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0월 1일 목요일
[단상] 지리산 노고단에 대한 추억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12:40
제가 지리산 노고단에 두 번 올랐었습니다. 처음은 학부 2학년 여름방학에 친구 두 명과 함께 구례 화엄사를 거쳐서 올라갔는데 무척 힘들더군요. 등산 코스 자체는 그렇게 길지 않아서 소박한 마음으로 간단하게 라면을 끓여 먹고 도전했는데, 큰 착각이었습니다. 라면 정도로는 충분한 에너지를 낼 수 없어서 거의 계속 올라가는 오르막을 거쳐 노고단에 도착했을 때는 세 명 모두 기진맥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밤에 비까지 내려서 원래 계획했던 종주를 포기하고 산에서 내려와서 홍도로 향했던 가슴 아픈 기억이 첫 번째 노고단 등정이었습니다.
그다음 해에 지리산 종주를 다시 도전하려고 했는데 노고단 등정에 대한 공포심 때문에 "잔꾀"를 부려서 역종주를 선택했습니다.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을 먼저 오르고 노고단 방향으로 가는 것을 지리산 역종주라고 하죠. 천왕봉이 노고단보다 훨씬 높지만, 등산 코스 시작 지점이 더 높은 곳에 있어서 더 쉬웠습니다. 일단 천왕봉에 오르니 그다음부터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수려한 능선길을 따라서 오르락 내리락 하면서 며칠 동안 아름다운 자연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는 라면이 아니라 밥으로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천왕봉 등정에 나섰던 것은 물론입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에 이르는 지리산 능선길을 즐기고 나서 제가 느낀 것은 노고단 지역이 그 중 개발이 가장 많이 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래전부터 유명세를 탔던 노고단은 옛날 선교사들이 휴양시설을 짓기도 했고 군사시설도 있어서 개발의 흔적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숨을 깔딱거리면서 깔딱고개를 지나면 마주치게 되는 자동차 도로를 보면 허탈해지기도 하죠.
그 노고단 지역을 이 대통령이 대선 후보시절에 답사하고 "아직 개발이 덜 됐어."라는 말을 남겼다는 기사를 읽고 왠지 스스로 밝힌 녹색 환경운동가라는 꿈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멀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모르죠. 2 년도 채 되지 않는 기간에 환경을 열심히 공부해서 생각을 많이 바꿨을 수도 있겠죠.
4대 강 사업을 하면 콘크리트벽들이 많이 생길 텐데 그 회색을 녹색으로 어떻게 바꿀지도 걱정입니다. 혹시 녹색 페인트를 칠하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겠죠? ㅋ 농담입니다.
피드 구독하기:
댓글 (Atom)
안병길
답글삭제(2009/05/06 23:48) 학부를 졸업할 시점이 되었는데도 아직 지리산, 한라산, 설악산 정상 중 한 곳도 밟아보지 못한 분은 이번 여름방학 때 적어도 한 곳은 꼭 도전해보시기 바랍니다. 그 중에서 종주든 역종주든 지리산 능선길 걷기를 강추합니다.
김규식
(2009/05/07 00:01) 노고단 쪽으로는 심지어 차로도 올라갈 수 있지 않나요? =_= (얼마나 개발해야 되는거지..?)
중2때 지리산 역종주(오늘 알았습니다ㅠ)를 했었는데요, 그때 느낀 건 단 한가지....'지루하다ㅜ'는 거였습니다.ㅋㅋ
제가 산골에 살았어서 그런지, 늘 보던 산에다가, 설악산처럼 절경이 펼쳐진게 아니라 좀좀 지루했었어요. (지리산의 어원은 '지루산'이라는 소문도....^^)
ps.합법적(?)으로 며칠간 (1박 3일이었던 것 같은데..) 씻지 않다도 된다는 것이 좋았었지요.ㅎㅎㅎ
안병길
(2009/05/07 00:14) 설악산은 예쁘고, 한라산은 신기하고, 지리산은 장엄하다는 것이 제 느낌이었습니다. 지리산 능선길이 조금 지루하기는 하지만 어머니 품과 같은 포근한 자연의 파노라마를 장시간 즐길 수 있는 점이 저에게는 참 좋았습니다. 능선길에 물이 귀한 애로가 있어서 규식씨가 씻을 수 없었겠죠.^^
제가 노고단에 갔을 때는 위 사진의 도로가 비포장이었습니다. 주로 군용 차량들이 이용했었던 것 같구요. 요즘은 일반 자동차들이 매끈한 아스팔트 도로를 쌩쌩 달리고 있겠죠.
신민섭
(2009/05/07 01:11) 안박사님 말씀처럼 정말 그렇더라구요. 화엄사에서 '속세'를 뒤로한채 올라갈때 "산은 역시 정직하구나... 누구에게나 두다리로 걸어 올라간만큼 보여주니까..." 하면서 가는데 왠걸요? 갑자기 눈에 아스팔트길이 나타나더니 차들이 다니고 노고단에는 맨손의 슬리퍼 차림의 나들이 객들이 등에 제몸만한 짐을 지고 비지땀을 흘리고 올라오는 저희들을 되레 신기한 듯 쳐다보더군요 ㅋㅋ 산도 결국 정직하지 않았던거였어요 ㅜ.ㅜ ㅋㅋ
이준구
(2009/05/07 10:13) 난 안 박사가 가보길 권한 세 산 중 한 군데도 못갔는데 어쩌지요? 갔던 곳 중 가장 높은 곳이 한라산의 윗새오름입니다.
안병길
(2009/05/07 10:42) 윗새오름에서 백록담까지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 가실 수 있는데 시간이 여의치 않으셨던 모양입니다. 이번 여름에 남한 육지에서 가장 높은 곳인 천왕봉을 등정하시는 것은 어떨까요?^^
김규식
(2009/05/08 09:27) 정말 계곡이라든가 하는게 없었던 것 같아요.ㅎㅎ
대청봉 올라갈 때는 그래도 계곡이 있었던 듯한 기억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안 씻은 걸 보면....그런 문제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ㅋㅋ
산행 다닐 때 제일 신기했던 건 산장으로 물건(음식 등) 나르시는 분들이지요....그 무거운 짐을 지시고도 무진장 빠르시더군요.ㅜ 그리고 스님들...고무신 신으시고도 등산화 신은 저보다 탁월한 등산 솜씨...ㅠ
안병길
(2009/05/08 10:59) 규식씨 일행이 역종주를 쾌속으로 마쳐서 계곡에서 쉴 시간이 없었던 것이겠죠.^^ 일 주일 정도 여유있게 시간을 잡고 주능선에서 계곡으로 내려갔다 다시 올라갔다 하면 지리산의 다양한 계곡의 절경도 함께 즐길 수 있답니다.
제자*오
(2009/05/08 14:12) 박사님 말씀대로 저도 졸업 전에는 한번 올라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3학년 가을학기 개강을 이틀 앞두고 홀로 전라선 밤기차를 탔습니다. 이듬해 봄 입대할 생각이었기에 기회가 이 때뿐이다 싶었던 거죠. 짧은 시간이라 천왕봉 등정은 제외시켰지만 뱀사골로 올라 노고단으로 내려오는 길에 길동무도 만나고 운해도 즐기고 산을 조금이나마 느껴봤던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는 스트레스가 쌓이거나 고민거리가 있으면 관악산이든 북한산이든 혼자 오르곤 했습니다. 그러고나면 답답한 가슴이 풀리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언제 기회가 되면 박사님과 산행을 같이 해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일을 크게 벌이면 이곳 커뮤니티의 원하는 분들도 함께 말이죠.^^
김규식
(2009/05/08 17:56) 음~체력을 길러서 나중에 다시 제대로, 느긋하게 도전해봐야겠습니다ㅋㅋㅋㅋ
안병길
(2009/05/08 22:48) 귀국시 해야할 활동 목록에 제자*오님과 등산하기를 추가했습니다.^^
오래전에 친구들과 지리산에 들어가 5박6일 있었는데..2박 하고나서 징징댔던 기억이 나네요. 새벽4시에 일어나서 밥해먹고 하루종일 걷고 저녁8시면 텐트에서 구겨자고. 넘어져서 무릎까지 깨져 왔지만 마지막날 차를 끌고 나오면서 바라보던 지리산..눈물이 났었어요. 너무 거대한 것을 내 품에 잠깐 안아 본 후의 벅참 같은거.
답글삭제지리산을 5박 6일 동안 누비고 다니셨으면 제대로 보셨겠습니다. 고생이 되지만 가볼 만한 산이죠. 지리산을 어머니 품과 같은 산이라고 평하기도 하는데, 민영님은 그 느낌을 받으셨나 봅니다.
답글삭제지리산을 안가보신 분은 꼭 한번 가보시길 강추합니다. 그리 많은 산을 다닌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주요 산은 다 가보았습니다만.... 전 지리산이 제일 좋습니다. 청해님 말마따나 어머니 품과 같은 산이지요. 일전에 지리산 자락 마을에 사는 분이 지리산은 구백구십구자락에 사람들을 품고 먹여살린다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답글삭제산행을 많이 다니시는 어떤 분은 지리산은 음산이고 설악산은 양산이어서 설악산은 여자들이 좋아하고, 지리산을 한번 가본 남자들은 반드시 또 가고 싶어한다고요....
모든 분들, 보름달처럼 넉넉하고 밝은 추석 명절 보내세요.
저도 가본 산 중에 지리산이 가장 좋더군요. 한라산은 신기하고 설악산은 예쁘지만, 그래도 장엄한 멋을 보이는 지리산이 왠지 마음에 끌렸습니다. 지리산 종주나 역종주를 다시 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답글삭제산바람님도 풍성하고 즐거운 한가위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sakpoong 2019. 6. 26. 20:40
답글삭제1. 서울에서 당일치기로 노고단 정상 정복기(84세, 1936년생)
거처가 동서울터미널에서 가까우므로 동서울_백무동행(07시 출발) 승차,
마천에서 택시로 성삼재로_성삼재에서 11:30분에 출발_14:30 노고단 정상 도착.
15:40 성삼재에 귀환_예약한 택시로 마천버스정류소로_17:10 출발 버스로 귀가.
* 과거 3차례의 노고단 산행 경력.
1) 20대 초반(1950년대)에 국민학생들과 화엄사_코재_선교사 여름 피서지 까지 등반.
2) 30대 중반(1970년대)에 마을 천년들과 점심후에(순천 가까운 별량면 거주때) 화엄사
_코재_노고단 대피소 까지 등반.
3) 50대(1980년대)때 직장 동료들과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 까지 등반.
2. 아들녀석 학부생(87학번) 여름 방학때 동료 2명과 함께 화엄사_코재_ 노고단_토끼봉
까지 갔다가 악천후로 간신히 귀환 했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