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10년 1월 30일 토요일

[음악] 드라마와 음악


SANDGLASS (1995) Opening Credits


Cranes [ Журавли ] - Russian Folk Song
Cranes (白鶴) - Losif Kobzon Bass : Kim In-Soo (Seoul, Korea)


여명의 눈동자 오프닝 (1991)


가을동화OST 02- Reason -정일영


Winter Sonata 겨울연가 ost mv (7/11) - Only You (instrumental)


천국의 계단 ost mv (5/8) Bo Go Ship Da (보고 싶다)


大長今, 대장금,Dae Jang Geum


(이산, Yi San) OST 張允瀞 (장윤정,Chang Yoon Jung) (약속)


風之?師 바람의화원 五兩 風之歌 문채원 / 문근영 OST Version


Lovers in Paris OST

어느 드라마가 마음에 드시나요? ^^

2010년 1월 29일 금요일

[정치]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대한 논란 (2008년 7월)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7/14) 

언론보도를 통해서 접하셨겠지만, 청와대와 봉하마을의 대통령 기록물 관리에 대한 공방이 진행 중입니다. 오늘 봉하마을 쪽에서 보도자료를 통해서 그 동안 논란이 되었던 쟁점들에 대해서 해명했군요.

취임 초기부터 제가 느꼈던 것은 현 청와대가 컴퓨터에 대해서 이해력이 부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사태에서도 이 부분이 제법 역할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이 제도가 새로 도입되면서 어떤 취지와 목적을 갖고 있었느냐는 점일 것입니다. 또한 관련 법에도 명기되어 있듯이 노 전대통령이 재임시 만든 자료들은 당사자가 불편없이 열람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10년 1월 28일 목요일

[여행] 캘리포니아 Rocky Point

일전에(1월 14일)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대한민국을 바라보다."라는 제목으로 글을 올리면서 캘리포니아 몬테레이와 Big Sur 중간에 있는 Rocky Point에서 촬영한 고해상도 일몰 사진을 붙였습니다.


캘리포니아 해안 절벽에 절경이 많습니다. 해안을 달리는 1번 고속도로를 따라서 드라이브하면 마음이 확 트이는 경치를 흔히 만날 수 있죠. 우리나라가 태평양 서쪽 끝에 있고 캘리포니아가 태평양 동쪽 끝에 있으므로 캘리포니아 해안에서 서쪽으로 일몰을 보면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것이죠. ^^

이준구 교수님도 비슷한 생각을 하신 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댓글로 주셨습니다.

"캘리포니아 해변에 나가 서쪽을 바라보고 찍으신 건가요? 예전 하와이대학 교환교수 가 있을 때 내 연구실에서 태평양 바다가 보였습니다. 저 너머에 한국이 있으려니 하는 생각으로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습니다."

Rocky Point의 전망 좋은 곳에 있는 식당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절경을 구경하니 참 좋았습니다. 식당 분위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식당 근처 경치를 구경하시죠.



아래는 Rocky Point에서 찍은 다른 일몰 사진입니다.

2010년 1월 27일 수요일

[정치] 대략 난감 (2008년 4월)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4/25)

최근 일본의 태평양전쟁 책임에 관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두 편 보았습니다. 하나는 미국 PBS에서 방영한 "Victory in the Pacific"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제가 인상깊게 봤던 부분은 마지막의 일본 패전 결정이었습니다. 1945년 7월 26일의 포츠담 선언에서 연합군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무조건 항복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천황제 존속 등을 포함한 조건부 항복을 타진하게 되었죠. 나중에는 다른 조건들은 모두 포기하고 명목상의 천황 유지만 받아내려고 했지만, 일본은 결국 원자탄 두 방을 맞고 무조건 항복을 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원래 입장은 천황제를 폐기하는 것이었지만, 종전 후 일왕을 활용할 필요가 생긴 미국의 입장이 교묘하게 반영되어서 일왕은 살아남게 된 것입니다. 일왕은 신이 아니고 보통 인간임을 천명하고 전국을 순회하면서 평화적 일본 재건의 상징으로 우뚝 서게 됩니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요. 침략전쟁의 최고 책임자였던 일왕이 대량 살상을 막은 평화주의자로 되살아난 것이죠.
또 다른 프로그램은 2003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조선여인 와카하루의 진실"이었습니다. 정신대 할머니의 생생한 육성 증언으로 중국과 동남아로 끌려다니면서 겪었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너무나도 가슴 아프게 느끼게 해줬습니다. 프로그램 끝에 히로히토 일왕이 특급 전범으로 유죄라는 판결을 시민단체들의 국제모의재판에서 이끌어내는 장면에서 그 할머니는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우리 대통령 내외가 일본을 방문하여 일왕 내외에게 예의 바르게 깊이 고개 숙여 인사하는 사진을 보니, 최근에 본 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들이 생각나면서 대략 난감인 기분이 들었습니다... 국제 협상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일본의 전쟁 책임이나 미국의 쇠고기 등은 활용하기 좋은 협상카드인데 스스로 포기하는 것 같아서 그것도 대략 난감이었고요...

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수필] 그날 관악산에는 보름달이 떴었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10/04)

[부제] 술이 공통분모인 이야기 네 개

이 이벤트를 주최하신 이 선생님께서 술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이 글을 적을까 말까 제법 주저했습니다. 기본 점수가 깎이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한다는 자유인지 방종인지 직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 주제로 제가 이기면 더 빛이 날까요? 아니면, 이겨도 져도 창피를 당할까요? 미래에 벌어질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복골복이겠죠. ^^

1. 처음 술 마시기

제가 마신 첫 술은 옆집 독일인 가족 이야기에 등장한 100년 된 술이었습니다. 그때 고등학생이었죠. 그런데 그것은 위스키 싱글 딱 한 잔이어서 술을 마셨다기보다 맛을 본 것으로 봐야겠습니다.

서울대 합격 통보를 받고 고3 담임 선생님 댁에서 술을 마신 것이 첫 경험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축하주로 정종 됫병을 내놓으셨죠. 막 권하시더군요. 그래서 겁도 없이 막 마셨습니다. 그냥 술술 넘어 가더군요. 술 권하는 사회였습니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발생했습니다. 천정이 빙빙 돌더군요. ㅋ 제 방이 2층에 있었는데, 사태가 심상찮음을 알아채신 아버지가 올라오셨습니다. 꿀물을 들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2층에 올라오시는 것은 집 수리할 때밖에 없었을 정도였는데, 졸업도 하지 않은 고등학생 막내가 술에 떡이 되어서 마음을 졸이셨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야단은 맞지 않았습니다.

2. 그날 관악산에는 보름달이 떴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와서 관악사 라동에 짐을 풀었습니다. 1980년 서울대 기숙사인 관악사는 가, 나, 다, 라, 마동까지 있었습니다. 여학생 기숙사는 없었습니다. 미팅을 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미팅을 주선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고등학교 선배가 미팅 자리가 비었다고 쪽수를 채우라고 하더군요. ㅜ.ㅜ 그래서 첫 미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바닷가 출신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여자 친구 사귀면 서울대에 못 간다는 어른들의 엄포에 억눌렸던 한심한 청춘이었죠.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으면서, 아! 나도 골드문트처럼 사는 부분도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시무시한 엄포가 금방 머리에 떠올라서 감정을 삭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인간의 감정이 잘 삭여집니까. 특히 사춘기의 본성은 눌러도 스프링같이 다시 튀어오르죠. 그런 때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혹시 압니까. 지나가는 여학생이 저에게 먼저 말을 걸어올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ㅋㅋㅋ

예쁜 조개 껍데기를 많이 주웠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어여쁜 녀석을 골라서... 대학생이 되면 첫 미팅 상대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관악사 라동에서 부린 짐 속에 있었죠. 첫 미팅 상대에게 그 조개 껍데기가 전달된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애프터를 신청했습니다. 그것은 누나의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했지만, 아주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으나 싫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마! 이 정도면 됐다!"를 속으로 외친 결과였습니다. 촌뜨기 주제에 최상급 여학생을 사귀는 것은 미리 포기한 셈이었죠. ㅜ.ㅜ

누나의 조언은... 대학생이 된 막냇동생에게 누나 왈, "길아! 미팅 나가서 세 가지를 지켜라. 첫째, 맘에 들든 안 들든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애프터도 신청해라! 둘째, 커피 값은 네가 내라! 셋째, 헤어질 때 여학생이 싫다고 하지 않으면 집 근처까지 데려다 줘라!"였습니다. 순진한 저는 누님 조언대로 다 했습니다. 누님이 여자라는 사실을 제가 깜빡했었던 것이죠. ㅜ.ㅜ

애프터는 제가 서울 지리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 여학생 집과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했습니다. 남영역이었습니다. 드디어 애프터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날이 고등학교 선배들이 환영식을 해주는 날과 겹쳤습니다. ㅜ.ㅜ 낮부터 소주를 먹이는데, 꾀를 한껏 부렸지만, 기본은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애프터 시간을 지키려고 정신은 바짝 차렸습니다. 몰래 도망쳤죠. ㅋ 약속 시간에 무려 30분이나 일찍 남영역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술이 약합니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져서 함께 마시는 이들이 놀리기도 했습니다. 그날도 그랬죠. 시간은 30분이 남았죠. 남영역 계단에 술이 약간 취한 상태에서 앉아 있으니 저절로 졸음이 왔습니다. 잠깐 졸고 있는데, 웬 청바지를 입은 여학생이 저를 툭툭 치는 것이었습니다. 미팅을 할 때는 분명히 치마를 입은 여학생이었는데, 사람이 아니 옷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저... OO 씨 맞습니까?"
"낮부터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요?"
그 한마디만 하고 획 하니 뒤돌아서서 가더군요. 쫓아갔습니다. 저녁이라도 드시고 들어가시라고 했는데,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뒤로 돌아서 서울대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는 학교 안에 들어가는 버스가 없었습니다. 밤에 정문에서 관악사까지 산길로 올라가는데 보름달이 휘영청 떴더군요. 완전 처량했습니다. ㅜ.ㅜ

관악사 라동 앞에서 전화했습니다. 들어오지 않았다는 답. 또 했습니다. 또 들어오지 않았다는 답. 세 번째 시도에서 통화가 되었습니다. 별로 할 말이 없더군요. 미안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미팅을 계속 하실 겁니까?"
"같이 영화 보러 갈 사람이 생길 때까지 하려고요."
"그럼 제가 영화를 같이 보러 다닐 테니 앞으로 미팅을 하지 않으시는 것은 어떨까요?"
"글쎄요..."
저는 "글쎄요."가 No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주위 분들에게 물어보니, Yes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ㅜ.ㅜ

(끝이 약하다는 어느 성냥불 조원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미팅 이야기로 보강합니다. 두 번째 파트너는 미팅할 때 바지를 입고 왔는데, 애프터에는 치마를 입고 왔었습니다. 그런데 막 신경질을 내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평소에 치마를 입지 않는데 그날 입었더니 친구들이 놀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신경질을 냈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ㅜ.ㅜ)

3. 술, 노래, 그리고 휘파람

세월이 흘러서 졸업도 하고 유학도 다녀와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노래방도 가고, 가라오케도 갔습니다. 제가 노래를 잘 못 부릅니다. ㅜ.ㅜ 술도 잘 못 마시고, 노래도 잘 못 부르니 다른 장기라도 있어야 될 것 같아서 휘파람을 개발했습니다. 친구들 말이, 제가 술을 조금 마신 다음 휘파람을 불면 그래도 들어줄 만하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들이 취해서 그랬을 겁니다. ㅋ

하루는 강남의 어느 대형 가라오케 술집을 갔습니다. 넓은 홀에 스테이지가 있더군요. 제 차례가 되어서 올라갔습니다. 다음 노래를 불렀습니다.



간주 부분에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이상하게 그날은 제법 되더군요. ^^ 노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손님이 저에게 와서 자신의 맥주를 따라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자기가 부를 테니 간주가 나오면 휘파람을 불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헉...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같은 노래에 같은 휘파람을 두 번 불었습니다. ㅋ

4. 삐끼와 조(석?X)우하다.

삐끼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호객꾼을 지칭하는 말이지요. 주로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로 술집으로 유인한 다음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을 뜻합니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삐끼를 보면 저는 기분이 매우 나빴습니다. 밤에 귀가하면서 지나는 어떤 사거리에는 삐끼와 국가기관이 혼재해서 공존공생하고 있었습니다. 즉, 삐끼가 술 취한 사람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도 바로 옆의 경찰은 전혀 단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호객행위는 엄연한 불법행위입니다. 경찰은 국가기관입니다. 국가가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광경을 보면 왠지 화가 났습니다.

하루는 그 사거리에 삐끼들이 떼로 몰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은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아서 관할 파출소에 들어가서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경찰들은 제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전혀 출동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출소 안에 있는 공중전화를 들고 112에 신고했습니다. 제 실명을 밝히고 그 사거리에 호객꾼이 많으니 단속하라고 신고했습니다.

범죄신고 112는 중앙에서 통제하기 때문에 금방 출동합니다. 출동한 경찰이 저에게 다가와서 누가 삐끼냐고 물어보기에 한 명을 지칭했습니다.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즉석에서 대질심문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찰: “당신 호객꾼 맞아?”
P: “아닌데요”
P: (저를 바라보면서) “아저씨, 나 알아요?”
경찰: (저에게) “호객꾼 아니라고 하잖아요. 바쁜데 그렇게 허위신고해서 되겠어요?”
안: (경찰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근무에 지장을 주어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안: (P에게) “미안하게 됐습니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저는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그 추운 겨울날에 벌벌 떨면서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쳐다보면서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히 호객행위를 하지 못하고 제 눈치만 계속 봤습니다. 그 와중에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그 사거리에서 어떤 중년남자가 중년여자를 때리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엄연한 폭력행사였음에도 아무도 말리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습니다. 말리고 싶었는데 워낙 우락부락한 남자라서 제가 다칠 것 같아서 망설였습니다.(저도 이 선생님처럼 겁이 많습니다. ^^) 그때 번득 아이디어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힘 좋은 호객꾼을 동원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P를 불렀습니다.

“내가 술을 한 잔 살 테니 저 무지막지한 인간을 말려주게나.”
“정말 술 사주시는 겁니까?”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네.”
저와 P가 그 폭력을 막았습니다. 소란스러워져서 경찰이 왔지만, 그 중년남자를 연행하지는 않더군요. 조금 지나자 여자가 졸도했습니다. 아니, 졸도한 척했습니다.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연기를 하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우리가 말리고 경찰이 등장하자, 그 남자는 여자를 끌다시피 택시에 태우더니 어디론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여자는 처음에는 타지 않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스스로 택시에 올랐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들이 부부 사이인지 무슨 다른 관계인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약자가 강자에게 당하는 것을 국가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광경을 다시 한 번 목격했을 뿐이었습니다.

약속대로 그 P와 저는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삐끼더군요. 술을 시키고 말을 해보니 저와 동향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배에게 술 한 잔 사주는 셈치고 환담하면서 술을 몇 잔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이 술병을 채 비우기도 전에 다른 술병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더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고, 계산서를 가져오라고 해서 일단 계산한 다음 다시 관할 파출소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파출소에서 출동했습니다. 제가 신고한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112에 신고하면 관할 파출소에 통보됩니다.) 저를 경찰차에 태운 다음 그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집입니다. 호객꾼을 고용하여 장사하는 집입니다. 단속하십시오.”
“단속할 근거가 없습니다. 영업시간 제한이 풀렸기 때문에 단속할 수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단속할 것이 없을까요?”
“잠시 문 앞에서 기다리세요. 우리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경찰이 문을 두들기면서) “문 열어!”
의도하지 않았던 닌자 역할이 의도한 트로이의 목마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 왜 영업시간 제한이 없는데 그 집이 문을 닫아놓고 있었겠습니까? 경찰이 출동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셔터를 내린 것이지요.

결국, 저와 술집 사장, 그리고 호객꾼은 파출소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전모가 확인되었고 경찰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처리해 드릴까요? 고발하시겠습니까?”
“저는 고발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약자를 등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야단치고 훈방하시기 바랍니다.”
술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술 마시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면, 술 취한 약자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원래 사회계약이었습니다. 사전에 그런 약자가 흔히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술집이 문을 닫도록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술집에서 각 손님에게 일정량 이상의 술은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일정 시간대에는 주류를 팔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을 등치려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계약이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이 해프닝은 졸고 "국가와 사회적 약자(http://tinyurl.com/ahn-socialcontract)"를 적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덧 붙임: 삐끼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 문제를 들면서 제가 신고한 것을 비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회구조 탓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삐끼의 방종이나마 지적하는 인간의 노력이 사회개선에 적어도 성냥불 정도의 도움은 된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이상, 성냥불 조 5회전 출품작이었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0년 1월 24일 일요일

[여행] 몬테레이 17마일 드라이브 Lone Cypress / Bird Rock

몬테레이 반도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서 경치가 정말 좋습니다. 그래서 17마일 드라이브 입장료가 약 $10나 되지만 별로 아까운 생각이 들지는 않습니다. 1번 고속도로 출입구는 산 속에 있지만, 17마일 드라이브의 많은 구간이 바다를 끼고 달립니다. 바다 바로 옆에 있는, 17마일 드라이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Lone Cypress를 보시죠.


절벽 위에 외롭게 서 있는 나무 한 그루가 이채롭습니다. 도로에서 나무 근처까지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다음은 그 길에서 바라본 경치입니다. 멀리 절벽 위의 집이 보이나요?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 있으니 매우 비싸겠죠. 은퇴한 부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사신다고 합니다. ^^


17마일 드라이브 명소에 Bird Rock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바다새, 물개, 바다사자를 볼 수 있는 곳이죠. 주변 경치도 훌륭합니다.


이곳에 가면 바다사자가 "껑껑" 하면서 우는 소리를 잘 들을 수 있습니다. 아래 동영상을 자세히 들으시면 바다사자 울음소리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Bird Rock 주변 사진을 몇 장 더 올립니다.




Bird Rock을 구경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관광객들입니다.

2010년 1월 23일 토요일

[잡담]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4/10)




(오래 전에 찍은 정동진 일출입니다. 저해상도라서 화질이 좋지 않네요.)

미국 동부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다 서부 태평양 해안 근처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있었답니다. 하루는 해뜨는 것을 보고 싶어서 새벽에 바닷가로 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해가 뜨지 않더랍니다. 당연하죠. 바다에서 해뜨는 것을 구경하려면 미국에서는 동부로 가야 하니까요.

우리나라는 삼면이 바다라서 정말 좋습니다. 새벽에 정동진에서 해뜨는 장관을 구경하고, 서두르지 않아도 비행기가 아닌 자동차로 여유있게 태안반도로 가서 해지는 장관도 볼 수 있으니까요. 하루 동안 해돋이와 해지는 장면을 구경해본 적이 없는데, 혹시 그런 상쾌한 경험을 해보신 분 계신가요?

2010년 1월 21일 목요일

[여행] 몬테레이 17마일 드라이브 페블비치

바람을 피운 사실이 들통나서 난리가 난 골프 지존 타이거 우즈... 그 우즈가 2000년 US 오픈에서 2위와 15타 차이로 우승한 곳이 몬테레이 페블비치 골프코스이죠.



몬테레이 반도의 17마일 드라이브에서 만나는 페블비치 골프코스는 골프를 즐기지 않는 저 같은 사람이 봐도 금방 골프 라운딩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들죠. 예약하기는 쉽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 클럽 하우스 앞에 있는 장엄한 나무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클럽 하우스 앞에 있는 연습 그린입니다. 신발과 장비만 갖추면 관광객도 연습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실제 그린과 같은 잔디와 조건일 겁니다.


클럽 하우스 안에서 바라본 18번 홀과 태평양입니다.


철 난간에 앉은 검은 새가 묘한 분위기를 내는군요. ^^


그린 쪽에서 바라본 18번 코스와 바다입니다. 직접 보시면 느낌이 또 다를 것입니다. 장관입니다.



18번 그린 쪽에서 바라본 클럽 하우스 모습입니다. 올해 US 오픈이 이곳에서 열립니다.


프로숍 앞에 있는 앙증맞은 동상인데요, 새겨진 글귀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아빠처럼"이라고 번역해봤습니다. ^^

2010년 1월 19일 화요일

[자유] 오늘은 Martin Luther King, Jr. Day

오늘은(1월 18일 월요일) 미국 연방정부가 정한 공휴일인 Martin Luther King, Jr. Day입니다. 킹 목사의 생일이 1월 15일인데, 매년 1월 셋째 월요일을 킹 목사의 탄생을 기념하는 공휴일로 지킵니다. 개인을 대상으로 하는 연방정부 공휴일이 네 개가 있죠. 나머지 세 개는 미국을 "발견"한(만난?) 콜럼버스, 초대 대통령 워싱턴, 그리고  Jesus Christ와 각각 관련 있습니다.

킹 목사는 미국 인권운동의 대명사라고 보면 되겠죠. 1955년 남부 몽고메리에서 있었던 흑백차별 버스 타지 않기 운동과 킹 목사가 "I Have a Dream." 연설을 했던 1963년 March on Washington은 미국 인권의 상징입니다. 찾아보니 이 블로그에서 킹 목사를 언급한 글이 일곱 개 있군요. 킹 목사의 숭고한 인권운동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의미에서 그 글들을 다시 소개합니다. 각 제목을 클릭하시면 연결됩니다.  

2010년 1월 18일 월요일

[여행] 길로이 Outlet Mall과 몬테레이 Fisherman's Wharf

제가 사는 지역에서 자동차로 남쪽으로 2시간 정도 가면 몬테레이(Monterey)라는 유명한 관광지가 있습니다. 옛날에는 어업과 고래잡이로 널리 알려졌는데 요즘은 그 지역에 있는 17마일 드라이브가 많은 관광객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지난주 수요일에 시간이 나서 몬테레이를 오랜만에 다시 찾았습니다. 중간에 길로이(Gilroy)를 지나는데, 세계 최대 마늘 생산지라고 합니다. 특히 봄과 여름에 그 근처를 지나면 진동하는 마늘 냄새를 맡을 수 있죠. 길로이에 있는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최대 아울릿 몰도 유명합니다. 사진으로 구경하시죠.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울릿이라고 해서 물건값이 모두 싼 것은 아닙니다.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을 찾아야죠. ^^ 예컨대 평상시 가격의 60% 할인에 30% 더 할인해주는 질 좋은 물건이죠. ㅋ

길로이에서 약 한 시간을 더 운전하면 몬테레이 반도 지역에 들어갑니다. 옛날 어부들의 휴식처였던 부두가 지금은 관광지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Fisherman's Wharf처럼 널리 알려진 몬테레이 Wharf  모습을 보시죠.





부두 거리로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식당과 기념품점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식당 앞에서는 맛있는 몬테레이 클램 챠우더를 시식하라고 권하는 종업원이 서 있죠. 부두 끝에 가면 예쁘게 치장한 식당이 있고, 그 위에 전망대가 있습니다.




Old Fisherman's Grotto라는 식당이 가장 괜찮다고 지인이 오래전에 알려줬습니다. 또 찾았죠. ^^ 점심 애피타이저로 먹은 칼라마리(꼴뚜기) 튀김입니다. 클램챠우더와 해물 파스타도 먹었습니다. 라스베가스에 이어 호식의 연속이었습니다. ㅋ





아래는 식당 내부, 외부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