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10월 14일 수요일

[수필] 한 제자에게 보내는 공개 편지

(2003/04/28)

제자에게,

제자야,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렇게 많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옛 선생이 추진하는 일에 대해서 관심도 보여주고 의견도 보내줘서 고맙다. 여러번 강조했지만 나는 네가 하고 있는 일에 더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일에 도움을 주지 않아도 전혀 섭섭하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무리하게 도우는 것은 오히려 바보같이 사는 것이라고 이미 가르쳐 주었다. 따라서 일전에 만나서 네 도움을 요청한 것도 네 생각이 나의 생각과 같고, 네가 나를 도와줄 여유가 있을 때 "착하게" 사는 한 방식으로 도와주고 행복하다면 도와주는 식으로 생각하기 바란다.

제자는 내가 정의한 식으로 착하게 살 생각이 여전히 없고, 다만 이기적으로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나는 그것은 인간으로서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이기적으로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 나쁜 사람이 되며, 경우에 따라서 도덕적/사회적 비난을 받는다. 심한 경우에는 법적 제재를 받게 된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에서 이기적으로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성냥불 운동은 제자가 얘기한 삶에서 한 걸음만 더 나아가 보자는 취지의 개인주의적 운동이다. 그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착하고 바르게 살면 장기적으로는 득이 된다는 계산법에 동의하며 스스로 실천하는 운동이다. 그 취지에 동의하지 않으면 제자의 말대로 이기적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기본적인 삶에 충실하면 된다. 그것이 옳다든지 틀렸다든지 식으로 강변해서는 안된다. 다만 입장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

착하게 살자는 취지에는 동감하면서, 개인적으로 착하게 살자고 약속할 수 없는 것은 표현에서 오는 견해 차이라고 제자가 설명했다. 그것은 성냥불 운동의 취지에는 찬성하지만, 성냥불 운동에는 동참할 수 없다는 뜻으로 나는 해석한다. 제자의 개인적 선택을 백분 존중한다. 나는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있지만, 또한 그것이 나의 기대와는 크게 어긋나는 것이지만 네 삶을 네가 선택하는데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그렇게 생각한다면 성냥불 운동에 동참하지 말고 제자의 말대로 이기적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살기 바란다.

제자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이기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것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기적으로 살 수도 있고, 이타적으로 살 수도 있고, 혼합형으로 살 수도 있고, 착하게 살 수도 있다. 제자는 이기적으로 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 사회적으로도 유익하고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착하게 사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것은 제자가 정의한 "착함"이 되겠다. 내가 정의한 "착함"과는 거리가 멀다. 그 주장은 궤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기적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은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고 인간 삶의 기본 원칙에 해당된다.

물론 남을 등쳐 먹고 사기를 치는 인간들이 많은 사회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런 기본적인 삶이 남에게 베푸는 것이고 "착한" 것이라고 강변할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이기적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남에게 베푸는 이기주의자라는 개념은 자기모순이다. 이기주의자는 다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정도가 될 것이다. 내 설명이 틀렸다면 언제든지 다시 제자가 나를 가르쳐주기 바란다. 물론 이기주의자가 일시적으로 이기주의자를 탈피하면서 남에게 베푸는 행동은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제자가 착하게 살기를 여전히 원한다. 이기적이면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기본적인 삶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능력이 되는 한 남에게 도움을 주면서 행복하게 생각할 수 있는 착한 삶을 추구하기 바란다. 그런 좋은 삶을 추구하지 않더라도 나는 제자를 비난할 생각은 없다. 능력 한도 내에서 남을 도와주었는데 제자가 괴로워진다던지, 불행한 생각이 든다면 착하게 살지 않으면 된다. 그 경우에는 그냥 기본형으로 살아야 될 것이다. 그래도 전혀 하자가 없다. 그런데 내 기대에는 크게 어긋날 것이다.

제자는 성선설에 동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 문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고 답하고 싶다. 성선설이 옳은지 성악설이 옳은지 나는 모른다. 만약 제자가 성악설을 믿고 있다면 성냥불 운동에 동참할 가능성은 낮아질 것이다. 제자가 성선설에 동감하지 않는다고 해서 성악설에 동감하는 것으로 나는 해석하지 않는다. 인간은 어떤 때는 선하고, 어떤 때는 악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성선설에 동감하지 않더라도 성냥불 운동에는 동참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은 개인적인 선택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제자의 건강과 건승을 빈다. 착하게 살기 바란다.

옛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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