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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8일 목요일

[자유] 링컨의 정치적 조작: 말의 향연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05, 원 제목: 링컨의 정치적 조작: 말의 향연 (3)]

(제가 링컨 이야기 제목을 잘못 붙였습니다. ㅜ.ㅜ 부제를 "말의 향연"으로 했더니 제 말만 많아지고 있습니다. 교수님 돌아오시면 말을 너무 많이 했다고 야단맞을 것 같습니다. 조금 겁납니다.^^ 부제를 붙이지 않았다면 벌써 끝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아무튼 오늘은 기!필!코! 끝내겠습니다. 링컨 아니라 그 할아버님이 오셔도 끝내겠습니다. ㅋ)

(1) 마키아벨리(Nicolo Machiavelli)와 홉스(Thomas Hobbes)

마키아벨리가 정치와 도덕을 나눠서 근대 정치학의 팡파르를 울렸고, 그 바톤을 이어받은 사상가는 영국의 홉스입니다. 두 사람의 대중적 이미지가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권모술수”(설명드렸듯이 마키아벨리를 나타내는 주제어로 부적절하지만, 대중의 뜻에 한번 따라봅니다.) 그리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왠지 으스스하시죠. 마키아벨리나 홉스는 인간의 원초적인 본능, 그것도 어두운 쪽에 초점을 맞춰서 정치를 설명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이런 부류를 현실주의(Realpolitik, Realism)라고 부릅니다.

(긴장되시죠? 제가 홉스 이야기로 또 옆으로 샐까 봐요. ㅎㅎㅎ 홉스는 이미 다뤘습니다. “국가와 사회적 약자”라는 제 졸 포스팅(http://tinyurl.com/hobbes-ahn)에서 데카르트(Rene Descartes)의 방법론과 연결하면서 홉스를 설명했습니다.)

(2) 국제정치의 현실주의와 자유주의

투키디데스(Thucydides)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적으면서 속에 몰래 용의자의 딜레마 게임을 그 오래전에 숨겨 놓았다는 강호의 전설이 있습니다. 존 내쉬(John Nash)가 태어나기 거의 2,500 년 전 일인데 말입니다. 대단한 예지력입니다. 하지만, 그 역사서에 균형분석은 없습니다.^^ 후대에 책을 읽다 보니 복잡해서, 요약하면 어떻게 될까? 궁리를 해보니,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군비경쟁의 용의자의 딜레마에 빠졌다는 초절정 요약판을 내놓은 것이죠. 용의자의 딜레마도 어두운 쪽이죠. 밝은 쪽의 파레토 최적 상호협력(군비경쟁 안 함)이 있음에도, 두 도시국가의 이기심과 전략적 상호작용 때문에 파레토 열등한 결과에 도달합니다. 그것이 딜레마라는 것이고요. 따라서 투키디데스도 현실주의 쪽으로 분류합니다.

국제정치가 전쟁과 평화에 관한 것인데, 전쟁과 분쟁에 관한 연구는 현실주의에 입각한 것이 많습니다. 궁합이 잘 맞는다는 이야기입니다. 그 반면 칸트(Immanuel Kant) 선생을 대표주자로 하는, 현실주의에 분연히 맞서는 사조가 있으니, 이름하여 이상주의(Idealism) 혹은 자유주의(Liberalism)라고 합니다. 이쪽 동네는 평화에 관심이 더 많습니다. 국제법의 아버지 그로티우스(Hugo Grotius), <영구평화론> 칸트, 이 교수님께서 박사학위를 받으신 프린스턴대 총장을 역임한 윌슨(Woodrow Wilson, 국제연맹) 등이 대표주자가 되겠습니다. 현대에서는 현실주의의 대표 주자로 니버(Reinold Niebur), 모겐쏘(Hans J. Morgenthau, 교과서 저자로 유명), 왈츠(Kenneth Waltz, 신현실주의) 등이 있고, 자유주의의 대표 주자로 코헤인(Robert Keohane), 나이(Joseph Nye, Jr.) 같은 학자들이 있습니다. 국제정치학의 현실주의, 자유주의 이야기입니다. 혼동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를 구분하는 기준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 국내정치와 국제정치의 연관관계를 어떻게 보느냐는 견해 차이가 중요합니다. 현실주의는 역시 전쟁/분쟁 쪽이라서 ‘안’ 보다는 ‘밖’을 더 신경 쓰죠. 내부는 결속되어 있는 것으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국가를 당구공으로 본다는 의미에서 당구공 모형이라고도 합니다. 반면에 자유주의는 한 국가의 외교의 연원이 국내 메커니즘의 영향을 제법 받는다고 주장합니다. 평화와 경제 쪽에 관심이 더 많은 사조라서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속성상 국내가 하나로 뭉쳐 있을 가능성이 별로 크지 않죠. 그것을 활용하는 외교를 “양날 외교”라고 합니다. 푸트남(Robert Putnam)의 “Double-Edged Diplomacy”인데, 간단하게 설명드리면, 미국이 협상 테이블에 나와서 상대방에게, 나는 100을 주고 싶은데 우리 의회가 70만 주라고 그런다. 그러니까 깍아주어라, 이런 식입니다.

(3) 칸트 <영구평화론>과 쌍방 자유 명제

칸트 <영구평화론>은 일종의 희망사항 선언문입니다. 이렇게 저렇게 되면 영구평화가 올 수 있으니 그렇게 되면 좋겠다는 식입니다. 영구평화의 가장 중요한 조건을 왕창 요약하자면, 지구 상의 모든(어렵겠죠?) 나라가 자유민주주의 국가(칸트는 공화국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가 되고, 자유로운 경제교역이 활성화되면 영구평화가 이뤄질 텐데...라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자유의 첨병을 자처하고 중동에서 생고생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칸트의 입장을 현대적인, 모던한 표현으로 바꾼 것이 "쌍방 자유 명제(Double-Freedom Proposition)”입니다.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전쟁이 1815년에 끝납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군사적인 측면에서 한 획을 긋는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 이전은 중세 전쟁이라고 하고 그 이후를 근대 전쟁 시기라고 합니다. 중세에는 용병을 많이 썼죠. 전쟁을 해도 사람이 잘 죽지 않습니다. 이것도 합리적 선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용병이 프로들 아닙니까. 직업군인들이죠. 일단 살아남아야 다음 전장으로 가서 돈을 벌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서로 봐주는 것이죠. 마, 나도 그렇고 너희도 그렇고 집에 처자식 있는 몸들이니 서로 살살하자, 이렇게 되죠. 야심 많은 나폴레옹은 유럽을 통째로 삼키고 싶은데 중세 용병으로는 도저히 안될 것 같았나 봅니다. 그래서 국민개병제라는 통탄하고 가공할만한 군대 제도를 도입합니다. 그리고 알프스 산맥을 넘죠. 제도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성능 좋은 제도가 한번 선보이면 급속도로 퍼집니다. 프랑스가 그렇게 나오니 영국도 전 국민 동원력을 내릴 수밖에 없죠. 그런 식으로 폭력의 상승작용(escalation)이 일어나고, 급기야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게 됩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 아, 1815년! 국민개병제가 선을 보인 그 즈음에 자유민주주의도 확산됩니다. 프랑스 대혁명이 그전에 일어났죠. 그리고 1815년 이후의 전쟁 데이타는 제법 반듯하게 잘 수집되어 있습니다. 그 데이타가 미시간 대학교(U of M)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있을 것입니다.^^ “소(COW)^^” 프로젝트라고 있습니다. 풀어쓰면 “전쟁 상관관계(Correlates of War^^)”라고 하는데, 국제정치학자들이 1815년 이후의 전쟁관련 데이타를 SPSS, STATA 등으로 열심히 돌려보니, 아! 칸트가 맞았잖아...라는 탄성을 내뱉습니다. 그것이 “쌍방 자유 명제”를 귀납적으로 확인한 것입니다. 두 자유민주주의 국가 사이에는 전쟁이 없었다!는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자유민주주의 국가 수만 자꾸 늘려나가면 평화는 확산한다는 제법 그럴듯한 논리가 섭니다.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이쪽에도 걸치고 있죠. 속내야 어떻든, 겉으로는 그럴 듯하지 않습니까? 칸트 선생의 유지를 받들어서 영구평화를 위하여 불철주야 미국이 이렇게 고생한다는 식이죠. 조금 위험한 발상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원래 자유주의가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인데, 가상의 기준을 미리 세워놓고 그쪽에 맞춰서 상대방을 침략한다는 것이 어째 머쓱합니다. 그래서 미국으로서는 완전히 그것이다는 말도 못 합니다. 정치라는 것이 그렇게 애매모호한 측면이 많습니다.

(4) 자유주의와 폭력, 그리고 투쟁

쌍방이 자유주의면 괜찮은데 일방이 자유주의가 아니면 자유주의 국가도 폭력적이 될 수 있다는 역설을 쌍방 자유 명제가 보여줍니다. 우리가 보통 자유라고 하면 좋은 것, 평화, 포근함, 이런 것들만 떠올리는데, 전혀 아닙니다. 잘 생각해보십시오. 그 알량한 자유를 위해서 얼마나 많은 피가 흘렀습니까. 미국도, 보스턴에서 일어난 차(Tea)세 반란을 그 당시 돈으로만 바라보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영국 사람이 내는 세금보다도 훨씬 적은데, 그 정도야 내버리고 말지 왜 독립전쟁을 했느냐는 영특한 논리 전개가 가능하죠. 그때 사람이 많이 죽었습니다. 사람 목숨 값 계산하고, 차세 전부 합치면, 당연히 목숨 값이 더 많죠. 그러나 자유라는 것의 소중함 그 자체도 있고, 먼 훗날 후손들이 그 자유를 이용하여 돈을 벌어 들이는 것까지 계산해야 제대로 된 계산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즉, 합리성이라는 것이 시공에 갇혀 있기 마련인데, 그 시공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서 설명이 달라진다는 것이죠. 단기간으로는 비합리적인 것도 장기간으로는 합리적인 것으로 될 수 있죠.

자유민주주의는 전형적으로 장기 합리성을 추구합니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는 잘 될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잘 되려면 이 교수님께서 매우 적절하게 지적하셨듯이, 국민이 스스로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는, 투쟁하는 정신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자신의 권리가 침해되면 그만두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줘야 자유주의에서는 평화가 옵니다. 평화를 원하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우리 국민은 쓸데없는 곳에서 너무 관용을 베풀고, 귀차니즘에 빠진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을 쓰레기통에 갖다 버려야 자유민주주의가 발전합니다. 공짜가 어디 있습니까. 자유는 포근한 엄마 가슴이라는 안일한 마음을 고쳐잡아야 합니다.

미국의 예를 한번 보시죠. 오바마(Barack Obama)가 최초 “흑인”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는데, 오바마 혼자 힘으로 그렇게 된 것은 분명히 아니죠. 아프리카에서 잘 지내고 있는데 노예 사냥꾼들에 의해서 잡혀와서 고생한 미국 흑인 조상의 자유와 권리를 위한 피땀 어린 투쟁의 토대 위에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물론 오바마의 어머니는 백인이고 아버지는 아프리카에서 유학 온 경우라서 전형적인 흑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미국 정치의 현주소를 살피면, 흑인으로 볼 수밖에 없고, 지난 대선에 당선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죠. “I have a dream”을 외치다 적의 흉탄에 서거한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Jr.) 목사의 자유민주주의 운동이 없었다면 오바마는 없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물론 미국의 흑인 노예와 같은 눈에 보이는 그런 폭압은 없지만, 자유민주주의 운동이 필요 없을 만큼 자유민주주의가 성숙하였습니까? 우리나라에도 마틴 루터 킹 목사와 같은 그런 큰 인물이 나온다면 우리 자유민주주의 발전이 한층 더 가속화될 것입니다. 그 토대는 이미 있습니다. 민주화 운동 때 산화된 생명이 그 기반입니다.

(제가 이거 분명히 오버죠??? 왜 이럴까요... 오늘은 약속을 했으니 계속 합니다.)

(5) 드디어 링컨

그리 하야, 마키아벨리가 정치와 도덕을 구분한 것을 참조해서 링컨을 바라보면 그 사람도 정치인이라는 데 착안하게 됩니다. 정치인의 합리성이 있죠. 자유민주주의에서 정치인은 표를 바라보고 삽니다. 링컨도 그 점에서 다른 정치인과 다를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씨 질문에 제가 예스도 되고 노도 된다고 일단 답했던 것입니다. 거시는 이창용 교수에게 잘 배우셨을 테니 제가 미시 부분을 설명드리겠습니다. 이준구 교수님이 계시면 미시를 저보다 훨씬 더 잘 가르쳐 주시겠지만, 지금 부재중이라서 제가 대신하겠습니다.^^ 성에 차지 않으시더라도, 사이비가 그 정도면 됐다는 평가를 해주시면 대단한 영광이겠습니다.

(6) 의제 설정

이곳에 법을 전공하시는 분들도 오시니까, 제가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법을 다루는 곳입니까, 정치를 하는 곳입니까? 저는 그것이 알고 싶었습니다. 아래에 고정논객 OO씨가 정성껏 정보를 줘서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링컨이 법률가 변호사 출신이죠.

위의 제 질문은 어설픈 의제 설정(agenda setting)입니다. 왜냐구요? 제가 정치학 쪽 아닙니까. 당연히 정치도 하는 곳이다는 답을 기대한다는 것이 눈에 뻔히 보이죠. 우리 정치사에서 최근의 대표적인 의제 설정으로 저는 “잃어버린 10년”을 듭니다. 잃어 버렸는지, 아닌지 증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제법 많은 국민은 뭔가 상실했다고 느꼈죠. 마찬가지로 헌재의 관습헌법 논리 채택은 정치학으로 분석하면 일종의 의제 설정입니다. 저는 어설픈 의제 설정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헌재 결정 소수 의견으로 나온 전효숙 재판관의 의견서를 찾아서 한번 읽어 보십시오. 다수 의견보다 훨씬 논리적이고 이치에 맞습니다. 세상에 연성헌법도 아니고, 경성헌법을 채택하는 나라에서 공화국도 아닌 왕조 시대 서울을 갖고 헌법 운운하는 것이 도대체 말이 되느냐는 것이죠. 그런데 그것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도 없습니다. 정치에서 전형적으로 등장하는 의제 설정이죠.

(7) 링컨의 의제 설정

링컨이 대통령이 된 것이 1860년인데, 그 언저리 링컨의 정치적 행보를 보면 의제 설정을 잘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링컨이 대통령이 되기 전까지 공화당 쪽은 이합집산을 거듭합니다. 당명도 여러 번 바뀌었죠.

Federalist ==> National Republican ==> Whig ==> Republican

어떤 의제설정을 해야 선거에서 이길 것인지 공화당은 심각하게 고민을 했습니다. 노예해방이라는 좋은 쟁점이 있기는 한데 전국 이슈로 만들기에는 역량이 부족했던 것입니다. 그 즈음에야 농업 위주였으니까 남부의 입김이 셌고, 그 여파로 공화당 쪽 일부도 표심을 잡기 위해서 갈대같이 흔들렸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때 링컨이 공화당의 구세주 역할을 합니다.

미국이 서부로 팽창하면서 주들이 늘어났죠. 땅을 확보하면 모두 곧바로 주가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은 경우 테러토리(Territory)라는 임시정부 형태를 거쳐서 주가 되었습니다. 그 테러토리에 노예제를 허용하느냐 마느냐가 그 당시 초미의 관심이었습니다. 그 문제를 일리노이주 연방 상원의원인 더글라스(Stephen A. Douglas)가 해결했습니다. 그것이 1854년 캔사스-네브래스카 법(Kansa-Nebraska Act)입니다. 내용은 테러토리 의회가 노예제를 허용하든 안 하든 알아서 결정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민주당이 바라고 있었던 대로 노예해방 이슈를 로컬에 묶어놓는 데 성공했습니다. 민주당 상원의원 더글라스의 공으로 칩니다.

그런데 캔사스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캔사스는 해방구(Free Soils)가 되었는데, 연방 대법원의 판결에 의하여 흑인은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지 못한다고 결정해버린 것입니다. 1857년 드레드 스캇(Dred Scott) 판례입니다. 그 당시 연방 대법원을 남부 출신 판사들이 장악하고 있었거든요. 모순이 생겼습니다. 해방구를 연방정부가 인정하지 않은 셈이니, 캔사스-네브래스카 법의 연원이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이 점을 링컨이 파고들어서 노예해방 이슈를 전국화시키죠.

그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858년에 연방 상원의원을 선출하는 선거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는 간선이라서 일리노이주 의회에서 선출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민주당 대표는 현역 더글라스, 공화당 대표에는 삐쩍 마른 링컨이 나왔습니다. 두 후보가 일리노이 전역을 돌면서 8차례 토론회를 했습니다. 그 중 프리포트(Freeport)라는 조그만 도시에서 열렸던 토론회에서 링컨은 더글라스에게 다음과 같이 묻습니다.

“Can the people of a United States Territory, in any lawful way, against the wish of any citizen of the United States, exclude slavery from its limits prior to the formation of a state constitution?”
음... 영어가 조금 고풍스럽습니다. 요체는 더글라스 당신은 테러토리가 정식 주가 되기 전에, 연방정부가 반대해도, 노예제를 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정도가 되겠습니다. 정확하게 위에서 설명드린 모순을 지적한 것입니다. 2년 뒤인 1860년 대통령 선거에 대해서 더글라스는 관심이 많았습니다. 민주당 후보가 되려면 남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죠. 그런데 일리노이주는 북부에 있습니다.

그 당시 이미 민주당은 북부와 남부로 분열의 조짐이 있었습니다. 저 질문에 예스(Yes)로 대답하면 더글라스는 상원의원직을 쉽게 유지할 수 있지만, 남부 쪽의 외면을 받게 되는 것이었죠. 링컨이 설정한 의제는 상원의원을 쉽게 계속 유지할래, 아니면 대통령에 도전해볼래, 둘 중 하나만 골라 보라고 압박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더구나 더글라스 자신이 주도한 캔사스-네브래스카 법도 걸려 있죠. 결국, 더글라스는 쉽게 상원의원직을 유지하는 쪽으로 결정합니다. 링컨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2년 뒤를 기약합니다.


1860년에 민주당은 쪼개집니다. 북부민주당은 더글라스를 후보로 내고, 남부민주당은 자체로 다른 후보를 냅니다. 링컨의 의제 설정이 성공적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죠.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노예해방을 이끌어 냈고, 그 이후로 미국 정치의 주도권은 당분간 공화당으로 기울게 됩니다. 링컨이 사용한 의제 설정은 의제 추가(Issue Addition)입니다. 공화당의 고민이 노예해방을 전국 이슈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여의치 않았죠. 그런데 링컨이 프리포트에서 토론 한번 잘해서 전국화시키는 데 성공했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TV나 라디오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서, 정당이 유권자에게 정책을 호소할 때 종이 홍보에 의존했습니다. 링컨이 논리를 제공했고, 홍보는 공화당 조직이 맡았습니다. 프리포트 토론 내용의 핵심을 잘 요약해서 신문이나 당 홍보지를 통해서 열심히 뿌렸다고 합니다. 일반인은 링컨의 정치적 조작을 말 그대로 읽으면 무슨 뜻인지 모를 수 있기 때문에, 공화당 조직이 친절하게 해설을 해서, 시민이 드시기 좋게 메뉴를 개발한 것이죠. 대선까지 2년의 기한이 있었기 때문에 시간도 충분했습니다. 링컨은 1860년 대선 때 선거 유세도 별로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남부는 아예 포기했죠. 링컨이 아이디어 토스를 잘했고, 그것을 받아서 공화당 조직이 잘 움직여서 노예해방 쟁점을 전국화했습니다.

(8) 정치적 조작

라이커 교수님은 이것을 Political Manipulation(PM)의 대표적 사례로 꼽습니다. 그래서 그 책의 첫 번째 이야기가 된 것이죠. 이야기가 모두 12개입니다. 논리적으로 따지는 것이 많아서, 생각하면서 읽어야 문리가 들어옵니다. 작은 고추가 매운 셈이죠.^^ PM을 어떻게 번역할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정치공작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부정적 의미는 없고, 정당한 방법으로, 힘이 아닌 “말”로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적 상황을 만드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공작은 힘이 조금 들어가죠. 조작도 우리에게는 조금 부정적 의미가 있어서, 정치공학이라고 한번 써봤습니다. 그러니까 이공계 일부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더러운 정치에 신성한 공학을 갖다 붙이지 말라는 이야기였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치공학이 두 가지 의미로 쓰이더군요. 우리나라 정치학자들도 정치공학이란 용어를 많이 씁니다. 이때는 PM에 따라서 객관적 의미로 씁니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또 그 말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정치공작에 따라서 나쁜 의미로 쓰더군요. 이공계 사람이 정치학 논문을 읽을 필요는 없죠. 그래서 정치공학이라는 용어를 꺼리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그냥 정치적 조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원래 제목으로 돌아왔습니다. ㅋ

결론적으로, 노예해방과 관련하여 링컨의 도덕성은 부풀려졌지만, 거시적으로 남북통합을 이끌어낸 위대한 대통령이고, 미시적으로는 정치적 조작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능력 있는 정치인이었습니다. 미국 사람의 추앙을 받을 만 합니다.

여러분도 주위에 잘 보십시오. 정치는 공기와 같은 것이라서, 사람 사는 곳에는 정치가 있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사람이 어떤 정치적 조작을 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결과를 가져오려고 하는지 잘 관찰해보십시오. 재미있을 것입니다. 정치학자의 임무 중 하나로 정치인을 견제하는 것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적으로 공부를 많이 했으니, 정치인들이 어떤 정치적 조작을 해서 (정당한 방법으로) 결과를 왜곡시킬 수 있는지 집어낼 수 있겠죠. 그런 것을 지적해야겠죠. 일반인들에게 알리기도 하고요.

긴 글 읽으시느라 너무 수고 많았습니다. 링컨 이야기 끝입니다. 만세!

댓글 1개:

  1. 영도스키
    (2009/07/05 02:28) 박사님 정말 많이 많이 배워갑니다. 만세!

    와사비
    (2009/07/05 02:35) 정말 정말 엄청난 씨리즈였습니다. 꼭 마음을 들킨 것 처럼 여러번 생각해봤던 어떤 사고가 박사님 글 속에 있어서 접신하는 거 같은 느낌이.. ;;;

    최종적 평가로 링컨은 영리했던 사람이었네요. 그런 전략이 식견이 필요하다는 점까지 더해보면 승리할 자격이 있던 거 같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어릴때 위인전 읽어보았지만 위인전기에 있는 위인들 모두 마음에 와닿질 않았는데..(파브르 빼고ㅋ) 성인이 되어 세속적인 한 인간의 매력이 보이다니 이건 박사님 글 덕분이에요.

    너무 좋은 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전에 규식이가 박사님께 했던 질문에 대답을 우습게 좀 하면... 많은 경우엔, 소소한 일상에서 내 권리, 남 권리 침해 당하는 거 부당하다고 투덜대는데에 사무라이 칼 앞에서 "내가 조선의 국모다!" 라는 용기 필요한 거 아님. 그거하라고 하면 "전 사기여왕이에요"라며 나도 납작엎드릴거 같음. ㅋ

    안병길
    (2009/07/05 02:45) 영도씨, 시원~하죠? ㅎ

    와사비님, 그렇습니다. 링컨은 능력 있는 자유주의자였습니다. 미국 사람들이 좋아할 요소들을 많이 갖춘 정치인입니다. 칭찬 고마와요.

    영도스키
    (2009/07/05 03:17) 여긴 새벽이라 그런지 여름이지만 시원합니다. 더불어 제 마음도, 머리도 너무 시원합니다. (역시 박사님 덕택이죠!!)

    박사님과 박사님이 쓰신 글을 완전 좋아라 하는 것은 저의 자유겠지만 너무 오바 하지 않아야 방종의 경계를 넘어 가지 않겠죠?^^

    요즘 우구 챠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에게 관심(?)이 있는데, 나중에 남미 쪽도 한번 맛 보여 주세요!!히히

    안병길
    (2009/07/05 03:30) ㅎㅎㅎ 농담이시죠. 개인의 머리 속에서 자유는 무한대입니다. 그것을 양심의 자유라고 합니다. 더 좋아해주세용. 그리고 표현의 자유도 있답니다.ㅋ 물론 표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오바이트 느낌을 받으면 그 때는 애매모호해집니다.^^

    영도스키
    (2009/07/05 03:42) 네. 완전 사..사..사..좋아합니다.

    오늘 오랜만에 서점엘 갔는데, 말의 향연 (2)를 읽고 가서 그런지 마키아밸리의 군주론이 눈에 쏙 들어 오던데요.

    근데 교수님, 우리나라에서는 사회계약, 민주주의 같은 개념이 역사의 흐름에 의해 쟁취한 것이 아니고, 몇단계 건너 뛰어 넘듯이 (수동적으로)심어진 것 같아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자유, 민주 이런 개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듯 해요.(물론 저부터도;;;)

    아마도 결국엔 (우리의 의식과 맞지 않는 이러한 어긋난 제도나 문화가) 제 자리를 찾기 위해선, 언제가 아래로부터의 요구에 의한 파도가 일지 않을까요?

    안병길
    (2009/07/05 03:51) 그래서 요즘 제가 그 파도를 돕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심각하게 고민 중입니다. 문제는 자유민주주의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에게도 도움이 되고, 파도에도 도움이 되는 무슨 일이 있을겁니다. 찾아보면.

    남미는 저는 피상적으로 밖에 모르구요, 제가 잘 아는 전문가가 한 분 있습니다. 이성형 박사라고 그 분이 재미있게 남미 이야기를 잘 하십니다. 이대 정외과에 재직하셨는데, 지금은 프레시안의 중남미학교 교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도스키
    (2009/07/05 03:59) 네, 역시 첫째도 계몽 둘째도 계몽 아닐까 합니다. 저도 박사님 덕분에 흐릿한 개념을 좀 더 선명하게 담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알아야, 똑똑해야, 능력이 있어야 파도를 몰고 올 수 있겠죠?^^

    이성형 교수님은 비전공자인 저도 들어 봤습니다. 저야 워낙 아무것도 몰라 그 분의 깊은 얘기보다 혹 교수님의 재미난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해서 청 했는데ㅠ 아쉽습니다.

    방문자
    (2009/07/05 05:35) 정말 많이 배워갑니다. 안박사님 만세!(2)

    안병길
    (2009/07/05 12:00) 방문자님, 응원 감사합니다.

    안병길
    (2009/07/05 13:19) 그런데 원 질문자인 준현씨는 어떻게 코빼기도 보이지 않죠? 이상하네요...

    신민섭
    (2009/07/05 13:23) 안박사님의 꿀과 향유와 같은 글들 너무 잘 읽었습니다. 역시 이곳의 매력 중 하나는 대면강의 말고는 얻기 힘든 여러 교수님들의 보배와 같은 코멘트와 말씀들을 슈퍼마리오가 동전보너스 먹듯이 득템 할 수 있다는데 있는것 같습니다 . 너무 낼름낼름 받아먹기만 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안박사님을 비롯한 교수님들께서 흔쾌히 후학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어주시는 것으로 제 마음대로 가정하고 뻔뻔스럽게 계속 득템하도록하겠습니다. ㅋㅋ

    소민우
    (2009/07/05 13:27) 박사님의 특강을 학교 수업으로 따지면 몇 시간 분량이 되는가 아직 헤아리지 못하였지만 , 대략 6시간 분량이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귀한 시간 내서 玉稿를 만들어 주신 박사님께 감사드립니다.

    안병길
    (2009/07/05 13:27) 민섭님, 에이 너무 그러시면 곤란하죠.^^ 필이 꽂힐 때 소소한 얘기라도 우리 공유해요. 부담가지실 필요는 없구요.

    민우씨, 그래도 제가 들어가면 집담회는 해야 되는거죠?^^ 빨리 들어가고 싶네요.

    소민우
    (2009/07/05 13:34) 이 글로 집담회를 갈음해도 저로썬 과분한 영광입니다만 교수님의 옥고가 여기있는 논객들의 목마름만 더욱 가중시킨 것 같아 박사님께서 서울에 나타나신다면 집담회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ㅠㅠ

    지금 막 완성하였습니다.

    안병길
    (2009/07/05 14:32) 민우씨, 8월 말까지 귀국하는 것을 목표로 해보겠습니다. Pacta sunt servanda! 민우씨의 옥고가 기대됩니다.

    김규식
    (2009/07/06 10:29) 드디어 박사님의 등장 씬!! 예이~~우와~~ㅋㅋ

    안병길
    (2009/07/06 13:25) 제가 서울에 가면 규식씨는 무엇을 함께 하고 싶나요?

    중 
    (2009/07/06 15:14) 스크롤이 끝으로 가면 갈수록 "벌써 끝나면 안되는데..." 할 정도로 몰입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너무 감사합니다.

    안병길
    (2009/07/06 19:13) 중님, 칭찬해주셔서 고마와요. 그것도 또 다른 종류의 스크롤의 압박이네요. 과찬이십니다. ㅎ

    김규식
    (2009/07/06 22:01) 저는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라 쭈뼛쭈뼛 머뭇머뭇거리고 있을거에요.ㅋㅋㅋㅋㅋㅋ (정말입니다ㅋㅋ)

    일단 박사님의 파란만장(?)한 인생 스토리를 통해 여러가지 교훈을 얻고 싶습니다.^^ 물론 박사님이랑 사진 한장......ㅋㅋ

    안병길
    (2009/07/06 22:05) 저는 프로라서 같이 사진 찍히는 것을 하면 돈을 받습니다.^^ 농담입니다. 제 추한 몰골에 놀랄 것 같아서 걱정이 됩니다.

    제가 파란만장이라는 것을 어떻게 아셨죠??? 궁금 궁금.^^

    김규식
    (2009/07/06 23:35) 박사님이 추한 몰골이라니요.....;;21년 인생 여자친구 없는....(예, 아주 없던 건 아니고 친구들의 놀림거리로 남아있는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ㅋㅋ) 저보다 훨씬 미중년이십니다.ㅎㅎㅎㅎ(사진이 증거!)

    제자*오
    (2009/07/07 13:12) 박사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정치적 조작이란 용어에는 가치 판단이 들어가지 않겠지만 의제 설정이라는 내용에서 가치가 개입되겠군요. 링컨처럼 좀더 다수의 행복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향으로 의제 설정이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안병길
    (2009/07/07 13:57) 가치 판단이란 개념이 조금 애매하죠. 제자*오님이 이해하신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링컨도 당연히 공화당이라는 당파성을 갖고 있었죠. 게다가 자유주의자이니까, 개인주의적 입장은 정치인으로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추구했구요. 그런 것들과 대중의 이익이 맞아 떨어졌다고 보시면 정확할 것 같습니다. 정치적 조작술 자체는 정당한 기법이니까, 그 자체에 가치 판단을 개입시키기는 곤란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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