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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자유] 교수님 뒷 담화 및 어느 자유주의자의 소통 노력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07)

며칠 전에 OOO님에게 약속한 글을 올립니다. Pacta sunt servanda.(Pacts should be served?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국제법의 제1 원칙이라고 볼 수 있음. @@씨 맞나요?^^)를 하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제 생각에 교수님께서 이번에도 저에게 중책을 맡기신 것은 무슨 배려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제 추측입니다만, "안박이 뭔가 할 말이 있는가보다. 에라 잘 됐다, 나는 여행을 떠나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돌아와서 봐야지. 오버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 정도야 내가 똘레랑스를 베풀 수 있지."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죄송합니다. 제 마음대로 교수님의 양심의 자유를 추정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도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이 기회에 교수님 뒷 담화까지 감행하는 자유를 만끽하고자 합니다. 제 자유가 방종으로 판정되면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판정은 여러분이 민주주의적으로 해주십시오. 1인 1표입니다. 댓글 중 반 이상이 방종으로 판정내리면, 그 뜻을 존중하고 교수님께서 내리시는 처벌을 받겠습니다. 제 댓글은 당연히 투표에서 제외됩니다.

1. 뒷 담화 전통 수립을 위하여!

쉿, 교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뒷 담화를 하는 전통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작년에 교수님께서 부재중일 때 "불손"하게도 제가 뒷 담화 이벤트를 열었었죠. 그때 부산 분도 유치원 출신 ***님께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유치원을 좋은 데를 나와야 합니다! 부상으로 고급 머스탱 자동차를 한 대 제공했습니다. 2등은? %%씨가 랜드로바를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 방학 때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랜드로바가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는 최고입니다. 그런데 연료를 제법 많이 먹는 점이 조금 맘에 걸리기는 합니다.^^ 올해에도 이벤트를 해볼까 했는데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 비싼 자동차들을 살 여력이 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저 혼자 교수님 뒷 담화를 하고 끝내려고 합니다.

2. 교수님과의 만남

사실 제가 교수님을 직접 뵌 것은, 제 기억으로는 최대한 네 번입니다. 서울대에 부임해서 첫 번째로 논문 발표를 한 곳이 경제학과 경제연구소 주최 세미나였습니다. 주제는 대통령 선거제도 개선방안이었죠. 결선투표 도입해야 된다고 신나게 떠들었죠. 공공선택 분야입니다. 그 세미나에 들어오셨다면 네 번이고, 아니면 세 번입니다. 두 번은 테니스장에서 뵈었고, 한 번은 회식자리였습니다. 제가 서울대에 부임한 이후에는 테니스를 그렇게 자주 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는 자주 쳤죠. 서울에서는 잡다한 일이 너무 많아서 테니스를 할 여유가 별로 생기지 않더군요. 그래도 가끔 사회대 테니스 모임이 있을 때는 끼어들어서 신세를 지곤 했습니다.

3. 권위주의형 식당 종업원

교수님을 뵌 것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1997년 사회대 교수 테니스 대회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소속도 달랐지만, 주최 측에서 사회대 출신이라서 덤으로 붙어도 괜찮다고 하여 참가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그날 상도 받았습니다! ㅎㅎㅎ 실력이 좋아서 받은 것이 아니고, 2부 리그에 출전했는데 거의 다 상을 받으시더군요. ㅋ

테니스 대회가 끝나고서 저녁 회식을 하러 갔었습니다. 그 자리에 교수님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쟁쟁한 학자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회식 자리와 별 차이가 없더군요.^^ 고기를 시켰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안심, 차돌박이, 꽃등심, 이런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은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어떤 순서대로 고기를 먹을지 결정하는 자유를 갖고 있죠. 그런데 어떤 교수님이 이러저러한 순서대로 고기를 갖다 달라고 하니, 담당 종업원이 그렇게 먹으면 고기맛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냥 공손히 손님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법 고집이 있더군요.^^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그 자리에 있었던 교수님 대부분은 조금 기분이 나쁜 눈치는 보였지만, 별말씀을 하지 않으시더군요. 그런데 제일 막내인 제가 꼭지가 돌아버렸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교수님들께 결례한 것이더군요.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기 순서뿐만 아니라, 어느 교수님이 참기름을 갖다 달라고 했는데, 쇠고기는 참기름을 발라 먹으면 제 맛을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정도였습니다. 권위주의형 식당 종업원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그렇게 서빙을 하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종업원에게 직접 얘기하면 서로 기분이 상할 수 있으니 일단 매니저를 불러달라고 요청해서 매니저에게 항의합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담당 종업원을 교체해줍니다. 정중하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요.

저는 화가 나서 미국식으로 하지 않고, 종업원에게 "개인 선호 존중"의 중요성에 대해서 초스피드 강의를 해버렸습니다.^^ 어떤 교수님께서 우스개 말씀을 하시면서 그 일은 봉합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낯 뜨거운 장면입니다. 그 자리에 교수님이 계셨던 것이 맞았다면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무슨 뒷 담화가 이럴까요?^^)

4. 문화의 차이

그 일이 벌어졌던 시점을 기준으로, 시간강사를 했던 1994년 봄 학기를 제외한 10년 정도를 저는 미국에서 살다 귀국했었죠. 게다가 로체스터에서 혹독한 자유주의 훈련을 받았고 현지 실습도 장기간 했기 때문에, 1997년에 귀국해서 서울에서 살아보니,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지하철에서 제 몸을 밀치고 나가는 승객님, 싸울 듯한 어투로 정치에 대해서 한 강의를 해주시는 택시기사분(그럴 때는 저 대신 강의를 드릴까 고민을 했죠^^), 불친절한 식당 종업원, 에스컬레이트에서는 양쪽을 모두 차지해서 바쁜데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 기타 등등 참 불편하더군요.

엄한 집에 시집온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훈계하듯이 "입 다물고 3년" 이런 충고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수라면 영혼이 가장 자유로워야 하는 직업인데,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영혼은 어쩌라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일을 하면서도 입을 별로 다물지 않았습니다. 제가 옳다고 믿은 것은 적절하게 의사표현을 했습니다. 그래 봤자, 일 개 조교수라서 별수는 없었지만요.^^ 그 당시 제가 많이 들었던 충고는 "마, 편하게 살아라!"였습니다.

5. 구조적 폭력의 문제

저는 이런 것들이 권위주의형 문화의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에서는 각자의 스타일을 최대한 존중합니다. 남에게 객관적인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대충 OK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피해"라는 것이 근거도 없고 매우 주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런 다른 이유 없이, 기분 나쁘니까 토요일에는 노란색 옷을 입고 오지 마!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우리는 제법 마주칠 수 있습니다.

OOO님과 대화 중 그 점을 느꼈습니다. 저야 그 당시에 사회적 약자가 아닌 강자 쪽에 있었던 사람이라서, 그런 얼토당토않은 일을 당하면, 상대방에게 오히려 방종 아니냐고 제대로 항의를 했죠. 그런데 OOO님과 같이 사회적 약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그런 일을 겪으면... 마음에 병이 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구조적 폭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학에서 구조적 폭력을 많이 다뤘습니다. 인간 소외의 문제가 그것과 직결되어 있죠. 마르크스의 경우, 사람이 생산양식으로 말미암아 일할 맛이 나지 않으면, 구조적 폭력을 당하는 경우이므로 모두 단결하여 갈아엎어버리자고 주장한 것과 같습니다. 요한 갈퉁의 경우, 잘 사는 나라가 못 사는 나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착취한다고 보고, 그것을 구조적 폭력이라고 파악한 것이죠. 지금은 유행이 지났습니다만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이 그 계통이죠.

6. 인터넷상의 구조적 폭력

저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구조적 폭력 문제가 제법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인터넷 문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몸과 몸이 직접 부닥치지 않습니다. 글과 미디어 자료, 그리고 기타 무형의 정보전달로 모든 교류가 이뤄집니다. 따라서 언어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컨대, 토론 중에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 있습니다. 욕설의 미학도 있기는 있습니다. 어떤 정책이나 사안에 대해서 시원하게 욕설을 해대면 공감을 얻기도 하죠. 그러나 저는 그것마저도 별로 공감하지 않습니다. 제 선호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네티즌을 향해서 욕설을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일정 수를 넘어서면 구조적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저같이 욕설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욕설이 가해졌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인신공격도 있죠.

최근에 이외수 씨가 공권력까지 동원해서 자신을 공격한 네티즌을 혼을 내겠다고 했는데, 만약 그 공격 내용이 사실이라면 저는 찬성입니다. 이것을 두고, 이외수 씨도 입이 험했다, 그 정도 똘레랑스도 없느냐, 그렇게 되면 국가가 자유 공간에 개입하는 것이라서 바람직하지 않다, 기타 등등 별의별 이유를 갖다대서 이외수씨를 말리거나 나무라기도 하지만, 사안의 핵심은 폭력의 문제입니다. 만약 이외수 씨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자구책을 행사하면 됩니다.

이렇게 자유주의는 각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는 상호 견제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폭력"을 용인하는 것은 별로입니다. 언어 폭력에 대해서 관용을 베푸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관용입니다. 이런 때에는 불관용이 더 맞는다고 생각해요. 국가와 국민, 혹은 시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주의에서는 억울하게 당하지 않을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욕설을 들어서 언어 폭력을 당했다는 객관적 사실을 입증할 수만 있으면, 헌법의 기본권을 방어할 자유가 있습니다. 인권이 침해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가 무서운 것입니다. 되받아칠 때는 더 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되받아 치는 쪽은 뚜렷한 명분이 있거든요. 그때는 똘레랑스의 수위 조절은 완전히 정당방위 자구책을 행사하는 쪽에 있습니다. 그 자유를 비난하는 자유도 있지만, 근거가 충분해야 되겠죠. 그렇지 않으면 권위주의형 소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다, 즉, 욕설이 문화였다고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욕설을 해도 된다고 투표를 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욕설에 대해서 같은 선호를 하고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문화의 특성이라는 가상 설정에 도덕적 판단을 환원시키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욕설은 나쁘다는 것이 사회 통념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도 존중해야죠. 특정 사이버 공간에 욕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고 해서 전체를 그런 "욕설 공동체"로 몰고 가는 것은 일종의 집체주의적(populism)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을 빌미로 욕설을 마음껏 쓰는 사람을 정치학에서는 권위주의자, 심한 경우에는 독재자라고 부릅니다.

7. 최근의 제 경험

저도 최근에 이외수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 경우는 이외수 씨 것보다 더합니다. 이외수 씨는 일종의 공인으로 볼 수 있지만, 저는 그 사이버 공간에서 필명만 존재했거든요. 저에 대한 나머지 정보는 사생활에 해당되는 것이었죠. 서로 평등한 상태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온갖 자구책을 다 생각해봤고, 힘들게 실행에 옮기던 중에... 2009년 6월 28일 14시 33분(한국 시각)에 제 인생에 큰 변화가 옵니다. 이 교수님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래에 증거도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가가 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야. 자유와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용기를 갖고 있어야 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뿐 아니라 남의 자유와 권리까지도."
저는 교수님께 이 뒷 담화로 제 인생을 바꾸신 책임?을 여쭙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말씀을 읽고 용기를 내서 힘껏 노력하여 문제가 잘 해결되었습니다. 교수님, 매우 고맙습니다.

8. 다시 생각해본 "사회개선의 조그만 성냥불"

아울러서 제가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의 미흡한 점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왔습니다. 이것도 교수님 말씀 때문입니다. 책임?지셔야 합니다.^^

제 제자들에게 오래전에 제안한 사회개선 운동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여 "조그만 성냥불" 운동입니다.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계산하면,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므로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하는 운동입니다. 도덕재무장 운동이 아니고, 제대로 된 건전한 이기주의자 되기 운동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제 제자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게임이론을 가르치면서 용의자의 딜레마 반복게임에 따르는 상황일 때, 상호배신을 상호협력으로 바꾸는 유력한 방법으로 Tit-for-Tat이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려던 것이 원래 취지였으니까요. 그래도 그 개인주의 운동이 더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같은 내용으로 신문에 칼럼을 적기도 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성냥불 운동이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천학이라서 푸코가 본질과 현상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정확하게는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만, 제가 아무리 본질을 얘기해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현상으로 해석하면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제 책임도 분명히 있는 것이죠. "착하고 바르게 살기"가 이기주의, 개인주의라고요? 잘 믿기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일단 구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음에 성냥불 운동은 사회지도층을 향하는 외침입니다. 엘리트들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해서 각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거든요. 그런데 힘이 있는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도 않고,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현재 잘사는데, 복잡하게 자신의 마음을 바꿉니까. 자유주의 세상인데요. 결국, 성냥불 운동이 자유주의에 입각한 운동이지만, 그 자유주의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제가 발견한 것입니다.

9. 자유민주주의 제대로 알기

짙은 구름 사이에서 한 줄기 빛이 내리는 것을 본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그 빛의 힘으로 엔돌핀이 돌아서 많은 말들을 제가 쏟아 놓았습니다. 제 글을 격려해주신 분들께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 교수님 덕분입니다. 이번에는 착하고 바르게 살기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를 시도해볼까 합니다. 대상도 사회지도층이 아니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해볼까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제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열공을 한 다음에 적당한 시기가 되면 제 생각을 체계적으로 펼쳐 놓겠습니다. 물론 공부 중간에도 인터넷을 통해서 의견교환을 하겠습니다. 모두 지켜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책임?을 여쭙겠습니다. 저에게 이런 보람찬 길을 보여주신 교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면서, 이 행복한 사태를 어떻게 책임?지실 것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 우문에 대한 교수님의 현답을 학수고대합니다.^^

여러분, 제 뒷 담화가 방종입니까? 투표 부탁드립니다.^^
될 수 있으면 자유 쪽으로 해주시면 안될까요? 벌 받는 것, 싫거든요. ㅋ

댓글 1개:

  1. 김규식
    (2009/07/07 00:15) 에...뒷 담화라고 해서 얼마나 박진감 넘치고 스릴있는 얘기가 이루어질까 생각했는데, 결국은 loyalty. ㅠㅠ

    안병길
    (2009/07/07 00:20) 엇, 방종 한 표 나왔네요. ㅜ.ㅜ

    김규식
    (2009/07/07 00:24) 박사님, 저는 회색지대이자 모호한 경계에 서 있습니다.ㅋㅋㅋ 방종 한표는 아닙니다.ㅎㅎㅎ

    안병길
    (2009/07/07 00:31) 방종/기권/자유, 판정은 주최측에서 한다고 합니다. 방금 문의해보니 방종으로 처리한답니다.^^

    ㅎㅎㅎ 농담인 것은 아시죠? 회색지대, 인정합니다.

    김선영
    (2009/07/07 00:32) 자유에 한표 던집니다, 안 교수님! 연작은 잘 읽고 있습니다~

    J.Paul
    (2009/07/07 00:56) 막혔던 구멍 뚫려서 터져나온 분수마냥, 엄청나게 쏟아내시는 군요. 재밌었습니다. 더 듣고 싶습니다. 자유 한표.

    와사비
    (2009/07/07 01:37) 헉! 이런 선물... 눈물이 뚝뚝뚝...

    푸코가 하고 싶던게 '퇴행하자'는 철학이 아니죠.. 이외수씨 일도 디씨가보면 베베꼬인 심사가 더 문제. 사람들이 갖고 있는 key를 존중하라는 거지 말장난 그만하자는 거 아니죠. 저야 알아서 어케건 방어하고 정신승리법도 고안하면서 살아간다지만, 그조차 안되는 사람들은 어쩌라는 건지? 최소의 존중을 사고하자는게 속으로는 경멸, 밖으로는 존중의 모습을 한 궁정커뮤니케이션의 모습도 아니구요.

    전쟁의 자유를 상상하고, 각자 총이 한자루씩 주어져서 맘에 안드는 상대를 쏴죽이는 상상을 합니다. 우선 전 절 괴롭히는 상대들을 사격권에 넣고 주저없이 방아쇠를 당길 거에요. 언젠가는 저도 누군가의 사격권에 들겠죠. 그렇게 서로 죽이고 죽고 하는거에요. 그 뒤 세상은? 고민할 필요조차 없겠더라구요. 사실은 이쪽이 더 좋은건지.

    안병길
    (2009/07/07 05:10) 선영님, Paul님의 응원, 고맙습니다.

    와사비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화가 나더라도 힘내시길 빕니다.

    김윤
    (2009/07/07 09:22) 안박사님의 이렇게 수준높은 loyalty 글을 읽고 있노라면.. 이것만이 가장 최고의 답은 아니라고 "loyalty의 불가능성 정리"를 주장하고 싶은 베베꼬인 심성의 1人입니다.. ㅋㅋㅋ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제자*오
    (2009/07/07 13:19) 박사님 생각을 체계적으로 펼쳐 놓으실 계획이라니 대환영입니다. 혹시 책의 형태가 되지 않을까 추측해봅니다. 그럼, 전 박사님 책을 들고 다니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은근 광고하고 다닐 겁니다.^^

    안병길
    (2009/07/07 13:53) 김윤씨, 그 정리를 증명하면 노벨상입니다.^^
    The Impossibility Theorem of Complete Loyalty(ITCL)입니다.

    제자*오님, 그렇습니다. 책을 적을 생각 중입니다. 응원 감사합니다.

    안병길
    (2009/07/07 19:55) 민우씨, 혹시 이 댓글 보시면 저에게 이메일 한 통 주시면 좋겠어요.

    소민우
    (2009/07/07 20:57) 막 보냈습니다. 저도 자유에 한표

    안병길
    (2009/07/07 23:20) 민우씨, 회신했습니다. 고마와요.

    권도형
    (2009/07/08 00:03) 오... 고기집 일화는 선생님 강의시간에 얼핏 들은 것 같습니다. 안박사님 이야기는 없으셨던 것 같고, 종업원이 좀 너무 하더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습니다.

    안병길
    (2009/07/08 00:11) 교수님께서도 기억하시는 모양이네요... 도형씨는 기권이요? ㅋ

    김규식
    (2009/07/08 10:26) 대세를 따라 회색지대에서 나와 자유로 옮기겠습니다.^^ㅋㅋㅋㅋ

    안병길
    (2009/07/08 22:02) 규식씨, Thanks.^^

    안병길
    (2009/07/09 05:13) (오래 전에 다른 식당 종업원과 관련된 이야기를 적어둔 것이 있군요. 약간 수정해서 소개합니다.)

    원글 작성 날짜:2003/07/22

    ...어제 점심에 낙지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에 가서 식사를 했습니다. 식당 종업원 아주머니는 처음에 낙지를 어떻게 먹을 것인지를 물어봤습니다.

    안: "조금만 덜 맵게 해주세요."
    아주머니: "낙지요리는 맵지 않으면 맛이 없어요. 그러니까 맵게 드세요."
    안: "너무 맵지 않게 해주세요. 조금만 덜 맵게 해주세요."

    아주머니가 제 주문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주방의 실장님(며칠 전에 인사를 나눴음)께 직접 가서 조금만 덜 맵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아예 주방에 낙지를 맵지 않게 해달라고 주문하시더군요.

    우리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식당 종업원은 그 식당의 음식에 대해서 권위가 있을 수록 좋습니다. 제 생각에는 낙지전문 식당이라면 종업원들이 평소에 낙지에 대해서 충분히 학습하여, 손님들이 낙지나 낙지요리에 대해서 문의하면 친절하게 답할 수 있다면 식당 종업원으로서 권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종업원들이 손님들의 개인적인 취향을 무시한다면, 그것은 권위가 아니라 권위주의적인 자세가 됩니다. 각 개인에 따라서 낙지요리에 대한 취향은 다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매운 것을 좋아할 수 있고, 또 다른 사람은 전혀 맵지 않은 것을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손님들의 취향을 존중하는 그런 서비스 정신이 아쉬웠습니다.

    식당 종업원의 권위는 보다 친절한 서비스, 음식에 대한 충분한 지식 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요? 식당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권위는 없고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장면을 제법 볼 수 있습니다. 정치인의 권위는 고압적인 자세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보다 많은 정치자금을 모았다고 해서 정치인의 권위가 서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인들도 기업 활동을 잘 하고 생산성을 높혀서 이윤도 많이 남기고 전체 사회에 기여할 수 있어야 권위가 섭니다. 관료들의 권위는 보다 질 높은 행정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권위가 설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자세보다는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 노력하는 그런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영도스키
    (2009/07/10 12:55) 네. 정말 제가 매번 입이 닳도록 주장하는 딱 그런 사회입니다.

    권위와 권위주의!! 좋은 글 보며 또 하나 배워갑니다^^

    안병길
    (2009/07/10 17:03) 공짜는 없는데...^^

    pilotin
    (2009/07/14 20:23) 멋진 말씀 감사합니다~ 권위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봤네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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