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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3일 토요일

[정치] 민주주의에 대한 단상들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6/25)

[설명] 2008년 상반기에 시민이 거리로 다시 뛰쳐나왔다. 여러 복잡한 요인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두드러진 것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결과에 대한 국민의 분노였다. 연일 이어지는 촛불 시위/집회에서 시민은 정부의 잘못을 지적했고, 급기야 정권 퇴진 구호까지 등장하였다. 한 원로 정치학자의 정년퇴직 기념 강연 내용에 대한 보도를 읽고, 필자가 평소 생각하고 있었던 민주주의 개념과는 다른 내용이 눈에 띄어서 작성한 문건이다. 그 정치학자는 현대 민주주의를 대의제 민주주의로 간주하여 시민이 정권 퇴진을 외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견해였다. //

(1) 민주주의 = 대의제 민주주의?

현대 민주주의가 대의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것은 어떤 사회가 일정 크기를 넘어서면 직접민주주의를 정치 일반에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거나, 비효율적인 측면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직접민주주의 자체를 옳다/그르다로 평가한 것은 아닙니다. 즉, 현대 민주주의에서 간접적 요소가 더 채택되는 쪽으로 “선택”한 것이지 현대 민주주의 자체가 대의제(간접) 민주주의라고 강변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현대 민주주의에 대한 정확한 표현은 “대의제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채택하지만 직접민주주의 요소도 있는 혼합형이다.” 정도가 될 것입니다.

주민 투표, 주민 소환, 주민 발안 등의 직접민주주의 제도가 우리 정치에서 아직 뿌리를 못 내리고 있지만, 그런 제도들도 현대 민주주의의 핵심입니다. 또 우리 대통령 선거는 어떻습니까? 대의제로 가는 길이지만,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것은 직접민주주의가 아닙니까? 이런 예들은 직접민주주의가 오히려 더 중요한 의사결정에 적용됨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를 배제할 수 없음을 잘 나타냅니다.

만약 “절차적 정당성”의 대의제 민주주의와 “인민 주권”의 직접민주주의가 서로 부딪히면 직접민주주의가 우월적 지위를 갖는 것은 물론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4.19 혁명, 5.18 광주 민주화 항쟁, 6.10 직선제 쟁취 민주화 항쟁 등의 국민 저항이 폄훼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 민주주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당정치가 발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어떻게?”라는 질문을 자동으로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촛불이 꺼지면 정당정치가 정상화될 것이라든지, 촛불의 과도한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를 약화시킨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민운동과 대의제/정당정치 관계는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작금의 촛불 시위가 정당정치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단언할 수 없습니다. 촛불 때문에 여의도 국회 의사당이 불타는 정도는 아닙니다. 만약 촛불과 정당정치 사이에 관계가 있다면 정치인들이 시민 사회의 입력을 더 잘 받들어야 되겠다고 깨닫는 긍정적인 효과도 포함할 것입니다. 촛불 시위 이후 여당이 보여준 쇠고기 수입 쟁점에 대한 태도변화를 참조하면, 그것이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에 도움을 주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2) 정치적 표현으로서 촛불?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면서 촛불 시위의 “정치적” 주장이 “잘못” 되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봤습니다.
•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서?
• 촛불이 쿠데타 음모를 꾸미고 있어서?
• 촛불이 정치적 주장을 외치면 남한이 북한에 먹히기 때문에?
• 우리 경제가 결딴나서?
• 대통령이 중도 하차하고, 여당 지지율이 급격하게 떨어져서?
• 국회가 해산될 가능성이 있어서?
• 우리 민주주의가 유신이나 5공 시절로 되돌아가기 때문에?
이런 이유는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아마도 지금까지 정부/여당의 실패가 정권 교체의 조건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겠습니다. 이것은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무슨 증명을 하듯이 명쾌한 해답으로 제시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촛불이 “정치적” 구호를 외치는 것이 왜 “잘못”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어떤 시민도 어떤 정권에 대해서 정치적 의견을 낼 수 있습니다. 그런 운동도 합법적으로 조직할 수 있습니다. 그 요청이나 운동 목적이 구현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부 촛불의 요구가 대통령을 다시 뽑자는 것인지, 따끔하게 대통령을 꾸짖는 정도인지도 불분명하지만, 설사 대통령을 다시 뽑자고 주장한들 그것이 무슨 “잘못”이겠습니까? 저는 시민이 그런 주장을 하는 것 자체는 자유민주주의(대의제든 직접이든)에 전혀 어긋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적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함부로 상대방을 “틀렸다.”든지, “잘못”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현 정권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잘못된 주장은 아닙니다.

촛불에 대해서 그것이 횃불이 될지, 성냥불이 될지, 그냥 사그라질지 노심초사하는 유력 인사들이 많은 것 같은데, 오버는 하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과도한 주장은 침묵보다 못할 수 있습니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있으니 그런 사람들도 나름대로 정치적 주장을 할 수도 있는데, 그들의 “과분한 위치(한마디만 하면 주요 언론에서 대문짝만 하게 취급함)”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부정적 파급 효과를 고려하여 자중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특정 자유민주주의의 합의된 틀 안에서 정치적 의사표현은 최대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촛불이 정치적 의견을 개진하는 것도 민주주의 한 발현으로 이해해야 하며, 그것이 반드시 대의제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것으로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특정 시민의 정치적 선호일 뿐이며, 그런 주장이 사회 전체 결정으로 채택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3) 대통령제의 한계?

촛불 시위를 대통령제의 한계와 연결하고, 개헌해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자는 주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정 기준을 제시해서 민주주의의 특정 제도를 맞다, 잘못됐다는 식으로 평가할 수는 있습니다. 애로우(Kenneth Arrow)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The Impossibility Theorem)를 참조하면 민주주의 제도에 일반적인 정답이 없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주의 제도를 옳다/그르다는 식으로 평가할 때는 특정 조건이나 기준을 잣대로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이 옳다면, 우리나라의 어떤 조건이나 기준에서 그 제도가 대통령제보다 우월하냐는 분석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는 대통령제가 성공한 사례라는 점을 중시하는 편입니다. 또한, 남북한 분단 구조, 짧은 민주주의 역사, 미성숙한 정당정치 등을 참작하면 의원내각제를 도입하는 것은 아직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기존 대통령제를 수정, 보완하는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요즘 오히려 걱정하는 것은 정치인들이 “야합”해서 의원내각제로 바꾸면 어찌하느냐는 것입니다. 권력구조와 같은 근본적 정치제도의 급격한 변경은 “정치 교육”을 비롯한 유형, 무형의 막대한 비용이 소요됩니다. 정치에서도 “공짜 점심”은 없습니다. 의원내각제 지지자들은 대통령제의 단점과 의원내각제의 장점만 드러내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편익 계산을 제대로 해야 할 것입니다. //

댓글 3개:

  1. [토론]

    [회원1] 평소 공부를 바탕으로 생각을 정리했는데, 최장집 교수 주장과 흡사해서 더 확신이 생겼다. 촛불집회의 긍정적 역할은 부인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 상황이 18세기 말, 19세기 초 프랑스와 유사하다고 생각한다.

    [필자] 회원1님 의견에 대한 반론이 된 셈인데, 첫머리에 적었듯이 며칠 전에 작성한 글입니다. 최 교수님의 마지막 강의에 대한 보도를 읽고 의문이 생겼던 것이죠.^^ 대의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가 더 발전해야 한다는 최 교수님 기본 주장은 저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저는 이번 촛불 시위가 4.19, 5.18, 6.10 등과 다른 측면이 많다고 봅니다. 일부 촛불의 정치적 요청이 어떤 결론으로 매듭지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되겠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이렇다저렇다 평가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각자 시각에 따라서 어느 방향이 더 적절한지 가치판단은 할 수 있겠죠.

    나머지 의견은 오늘 낮(이곳 저녁)에 드릴게요.

    [회원1] 촛불집회가 4.19, 5.18, 6.10과 다른 것은 동의한다. 6.10 항쟁은 노동자가 아니라 중산층의 승리였고, 실질적 민주주의가 아닌 형식적 민주주의를 달성했지만, 대통령 선거가 중점이 되면서 중산층의 한계가 드러났다. 그에 비해서 이번 촛불 운동은 정책 민주주의를 위한 운동이므로 그 성격이 다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보수세력의 권위주의적 행태 때문에 벌어진 사태라서 역사의 반복이라고도 볼 수 있다.

    촛불 운동이 민주주의에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민주주의에서 “합의는 존중받아야 한다.” 소수 의견도 존중해야 하지만, 합의를 뒤집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마찬가지로 대의 민주주의를 존중해야 한다. 정책 잘못이 있었지만, 그 정도로 정권 퇴진을 시키고자 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정치적 혼란만 존재할 뿐이다.

    새 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쇠고기 수입 재협상에 쉽게 나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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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필자] “정권 퇴진”이라는 정치적 의사표현을 과소평가해서도 곤란하지만, 과대평가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정권 퇴진”을 외친다고 해서 그것이 사회적 결정이 된다는 보장은 없죠. 시민의 정권 퇴진 요청은 이번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시기에 따라서 그 표현 방식이 달랐고, 실현 여부도 달랐죠. 1987년 이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도 일부 시민의 정권 퇴진 요청은 있었습니다. 노무현 정권 때는 급기야 국회에서 탄핵을 가결하기도 했죠. 그러나 대통령을 네 번 겪는 동안 한 번도 정권이 중도 하차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이번에 정권 중도 교체가 설사 이뤄진다 해도 그것이 자주 반복될 것이라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정치적 혼란의 반복”도 유사한 추정인 것 같습니다. 그 반대 추정도 가능하죠. 더 나아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로 들어가면(정치적 혼란을 멈추기 위해서 정부가 잘해라, 정권 퇴진 요청 그만두라.), 사태가 이렇게 된 연원에 현 정권의 책임이 있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는 국민이 권력을 위정자에게 위임합니다. 그리고 그 위임을 때에 따라서 거둬들일 수 있다는 것이 그 “합의”에 대한 정설입니다. 어떤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권력 위임 취소가 정당화되느냐는, 특히 그 문제를 사후적(ex post)이 아닌, 사전적(ex ante)으로 평가하자면 더 어렵습니다.

    닉슨과 클린턴이 탄핵 직전까지 갔을 때, 닉슨은 스스로 사임했고, 클린턴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하여 탄핵은 겨우 모면했습니다. 클린턴이 탄핵당했다면 대통령이 바뀌었을 것입니다. 과연 클린턴이 탄핵당할만한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민주주의 정치는 그렇습니다. 옳고/그름의 잣대와 함께 좋고/싫음의 잣대도 동시에 작동하지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국회에서 탄핵당했지만, 헌재에서 그 결정을 부결시켰습니다. 그 당시 국민이 촛불을 들고 나와서 탄핵 저지를 외쳤습니다. 저는 그 촛불이나 지금의 “정권 퇴진” 촛불이나 정권 유지/퇴진이라는 방향성의 차이는 있지만, 근본 성격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보충하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 표현이죠.

    “정권 교체”를 외치는 것이 우리나라와 국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는 쟁점은 유효합니다. 제가 OOOO 님의 원 글에 대해서 “전체이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쟁점을 판단하는 데 유의미한 잣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정치인들이 “국익”이라든지, “전체이익”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면 일단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져봅니다. 개념이 매우 애매모호하기 때문이죠. 룻쏘(J. J. Rousseau)가 “일반의지(Volonté Générale)”라는 개념을 사용했는데, 저는 그 개념을 정치에 적용할 때도 조심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국민 일반의지를 있는 식으로 적용하면 권위주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룻쏘가 권위주의나 전체주의 정치사상의 연원으로 언급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유신의 한국식 민주주의가 국익이라고 주장했던 사례를 곱씹어볼 만하죠.

    한미 FTA 체결이 국민 일반의지인지, 국익인지, 전체이익인지 저는 모르겠습니다. 구체적 내용을 잘 몰라서 반대도 찬성도 아닌 중립이고, 우리 국회에서 비준하면 존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FTA가 비준되어도 그것이 우리 국민의 “전체이익”인지 아닌지는 “전체이익”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엄정하게 정의하면 아마도 전체가 아닌 부분 이익을 뜻할 것입니다. 정권 유지와 퇴진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민마다 견해가 다르겠죠. 어느 쪽이 우리나라와 국민의 발전에 더 도움이 되느냐는 평가도 어떤 잣대를 들이대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입니다. 무엇이든 절대 선이 될 수는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쇠고기 협상 한번 잘못해서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인수위 시절부터 지금까지 정부의 총체적 실패로 재신임 투표를 하고, 재신임이 부결되면 대통령이 사임하는 것은 적절할 것입니다. 취임 넉 달만에 청와대 보좌진이 모두 바뀌고, 내각 총사퇴가 언급되는 것을 참조하면 재신임을 묻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렇게 되어서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게 된다면, 그것이 우리 대의제 민주주의의 퇴보가 될지 발전이 될지는 현재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정권 퇴진을 주장하는 근거는 제법 있는 것 같습니다. 권력의 최후 보루로서 주인을 무시하는 무능한 위정자를 심판하고, 새로운 이에게 권력을 위임하는 것이 더 낫겠다는 판단이겠죠. 반대 의견은 임기가 보장된 대통령제에서 권력을 위임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일부 정책적 실수를 이유로 벌써 그 위임을 철회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일 테지요. 개인적 호불호는 있겠지만, 어느 쪽 견해가 맞다/그르다는 평가를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의사로서 둘 다 존중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정당 제도와 민주주의 발전은 매우 중요한 쟁점입니다. 그중에서 이념적 성향이 밑바닥에 깔린 유럽식 정당제와 미국식 대중 정당제, 어느 쪽이 우리에게 더 적합하냐는 문제에 있어서 저는 혼합형을 선호합니다. 지금까지 유지된 정당 제도도 나름대로 진화의 합리성이 있기 때문에 무시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죠. 구체적으로는 현행 국회의원 제도에서 지역구를 줄이고 비례대표 정원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할 것 같습니다. 장점은 더 살리고, 단점은 개선해나가면 될 것입니다. 정당과 관련하여 국민개방형 상향식 공천은 도입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상향식 공천과 진성(기간) 당원제를 연계하는데, 발상을 바꿔서 상향식 공천과 대중 정당을 연계하는 것이 어떨까 싶네요. 국민개방형 정당후보 경선 투표일을 정해서 유권자가 원하는 정당 후보자가 표기된 투표용지에 투표하는 것입니다.

    재협상에 대해서는, 현 정부가 재협상을 선택하지 않고 추가협상을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저로서는 재협상도 가능했다고 보는 것이고, 정부는 이런저런 계산을 해보니 재협상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했겠죠. 작년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과 당시 외교부 장관이 노 전 대통령을 만나서 쇠고기 협상타결을 건의했다는 보도가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노 전 대통령이 자신은 정치인이기도 한 점을 강조하면서 거절했다고 합니다. 선택이 달랐던 것이죠. 원래 협정이 잘못된 것이었기 때문에 재협상하려면 무척 힘든 길이었음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임무를 해내라고 대통령, 장관 등의 명예도 갖고 국민 세금에서 월급도 받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재협상 의지와 협상 능력 운운했던 것이랍니다. 원래 협상, 추가 협상, 대국민 소통, 정책 수정 등에서 별로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네요.

    여담입니다만, 김종훈 본부장이 FTA 교섭단장이었습니다. 김 본부장으로서는 FTA 완결이 일생일대의 “꿈”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그 “꿈”이 대통령의 유사한 “꿈”과 일치해서 재협상보다는 추가협상 쪽으로 길을 잡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도 합니다. 청와대 수석 회의에서는 재협상 이야기도 나왔다고 합니다. 저는 쇠고기 협상과 FTA 완결이 연관은 있지만, 쇠고기 협상에서 크게 양보한다고 해서 FTA 완결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고 보는 편은 아닙니다. 오히려 FTA 완결을 위해서 쇠고기 협상 카드를 남겨놓을 필요가 있었을지도 모릅니다(4월 협정의 예). 또한, 한미 FTA가 왜 우리 국민의 “꿈”이 되어야 하는지도 잘 이해하지 못하죠. 타결되어도 괜찮고, 타결되지 않아도 별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니까요. 지난주 어느 토론에서 여당 의원이 쇠고기 협상과 관련하여 야당 의원에게 이렇게 묻더군요, “한미 FTA 찬성입니까? 반대입니까?” 제가 듣기에는 뜬금없는 질문 같았습니다. 밤의 귀족문화 언질을 받았던 그 의원에게는 한미 FTA가 “국익”, “전체이익”, “대한민국 선진화”, “아무튼 좋은 것”, “소원” 정도 되니 그런 식으로 질문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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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회원2] 필자 글을 읽고 속이 시원해지는 것 같다. 나중에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면, 2008년에 비폭력 운동으로 올바른 대의제를 만들었다고 말하고 싶다.

    [필자] 허술한 글을 읽으시고 시원하셨다니 쑥스러우면서, 한 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밝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은데, 이런 글을 올리면 기분이 왠지 썰렁해집니다.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더 빨리 공고화되면 좋겠습니다. 선생님의 건승을 빕니다.

    [회원3] 명쾌한 글 잘 읽었다. 필자의 전공과 소속을 물어봐도 되겠는가?

    [필자] 저는 1994년부터 2000년 8월까지 교직에 있었는데, 개인 사정으로 그 이후 학계를 떠났습니다. 학계에 있을 때 주 전공은 국제정치학 중 분쟁/협상 이론(남북한 관계 포함)이었고, 합리적 선택이론(rational choice theory 혹은 positive political theory, 선거/투표이론 포함), 정치학 방법론 등도 공부했습니다. 지금은 아마추어 관찰자입니다. ^^

    [필자] (그냥 제 의견을 말씀드립니다.)

    * 촛불 시위의 순수성 상실, 변질 등의 표현이 객관성을 가지려면 촛불 시위가 어떻게 되어야 한다는 일반 정답이 있을 때 가능하겠죠. 저는 그 정답이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정권과 국민 사이의 부부싸움 비유는 별로 적절하지 않은 것 같아요. 부부와 비슷한 관계도 아니며, 일종의 비유로 간주하더라도 지금 정권이 먼저 때리는 것인지, 국민이 먼저 때리는 것인지도 생각해봐야겠죠. 이전 정권 초기와 현 시점을 비교하면 정권 중도교체 가능성이 현재가 훨씬 낮습니다. 그런데 이전 정권에서도 정권 퇴진은 일어나지 않았죠. 이미 말씀드렸지만, 정권 퇴진 요청은 이전에도 계속 있었는데 4.19 혁명을 제외하면 중도교체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 정치사에서 설사 중도교체가 실현된다고 해도 자주 일어날 것이라는 추정은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리 권력구조가 대통령제라는 것을 참작하면 더 그렇죠. 정권 중도교체가 오히려 우리 민주주의가 한층 더 공고화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추정도 가능합니다.

    * 자유민주주의의 3대 원칙을 자유, 평등, 참여라고 흔히 이야기합니다. 참여 방식은 다양한 모습을 보일 수 있습니다. 정당 정치 발전과 시민의 직접적 정치의사 표현이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고 특정 시민이 제도권 내 정치 활동은 별로 하지 않고 직접적 정치의사 표현을 한다고 해서 비난/비판받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대규모 평화적 시위를 여러 번 주도했습니다. 그때 제도권 내 참여가 막혀 있어서 그렇게 했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만 하겠습니다.

    * 촛불 시위가 단순히 “상대방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저는 보지 않습니다. 대통령 취임은 “상대방의 승리”를 이미 인정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촛불들도 이명박 대통령 취임을 맞이하여 축하도 했고, 훌륭한 국정운영으로 우리나라와 국민이 더 발전하기를 기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동안 지켜본 결과, 실망한 시민이 “소환(recall)”을 요청하는 것은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권력의 최종 주인으로서 권리를 주장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 현 정권의 정책적 실패도 문제이지만, 정권의 정체성 문제도 제법 제기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여기서 정체성이란 현 정권이 헌법 제1조를 포함한 대한민국 기본 원리(예컨대 국민의 기본권 준수)를 받들고자 노력하는 문제의식입니다. 인간광우병으로 앞으로 한 명도 죽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먼 훗날 지금 촛불들이 무척 어리석었다고 사후적으로 평가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카드빚으로 자살한 사람이나, 대통령 말에 자살한 사람 숫자보다도 더 적더라도 말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앞으로 인간광우병으로 과연 몇 명이 죽어나가느냐는 숫자 놀이 이상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 제가 보기에 PD 수첩이 일부 실수는 했지만, 광우병과 관련하여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 괜찮은 보도를 했던 것 같습니다. 관련 방송프로그램들과 논란을 대부분 살펴봤는데, 일부 신문과 정부의 집중포화를 받아야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왜곡이라면 그 신문들과 정부가 제법 했죠. 검찰에 전담반이 생기고 검사가 몇 명씩이나 배당되었다고 하던데, 제가 가진 상식으로는 정부가 상당히 오버한 것으로 보입니다. 캠프 데이비드 숙박료 이야기는 일종의 은유적 표현이죠. 정부는 나름대로 열심히 머리를 굴려서 “진실하게” 협상에 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쇠고기 협상이 잘못되었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했습니다. 전후좌우를 살펴보면 부시에게 선물 한 보따리를 “숙박료”로 준비한 것으로 은유적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 일부 시민이 격해진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봐서 이번 시위는 어떤 특정 단체들의 지휘하에 이뤄진 것도 아니었고, 매우 다원적인(plural) 평화 시위였다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을까요. 촛불 중에서도 조선일보나 동아일보에 물리적 위해를 가하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촛불 대부분이 그런 행동에 동참했다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온전할 수 없었겠죠. 경찰들과 부딪히면 시민이 “비폭력”을 외친 것을 참조해야 합니다. 나무도 보고 숲도 봐야 합니다. 담양에 가본 적은 없는데 대나무 숲에 대나무만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 촛불은 이미 이겼습니다. 이 상태로 서서히 잦아들어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유비쿼터스 커뮤니케이션을 토대로 진행한 평화적 시민운동으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정부의 강경 대처로 장기간 촛불을 든 지친 시민이 집으로 돌아가더라도, 우리 민주주의 발전에 한 획을 그었습니다. 그리고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다시 오지요.

    * 현재 상황에서 재협상을 하지 않고 사회안정을 시급히 이뤄야 하는 지상과제가 있다고 대통령이 판단한다면, 대통령으로서 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이 있습니다. 당장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해서 한 달 뒤 쇠고기 원래/추가협상 결과를 걸고 재신임 국민투표를 할 테니, 촛불들은 댁으로 돌아가셔서 편히 쉬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한다고 제가 주장하는 것은 아니고, 현실에서 그 방안이 드러날 가능성도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 현재 사회 불안정의 주 요인은 현 정부의 실패입니다. 자업자득... 인과응보... 결자해지...

    * 저도 여기서 여러분과 의견교환을 하면서 제 생각도 정리하고 다양한 의견도 경청할 수 있어서 좋습니다.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점이 있어도 더불어 살아가는 미덕을 살리면 됩니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 기본 원리라고 생각해요.

    [필자] 촛불이 없었다면 추가협상이나마 했을까요? 그리고 저는 국민이 유비쿼터스 커뮤니케이션으로 평화적 촛불 시위를 자발적으로 만든 그 자체가 승리라고 생각하죠. 제가 염두에 둔 것은 단기적으로 큰 무엇을 “획득”해야 승리라는 개념과 다릅니다. //

    [토론 소감] 자유민주주의에는 일반적 정답은 없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일종의 이상형으로 가정하는 순간 그것이 정답이라고 추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필자는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조금이라도 손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권 퇴진도 외칠 수 있어야 하고, 정권 수호도 외칠 수 있어야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의 본 모습이다. 민주주의에 따라서 다수의 지배가 정당성을 부여받았어도, 그 정당성은 언제든지 민주주의가 철회할 수도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필자는 촛불 시위/집회가 우리 시민사회의 자유민주주의 운동에 한 획을 긋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음을 이 토론에서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이전 민주화 운동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의, 유비쿼터스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자발적 시민 자유민주주의 운동으로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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