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수필] 한국이 아니야! 미국이 아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한국 문화를 심기 위해서(실제로는 제가 한국식으로 놀고 싶어서), 미국 사람들을 꼬드긴 적도 있으니까요.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하니 참 무미건조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가끔 직장 동료와 일과 후 맥주도 한 잔씩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재미가 있지 않습니까? 가끔 점심을 같이하자고 권하는 것을 제외하면 제 미국 직장 동료 교수들은 "노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요. 물론 어떤 집에서 파티를 하려고 초청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가뭄에 콩 나는 정도였습니다.

미시간주립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한참 지나고 나서 그곳에 있는 한국 대학원생들과 저녁때 맥주를 마시기로 약속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같이 근무하는 미국 교수도 몇 명 초청하여 한국 학생들과 친목을 도모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S 교수는 흔쾌히 승낙했고, S 교수가 지도하는 몇몇 미국 학생도 같이 오기로 했습니다. D 교수는 처음에 난색을 표명했습니다. 저와 아주 친했기 때문에 저는 약을 조금 올렸죠.

"와? Tenure 땜시 그러냐? 그래도 놀 때는 놀아야 될 것 아냐?"
이렇게 꼬드겼죠. 그랬더니 연구를 조금 해놓고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날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맥주가 몇 잔 들어간 다음 노래방으로 가자고 제가 제안을 했죠. (그 시골 대학촌에 한국식 노래방이 있었습니다. 한국 학생이 500 명 정도 되어서 유지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미국 교수 두 사람이 웬 Karaoke냐고, 자기들은 한국 노래 못 부른다고 극구 사양하더군요. 미국 노래도 많다고 제가 설득했습니다. 그리하야 그날 밤, 미국 교수 두 명과 미국 학생, 한국 학생들이 저와 함께 노래방에서 아예 한국식으로 놀았죠.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리자면, 나중에는 미국 교수들이 마이크를 잘 놓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

아마 그 미국 교수들은 속으로 이렇게 얘기했을지도 모릅니다. :)

"안 교수, 여기는 한국이 아니야!"
19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때 제가 가끔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이곳은 미국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는 대부분 어떤 충고를 받는 자리였지요.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미국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였죠. 어떤 사람은 "3년 정도 입 다물고 살아라."라고 조언한 때도 있었고, "힘을 키운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라고 걱정해주는 때도 있었답니다. 모두 좋은 충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저는 우리나라가 미국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고, 미국식으로 생각할 때도, 한국식으로 생각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입 다물고 살면 불행해지는 것 같았고, 힘을 키울 때까지 기다리면 제 자신이 기득권에 안주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던 것을 말입니다.

제가 잘못 한 것일까요? 제 생각을 표현해서, 그 내용이 옳든 잘못된 것이든 주위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했다면 곤란하겠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제 생각을 펼칠 묘책을 찾아야겠다고 자신을 반성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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