 느끼는 탓도 있겠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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