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단상] 자연과 인간: 바닷가 모래 이야기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10/05/22)


화면 캡쳐 1: 천리포 해변









화면 캡쳐 2: 해운대 해변









4월 14일 KBS에서 방영한 환경스페셜 "살아숨쉬는 땅, 모래"를 뒤늦게 보았습니다.

http://www.kbs.co.kr/1tv/sisa/environ/vod/1645289_1151.html

인간이 자연을 섣불리 건드리면 큰코다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바닷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프로그램에 생생하게 나오는 망가진 우리 해안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었습니다. 여름 해수욕 철이 되면 해운대 해변에 트럭으로 모래를 쏟아 넣어야 된다고 합니다. 개발을 잘못했기 때문이죠. 자연을 섣불리 건드려서 그 큰돈과 노력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이전 해운대의 고운 모래는 이제는 다시 구경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바닷가 모래는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크게 보면 강에서 오든지, 바다에서 오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강에 쓸데없는 보를 건설한다든지 해서 자연을 잘못 건드리면, 해안에 도착할 모래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모래가 줄어들면 백사장이 자갈마당이 된다는 것을 환경스페셜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에 보인지 댐인지를 건설하는 4대 강 사업이 떠오르더군요. 모래의 수난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댓글)

미누스
(2010/05/22 16:42)
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댐이나 둑 따위를 쌓는 것은 매우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 합니다.

실례로 이집트 나일 강 중-상류 지방에 댐을 만듬으로 인하여 정어리의 어획수가 엄청나게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철갑상어로 유명한 아랄해가 황폐화 된 것은 목화 대농장을 만든답시고 소련 정권에서 아랄해로 흘러드는 강줄기를 막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외국의 사례가 그러하다면, 심사숙고하여서 강 정비를 할 것이지, 대운하의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 강산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짓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준구
(2010/05/22 21:41)
새만금 때문에 이웃 변산해수욕장의 모래가 몇 미터 깊이로 파여나갔다는 보도는 보셨는지요?
생태계라는 게 아주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존재하는데, 삽질 좋아하는 친구들은 너무나 겁없이 달려 드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야 할 텐데요.

purejungs
(2010/05/22 22:29)
고맙습니다, 잘 보겠습니다^^ 근데 위에 사진, 해변이 저렇게 되면 정말 웩! 끔찍하네요>.<

임형찬
(2010/05/22 22:52)
안 박사님의 고향인 광안리의 명물, '광안대교' 건설 후에 부산 해변들은 조금씩 이상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광안대교에 대한 의혹일 뿐, 인간은 정확하게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대규모 해안가의 시설로 인해 해변이 사라진 예는 많이 발견됩니다만은 여전히 인간의 지혜는 자연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해운대의 해안 침식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이 다름 아닌 광안리의 광안대교입니다. 둘 사이의 관계를 짐작만 할 뿐,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 하는게 오늘의 현실인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카오스 이론이 가장 잘 적용되는 것이 기상과 해류 분석인 것 같습니다. 말이 좋아 카오스 이론이지 '나도 몰라!'라는 소리와 같거든요;;;

임형찬
(2010/05/22 22:57)
갑자기 교수님의 미시경제학 1장에 나오는 균형과 관련된 그림이 생각납니다.불안정한 균형과 안정적 균형.

안병길
(2010/05/23 00:45)
광안대교가 건설되기 전에도 광안리와 해운대는 이미 침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주 원인은 해안도로를 해변에 너무 가깝게 만든 것이었죠.

해운대보다 광안리가 더 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관찰했던 그 변화가 아직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광안리 모래의 슬픈 이야기이죠.

임형찬
(2010/05/23 12:32)
저는 KNN(구 PSB)의 방영을 봤는데, 실제로는 더 일찍 그런 현상이 있었군요. 저도 해운대에 살았기 때문에 가물하지만 당시에는 백사장의 경사가 완만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매우 급하고 백사장도 좁아져있더군요.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광안리는 대체로 파도도 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갑자기 높아져서 그런지 조그마한 파도만;;

전에 한 번 뉴튼이라는 과학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연안 해류는 조그마한 방파제 하나로도 많이 바뀐다고 하더라구요.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연안 수심의 변화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이준구
(2010/05/23 18:12)
해안도로 건설이 주범이라는 말씀이 정확할 겁니다.
지난 번 어떤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태안국립공원 부근도 그런 문제 때문에 엄청난 침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0년 6월 21일 월요일

[서평-Slimer님] 권위주의의 가면을 쓴 '엉터리' 자유민주주의와 싸우자!

(누리꾼 Slimer님의 제 책에 대한 서평을 퍼서 옮깁니다. Slimer님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http://slimer.tistory.com/512

책 뒷 표지에 적혀있는 한 구절을 그대로 가져와 포스팅의 제목으로 사용했습니다. '권위주의의 가면을 쓴 '엉터리' 자유민주주의와 싸우자!' 이 말이 가장 이 책을 잘 표현 하는 것 같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약자가 '권위주의'의 강자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앞 표지에 적혀있는 '대통령도 모르는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라는 문구가 책을 집어 든 순간 느낌이 왔습니다. 정말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초등학생 만큼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다른 개념의 정치이념일 뿐, 서로 대립되는 의미는 아닙니다. 냉전시대에 양 체제를 내세운 국가가 대립을 했을 뿐이지 이념 자체가 대립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 둘을 극과 극으로 생각하게 하는 반공교육으로 사람들을 세뇌시켜 놓았습니다. 덕분에 요즘 같은 21세기에도, 아이폰을 비난하고 싶으면, '아이폰 사용자는 빨갱이'라고 하면 통합니다.

그래도 일단 헌법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확정해 두었으니 우리는 분명 자유민주주의의 체제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겉 모습만 그럴 뿐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회주의'에 더 가까운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면, 조직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며 개인의 입을 막습니다. 이런 게 가능한 '공동체의식'이란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 등을 통해 교육 받습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라고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좀 분해해서 보면 '자유 + 민주주의' 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유'에 대한 부분을 보면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자유와 관련되어 요즘 많이 나오는 말이 개인주의 입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개인주의는 원래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단위로 나뉘기 때문에, 각자의 영역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것을 올바른 개인주의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나의 영역이 보호 받으려면, 다른 사람의 영역을 먼저 침범하지 않는 것이 개인주의입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보았던 한 김제동 씨의 말이 기억납니다. 자신의 말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고민되어 함부로 방송에서 말을 할 수 없다 라는 내용으로 기억되는데, 폭로, 비난, 뒷담화가 빠지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요즘 방송에서 이런 것 없이 재미있게 웃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자로 생각됩니다. 다소 지나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관점에서 저는 김제동 씨를 철저한 개인주의자로 생각합니다. 반면, 개인의 자유는 매우 소중히 하면서 남의 자유를 마음대로 침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통 인터넷에 XX남, XX녀로 소개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럼 '자유민주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은 무엇일까요?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는 '권위주의'가 정답일 것입니다. 이 권위주의는 주로 힘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세습하는데 사용합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자꾸 무언가 특권을 챙기려는 권위주의는 출발선을 평등하게 설정 하도록 규정한 민주주의에 매우 강한 불만이 있습니다. 출발선이 같다면,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노력을 덜려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 출발선을 앞으로 당겨놓아야 하니, 민주주의란 눈에 가시 같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누구나 평등하게 1인 1표인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항상 선거의 결과를 보면, 다수의 약자보다 소수의 강자에 유리한 결과가 나옵니다. 사람의 힘이 아닌 머릿수로 결정되는 것이 선거이지만, 이런 결과를 보면, 선거 역시 그 과정에서 강자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 채 강자의 감언에 눈을 흐리기도 합니다.

분명 이론 상으로는 강자이든 약자이든 다수가 이겨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하지만 이게 현실과 다르게 적용된다면, 그 방법이나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구도에서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권위주의의 강자를 우리 약자는 어떻게든 잡아 내려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차근차근 그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또 후기를 적다 보니 책 읽고 공부하자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그 방법 밖에는 아직 더 좋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생각보다 읽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드문드문 읽어야 하기도 했지만,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페이지 쉽게 넘겨버릴 수가 없습니다. 뭐처럼 제대로 나온 '민주주의 학습서'라고 하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2010년 6월 12일 토요일

[단상] 낙동강을 괴롭히지 맙시다!

제가 고등학생이었던 1978년에 낙동강 보존회가 발족했습니다. 32년 전 일이군요. 그때 회원으로 가입하여 낙동강 하구에서 쓰레기를 줍는 행사에 참여했던 기억이 아직 납니다. 환경운동에 유별난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중학교 시절 생물 선생님께서 낙동강 보존 운동에 참여하고 계셔서 취지에 동감하면서 도와 드린다는 뜻에서 동참했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적극적으로 그 환경운동 참여를 권장했었죠.

수많은 사람의 애틋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그 낙동강이 4대 강 사업으로 어이없이 파헤쳐지는 모습을 기록한 아래 동영상들을 보니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낙동강을 괴롭히지 맙시다!





2010년 6월 6일 일요일

[단상] 4대 강 사업 반대 홍보 동영상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국민이 4대 강 사업을 반대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줬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뜻을 존중해서 당장 그 사업을 중단하고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아래는 누리꾼 푸른영상님이 인터넷에 올린 4대 강 사업 반대 홍보 동영상입니다.

출처: http://vimeo.com/11778236

안녕하세요. 푸른영상입니다.

저희가 천주교 신부님들의 의뢰로 4대강 사업 저지 홍보영상을 제작했습니다. 빠른 시간에 끝내야 하는 작업이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실에 다른 감독님들이 낙동강과 팔당에 들어가 찍고 계시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품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시고 많이들 퍼 날라주세요. 생명을 파괴하는 이 무식한 4대강 사업, 우리 꼭 막아냅시다!!

제목: 江의 진실
작품정보: HDV/ 23min / 2010
제작: 수원교구공동선실현사제연대
4대강사업저지를위한천주교연대
푸른영상

작품설명:
4대강 어디든 한 번만 가봐주세요!
이 영상은 전국의 4대강 사업 현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지금 강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도록 황폐화 되고 있습니다.
이 영상으로 그 현장을 확인하시고 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널리 퍼뜨려 주세요.

강의 진실 _ 4대강 사업의 진실 by 푸른영상 from simock on Vimeo.

2010년 6월 3일 목요일

[정치] 정치적 조작, 지역주의, 결선투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2010 지방선거 단상

1) 정치적 조작: 어설픈 의제 설정은 정치적 조작으로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보여줬습니다.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정황입니다. 4대 강 사업 반대 의제는 유효했습니다.

2) 여전한 정치적 지역주의: 호남과 대구/경북의 정치적 지역주의는 여전함을 보여줬습니다. 제도개선을 통해서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2012년 총선에서 전국득표율 일률배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것이 한 방안입니다. 장기적으로 지역주의 위세가 약해질 것을 고려하면, 대구/경북 지역에서 그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력한 정치인은 유시민 씨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유시민 씨가 그 토대를 조금 더 다질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3) 부산/경남 정치적 지역주의 변화: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40% 이상을 득표했고,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간판은 민주당과 무소속이지만, 결국 친노 지지가 표심으로 작용한 것을 의미합니다. 영남 지역주의가 부분적으로 깨어졌다는 평가도 가능합니다.

4) 선거연합의 딜레마와 결선투표제: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 후보가 완주한 것을 야권에서 궁극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선거제도 결함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결선투표를 도입하여 '억지 춘향식' 선거연합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선투표제는 단순과반수 득표가 없어도 당선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씨와 한명숙 씨가 1:1로 붙어서 이기는 후보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승자일 겁니다.

5) 깨어 있는 유권자: 우리 민주주의가 혹시 중우정치가 아닐까라는 우려가 일부 있었는데, 이번 선거결과가 그것이 기우임을 보여줬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이끌어낸 시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4대 강 사업에 제동을 거는 경고장을 국민이 보여준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입니다.

2010년 6월 2일 수요일

[정치] 마음으로 투표했습니다.

저는 재외국민이라서 이번 선거에는 투표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투표했습니다. ^^ 2012년 선거에는 재외국민도 투표를 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이번 선거기간에 제가 느꼈던 점을 생각나는 대로 간단하게 말씀 드립니다.

1) 4대강 사업은 국토 전체에 걸린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여당은 그 쟁점을 가능한 피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특정 4대강 사업 반대 홍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간주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도대체 공직자 선출 선거가 무엇인지 아는지 의심이 듭니다.

2) 안보는 국가 존재의 기본입니다. 여야, 좌우를 떠나서 어떤 관점에서 안보를 바라보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 안보 쟁점에서 휴전 상태의 상대방 편을 드는 주요 정파는 없습니다. 그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제설정을 통한 정치적 조작을 노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3) 결선투표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군소정당도 1차 선거에서는 끝까지 정견을 홍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반 여당 연합을 위해서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더구나 막판에 어쩔 수 없이 후보를 사퇴하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그런 문제가 해결됩니다.

4) 어떤 후보는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두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발전에 부분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이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궁극적으로는 독재자였습니다. 대한민국 상징으로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에 독재자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우스개 감이 될 것입니다.

5) 자유민주주의 발전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정체 혹은 후퇴한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0년 전 우리 정치와 현재 정치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희망을 품고 참여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자유민주주의는 발전할 것입니다.

[서평-이준구 교수님] 높이 치켜든 자유민주의 횃불

높이 치켜든 자유민주의 횃불

이준구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일상생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흔하게 쓰고 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를 위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확하게 뭔지는 몰라도 그저 좋은 체제라는 의미에서 그 말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의 사례를 들어가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유민주주의의 ABC를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그 윤곽이 차츰 분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조그만 성냥불을 들어 올리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에 짙은 감동을 느낀다. 그의 바람대로 이 조그만 성냥불이 온 세상을 환히 비치는 밝은 횃불로 활활 타오르기를 함께 기원해 본다. 그는 왜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귀중히 여기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굳건한 뿌리를 박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 도처에 권위주의적 사고방식, 낡은 사회질서와 도덕률이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자유민주주의의 적(敵)인 권위주의가 교묘하게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발호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늘 개탄하고 있는 바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리 높여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권위주의적인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다. 이런 사기행각 때문에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할 자유민주주의가 경멸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살벌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운하사업은 경제성이 없다는 말을 한 죄로 하루아침에 '좌빨'로 몰린 나인지라, 이 혼란한 세태에 유감이 없을 리 없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저자의 지적에 적지 않은 위안을 느낀다.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면 권위주의냐가 진정한 의미를 갖는 선택의 문제일 뿐, 보수냐 진보냐의 선택은 별 의미가 없다는 그의 말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나는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으로 결정했는지 의아해했다. 책 중반에 가서야 비로소 그 의문이 풀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권위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자 사이에서 맞짱 토론이 벌어졌을 때 자신만 옳다고 믿는 권위주의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도 옳을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자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책의 제목에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뭉쳐야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포식자 상어에게 떼를 지어 용감하게 대항하는 고등어의 무리를 연상하게 된다.

저자는 타인의 방종을 묵인하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길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기적 관점에서 볼 때도 유리한 전략이라는 메시지다. 사실 우리는 권위주의의 위협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내가 뭘?" 혹은 "나 대신 남들이 싸워 주겠지"라는 편리한 구실을 붙여 뒷걸음치기 일쑤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번번이 권위주의가 승리를 거둬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자가 함께 뭉쳐서 싸우지 않으면 권위주의가 발호하는 사회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흥미롭게 느낀 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신고전파 경제학을 공부한 나보다도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기심과 개인주의에 대한 긍정이라는 측면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능가하는 것을 생각하기 힘들 텐데 말이다. 여기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하면서 어떤 거창한 명분을 갖다 대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회를 위한다는 둥, 공익을 위한다는 둥 거창한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바로 자신을 위한 싸움임을 깨우쳐 주는 데 저자의 주안점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권위주의에 과감하게 맞서 싸우라는 독려의 메시지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부어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이것이 왜 소중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점에서 보면 비록 범위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정치학의 소개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든 배울 바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학에 과문한 나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조그만 성냥불을 켜들자고 외치는 저자의 열정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흔들림 없는 신뢰는 우리를 감동하게 만든다. 우리가 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논거는 한 점 의혹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를 따라 나도 목이 터져라 "자유민주주의 만세"를 외치고 싶다.

출처: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서평-낭만수학자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안 박사님, 책 출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좋은 내용의 글을 읽고, 제 자신의 무지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짧은 독후감을 올립니다. 글의 성격 상 존칭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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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학에 문외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때로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으로 외쳐대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감정을 가져왔다. 솔직히 말해, 나 자신도 그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아내에게, 우리나라에서 그 개념이 정립되지 않고 혼란스럽게 쓰이는 건 대학 입시에 안 나와서 그럴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는 ‘자유민주주의란 바로 이것이요’하고 처음부터 답을 던지지 않는다. 마치 데카르트가 모든 것에 회의하고 백지상태에서 ‘나’를 정의해 나가듯, 필자는 자유의 개념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하지만 매우 설득력 있게 정의해나간다. 이런 신중한 접근을 통해 온갖 엉터리 자유민주주의로부터 진정의 의미를 구분해낸다. 엉터리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에서 전체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 또한 다양하다.

일단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을 온갖 엉터리 개념들로부터 구하고 난 필자는 정치사상에서 헌법, 게임 이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현실 속에서 그 이상을 잘 실현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촛불 시위와 같은 구체적인 사회 현상에 대한 시론과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방안에 대한 제언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인터넷 관련 부분은 필자의 오랜 경험이 잘 묻어나는 재밌는 내용이다. 단순히 예의를 지키자거나 무식하게 법으로 규제하자는 내용이 아니라, 자유주의에 입각하면서 적절한 전략을 통해 회원 스스로 악화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필자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라는 일관된 논지를 여러 가지 일상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한편, 투표 제도와 남북한 문제와 같은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제언도 덧붙이고 있다. 선거에서 단순 과반수원칙을 지키기 위해 결선 투표제를 제안하고 실제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들의 사례를 들려준다. 또한,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선거 제도 개선 방안을 비교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장한다. 남북한 관계에 대한 분석과 평가 역시 관련 사안에 대한 필자의 전문적인 식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족으로 한때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걸고 진정한 자유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난 적이 있는데, 정치학을 공부하던 한 선배는, ‘그들이 자유주의에 대해 뭘 알기나 알아? 도대체 밀의 자유론도 제대로 한번 읽어보지도 않았을 사람들이 무슨 자유주의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의 우려대로 그 단체의 핵심 구성원들은 국회에 입성하면서, 운동권 내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권력지향적임이 드러났고, 개인의 자유는 고사하고 온갖 권위주의적인 입법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그들이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앞부분만 일독했다면 부끄러운 마음에라도 자유주의를 전면에 내걸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두르며 남의 자유를 심각하게 해치는 권위주의자들이 이 책을 통해 뭔가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