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정(소극)적이고 좌절시키는 문화
잘 안 되는 영어이지만, 제목으로 한번 뽑아봤습니다. 제가 미국에 살고 있으니 영어도 어느 정도는 대접을 해줘야죠.^^ 제목을 번역하면 "부정(소극)적이며 좌절시키는 문화" 정도가 되겠습니다. 이 경우에 네가티브는 포지티브와 맞선 개념으로 보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반대편에는 "긍정(적극)적이며 격려하는 문화"가 있겠죠.
미국에서는 유턴금지 표지가 없으면 모두 유턴이 가능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유턴 표지가 있어야 유턴이 가능하더군요. 미국은 유턴이 위험한 지역이 그렇게 많지 않고, 도로 사정이 여유가 있는 편이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으므로 도로 안내판이 그렇다고 설명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유턴하는 것은 긍정의 개념이고, 유턴 안/못 하는 것은 부정의 개념이죠. 부정보다는 긍정이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성이 안씨라서 이런 불명예를 항상 달고 삽니다. 제가 "안 박사"인데요, 박사가 아니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죠.^^ 저, 박사 맞습니다.ㅜ.ㅜ 그러나, 괜찮습니다. 이임하신 국가인권위원장께서 같은 성씨이므로 완전 괜찮습니다. 조상님들이 자랑스럽습니다. 안강최의 안!입니다.^^)
이 교수님께서 힘들게 사회비평 등대지기를 하실 때 좌절시키려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요, 긍정적으로 격려해주는 사람들이 더 많을까요?
2. 인터넷 동호회의 가상 사례
한 인터넷 동호회에서 어떤 회원이 근거 없는 생욕과 인신공격을 받았을 때,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그 상대방을 응징했다고 합시다. 그 와중에 동호회 회원들이 그 회원에게 보여준 반응은 세세하게 따지면 매우 복잡하겠죠. 사안에 관심이 없었던 회원들을 제외하면, 반응 행태는 대략 다음과 같이 분류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적극적 지지: 공개 글이나 사신으로 격려해준 분들입니다.
2) 소극적 지지: 마음으로는 그 회원의 뜻에 동의하나 그냥 지켜본 분들입니다.
3) 말림의 미학: 그 회원의 뜻에는 동의하지만, 그 회원 자신을 위해서 자제하라는 투로 글을 올리거나 사신을 보낸 회원들입니다.
4) 소극적 반대: 무슨 이유에서든 그 회원의 행보를 못마땅하게 여겼지만 침묵을 지킨 사람들입니다.
5) 적극적 반대: 원래 그런 욕설이 횡행하던 곳인데 그 회원이 오버했다고 비난하든지, 아예 비슷한 욕설을 그 회원에게 해댄 인간들입니다.
그 회원이 무슨 도발을 한 것도 아니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아서 침해된 자신의 명예를 되찾겠다는 대의명분을 갖고 온 힘을 기울인 사람에게 이렇게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3. 싫어할 자유와 좋아할 자유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사에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이기는 그렇게 어렵지 않죠. 그 과정이 복잡했을 테니, 그 회원의 행보 중 일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췌 잡공을 현란하게 뿌려서 그 회원을 탐탁지 않은 존재로 스스로 생각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세상이니까요. 제 해석이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5번은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회원을 일종의 말썽꾸러기로 본다고 간주해도 별 무리가 없죠. 1번의 경우는 그 회원에게는 가장 소중한 분들이고, 동지가 된 경우입니다. 만약 그 회원이 인터넷 소통에서 맞대응 전략(Tit-for-Tat)에 준하는 상호작용을 유지했다면, 그런 분들이 격려의 글/사신을 올리거나/보내왔을 때 반드시 화답했을 것입니다. 상호협력을 유지하자는 것이죠.
4. 귀차니즘, 점자니즘, 그리고 말림의 미학
2번, 3번, 4번 유형은 조금 분석을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번과 4번은 제법 줄여서 "귀차니즘" 혹은 "점자니즘"에 빠졌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남들이 알아서 해결하면 대충 따라가겠다는 회원들이죠. 귀찮게 생각하거나, 아래 것들이 까부는데 점잖은 자신들은 빠져 있겠다고 생각했을 수 있겠습니다.
3번이 상당히 재미있는 유형입니다. 건강을 염려해주시는 분, 취지는 맞는데 방법이 너무 세다는 분, 귀찮은데 그냥 대충 지나쳐주지(똘레랑스) 뭘 그렇게 혼을 내려고 하느냐는 분, 기타 등등 여러 표현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회원으로서는 고맙죠. 대의는 바르다고 일단 동의를 해줬으니 얼마나 고마운 분들입니까. 그 점에 대해서는 정중하게 감사를 드려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말리는지 그 이유는 사람마다 다를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그 회원을 걱정해서 말리는 경우도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고맙죠. 그 회원으로서는 감사해야 합니다. 예컨대, 뜻을 관철하기 위해서 단식을 오랫동안 했다면, 저라도 말리겠습니다. 일단 건강을 해치면 바람직하지 않으니까요.
그런 심한 경우가 아닐 때, 말리는 것이 그 회원을 행복하게 해줄지 아닐지는 똑 부르진 답이 없을 것 같습니다. 말리는 것 자체가 사실 그 회원을 별로 행복하게 해주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겠습니다. 그 회원이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결국은 행복하기 위해서 고생하는 것인데, 관두라!라고 하면 그 회원은 맥이 팍 빠질 수도 있겠죠.
말리는 이유가 그들 자신을 위해서라든지, 게시판 전체라는 가공의 무엇을 위해서라든지면 오히려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회원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되고, 양보해서 그분들이 행복해진다면 전체 사회의 행복 총합으로서는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판단이 설 수도 있겠죠. 그 회원이 적어도 편협한 이기주의자가 아니면 가능한 얘기입니다.
5. 말리지 않을 자유
저는 이 말리는 문화에도 권위주의 유산이 일부 베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구요? 그 회원의 선호를 자신의 선호에 맞춰서 추정하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자신이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 회원도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과 마찬가지인 경우입니다. 상대방 타입이나 스타일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당당하게, 네 뜻은 옳다, 그러나 네 행복을 위해서 관두라는 식으로 얘기합니까? 그 회원의 행복을 그 회원이 더 잘 알지, 그분들이 더 잘 알겠습니까. 옛말에 야단치는 시어머니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얄밉다는 말이 있죠. 이 예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길 수도 있겠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이런 말리는 미학이 아직도 팽배해 있습니다. 주위에서 살펴보십시오. 경험도 많이 해보셨을 것입니다. 말렸든지, 말림을 당했든지요. 옳다고 공감하면 그쪽에 힘을 보태는 것이 자유주의에 맞습니다. 괜히 남의 선호를 갖고 이렇게 저렇게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권위주의적이죠. 만약 그런 말리는 행위가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라면, 깨끗하게 이런저런 점은 객관적으로 잘못이니 인정하라고 요청하는 것이 더 당당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올바르고 정당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말리는 이들이 많은 사회에서 어떻게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올바른 방향을 그렇게 좌절시키려고 하면 힘들게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힘껏 노력하는 사람은 얼마나 실망이 클까요. 이런 식으로 말리는 것보다는 오히려 침묵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만 있는 현상은 아닙니다. 미국의 킹 목사도 인권 운동을 할 때, 주위에서 말리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겠죠. 춘추도 그러한데, 건강을 생각하십쇼, 이런 것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 숫자보다는, 맞다! 우리가 그것을 깜빡했다, 지금부터는 킹 목사 당신에게 힘을 보태겠다!, 이렇게 해서 링컨 기념관 앞에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인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몽고메리에서 흑백차별 버스 안 타기 운동을 벌였을 때, 사람들이 동참해줬던 것이죠. 귀차니즘, 점자니즘, 말림의 미학 등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6. 말림이 비추가 될 때
자유주의에서는 자신과 직접 관련이 없거나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면, 간섭하지 말고 그냥 놔두는 것이 정답입니다. 이기적 개인주의이니까요. 그 이외는 기냐 아니냐로 입장을 분명히 정리해서 자기편이 이기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기려고 노력하는 전략은 다양합니다. 무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방안이 될 수도 있죠. 스토커는 무시하는 것이 적절할 때도 있습니다.)
게다가 민주주의까지 그 문제에 들어오면 반드시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쪽 수로 밀려서 소수파가 되고, 다수파의 입장이 전체 사회적 결정으로 확정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투표합시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독일의 정치이론가 칼 슈미트는 "정치적이라는 것(the political)"은 "적"과 "친구"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 속 뜻을 음미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주위에 올곧은 일을 하신다는 믿음이 가는 분들이 있으면, 귀차니즘이나 점자니즘으로 소극적으로 대하는 것이나, 말림의 미학으로 좌절을 안겨주는 것이 그분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지 한번 생각해보시죠. 제가 보기에 적어도 말림은 그분들에게는 별로 행복감을 안겨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자유주의에서 강요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화내면 자신이 또 손해거든요.^^ 남에게 무엇을 요구할 때는 권유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7. 자유민주주의적 참여: 선진국을 향하여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볼 만한 것은, 마냥 착한 바보같이 사는 것이 적절하냐는 문제입니다. 이타주의가 오히려 더 불행한 사태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나약한 이타주의는 그렇습니다. 예컨대, 최진실 사건 이후로 네티즌들이 선플달기 운동을 하죠. 아주 좋습니다. 선플이 흘러 넘치면 양화가 악화를 구축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동참하지 않는 자유인지 방종인지를 만끽하려는 사람들이 일정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냇물을 흐린다는 옛말이 있죠. 그런 미꾸라지는 미끄러워서 잡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노력해서 한 곳에 모여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밉다고 추어탕을 해 드시지는 마시길... 자유주의는 그런 미꾸라지도 존재 그 자체는 인정합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유명한 격언이 있습니다. 그것은 간단한 모형을 사용하여 순차 게임으로 주어진 조건에서 증명할 수도 있습니다. 작년에 제가 관련 포스팅을 이미 올렸습니다. "주말, 전쟁 공부 (http://tinyurl.com/ahn-bdm)"라는 제목이었습니다.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물론 평화주의자들끼리 사는 세상에는 이타주의자도 착취당하지 않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우습게 보이면 달려들어서 홀라당 등치려는 늑대들이 곳곳에 있는데 어쩌겠습니까. 겉으로라도 센(tough) 척해야죠. 그래야 응징이 두려워서라도 늑대들이 자제할 것 아닙니까.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하려면 제대로 된 "참여"가 필수적입니다. 그 참여가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그 참여를 뒷받침하는 시민 정신과 문화가 성숙하지 않으면.......... 선진국, 가기 힘들걸요?
소민우
답글삭제(2009/07/12 09:01) 제가 평소에 갖고 있던 생각을 이렇게 잘 찍어서 풀이해주신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사회에 만사를 '날로 잡수시려고' 하는 이른바 free-rider 문화가 극복되지 않는 이상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은 요원하다는 생각이 문득듭니다.
안병길
(2009/07/12 09:23) 민우씨, 그렇습니다. 우리들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저는 문화의 영향이 매우 크다고 보고 있습니다. 가만이 생각해보면, 어릴 때부터 "하지마라"는 얘기를 너무 많이 듣고 자란 것 같습니다. 놀지 마라, 연애하지 마라, 위험한 데 가지 마라, 시시한 대학은 가지 마라, 기타 등등... 이러니 사람들이 뭔가 하려고 하면, 추진하는 것보다는 하지 않는 쪽으로 더 생각하게 되고, 조언도 그 쪽으로 더 많이 나오는 것이죠.
웬만하면 각자의 뜻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쪽으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열심히 추구해서 성공사례도 나올 것이고, 돈키호테도 그 용기의 값어치를 인정받을 수도 있을테고, 너드도 돈 많이 못 번다고 핀잔은 받아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해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노벨상도 언젠간 나오겠죠...
ROME
(2009/07/12 14:53) 교수님의 글들 모두 잘 읽었습니다. 매우 감사합니다. ^^ 뜬금 없지만, 교양 수업 때 읽었던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도 생각나네요..ㅎㅎ
안병길
(2009/07/12 21:41) ROME님, 응원 감사합니다. 그 책의 내용은 무엇인지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raychel
(2009/07/18 02:00) 안병길 박사님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습니다. 더불어 글을 참 잘 쓰셔서 부럽습니다..ㅋㅋ
전에 '실수할 수 있는 자유'와 관련된 글을 읽고 비슷한 생각을 했었습니다.
개인의 근시안적인 선택과 정부의 온정주의적인 개입 필요성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강제저축으로서의 연금제도와 관련된 것이었는데요.
실은 막연히, 강제저축으로서의 연금이나, 의무교육같은 것들이 당연히, 사람들이 실패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제게 자유주의자들의 논리는 상콤한 충격이 되기도 했습니다. (특히 대학생때 매우 짧은 안목으로 인해 현재까지 '자연벌'을 받고 있는 저에게는 때때로 누군가의 개입- 즉 잔소리가- 장기적으로는 유용할 수 있다는 교휸이 와닿을 때라 그랬나 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단순히 시각의 장단 문제를 떠나서 한 개인이 장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많으면 주변 사람의 '설득'이 때때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 '말림'의 보다 적극적인 버전으로요. 매우 추상적으로 얘기하게 되는 것 같지만....
요즘 저의 고민이 이와 관련된 것인데요. 비록 저는 짧은 지식을 가지고 있어 누군가에게 설득력이 충분한 존재는 못되지만, (거기에 아직 공부중이라 공신력-소위 그렇겠지~싶은 신뢰감- 도 없어요;)
제가 정말 '상식적으로' 옳다고 믿는 것들을 설득하려고 했을때 그게 오히려 그 사람의 감정을 상하게 하거나(이건 제 전달방식에도 문제가 있는 것 같기도;; 말하다보면 흥분하는 경향이;;), 마치 상대방을 계몽하는 것인냥 흘러가게 된다는 겁니다
짤막한 예를 들면. 현정부의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비판(비난?-_-) 하면서도 제가 상대방에게 권위주의적으로(소위 내말이 맞아라는 식의) 비춰지는 요상한 모양새가 되어버리더라구요. 그래서 결국 상대방을 설득시키기는 커녕 '그래서 너는 지금 뭐하고 있냐' 내지는 '내맘이다 넌 신경꺼라'는 식의 답변만 돌아오기도 합니다.
말이 길어지네요;; 아무튼, 공부하는 것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나 커서 정신적 혼동 상태가 이어지다가 최근 안정되는 추세;;에 있는데요. 그냥 성숙해지는 과정인가보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마냥 긍정적;;)
예전엔 미처 몰랐는데, 내면에 잠재해 있던 권리의식이 꽤 강력한가봐요. 다른 사람의 권리침해가 간주관적으로 다가올때 분노가 치밀고-_- 동시에 상황을 그저 관망하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나고, 또 한 동시에 아무것도 할수 없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자신에게도 실망하게 됩니다.
또 나름 주변 사람들이 스스로에게도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설득하려고 시도했으나 오히려 서로의 크나큰 입장차이만 확인하게 되기도 하구요
(이러한 상황이 정말 가까운 사람과 발생하면 그 묘한 기분은 정말.....)
제가 예민한건지 다른 사람들이 둔감한건지 정말 헷갈리는 요즘입니다.
뭔가 안 박사님의 글의 논지와 점점 동떨어져서 횡성수설하는 답글이 되고 있네요; 그냥 모르는 이의 밑도끝도 없는 신세한탄이라고 너그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실은 글쓴지 좀 되셔서 이걸 읽으실진 모르겠지만;;)
안병길
(2009/07/18 19:34) 읽었습니다.^^ 칭찬 말씀에 부끄럽지만, 감사합니다.
말씀의 취지는 잘 알겠습니다. 어려운 문제죠.
자유주의자도 교조주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의견과 달라도 항상 다르다고 해야지, "틀렸다"고 상대방을 몰아부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특히 사투리에서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해서 쓰는 경우가 많죠. 저는 그것도 유교적 도덕주의의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권유형 설득은 괜찮은데, 강요의 분위기가 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