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언제나 그렇듯 문외불출입니다.
1.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죄송합니다. 한국에서 안 박사님을 뵙지 못 해 무척 서운하군요. 진료에, 학회 발표와 개인적인 일이 겹쳐서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가 없었습니다. 학회 발표 준비를 위해 피같은 휴가를 썼을 정도였으니, 조금은 정상 참작을 부탁드립니다.
언젠가 제가 꽃 한 송이 꽃고 샌프란시스코에 가게 될 때를 기약하며, 속죄를 위해 또 한 번 글을 올립니다.
2.
어제 거점병원 의료진 용으로 배포된 신종 인플루엔자 백신을 맞았습니다. 좀 아프더군요. ; 그래도 아픈 내색 안 하고 씩씩하게 맞았습니다.
사실 저는 바이러스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기 때문에 이미 앓고 지나갔을지 모른다는 의심도 듭니다. 평소에 감기를 달고 살아서 걸렸는지 잘 몰라서 그럴 뿐.. 앓고 지나갔더라도 맞으라니까 또 맞아야죠 뭐.
네트워크 이론을 전공하신 분이, 올 해 안으로 신종 인플루엔자로 100명 정도는 죽지 않을까? 라고 예측하신 걸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의학을 전공하신 분은 물론 아니고, 단지 변수와 변수의 상호작용이라는 것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보신 것 같습니다. 대단히 rough한 시뮬레이션이었겠지만..
저는 그 분과 반대로 의학을 전공했고 네트워크 이론에는 무지합니다만, 그 예측이 설득력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초기의 사망자수는 exponential curve를 그리다가 (감염과 백신을 통해) 집단면역이 생기면서 plateu를 이루고 소멸되겠죠. 지금은 100명보다는 좀 많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지만, 1000명 단위까지 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100명의 죽음이 아니라 단 한 명의 죽음이라도, 죽음은 그 자체로 슬픈 것입니다만, 현장에 있는 의사로서 판단컨대, 적어도 저 정도의 사망은 피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3.
사망률에 대해 말들이 많습니다. 계절 독감보다 낮다, 비슷하다, 뭔 소리냐, 전 세계적으로 5000명이 넘게 죽었는데.. 등등.
사실 신종 인플루엔자의 병원균으로서의 장점(?)은 그 가공할만한 전파력에 있지, 치명률은 그냥 그렇습니다. 나라 별로 다르긴 하지만, WHO 사망률 통계 (http://www.who.int/csr/don/2009_10_23/en/index.html 하단의 table)를 보면, 남북아메리카와 동남아시아를 제외한 지역의 확진자 대 사망자 비율은 0.04~0.07%에 불과합니다.
사망률이 높다는 주장을 하는 쪽에서 흔히 간과하는 것은 물론 잠재 감염이지요. 잠재 감염을 고려하면 저 비율보다 분모의 숫자가 커지고 사망률은 낮아집니다.
일선에 있는 저의 경험으로도 확진되지 않은 감염자 수가 확진 환자의 최소한 2배는 넘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이것은 현재 많은 (특히 1차) 의료기관에서 확진을 위한 PCR을 의뢰하지 않은채 환자를 진료하고 있으며, 제가 경멸해마지 않는 신속항원검사도 거기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속항원검사에 대해서는 10월 7일에 올린 포스팅을 참조하시길.)
남북아메리카의 확진자 대 사망자 비율은 2.2%, 동남아시아는 1.4% 정도입니다. 왜 저 지역들에서 저런 높은 사망률을 보이는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균 자체의 특성이 다르다는 말은 아직 없고.. 이럴 때 늘상 거론되는 환자측 요인, 환경 요인 외에도, 잠재 감염의 과소 평가가 한 몫 하고 있기는 할 겁니다.
4.
아뭏든 SI가 인플루엔자 대재앙의 현재로서 가장 유력한 후보이긴 하지만, 백신이 이제 나오기 시작했을 뿐이고, 바이러스의 변이에 대한 것도 아직 확실한 것이 없어서,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조용히 물러나주면 좋겠지만요...
아직까지는 정부나, WHO가 잘 대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까놓고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금 정부에 대해 출범 전부터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만,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한 대책을 크게 잘못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초창기에 좀더 융단폭격식 대응을 했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거라는 주장도 있지만, 다른 나라 상황을 보면, 크게 달라졌을 거 같지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한 국가를 통째로 격리시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지요.
감염 예방 수칙은 잘 지키시되, 너무 공포에 사로잡히시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Dr. 홍께서 또 옥고를 올려주셨네요. 매우 감사합니다. 집담회에서 만났다면 좋았겠지만, 많이 바쁘셨다니 충분히 이해합니다. 사과하실 일은 아닌 것 같아요.^^ 다음에 기회가 생기면 직접 뵙고 반갑게 인사할게요.
답글삭제이번 귀국 직전에 신종플루 백신을 맞으려고 제가 다니는 병원에 연락했는데, 그 병원은 해당 백신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접종을 포기했었죠. 미국보다는 우리나라에서 신종플루에 대해서 더 우려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새로운 질병에 대해 더욱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