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8월 31일 월요일

[자유] 우리나라 정당의 공동체 지향 (1)

부산대 사회교육학과 김석준 교수님은 진보신당 부산시 위원장입니다.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시리즈 글을 김 교수님 홈페이지에 옮겨서 의견교환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기 때문에, 또 김 교수님이 좋아하는 사민주의(사회민주주의)와 자유민주주의는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그렇게 했습니다. 김 교수님은 제 주장의 핵심에 동의하시면서, 그래도 힘을 모으는 "방법과 절차에 대해서 따질 것은 따지고 정할 것은 정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좋은 의견을 주셨습니다. 또한, 단기적으로는 패배해도, 장기적으로 이길 수 있으면 생고생(풍찬노숙)도 각오할 수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문제도 정답이 없습니다. 결국, 개인의 정치적 신념에 의해서 각자 갈 길을 가더라도 자유주의에서는 궁극적으로는 비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단, 사회적 결정은 민주주의로 하는 것이 해법이죠. 진보신당이 주장하는 그 방법과 절차가 다수의견이 아니면, 소수의견으로 남습니다. 물론 그 소수가 다수가 될 날을 학수고대하겠죠.

김석준 교수님과 의견 교환하면서 진보신당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해졌습니다. 그래서 진보신당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소개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강령을 읽으면서 의문이 생겼습니다. 제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진보신당 강령의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2009년 3월에 채택한 강령입니다.

"나의 자유는 그 만남의 공동체가 확장되는 만큼 넓어지고, 그 만남의 온전함만큼만 온전할 수 있다. 이처럼 자유로운 삶을 위해, 너와 내가 평등하게 만나 서로 주체로서 우리가 되고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활동이 바로 정치이다."

"하지만 국가는 만남의 최종적 전체가 아니므로, 더 큰 전체인 인류공동체를 향해 자기의 한계를 넘어서야 하며,"

"세계시민적 국제주의는 편협한 민족국가의 경계를 넘어 보편적인 인류 공동체의 건설을 추구하고 있다."

기타 등등... 제가 공동체라는 단어를 정치에서, 구성원 수가 "많은" 사회집단에 사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진보신당 강령은 왠지 우리 도덕/윤리 교과서 분위기를 풍깁니다. 전체주의 주춧돌을 놓았다고 평가되기도 하는 룻쏘가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도대체 진보신당 정치단체가 추구하는 공동체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진보신당의 강령에 찬성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공동체인가요? 만약 그렇다면 그 강령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공동체 밖에 존재하는 멀리 해야 하는 인생입니까? 생각이 옳지 않은 사람들인가요? 아니면 생각이 다른 시민일까요? 생각이 다르면 그 공동체에 속할 수 없겠죠?

그 강령의 초안을 작성한 진보신당의 대표적 이데올로그에게 조만간 문의를 해야겠습니다. 강령에서 나의 자유는 "공동체"가 확장되면 넓어진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만약 그 과정에서 남의 자유가 훼손되면 어떻게 됩니까? 유감스럽게도 진보신당 강령에서는 제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ㅜ.ㅜ

[수필] 두서없는 영어 이야기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24)

제가 청운의 꿈을 안고 유학을 떠나서 처음 도착한 곳이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이었습니다. 비행기를 갈아타는 시간이 남아서 공항 내부의 가판대에 음료수를 사러 갔었습니다. 우유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맥주가 나오더군요. 아마도 milk를 beer로 알아들었던지, 아니면 그 근처의 Milwaukee(밀워키 맥주가 있음)로 알아들었던 모양입니다. 영어는 제법 한다고 생각하고 미국으로 갔었는데 초전에 구겨진 셈이었죠. 다시 m-i-l-k를 외쳐서 새로 우유를 받을 수도 있었는데, 쑥스러워서 맥주도 사고 우유도 샀습니다.

맥주를 마셔서 벌거스럼한 얼굴로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습니다. 구겨진 자존심을 만회하고자 비행기 안에서 만난 미국인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로체스터와 롸체스터, 어느 발음이 맞습니까?" 이렇게 물어봤는데, 그런데, 그런데, 돌아온 답이... "What's the difference?"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제가 미국에서 처음 사용했던 영어들은 처참한 몰골이 되고 말았습니다.

더 심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루는 급하게 병원에 갈 일이 생겨서 차를 몰고 가던중, 아내가 배고프다고 해서 맥도날드에 들어갔습니다. 그 때 병원에 빨리 가야된다는 생각에 많이 당황했었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나서 포크가 필요해서 종업원에게 달라고 했죠. 그런데 안 주는 것입니다. 못 알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차, 내 포크 발음을 알아듣지 못하는구나"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철자를 불러줬습니다. 그런데 그만 p-o-r-k로 불러줬던 것입니다. 종업원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고 저를 멀뚱멀뚱 쳐다봤습니다. 당연하지요. 맥도날드가 정육점이 아닌데 어떻게 돼지고기가 있었겠습니까. 또 다시 아차 싶어서 철자를 정정하여 겨우 포크를 받았습니다.

제가 학위논문 발표를 할 때 위원장으로 들어온 교수님께서도 마지막에 제 발음을 지적했습니다. 그 때도 너무 긴장이 되어서 model을 우리나라에서 했듯이 모델(뒤에 강세)로 계속 발언했던 것입니다(정확하게 표기는 안되지만, 앞에 강세를 둔 '마들' 식으로 주로 발음합니다). 그 교수님은 프랑스인이어서 그 발음이 신기했던 모양입니다. 불어로는 모델이거든요. 그래서 그 교수님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너는 왜 프랑스 사람같이 모델을 그렇게 발음하냐?"라고 저를 놀리셨습니다. 마땅히 대답할 꺼리도 없고 해서, "한국의 남쪽 시골 출신이라서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죠. 모 친구 교수가 저에게 영어도 우리말 사투리 식으로 한다고 가끔 놀리곤 했거든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기 때문에, 특히 당황하게 되면 아차하는 순간에 이전 습관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말에 없는 th, f, v 발음 등은 신경을 써서 반복 습득해야 제대로 된 발음 습관이 생길 수 있겠습니다. 아래의 어느 댓글에서 이 교수님께서 유성음 b와 d 발음 경우도 말씀하셨지만, 이런 발음들을 처음에 가르칠 때, 우리말로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인지 영어로 가르치는 것이 효율적인지를 잘 따져봐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원어민들과 같이 생활하지 않은 경우라면, 제 생각에도 그런 발음들은 발음시 구강구조와 치아 위치 등을 우리말로 설명해주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원봉사자로 영어를 가르치면서 th는 혀 끝을 이빨로 약간 물어야 된다든지, f나 v는 윗 대문니가 아래 입술을 살짝 건드려야 된다든지 등을 설명하고 발음을 시켜보니 훨씬 정확하게 그 발음들을 해내더군요. 그런 것들을 영어로 설명했다면 수강생들이 그 영어 자체를 알아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결국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도 옥석을 가려서 해야 될 것입니다. 독해나 문법 등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2년 뒤에 일제히 영어로 영어 교육을 한다는 식의 발상보다는, 적절한 준비 기간을 거쳐서 어떤 영어 수업은 우리말로 하고, 어떤 영어 수업은 영어로 할 것인지 잘 검토해서 점진적으로 영어 공교육 개선을 이뤄나가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현재 교육 현장에 계신 영어 선생님들의 영어로 수업하기 딜레마도 해소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배님께서 말씀하신 그 오렌지 발음을 저도 TV에서 들었습니다. 거의 같더군요. 오렌지나 오렌쥐나... 미국에서 흔히 발음하듯이 했다면 앞에 강세를 두고 아린지 이런 식으로 했어야 되었겠죠. 강세만 정확하면 오렌지도 잘 알아 듣는 것 같습니다. ^^)

[단상] 영어로 수업 하기: 나의 경험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15)

인수위의 일 주일 해프닝으로 끝난 "영어 몰입" 교육에 대해서 제 경험을 두서없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저는 미국 대학교에서 영어로 강의하다, 한국 대학교로 직장을 옮긴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곳의 방장이신 이 교수님도 그런 이력을 가지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그 당시 한국으로 직장을 옮긴 이유가 여럿 있지만 그 중 하나가 언어 문제입니다. 영어로 강의를 하다 보니 제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충분히, 또한 재미있게 전달하지 못하는 애로사항이 있었습니다. 강의라는 것이 같은 내용을 전달해도 유머를 섞어 가면서 재미있게, 강사의 머리 속에 있는 내용을 학생들이 잘 이해하도록 해야 하는데, 사용 언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외국어라면 당연히 그런 애로점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미국 대학교에 첫 직장을 잡고 첫 강의를 하기 하루 전에는 거의 잠을 설쳤습니다. 영어 때문이죠. 학생들이 제 영어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면 어떡하나, 영어 때문에 지식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떡하나라는 고민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스트레스는 계속 되었습니다. 제가 이공계 공부를 하던 사람이었으면 그래도 조금 나았을텐데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몇 년을 그런 스트레스 속에서 살다 한국에 직장이 생겨서 옮겨올 때는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영어로 강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습니다.

첫 학기를 우리 말로 강의를 했습니다. 그런데 감사가 나왔습니다. 제가 재직했던 곳이 국제전문인력 양성을 기치로 새로 탄생한 국제대학원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사의 타겟이 바로 "왜 외국어로 강의하지 않고 우리 말로 강의하니?"였습니다. 청와대에서 모 대학의 교수 한 분을 특별 암행어사로 임명하여 여러 국제대학원의 "우리 말로 강의하기" 실태조사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저는 감사장에서 제 경험을 얘기하면서 전 강의를 모두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교육의 질을 오히려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강변했습니다만, 일개 조교수가 무슨 힘이 있었겠습니까?

그리하야 제 행복은 한 학기로 끝나버렸습니다. 다시 영어로 강의를 하게 된 것이죠. 허탈했습니다. 모국어로 강의해서 너무 좋았는데, 다시 어버버해야 하는 영어로 돌아갔던 것입니다. 미국 학교에서 영어로 강의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습니다. 수강생들이 영어를 아주 잘 하니까요. 토론을 할 때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제가 영어가 조금 떨어져도 내용은 제법 알고 있으니까, 또 듣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으니까 학생들을 많이 떠들게 하면 됩니다. 모두 듣고 나서, 음 그러면 이 사부가 한 수 가르쳐주마 하고 이러쿵 저러쿵 얘기해주면 되는 것이죠.

그런데 모국어가 우리 말인 학생과 모국어가 우리 말인 선생이 만났는데 강의를 영어로 진행하면 참 어색합니다. 오전 강의라고 생각해보죠. "Good morning everybody!" 이렇게 시작하는 것과 "자, 여러분들 잘 지냈나요? 책을 펴고 머리를 한번 굴려 봅시다" 이렇게 시작하는 것은 큰 차이가 납니다. 비슷한 흉내를 내려고 콩글리쉬로 "Let's unfold your textbooks, and spin our heads." 이렇게 하면 짝퉁 코메디는 되겠습니다. 실제로 우리 학생들 앞에서 강의 시작 전에 "Good morning." 이렇게 내뱉으면 머리 속에서는 "이런 우라질 굿모닝이 뭐야, 굿모닝이"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습니다.

물론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면 우리 말로 진행할 때와는 비교하여 영어 실력이 쬐끔 향상되기는 합니다. 제 경험에 비추어서 보다 정확하게 평가하면, 쓰기 실력은 제법 향상되지만(이것은 우리 말로 진행해도 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 듣기와 말하기는 미세한 정도입니다. 쓰기도 학생들이 제출하는 과제물에 강사가 일일이 코멘트를 해주고 수정할 것은 수정해주고 그래야 향상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잘못된 영어 사용 습관은 그대로 유지되는 편이라고 봐야겠지요. 그런데 영어 실력 향상이 목표가 아닌 강의에서 영어로 진행되면 잃는 것은 매우 큽니다.

국제전문인력이면 영어를 잘 해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합니다. 예컨대 국제협상에 나아가서 상대방과 밀고 당기기를 할 때,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영어를 더 잘 하면 더 좋겠죠. 그런데 국제협상에서 상대적으로 더 중요한 것은 언어가 아니고 협상자의 머리 굴리기라는 사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유엔의 반기문 사무총장이 구사하는 영어를 들어보면 반기문식 영어입니다. 발음 등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반 총장이 영어를 잘 한다고 절대 얘기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아무 문제 없습니다. 총장으로 선출될 때 영어가 문제되었다는 것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영어로 교육을 받아서 국제협상자로 기본 머리 굴리기 측면에서 더 좋은 훈련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친다면 그 교육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경제학에서 얘기하는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국제대학원에서도 옥석을 가려서 영어로 강의할 과목을 정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영어 몰입 교육(저는 이 용어도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영어로 교육하기"로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은 일 주일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만, 이제는 영어를 영어로 가르치기가 국민들의 큰 관심사가 되어 있습니다. 제가 몇 해 전에 난곡동에서 자원봉사자로 그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영어를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TESOL 자격증이나 여타 자격증이 없었으니 사이비 강사였던 셈이지요. 학생들은 성인도 있었고, 어린 학생들도 있었습니다. 이 경우,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려고 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두번 째 시간부터는 아마 학생이 한 명도 나타나지 않는 불상사까지 상상할 수 있겠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이 그 사회의 문화와 현재 교육 여건 등을 주도면밀하게 검토하여 구체적 시행책을 내놓는 것이 맞습니다. 현재 인수위가 강행하려고 하는 "2년 뒤에 요이땅" 정책은 전시행정적인, 자기 과시적인, 무책임한 교육 정책 밀어 붙이기입니다. 현재 초, 중, 고등학교 영어 교사분들의 영어 회화 실력이 2년 동안 얼마나 향상되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영어로 수업하기가 되지 않는 교사분들을 교육 현장에서 몰아내겠습니까? 몰아내지 않으면 짝퉁 영어로 수업 시간에 어버버할 수 밖에 없는데, 그 때 발생하는 사회적 기회비용은 누가 책임집니까? 제가 보기에는 우리 말로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더 효율적인 경우도 많습니다.

언어 교육을 전공한 실력있는 학자분들의 조언을 받아서, 현장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또한 기타 현실적 문제들을 잘 감안하면서 점진적이면서 단계적인 국민 영어 실력 향상 프로그램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인수위가 생각해낸 벼락치기식으로 하면 국민들이 벼락 맞습니다... 어느 외국인이 인수위의 아이디어를 조목조목 체계적으로 비판한 글을 읽으면서 웃기도 하고, 동감도 했지만, 동시에 한국인으로서 수치심도 느꼈습니다. 외국인이 언론에 그런 글을 배포하여 저같이 죄없는 백성들이 수치심을 느끼게 한 당선자와 위원장은 진중한 사과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2009년 8월 30일 일요일

[잡담] 푸크시아 꽃이 피었습니다.

지난 겨울에 집 정리를 하다 망치를 떨어뜨려서 푸크시아(Fuchsia) 나무가 부러지는 불상사가 일어났습니다. 큰 가지여서 나무 밑동만 남기고 모든 줄기가 없어지는 대재앙이 벌어졌던 것입니다. 속이 많이 상했습니다. 제 실수로 좋은 꽃나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책도 제법 했죠.

그런데 생명력이 탁월한 푸크시아가 봄에 되살아났습니다. 정말 다행이었습니다. 꽃망울을 맺더니 지금은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고마운 푸크시아 나무입니다. 첫 번째, 두 번째 사진은 올해 촬영했고, 세 번째 사진은 작년에 촬영한 것입니다.

푸크시아에 대한 설명: http://en.wikipedia.org/wiki/Fuchsia_(color

[수필] 사랑 만들기, 동서양을 뛰어넘은 협조게임...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26)



아래의 "증명해봐!" 댓글 이음에 사랑 얘기가 예기치 않게 나오는 바람에 동서양을 뛰어넘은 사랑 만들기 협조게임이 생각났습니다.

미국 동기생 중에 예쁜 금발 여학생 Lucy가 있었습니다. 같은 금발인 선배가 계속 관심을 두고 그 여학생과 사귀고 싶어 했습니다. 청춘에 남녀 사랑만큼 중요한 것이 있겠습니까. 청춘이 아니더라도 파우스트 박사의 경우를 보면, 늙어서도 영혼을 악마에 저당잡히고 사랑을 추구할 정도로 사랑은 인간에게 절실한 것이지요. (저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끝까지 읽지 못했습니다. 괴테에 바탕을 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 줄거리를 참조했습니다. 오페라 파우스트는 우리들의 귀에 익은 "보석의 노래"와 "병사의 합창"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 둘은 조금씩 사귀게 되었는데, 큰 진척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학생들끼리 맥주를 한잔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그 즈음에 둘 사이가 조금 좋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선배가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맥주를 제법 마셔서 모임이 끝날 무렵이 되면 제가 루씨에게 집에 태워 달라고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루씨가 거절하지 못할 것이고, 자기도 그 차에 슬쩍 함께 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루씨와 조금 친한 것을 알고 협조를 요청한 것이지요. 저를 먼저 내려주면 둘만 남으니까 그 선배가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계산이었습니다. 저는 흔쾌히 도와주기로 했습니다.

맥주를 마시면서 도와줄 바에 아예 확실히 밀어주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임이 끝나고 나서, 여러 명이 작별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 그 선배에게 말했죠.

"I know the TV program, 'I Love Lucy.' Do you love Lucy?"

그 선배는 눈이 휘둥그레해 졌고, 제 서툰 조크에 루씨를 포함하여 모두 크게 웃었습니다. 작전은 차질 없이 진행되어 세 명이 같은 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몇 년이 지나고 나서, 둘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지금도 잘살고 있을 겁니다. 주위에 비슷한 사례가 있으면 팍팍 밀어 드리시기 바랍니다.

(OO님, 위의 꽃 이름도 혹시 알고 계시면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우리 집 화단에 있는 꽃나무인데 이름을 모르겠군요. 위의 음악은 구노 파우스트 4막에 나오는 "병사의 합창"입니다.)

[잡담] 증명해봐!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25)

논문을 읽다 보면 가끔 증명을 건너뛰는 부분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럴 때 논문 저자는 "이 부분은 자명하므로 증명을 생략함" 혹은 "간단한 산수를 적용하면 쉽게 도출됨" 등의 표현이 나오죠. 그런데 그런 부분들을 쉽게 봤다가 낭패를 보는 때도 있습니다.

미국 후배 중에 이스라엘 출신이 있었습니다. 원래 머리가 좋은 것인지, 어릴 때부터 교육을 잘 받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유대인 중에는 똑똑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미국 학계에서도 유대인들의 활약은 눈부시죠. 그 후배는 똑똑하면서 조금 잘난 척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하루는 그 친구가 앞에 나가서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그 과목은 잉글랜드에서 온 교수님이 담당했는데, 매우 샤프한 분이었습니다. 증명을 하던 중, 위에서 말한 그런 부분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간단한 산수로 쉽게 도출되므로 다음으로 넘어감" 이렇게 설명했죠. 그 말을 듣자마자 그 교수님 왈,

"증명해봐!"

그 친구, "..............................."

제가 둘러보니 수강생 대부분 고소하다는 눈치였습니다. :)

여러분도 조심하세요. 이 교수님께서 이 초식을 쓰실지도 모릅니다.

2009년 8월 29일 토요일

[수필] 같이 놀면서 공부했던 학생 친구들

1990년대 말에 어느 장학재단의 대학원 장학생 전공 지도를 맡은 적이 있었습니다. 정치학과 법학 분야를 맡으라는 요청을 받고, 제 능력에 걸맞지 않은 역할이라서 고사할까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기회가 아니면 대한민국의 최우수 중 최우수 학생과 친구가 될 기회가 영영 없을 것 같아서 덜컥 맡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약간 과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치학 2명, 법학 2명으로 구성된 조촐한 공부 모임이었습니다. 모두 미국 유명대학 유학이 확실시되는 인재였습니다. 전공이 정치학과 법학으로 나뉘고, 어쩌면 저보다 공부를 더 잘하는 학생들이라서 처음 만날 때는 겁이 제법 났습니다. 교수가 언제 가장 겁나는지 아십니까? 교수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우수한 학생들을 상대로 강의하는데 뒷좌석에 앉은 학생이 뜬금없이 씨익 웃는 순간이 가장 겁날 때라는 강호의 전설이 있습니다. 강의 내용이 틀렸을까 봐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다는 것이죠. ^^

저는 그런 겁나는 순간을 피하고자 처음부터 솔직하게 인간선언을 했습니다. 더 가르칠 것이 없으니 하산해도 된다고... 이 글을 읽으면 저에게 학생들을 부탁한 그 장학재단은 매우 불쾌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ㅎㅎㅎ 공부도 했습니다. 과제도 내주고 토론도 했습니다.

학생지도비가 제법 나왔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 돈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별로 가르쳐주는 것도 없었고, 오히려 그런 최우수 학생들을 만나는 영광을 입었는데 돈까지 받으니 황송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습니다. 어떻게? 그 학생들과 제가 밥 먹고 노는 데 다 썼습니다. ㅋ

그 부작용이 최근에 드러났습니다. 세월이 흘러서 네 명 모두 유수 대학의 교수님이 되어 있습니다. 오랜만에 연락했더니 다행히 잊지 않았더군요. 사람이 잊히는 것이 가장 좋지 않은 일이라고 하는데, 기억을 해줘서 매우 고마웠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일을 회고하면서 공부한 기억은 별로 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나게 놀았던 기억만 떠오른다는 겁니다. ㅜ.ㅜ 저는 분명히 공부를 시켰습니다. 어려운 영문 논문 작성도 시켰거든요. 억울합니다. 억울해도 어떻게 하겠습니까. 모두 제가 저지른 일 때문에 생긴 업보입니다. ㅜ.ㅜ

[여행기] 뉴욕시, 코네티컷주 하트포트, 예일 대학교, 프린스턴 대학교


사진: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께서 작년에 직접 촬영하신 자유의 여신상 뒷모습입니다.

제가 미국 유학길에 오른 해는 1987년입니다.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 내려서 그 당시 만 한 살이던 아들의 목마름 내지는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 Milk를 시켰더니 맥주가 나왔던 에피소드가 발생한 해입니다. 아마도 제 영어 발음이 별로라서 Milk를 Beer로 들었던지, 아니면 근처의 Milwakee(밀워키 맥주가 있음)로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상처받은 영어 실력을 다시 테스트해보기 위해서 박사과정 학교가 있던 로체스터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옆 좌석에 앉은 백인에게, "Which one is correct, 로체스터 or 라체스트?"라고 물었는데, 그 백인 왈, "What's the difference?"라고 대답해서 다시 한번 자존심이 상했던 에피소드가 있었던 해입니다.

가을 학기가 끝나자 과감하게 뉴욕시 일원을 돌아보는 여행에 도전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의 눈길을 헤치고 학교 동아리 선배가 학생으로 계셨던 프린스턴을 목적지로 길을 떠났습니다. 그 여행에서 보았던 도시들이 뉴욕시, 코네티컷주 하트포트, 예일대학교가 있는 뉴헤이븐, 뉴저지주 프린스턴입니다. 저는 뉴욕주에 4년을 살았지만, 뉴욕시는 한 번밖에 가보지 못했습니다.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도시라는 인상이 너무 깊이 박혀 있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겨울에 뉴욕시를 방문하면 눈이 녹은 길들이 너무 지저분해 보입니다. 따라서 록펠러 빌딩 앞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트리도 그 지저분한 길들에 가려서 별로 빛을 발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광용 마차를 끄는 말들의 배설물들이 간간이 보이는 뉴욕시의 겨울 거리는 별로 유쾌한 기억이 되지 못했습니다. 자유의 여신상도 보지 못했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도 올라가 보지 못했답니다.

겨울에 동부를 여행하면 우중충한 도시 색과 함께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저는 아마도 그것이 싫었던 것 같습니다. 서울에 눈이 온 다음 날씨가 흐려 있는데, 눈이 녹을 즈음의 거리 풍경을 상상하시면 거의 맞습니다. 그런데 프린스턴 대학교 교정은 겨울임에도 그 아기자기한 멋이 두드러졌던 기억이 납니다. 학교가 작은 편도 아닌데도 특색있는 건물들이 잘 배치되어서 예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학교를 구경시켜주신 선배 내외의 친절도 한몫했을 것입니다.

코네티컷주 하트포트는 아내의 친구가 공부하고 있어서 그 하숙집에서 하룻밤 신세를 졌습니다. 전통 뉴잉글랜드 풍의 일반 가정집이었는데 침대도 고색 찬란하고 실내 온도도 적당히 낮았습니다.^^ 근처의 공원에서 떼를 지어서 날고 있던 갈매기들이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예일 대학교 건물은 대부분 고딕식 건축양식입니다. 어떻게 보면 프린스턴 대학교 건물과 비슷한 것 같기도 하지만 예일 고유의 특색이 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교는  그 경계가 외부와 구분되지만, 예일은 도시 속에 뒤섞여 있어서 더욱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피자집이 학교 건물 사이에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생각했습니다. 예일 대학교가 있는 도시인 뉴헤이븐은 정치학적으로 유명한 연구대상이 된 사례도 있습니다. 흑인지역과 백인지역이 나뉘어 있어서 정치학적으로 비교 대상이 된 경우입니다. 예일 대학교 분위기는 영국의 옥스포드와 비슷합니다.

미국에 온 지 반년 만에 운전도 잘하지 못하는 로체스터 촌놈이 뉴욕시 근처의 고속도로에 밀려 들어오는 차들을 보고 진땀을 흘렸던 기억이 납니다. 기억이 가물가물 하는데 그 여행에서 워싱턴DC도 구경했던 것 같습니다. 워싱턴 DC는 몇 번 갔기 때문에 따로 글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을 마치고 로체스터로 돌아왔을 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그다음 방학에 또 장거리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장거리 운전을 즐기게 되었습니다.

[음악] 뉴욕 필의 평양 공연

(드디어 남북 이산가족 상봉이 다시 이뤄지는군요.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서 이산가족들이 마음껏 서로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작년 2월 27일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오늘 ABC 저녁 뉴스에 뉴욕 필 평양 공연이 두 번이나 나왔습니다. 첫 번째는 약 5~6분에 걸쳐서 공연 이모저모를 소개했고, 맨 마지막 뉴스 끝나는 장면을 아리랑 연주로 처리했습니다. 가슴이 찡해지더군요. 외국에 살면 애국자가 된다는 평범한 말이 실감 났습니다. 뉴스 마지막에 에릭 클랩턴도 북한에 초대받았다고 소개하더군요.

뉴욕 필이야 워낙 유명하고 잘하는 오케스트라니 음악성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겠죠. 제가 인상 깊게 본 것은 북한 청중들의 감상 태도였습니다. 아리랑을 빼고는 거의 처음 듣는 곡이었을 텐데 조는 사람이 없더군요. 중간 박수가 나오지 않은 것은 아마도 이전에 주지시켰을 가능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긴 교향곡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중간에 박수가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제는 전혀 없었습니다. 원래 감상 에티켓에 충실했던 것이죠.

이번 기회로 이전에 미국과 중국이 핑퐁 외교로 가까워졌듯이 북한, 미국도 그렇게 되면 좋겠습니다.


오프닝


드보르작, 신세계로부터

2009년 8월 28일 금요일

[잡담] 제 목소리... ^^

2003년 샌프란시스코 지역 한미라디오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참여정부에 대한 이야기를 비롯한 이런저런 설을 푼 목소리입니다. ㅋ 파일이 커서 연결되려면 조금 기다리셔야 할 것입니다.

임시 사이트라서 내일은 못 들으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이 포스팅은 삭제하겠습니다.

http://tinyurl.com/ahn-radio

혹시 이런 대용량 파일을 올려놓고 아무 때나 들을 수 있는 사이트를 아시는 분 계신지요?

영화음악 하나,


David Lynch 감독의 Blue Velvet 중에서 'Love Letters' by Ketty Lester

[자유] 비빔밥과 종합정책연구

[설명] 첫 번째 글은 2003년 6월 11일에 작성한 메모입니다. 지금도 제가 원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우리정책협력연구원은 2003년 5월에 창립되었습니다. 사회갈등 극복을 위한 종합정책 씽크탱크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원장의 자질 부족으로 2005년 10월 이후 공식 활동이 거의 없는 셈입니다. 그때는 조그맣게 시작해서 조금씩 불려나가면 되겠다는 희망으로 시작했지만, 제가 그렸던 만큼 연구원이 활성화되지는 못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참여해주신 여러 학자분께 정말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창립총회를 할 때 연구원 이름을 두고 장시간 토론이 있었습니다. "협력"이라는 표현은 제가 주장해서 들어갔습니다. 사회가 복잡해지면 여러 전공분야가 힘을 합쳐서 종합정책연구를 하는 것이 좋다는 아이디어였습니다. "우리"라는 표현은 이사님 중 한 분이 참신하다는 이유로 추천해서 채택되었습니다. 몇 달 뒤에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어서 우리 연구원이 오해를 받기도 했습니다.^^ 정부나 어떤 정당과도 관련이 없는 순수 민간 연구원이었습니다.

두 번째 글은 2008년 2월 20일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린 글입니다. (사) 우리정책협력연구원이 연구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프로젝트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1. 비빔밥 (2003/06/11)

제가 원장으로 있는 우리정책협력연구원을 제 친구에게 설명해주자, 그 친구는 "어, 전형적인 비빔밥이네!"라고 간단하게 연구원의 성격을 규정해주었습니다. 우리 연구원은 종합정책연구원을 지향하고 있어서 매우 다양한 전공의 학자들이 이사/연구위원으로 참여하고 계십니다.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교육학, 언론정보학, 사회복지학, 법학, 경영학, 응용광학, 나노화학, 분자생물학, 전산학, 건축공학, 환경공학, 수리지질학, 통신정보학 등의 학자분들입니다.

그 친구는 비빔밥의 유래가 옛날 구걸하는 이들이 이곳저곳에서 음식을 얻어서 섞어 먹은 데서 유래했다고 익살스럽게 설명했습니다. 어느 선배 집에 초대받아서 갔더니, 비빔밥이 나오자 주인인 선배가 비빔밥을 준비한 아내에게 어떻게 비빔밥을 손님에게 대접할 수 있느냐면서 자리를 박차고 집을 뛰쳐나가더라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들려 주었습니다.

저는 비빔밥이 좋습니다. 그것이 거지들의 걸식에서 유래하였든, 손님에게 대접할만한 음식이 아니라는 고급스러운 인식이 있든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우리 학자들의 연구들도 이제는 눈높이를 낮추어서 한 편으로는 구체적인 정책방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서민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정책방안들입니다.

이 게시판도 비빔밥입니다. 정치, 사회, 문화 이야기가 뒤섞여 있는 비빔밥입니다. 개인적인 감회를 담은 수필도 있습니다. 정치와 사회개선에 대한 이야기는 자칫 딱딱해질 수 있으므로 오히려 비빔밥이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조금 산만해 보이는 단점은 있겠지만 비벼서 드셔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점심에 비빔밥을 더 자주 먹어야 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

2. 서울대 교수님들의 종합정책연구 네트워크 (2008/02/20)

새 정부의 대운하 추진과 관련하여 서울대 교수님들이 결연히 일어나셔서 반대의 뜻을 밝히시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지성이 아직 살아 있다는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우리 서울대 교수님들이 4.19 혁명 때 거리에 나서서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부르짖으셨던 전통을 이으시는 것 같아서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최근에는 대통령 당선자가 대운하는 지구온난화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는 식으로, 대운하 만병통치약 설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도대체 누가 연구를 그렇게 단기간에 완벽하게 해서 당선자가 그런 신념을 갖게 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원래 대운하를 종교처럼 떠받들던 분이라서 그 믿음을 쉽게 가지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선자가 그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입니다. 인수위의 추 모씨도 상당히 신기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TV 토론회에서 대운하에 대하여 청산유수로 설명하는 추 씨를 보고, "야! 저 양반은 대운하로 학위를 했나 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추 모 이렇게 구글링을 해봤죠. 이력을 보고 그 양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다 사진이 들어 있는 웹 페이지를 보고서야, 뜨악했던 것입니다. 대운하 전문가가 아니고 목사님, 목사님 우리 목사님이셨습니다. 추 모씨가 우리 교수님들을 인신공격하여 혼쭐이 난 것은 모두 알고 계실 것입니다.

대운하 추진 측에서는 처음에 "대운하, 돈 된다! 물류 수송 해결된다!" 이렇게 주장하다, "아니다, 돈 안 된다! 요즘같이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에 운하가 어떻게 물류 수송을 해결하느냐? 식수 문제도 있다!" 이렇게 반박당하니까, "민자 유치하여 강바닥의 모래 팔고, 대운하 주변을 관광개발하면 돈 된다! 식수는 간접취수하면 된다!"라고 강변했고, 이에 대해서 "연구조사 해 보니, 그렇게 해도 돈은 안된다! 대운하 주변을 개발하면 대운하 사업자에게 간접적으로 수익을 보전해주는 것 아니냐? 땅값 올라가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 간접취수는 말도 안된다, 당선자가 서울시장 할 때 한강변에 간접취수 조사했던 것도 실효성이 없어서 나가리되지 않았느냐? 식수 문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환경 문제도 매우 우려스럽다! 배가 산으로 가는 꼬라지 상상해보면 기가 막히지 않느냐!"라고 충고해주니, 이번에는 "환경은 무슨 소리냐, CO2 감소시켜서 지구온난화 문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데!"라고 대답하는 형국입니다.

저 같은 정치학도의 시각에서 보면, "참말로 의제 설정(agenda setting)도 다양하게 하네. 그런다고 그런 잘못된 정치적 조작(political manipulation, 원래 이 용어는 가치중립적임. 정치공작과는 다름)이 먹혀들어가나? 지금이 무슨 경부고속도로 놓던 그 시대인가?"라고 쓴웃음을 지을 수도 있겠습니다. (잘못된 정치적 조작의 예로 황우석 사례를 들 수 있겠습니다. 수염 기른 채 입원해 있는 것을 보고, 참 저급한 의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 되면 그 사태에 대한 제 생각도 글로 옮겨 보겠습니다. 미국 역사상 대표적인 쓸만한 정치적 조작으로 링컨-더글러스의 프리포트 논쟁을 많이 언급합니다. 링컨이 노예제 이슈를 절묘하게 이용하여 상대방 진영을 교란시켜 나중에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사례입니다.)

대운하 추진 측이 주장하듯이 대운하가 그런 만병통치약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왜 민자로 대운하를 건설합니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공적 자금으로 해야지요. 국토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세종대왕 시대의 한글 창제에 버금가는 훌륭한 사업인데 민자 운운하는 아쉬운 소리를 합니까? (이렇게 얘기하면 추진 측에서는 "걱정하지 마라, 이미 공적 자금 쓸 작전을 짜고 있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씨익 웃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선자님, 떳떳하면 국민의 동의를 받아서 국민 세금 쓰세요. 모자라면 그 좋아하시는 국내외 자원봉사자도 모집하시고, 국민 성금도 걷고 그러세요. 들어간 공적 비용은 업그레이드된 국토를 통해서 자손만대 단물을 뽑아내 몇천 배의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민자? 이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민자"라는 공짜 점심 없습니다. 공짜도 아닌 공짜 먹으려다 금수강산이라는 도자기 밥그릇 깨질 것이고, 그다음부터는 끼니 때울 때 밥그릇 없이 먹든지, 플라스틱 새 밥그릇이라도 만들기 위해서 또 돈 써야 합니다.

CO2 경우만 보더라도 대운하를 통해서 물류 수송에 변화가 온다면, 얼마나 육로 수송량이 선박 수송으로 전환될 것인지 예측해야 하고, 그때 육로 수송에서 감소하는 CO2량과 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CO2량의 정확한 비교, 경부 축 육로 물류 수송의 장기 현황 파악, 대운하에 의한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의 상관관계, 기타 등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지 대운하의 지구온난화 완화 효과를 보다 완전하게, 또 실용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덜렁 자동차 물류 수송이 대운하 쪽으로 일부 옮겨 가니까 지구온난화 감소에 도움을 준다는 아메바 식 계산법을 제시하면, "어찌하라고요?"라고 즉답을 주고 싶은 것은 저 혼자뿐일까요?

제가 조금 흥분해서 들어가는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대운하 문제를 보면 대형 정책 연구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 교수님들이 이공계, 인문사회계를 모두 망라하여 일종의 정책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최근에 남대문이 불타버렸습니다. 일종의 대형 재난이지요. 남대문을 보면 우리의 대형 재난 관리 시스템의 현주소를 대충 알 수 있습니다. 남대문을 개방했으면 관리도 잘하고, 재난 대비도 잘했어야지요 // 불이 났으면 잘 껐어야지요, 담당 소방서에 국보 1호 구조도가 없었다니 이게 무슨 일인지요, 우리 소방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요, 남대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사다리 길이가 짧았다고요? 천정이 너무 두꺼웠다고요? // 불이 꺼졌으면 뒤 처리를 잘해야지요, 국보 1호 잔해가 왜 쓰레기장으로 갑니까?

저는 소방방재청이 행자부에 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FEMA(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는 국토안전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미국의 부서 직제를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행정부에는 부처 간의 암묵적인 서열화가 있고, 실제로 부처 견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형 재난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비상시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일을 당하면 삐거덕거릴 가능성이 큽니다. 소방방재청이 무슨 힘이 있나요. 최근의 삼성중공업/허베이호 기름유출 사건을 봐도 그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수위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하는 무리한 아이디어를 낼 것이 아니라, 국가재난관리위원회를 신설하여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으로 하고 그 밑에 소방방재청을 두는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대운하나 대형 재난관리와 같은 종합정책 연구는 많은 학자가 다양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상호협력하여 분석해야 합니다. 이공계 학자들과 의견교환을 해보면, 그분들의 전문지식이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독극성 화학물질을 수송하던 차량이 전복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소방방재청은 그 뒷처리에 대한 매뉴얼을 이미 갖고 있어야 합니다. 화공학자, 생태학자, 기초의학자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그 매뉴얼을 만들 수 없습니다. KTX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입니다. 사고가 나지 말아야 되겠지만, 인간의 일이란 알 수 없으므로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다양한 시나리오 하에서 KTX 재난에 대한 매뉴얼을 준비해야 하므로, 이공계 학자들의 도움은 필수적입니다.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저는 대운하와 관련하여 구성된 서울대 교수님들의 연구 네트워크가 대운하뿐만 아니라 다른 종합정책연구도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정부에서도 대형 종합정책 연구에 과감하게 투자해서 out-sourcing의 묘미를 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연구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의 학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우리 경제력이 세계 11등 정도 된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렇게 할 여력도 있고, 또한 그런 시기도 되었습니다. 그래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날림 식으로, 개발 만능 식으로 대형정책을 추진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봅니다. 수출 드라이브 식으로 큰 정책들을 추진하면 그 부작용은 오히려 우리들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새 정부가 서울대 대운하 교수 네트워크에 충분한 연구비를 지급하여 제대로 된 대운하 사업 검토와 대형 재난관리 시스템 검토가 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습니다. 가능성은 0에 가깝겠습니다. 대운하 추진과 관련해서는 이미 그쪽에 자원봉사에 가까운 검토를 해주겠다고 줄 선 사람들이 백 수십 명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중요한, 충분한 연구비가 필요한 사안을 거의 무료로 검토해주겠다는 것을 보면, 역사적 사명감이 있거나, 아니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경우라고 보면 되겠죠. 서울대 교수님들에게는 계속 깨어 계셔도 떡이 생기지 않을 테니 당연히 역사적 사명감으로 해석해야겠죠. 서울대 교수님들이 좋은 연구 네트워크를 계속 살리셔서 대운하 검토를 비롯하여 훌륭한 종합정책연구를 더 많이 하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수필] 80학번 글을 읽으면서 80학번을 생각함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28, 아래 글을 작성하고 나서 이 교수님 게시판에 올릴지 말지 고민을 제법 했습니다. 실제로 한번 올렸다 내리기도 했습니다. 이 교수님 게시판 성격에 맞지 않은 것 같아서 걱정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도 꼭 하고 싶은 말이라서 용기를 내서 결국 올렸고, 제자*오님께서 비슷한 소회를 밝히는 댓글을 주셨습니다. 지금은 그 댓글을 볼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우리 사회가 너무 좌로 가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너무 우로 가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생각합니다. 글에 나오는 동기 동창 창균이에게 그때 이메일로 아래 글을 보내줬습니다. 답은 받지 못했습니다.)

80학번들이 대학교 1학년 때인 1980년에 광주 민주화 항쟁이 있었습니다. 5.17 군부 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저는 운 좋게도 누나 집에서 외박하고 있어서 기숙사에 진입한 군인들의 곤봉 맛은 못 보았습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들은 소문 중에는 경제학과 모 교수님께서 기숙사 사감이셨는데, 학생으로 오인 받아서 황당한 경험을 하셨다는 것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동안이시지만 젊은 시절에 그 교수님께서 청바지를 입으시면 영락없는 조교 형이셨죠. ^^ 아마 군인들이 "당신이 교수면, 나는 육군 참모총장이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다음 날 기숙사에 전화해서 사물을 챙겨 나올 수 있느냐고 문의했더니, 들어올 수는 있는데 안 들어 오는 것이 몸에 이로울 것이라는 충고를 듣고 곧바로 고향으로 갔던 기억이 납니다.

80 학번들에게 80년대 초반은 민주화와 관련된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공부를 해야 하느냐, 밖으로 나가서 데모해야 하느냐로 서로 다툰 적도 많았지요. 그런 와중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은 공부했고, 언더 운동을 하는 친구들은 나름대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습니다. 물론 둘 다 수행한 친구들도, 둘 다 하지 않은 친구들도 있었겠지요.

경제학과 친구 중에 언뜻 생각나는 공부를 잘했던 이들로 서울대의 R 교수, K 교수, 서강대의 S 교수, W 교수, 한양대의 K 교수 등이 생각나는군요. 지금은 우리 경제학계의 중진 이상이 되어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고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학자의 길로 나아간 다른 전공 동기들은 서울대만 보더라도 외교학과의 S 교수, 정치학과의 R 교수, 사회학과의 L 교수, J 교수, S 교수 등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많은 80학번들이 학자의 길을 걷고 있네요. 학자들을 학번으로 분류하는 것이 별 의미는 없습니다. 모두 보고 싶은 친구들입니다.

우종원이라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서울대 기숙사인 관악사에서 처음 만난 그 친구는 해맑은 미소와 자그마한 체구가 인상 깊었습니다. 한참 뒤에 그 친구의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경부선 철로변에서 유명을 달리했다는 슬픈 소식이었습니다. 종원이의 죽음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 타살로 판명되었습니다.

전두환 정권 시절에 저는 간헐적으로 시국 데모에 참여는 했습니다만, 마음이 약해서 언더 학생활동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 당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친구들에게는 항상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이 자신들을 희생하면서 우리나라 민주화에 이바지한 바가 상당하고, 그 당시에 제가 더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아래의 창균이가 마음 놓고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마 그런 친구들의 희생에 바탕을 두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종원이와 창균이는 동기 동창생입니다. 창균이 글을 보면서 종원이가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종원이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마음 속으로 되뇌면서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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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균 칼럼] 08학번에 들려주는 80학번의 추억

[단상] 사회봉사를 생각하면서

(제가 이전 글들을 계속 퍼오는 것을 양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블로그 초기라서 정리 기간으로 여기고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정리가 끝나면 하루에 새 글 하나 정도만 올릴 계획입니다. 아래 글은 2003년 6월 17일 제 이전 홈피에 올렸던 제 소견과 누리꾼 의견입니다. 소중한 의견을 주신 누리꾼 doni님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며칠 전에 어느 식당에서 어머니와 같이 식사를 하는 한 학생에게 다섯 명을 모으면 일주일에 45분씩 무료로 영어를 가르쳐줄 테니 연락하라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주위 분들에게 여쭤보니 연락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서로 믿지 못하니, 제가 좋은 의도로 모르는 사람에게 사회봉사를 해 드리겠다고 해도 잘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추론입니다. 제 처지에서는 토요일 오후 늦은 시간과 일요일에는 여유가 있기 때문에 사회봉사를 하고 제가 스스로 행복해지려고 하는 의도였습니다.

가까운 곳에서부터 제 행복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오전에 형수님께 전화를 드려서 일주일에 한 시간씩 조카의 영어공부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조카의 영어 실력도 늘고 저도 조카를 도와줬다는 행복감에 뿌듯해질 것을 생각하니 벌써 토요일을 기다리게 됩니다. 제가 잘 도와주면 먼 훗날 조카와 형님 내외분께서 고맙다는 감사 카드 정도는 보내주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사회에 진정한 자발적인 사회봉사가 도입되기를 기대합니다. 자신이 갖춘 능력 한도 내에서 서로 돕는 사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덧붙임) 영어를 가르치면서 제 영어 실력이 향상은 되지 않더라도 예전 수준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영어를 잘 하는 편은 아니지만 조카를 도와줄 능력은 있는 것 같습니다. ^^

누리꾼 doni님 의견 (2003/06/19)

모르는 타인이 접근해서 선의의 제안을 하는 경우에 이를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선 절대 안된다고 교육을 하는 세대이기 때문입니다. 제 아이가 유치원에서부터 배운 교육이 " 모르는 아줌마나 아저씨가 와서 맛있는 것을 사주려고 하면 절대 따라가선 안돼요." 입니다. 이미 우리는 어릴 적부터 이런 교육을 체계적으로 교육받는 셈이죠.

저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분에게 비슷한 제의를 한 적이 있는데 아무런 연락이 안오길래 우연히 주차장에서 마주친 차에 다시 여쭈어 봤더니 그냥 웃으시면서 넘기시더군요. 좋게 생각했습니다. 남에게 폐 안끼치려고 하신다고 말입니다. ^^

사회봉사에 대해선 생각해본 것도 많고 느끼는 것도 많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곳에서도 대기업의 사회적역할을 강조하면서 사회봉사가 인사고과평가에 들어가 있을 정도입니다. --> 이게 옳을까요? 그렇다고 완전히 틀린 걸까요? For 와 against 의 생각이 반반입니다.

아주 자그마한 곳에서 그리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안 선생님이 시작했듯이 저도 시작하고 여러 다른 분들도 자기 주변부터 시작하다보면 개인 불신의 딱딱해져 있는 벽도 언젠가는 무너질지도 모른다고 즐거운 상상을 해봅니다.

그럼 언제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이 되시길.

2009년 8월 27일 목요일

[자유] 한총련 이야기

사진: 한총련 출범식, <한겨레 신문>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1997년 7월 11일, 인터넷 동호회에 올린 글입니다. 미시간주립대에서 서울대 국제지역원으로 직장을 옮긴 초기에 벌어졌던 에피소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997년이면 6.10 직선제 쟁취 민주화 항쟁 10주년이었습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집권 말기였죠.)

지난 어느 5월, 별로 따뜻하지 않은 새벽에 차를 몰고 정문 쪽에서 순환도로를 따라 테니스장 쪽으로 올라가는데, 일군의 학생들이 질서정연하게 대오를 맞추어 같은 방향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앞에는 큰 깃발을 든 기수가 있었으며, 선도하는 듯한 학생도 있었다. 그 일행을 지나치면서 "아, 저 학생들이 바로 한총련 학생들이구나!"라는 생각에 미치자 차를 다시 돌릴 수밖에 없었다. 봄날이지만 기온은 쌀쌀했고, 그 일행이 왠지 힘이 없어 보였기 때문에 아침밥은 먹었는지 한번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나: "학생들 지금 어디로 가는가요? 저는 여기 근무하고 있어요."
학생: "기숙사 쪽으로 갑니다."

나: "학생들, 아침식사는 했나요?"
학생: "나중에 도시락으로 식사하기로 되어 있어요."

"밥은 굶지 말고 하세요..."라는 인사말을 던지고 내 방에 돌아와서 앉아 있으니 계속 그 학생들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커피를 한 포트 타고, 일회용 컵을 준비해서 그 학생들이 우리 건물 앞을 지나가기를 기다렸는데, 지나갈 시간이 되어도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궁금해서 다시 차를 타고 기숙사 쪽으로 가니 그 일행들이 후문 방향으로 내려가는 것이 보이지 않는가? 아마도 경영대 쪽으로 해서 지름길로 지나갔었던 것 같다. 나는 다시 차를 세우고 이번에는 선도하는 학생과 정식으로 인사를 하였다. 내 명함을 주고 혹시 지도부 사람 중 시간이 있는 학생은 연락해서 같이 이야기하면 좋겠다는 나의 뜻을 전달해달라고 부탁하였다.

그 학생 왈, "모두 매우 바빠서요..."
"몹시 바쁜 사람은 빼고, 조금 덜 바쁜 사람이면 좋겠어요."라고 나는 말하였다.

아침식사를 간단한 우동으로 때우려고 정문 가게로 갔는데, 아쉽게도 아직 열리지 않고 있었다. 일전에 그 아저씨와 나눈 대화가 인상 깊어서 가락국수나 먹으면서 다시 이야기나 나누려고 갔었는데(그 아저씨는 서울대 학생들에 대한 인상을 나름대로 강하게 나에게 표현한 적이 있었고, 그때 "과도한 일반화"를 나는 생각했었다.), 우동은 먹지 못했고 "충북총련", "충남총련"이라는 큰 깃발을 앞세운 다른 학생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호기심에 학생들이 외치는 구호를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가장 많이 외치는 구호가 "김영삼 정권 타도하자!"였었다. 장난기가 생긴 나는 선창하는 학생에게, "이미 타도되기로 되어 있는 정권을 뭐 하려고 또 타도하려고 하느냐?"고 물었다.

선창한 학생: "적당히 외칠 구호가 모자라서요..."

나는 상당히 쇼크를 받았지만, 그래도 지도부 중 한 명과 대화를 하고 싶어서 다시 명함을 주고 똑같은 부탁을 하였다. 다른 한 그룹은 군대식 구호를 연습하고 있었는데, 짧은 나의 군대생활이 연상되는 그런 장면이었다. 삼세 번이라는 생각에 또 나의 명함을 주고 그 그룹의 선도학생에게도 같은 부탁을 하였다.

6월 25일 내가 미국으로 떠날 때까지 한총련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 내 방에는 24시간 대기 중인 응답기도 놓여 있는데, 한총련이나 관련 학생이 전화메모를 남긴 적도 없었다.

하나의 가능성: 나의 청이 지도부에 전달되었지만, 지도부가 너무 바빠서 무시했다.
---> 지도부가 성의가 없는 것은 아닌지?
다른 가능성: 그 세 명의 학생들이 모두 내 명함을 분실하였다.
---> 한총련 구성원들의 자질을 의심하면 내가 너무 한 것인지?
또 다른 가능성: 그 세 명의 학생들 모두 나의 뜻을 전달하지 않았다.
---> 나를 귀찮게 생각한 것인지? 전달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제는 내가 지도부 사람들을 찾아 나서야 하나...? 그 정도로 한총련에 관심이 있는 편은 아닌데..... 이제는 연락이 와도 만나주지 않아야 하나...? 그러면 속 좁은 사람의 전형이 될 테니 귀국해서 연락이 오면 만나기는 만나야 될 것 같은데... 그래서 주체사상에 대해서 한 번 토론해 보고 싶은데... 절대적으로 옳고 좋은 사상이
있을 수 있는지, 인간을 믿을 수 있는지 없는지, 자유민주주의와 집체주의는 어떻게 다른지 등등에 대해서 의견교환을 한번 하고 싶은데... 공개된 장소가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후기: 이 글을 올리고 나서 대학원생 한 명과 제법 심각한 토론을 했습니다. 그 대학원생의 주장은 한총련 학생들이 연락하지 않은 것은 결국 우리나라의 교수-학생 관계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대학원생이 수강했던 강의에서 담당 교수가 한총련 학생이 있으면 손들어 보라고 했지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은 사례를 제시했습니다. 한총련 학생이 있었는데도 손을 들지 않았다는 것이죠. 교수와 이야기하는 것은 벽과 대화하는 것과 같다고 인식하는 것을 토론 중에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제 경험은 그 교수 사례와는 다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시대가 바뀌고 있으므로 학생운동도 방향을 잘 탐색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토론 마지막 글에서 다음과 같은 의견을 냈습니다.

"저는 학생운동도 '상당히 머리를 잘 써야' 일반 시민으로부터 호응을 받을 수 있는 그런 시대에 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문민독재'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5공 때의 독재'와는 분명히 구분되는 면이 많습니다. 완전히 구분된다는 뜻이 아니고요. 또, 학생운동의 근본이념이 '자유민주주의'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편입니다."

그 당시 일부 학생들이 북한의 주체사상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혹시 우리 도덕/윤리 교육이 일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공동체"라는 일종의 절대성을 강조하는 것이 주체사상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도덕/윤리 교육이 공동체 개념을 토대로 이뤄졌습니다. 뫼비우스의 띠라고나 할까요...

[음악] 베바와 노칸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9/28)

영화 아마데우스를 보면 배우들의 연기와 음악이 매우 잘 싱크로 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음악 영화나 드라마는 그 점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죠. 일본에서 최근에 만든 음악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도 싱크로가 대체로 잘 되었더군요. 스포일러로 하나만 말씀드리자면 지휘 싱크로는 역시 무척 어려운 것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노칸의 주선율인 베토벤 교향곡 7번을 드라마 장면으로 한번 보시죠. 그 아래는 카라얀이 같은 교향곡을 지휘한 것입니다.


Beethoven Symphony no. 7 - Nodame Cantabile - S-Oke
노다메 칸타빌레, 베토벤 교향곡 7번


Karajan - Beethoven Symphony No. 7

엄청난 차이가 당연히 눈에 확 들어오죠? 배우가 카라얀같이 지휘할 수 있다면야 대사건이겠죠. 그런데 조금만 신경을 더 썼더라면 화면에서 보인 것보다는 더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휘는 연주자들보다 먼저 움직입니다. 그래서 지휘죠.^^ 카라얀 지휘를 보시면 쾅할 때, 이미 위에서 아래로 지휘봉이 움직인 것을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노칸의 지휘를 보시면 음악과 거의 동시 혹은 아주 약간 늦게 지휘봉이 움직입니다. 이것은 지휘자가 지휘를 한 것이 아니고, 음악에 지휘를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연습을 했더라면 위 화면보다는 덜 어색했을 것 같습니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 나오는 강마에의 지휘도 비슷한 양상을 보여주더군요. 배우로서 몇 달 연습해서 그 정도 지휘가 되면 상당히 괜찮은 것이지만 노칸과 비슷한 아쉬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이므로 그 정도는 시청자로서 감내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베바에서 싱크로에 가장 고생하는 연기자는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여주인공인 것 같더군요.^^ 아래 동영상은 첼로 독주 장면인데 이 연주의 싱크로는 제법 잘 되었습니다.


Liber Tango - Astor Piazzolla, 베토벤 바이러스 - 탱고

베바는 쟝르 드라마로서 참신한 시도를 한다는 점에서 저는 점수를 많이 주고 싶습니다. 첫 술에 배부르겠습니까. 계속해서 시도하면 더 좋은 작품들이 나오겠죠.

p.s. 사소한 스포일러성 태클을 말씀드리자면, 명색이 악기 연주자들인데 연주 중간에 혼자서 혹은 가족과 함께 연주회장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제 눈에는 많이 거슬리더군요. 뭐, 드라마이니까요. ㅎ

[단상] 빨간 장미, 수요일, 위안부 할머니

아래에 수요일의 빨간 장미 이야기가 나와서 유튜브에 찾아보니 다음과 같은 동영상이 있네요. 노래는 같은데 내용은 우울하네요. ㅜ.ㅜ


EBS 지식채널 e (Knowledge Channel e) 032 "수요일엔 빨간 장미를" 2005.12.5

2009년 8월 26일 수요일

[자유] 현 정치판에서 "공룡" 정당 쪼개기 전략이란? (하)

저는 한나라당은 쪼개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한나라당은 극우부터 중도까지 뒤섞여 있는 오락가락 정당입니다. 비빔밥 정도면 괜찮겠죠. 뒤섞인 정도가 너무 심해서, 잘 차려진 비빔밥으로 평가하기는 무리입니다. 제대로 된 보수정당으로 재탄생하려면 극우 색채를 빼내는 쪼개기가 필요하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따라서 이 쪼개기 시리즈는 한나라당을 위한 고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한나라당이 자유민주주의를 충실히 떠받치는 공당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정치에 바람직한 자유민주주의 정당 체제를 향하여 나아가는 한 축으로서 건설적인 역할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가 뒤섞인 정당은 쪼개져야 합니다. 일각에서는 한나라당이 아예 사라져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런 강한 주장도 자칫 잘못하면 권위주의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강변보다는 한나라당이 보수 정당으로 제 기능을 건설적으로 수행해서 자유민주주의 성숙에 일조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의제 설정을 하는 것이 공룡 정당 쪼개기의 마지막 방안이며, 제 복안입니다. 이전 글 "왜 보수와 진보로 싸우는가? (http://ahnabc.blogspot.com/2009/08/blog-post_4381.html)"에서 제 생각을 이미 밝힌 셈입니다. 이념 논쟁으로 보수 대 진보로 싸우면, 소위 보수라는 공룡의 결속이 더 다져지는 효과도 발생합니다. 그렇다면 그 속에서 권위주의를 빼내기 어렵죠.

민주 대 반민주라는 의제 설정도 가능합니다. 그런데 민주주의 자체에 궁극적인 정답이 없다는 중요한 사실을 잘 생각해봐야 합니다. 여러 번 인용했습니다만, 애로우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가 던지는 화두를 곰곰이 따져보면 소위 민주 진영에서 반민주로 지칭하는 상대 진영도 똑같은 주장을 소위 민주 진영을 향해서 할 수 있겠습니다. 더구나 절차적 민주주의는 제법 달성한 현 상황에서는 특정 진영을 반민주로 강하게 압박하기 어렵습니다. 이런 연유에서 자유민주주의 혹은 자유주의 대 권위주의 의제 설정이 오히려 빛을 낼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기 위해서 머리를 열심히 돌려서 전략을 잘 짜고, 비슷한 뜻이 있는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에 태클을 걸 분은 별로 없을 것 같습니다. 이전 글 시리즈에서 약자는 뭉치자!라고 주장한 명확한 명분이 있습니다.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제가 관심이 있는 것은 약자는 자유민주주의자, 강자는 권위주의자인 사례라서 그렇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자유민주주의를 주창하므로, 권위주의자에 맞서 투쟁하여 이기자는 주장은 당연히 충분한 명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보수를 쳐부수자!라고 주장하면, 용어의 혼선이 생길 수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보수는 공공의 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제대로 된 보수는 자유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합니다. 자유민주주의 기본에 충실한 사회구조를 지키는 역할을 보수가 할 수 있죠.

그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보는 좌빨, 친북 좌파, 깔아뭉개자!라고 주장하면, 폭언이 될 수 있죠. 좋게 봐주면, 진보 쪽에서는 보수 진영의 많은 인사를 권위주의자로 간주해서 정치적 수사로 보수를 몰아부치고, 보수 쪽에서는 진보 진영의 많은 인사가 친북 좌파로 보여서 정치적으로 험하게 대했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싸움의 중심을 잡고 싶습니다. 그 중심은 자유민주주의입니다. 보수든 진보든 권위주의자가 자유민주주의 가면을 쓰고 있으면 벗기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음... 양쪽에서 저를 회색분자로 볼 수도 있겠군요. ^^ 괜찮습니다. 칼 슈미트가 "정치적"인 것을 정의했듯이 현상의 적과 친구를 확실히 구분하지 않아도 제 정체성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좋고 싫음은 있습니다. 저는 권위주의자를 싫어하고 자유민주주의자는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권위주의자를 "악"으로 여기지는 않습니다. 그들도 권위주의를 버리고 자유민주주의자가 되면 친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선이 잘못되었습니다. 전선은 자유민주주의 대 권위주의가 되어야 합니다. 이 "전쟁"부터 자유민주주의가 이겨야, 더 건설적인 정당 및 정책 경쟁의 길이 열린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와중에 자유민주주의 내부 경쟁을 멈추라는 주장은 아닙니다. 우선순위를 권위주의 척결에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유선진당도, 한나라당도, 민주당도, 창조한국당도, 진보신당도, 민주노동당도, 그런 권위주의 분위기나 정치인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자체 내 청소도 하고, 상대방과 싸울 때는 그 권위주의를 우선 타겟으로 하는 것이 우리 정치발전을 위한 길입니다. 우리 시민과 정치인이 발상의 전환을 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공룡 정당이 권위주의를 쪼개서 버리는 결과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음악] 장미 한 송이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8/23)

2004년 여름 베이징에 갔었습니다. 중국에 빠져서 현지에서 중국을 연구하고 있던 제자의 도움을 받아서 베이징의 이곳저곳을 구경했는데, 어느 지하철역 앞 광장을 나오니 사진의 대형 광고 입간판이 보이더군요.

"우와, 간판 크다. 그런데 저 모델은 한국 사람 같네."
"선생님, 그 유명한 전지현을 모르십니까?"
"전지현???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나중에 알고 보니 유명한 배우 겸 모델이더군요. "엽기적인 그녀"라는 영화를 볼 기회도 생겼습니다. 재미있는 장면들이 많이 있어서 즐겁게 보았습니다. 특히 중화요리 배달원을 가장하고 그녀의 학교에 침투하여 장미 한 송이를 전달하는 장면이 인상 깊더군요. 한번 보시죠.


피아노 연주 장면과 장미 배달

그녀가 연주한 곡은 Pachelbel의 Canon 변주곡입니다. 원곡은 바이올린과 베이스를 위한 음악이죠.


'Canon in D' Music by Johan Pachelbel (1653-1706), The Orchestra da Camera di Verona, "Verona & Lake Garda" Azzurra Music

장미 한 송이 전달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저도 장미 한 송이와 관련된 추억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음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에 나오는 "I Believe"입니다. 발라드풍 노래가 감미롭습니다.


I Believe

그 영화가 인기몰이를 해서 일본에서 리메이크를 하고, 인도에서는 표절도 하고, 급기야는 미국에서도 리메이크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네요. 영화 한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미국판 엽기 그녀는 오리지널 영화의 감칠 맛은 모자란 것 같습니다.


My Sassy Girl Trailer

2009년 8월 25일 화요일

[자유] "좌파"라는 말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에 그 유지를 받들어서 친노 진영은 진보 연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진보도 연구하면 좋죠. 그렇지만, 진보라고 하면 저는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먼저 머리에 떠오릅니다. 또한, 참여정부의 정치적 지향은 중도였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진보 연구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 기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은 2007년 12월 27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최근 어떤 글에서 현재 우리 정치에서 “좌파”라는 용어는 폭압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을 읽은 적이 있는데 공감이 간다.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역임했던 경북대 이정우 교수는 시사인에 기고한 글에서 좌파를 이타적인 것으로, 우파를 이기적인 것으로 대별시켰는데, 이것은 아마도 좌파는 사회적 평등을 보다 우선시하고 우파는 자본주의 질서에 입각한 개인 이익을 상대적으로 중시하는 점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2005년 어느 더운 여름날, 열린정책연구소에서 집담회를 한다고 참석을 요청해서 갔다. 열린우리당의 정체성에 관한 비공식 회의였다. 창당된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에 당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다는 자체가 별로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의 정체성은 당을 만들기 전에 이미 결정되었어야 한다는 독백을 머릿속에서 뇌까리면서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는데, 더위를 싹 가시게 하는, 나를 깜짝 놀라게 한 용어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것이 바로 “좌파”라는 말이다.

그 당시 열린우리당은 재보선 등에서 연전연패하면서 도대체 열린우리당의 주요 고객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것을 정체성 연구라는 형태로 당 정책연구소에 맡긴 것이었다. 그 참석자는 열린우리당이 좌파 정당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한 마디로 그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좌파 정당이라면 참여정부가 좌파 정부가 되어야 하는데 지구 상에 그런 좌파 정부는 없다. 좌우의 이분법으로 묻는다면 오른쪽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고, 좌중우의 삼분법을 원용하면 중도라고 구분할 수는 있어도 좌파로 평가할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선거에 이기기 위한 당 정체성 모색이라면 왼쪽으로 움직일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른쪽으로 약간 움직여야 되는 시점이었다. 왜냐하면, 열린우리당의 오른쪽에 한나라당이 자리 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열린우리당이 왼쪽으로 제법 많이 움직이면, 한나라당이 왼쪽으로 조금만 움직여도 중도 유권자층을 더 많이 흡수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따라서 현상적으로나 선거전략 측면에서나 열린우리당은 좌파도 아니고 좌파로 가서도 안된다는 것이 나의 입장이었다. 나는 그 회의에서 고민할 것 없다고 단정적으로 얘기했다. 열린우리당은 중도정당이라고. 그렇게 얘기하면 된다고.

이정우 교수는 참여정부를 중도우파 정도로 평가했다. 중도우파를 좌파로 자리매김했으니 한나라당은 극우라고 실토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참여정부가 주요 언론의 조작에 의해서, 그리고 한나라당의 공격에 의해서 좌파로 몰리는 폭압을 당했으니 이 교수가 울분을 터뜨릴 만도 하다.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구조적 요인을 악용한 사례로서 주요 언론/한나라당의 “좌파” 공세는 역사상에 남을 것이다.

[음악] 웃어 봅시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8/04)

날씨도 덥고, 일기예보는 맞지 않고, 기타 등등으로 짜증이 날 수 있는 한여름입니다. 이럴 때 한바탕 웃고 나면 기분전환이 되죠. 아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Victor Borge(보르게)라는 덴마크계 미국인 피아니스트 겸 humorist(entertainer)가 있었습니다. 91세의 나이로 2000년에 타계했는데, 음악과 특유의 해학을 결합해서 큰 웃음을 선사했던 분이죠. 저는 보르게의 공연을 볼 때마다 얼마나 웃는지 모릅니다. 여러분도 보시고 한여름의 무력함을 조금이라도 날려보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보시고 마음에 드시면 유튜브에서 비슷한 익살을 더 보실 수 있습니다.

음악에서 소리로 구두점 찍기

Victor Borge & Dean Martin - Musical Phonetic Punctuation

리스트, 헝가리언 랩소디 2번

Victor Borge - Hungarian Rhapsody #2
A twist on the Hungarian Rhapsody. Victor Borge and his friend Zhahan Azruni plays together.

스메타나, 오페라 "팔려간 신부" 중 "광대들의 춤"

Victor Borge, Dance Of The Comedians

[단상] 어느 중대장의 촌지 돌려주기

(2003/08/17 오마이뉴스에서 펐다고 제 메모에 적혀 있습니다.)

[미담] 촌지 되돌려주고 우동값 하시라고 1만원 더 넣어

고 대위가 한 병장 부친에게 쓴 편지

존경하는 000 아버님께

멀리 이곳 양구땅을 방문해 주신 00이 부모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봄, 여름, 가을이 짧고 겨울이 긴 강원도 오지 양구로 귀한 아드님을 떠나보내시고 그간 얼마나 노심초사 하셨습니까?

저는 우리 000군을 만난 것을 인생의 큰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의 많은 활약상과 앞으로의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000를 볼 때마다 전역 후 크게 대성할 것을 확신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제 힘든 하루 하루의 군생활들이 23개월로 접어드는 병장 000은 새로운 사회의 구성원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는 000에게 항상 격려의 말과 용기를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백두산 부대 정비대대에서 근무하는 중대원들의 모든 부모님은 제게 귀한 자녀들을 보내주셨고 때로는 형으로서, 때로는 중대장으로서, 때로는 부(아버지)로서 잘 관리해 주기를 바라시고 계신다는 것을 저 육군 대위 고병오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부모님들의 마음을 알기에 저는 아침 출근과 동시에 모든 중대원 개개인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하느님! 오늘도 우리 ○○아들 아무 사고 없이 잘 지켜주시고, 몸 상하지 않고 부여된 임무완수와 자기발전을 위해 노력하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이처럼 기도합니다.

아픈 사람은 군대 병원에서 조치가 되지 않으면 민간병원에 데려가서 진료를 받게 해 줍니다. 발에 무좀이 심하여 악성일 때는 중대장이 직접 발을 씻어주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음부터는 잘 씻습니다.

오늘 저는 두 분을 뵙고 너무나도 기뻤고 참으로 유익하고 고마운 대화의 시간이었습니다. 두 분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한편으로 공직에 근무하시는 아버님의 실수는 이해하기 힘이 듭니다.

보내주신 금전은 제가 쓰기에는 너무나도 과분하고 어처구니없는 돈이오니 다시 돌려드립니다. 멀리서 오셨는데 따뜻한 식사 한 끼 대접 못한 저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000가 전역하고 나면 또 광주방면에 근무할 기회가 있으면 찾아뵙지요.

이번에 000 병장이 외박을 갈 수 있는 것은 우리 대대장님의 각별하신 배려가 있었습니다. 000에게 남은 외박은 전혀 없으나 다른 중대원들이 시비를 걸면 저희들도 입장은 난처할 것입니다. 부디 좋은 시간 000와 잘 보내시고 안전하게 돌아가시기를 기도 드리겠습니다.

자식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을 이번에 느꼈으리라 생각합니다. 사랑과 정성, 노력...

또한 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전우의 부모님들께 돈이나 받아 챙기는 그런 인간으로 비춰졌다면 미안합니다. 그러나 절대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30만원이더라구요. 저 고병오를 믿고 남은 기간 제게 맡겨주시고, 아무 걱정 마십시오.

할말은 많지만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천삼년 팔월 팔일
000의 아버지이자 형이자 스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 P.S : 내려가실 때 우동 한 그릇 사 드시라고 돈 만원 동봉합니다.

2009년 8월 24일 월요일

The Truth


국제 광고제에서 수상한 아르헨티나의 대선 광고랍니다.

(그리고.... 사비표 발번역...;;;;;;;)

이것은 진실입니다.
만일 현실이 뒤집힌다면
우리는 세계 최고의 나라가 될 수 없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거짓말을 하는 거겠죠.
아르헨티나는 찬란한 미래를 갖고 있고
우리는 안전한 나라가 될 것이며
우리의 경제는 부강해질 것이며
우리의 아이들은 건강해지며,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라고요.
그전에 당신이 알아야 할 사실은 아르헨티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렇다고 확신하는 이유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부패와 위선에 쩔어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몇년 안에 우리가 위대한 나라가 될 것이라 믿는 것을 거부합니다.
사람들이 던진 표 덕분에
이 나라는 새로운 깊이로 침몰하고 있지만
놀랄만한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아르헨티나는 단 하나의 운명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을 당신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것은 현실입니다.


"로페즈 머피를 대통령으로"


당신은 제가 앞에 한 말의 그 반대를 믿는다는 걸 아셔야합니다.
사실은 이렇습니다.
당신이 좋든 싫든 아르헨티나에겐 단 한가지의 운명만이 있으며
앞으로 놀랄 일들은 더 많이 다가옵니다.
이 나라는 새로운 깊이로 침몰하고 있지만
국민들이 던진 표 덕분에
몇년안에 우리는 위대한 나라가 될 수 있습니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국민들이 부패와 위선에 쩔어있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제가 확신하는 것은 제가 아르헨티나 국민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 나라는 그런 것들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들이 아셔야 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건강해지고 교육을 받고 직업을 갖게 될 것이고
우리 경제는 부강해질 것이며
우리는 안전한 나라가 될 것입니다.
아르헨티나는 밝은 미래를 갖고 있습니다.
세계최고의 나라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우리가 이 현실을 뒤집을 수 있다면

이것은 진실입니다.

[잡담] 다람쥐가... 다람쥐가...

토마토를 먹었습니다. 조금 더 자라면 샐러드 해먹으려고 아꼈는데... 다람쥐가 토마토를 날치기했습니다. ㅜ.ㅜ

다행히 토마토 두 개가 더 열렸습니다. 지금은 콩알만 합니다. 다람쥐가 토마토를 먹지 못하도록 덮개를 씌워야 할까요?

[정치] 국민개방형 국회의원 공천 제도

국회의원 정당후보 공천은 항상 말이 많습니다. 다음과 같은 국민개방형 제도 도입은 어떨까요?

- 국회의원 선거 한 달 전에 정당후보 선출 예비선거일을 지정하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리하에 전국 동시 지역구별 예비선거 시행

- 각 정당은 후보 신청을 받아서 내부 규율에 따라서 3명의 지역구 후보를 선관위에 복수 추천 (후보 신청을 할 수 있는 정당 자격 제한? 예를 들어서 원내교섭단체 정당?)

- 유권자는 1인 1표 무기명으로 1명의 후보에게만 투표

- 각 정당 리스트에서 최다 득표자가 후보로 국회의원 본 선거에 출마

문제점은 무엇이 있을까요?

[단상] 분실물 돌려주기

(2003년 9월 26일, 지하철 역에서 지갑을 주웠던 일에 대한 메모입니다. 동전 하나도 줍는 일이 거의 생기지 않았던 저에게 그날은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오늘 저녁에 볼일을 끝내고 사무실로 돌아오던 중 교대역에서 지갑을 하나 주웠다. 지하철역 분실물센터에 맡길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갑을 잃은 사람이 많이 초조해할 것 같아서 직접 연락해서 돌려주었다. 공적 서비스에 대한 신뢰가 높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전에 광화문 전철역에서 중요한 서류를 놓고 지하철을 탄 적이 있었다. 한 정거장 가서야 벤치에 서류를 둔 것을 알아채고 다시 광화문 역에 가봤더니 어떤 장애인이 그 서류를 꼭 쥐고 있었다. 그분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공적 서비스가 조금 부족하다면 개인들이 서로 도우면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09년 8월 23일 일요일

[자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과 오바마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0/31)

이번 (2008년 미국) 대선 기간 중 오바마는 마틴 루터 킹 목사에 대해서 거의 언급을 하지 않았습니다. 킹 목사가 흑인이라서 인종주의적 반향을 일으킬 것을 우려해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따져 보면 오바마는 킹 목사의 그 유명한 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몇 십 년 전에 킹 목사가 외쳤던 그 꿈이 미국 정치사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오바마의 정치적 꿈이 실현되는 결과가 이번 대선에서 나오지 않으면 오바마에게 열광하는 아프리칸 미국인을 포함한 소수 민족 미국인뿐만 아니라 상당수의 백인들에게 경제 패닉에 이은 정치 패닉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을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을 저는 American Dream이라고 봅니다. 유럽보다 빈부 격차가 큰 편이고 사회보장 제도도 상대적으로 잘 갖춰져 있지 않은 미국인이 오히려 유럽인들보다 현실에 대한 만족감이 높다는 조사결과가 있습니다. 지금은 자신의 처지가 보잘 것 없지만, 앞으로는 꿈을 이룰 수 있다는 미래에 대한 기대가 현실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없앨 수 있는가 봅니다. 오바마가 어제 있었던 30분짜리 선거광고 Obamercial(Obama+commericial 혹은 informercial)을 통해서 중산층의 삶을 부각시키고, 조상은 힘들게 살았어도 자손들은 더욱 좋은 교육을 받도록 미국인들이 노력해왔다고 설명한 것이 바로 그 꿈 얘기였습니다.

그 광고는 시의적절했고, 거의 완벽하게 만들어졌다는 호평이 언론에서 연이어졌습니다. 매케인의 매 자도 나오지 않았고, 페일린의 페 자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공화당 진영의 선거광고나 인터뷰에서 오바마가 빠짐없이 등장했던 것과 큰 대조를 보여줬습니다.

케네디가 대통령에 도전했을 때 많은 미국인들이 당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케네디의 종교가 천주교였기 때문이었죠. 미국 정치에서 개신교의 영향력은 가공할 만합니다. 따라서 케네디의 당선은 미국 정치사에서 큰 사건이었습니다. 케네디는 역대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한 천주교 신자로 아직 남아 있죠. 오바마가 당선되면 케네디 당선보다 더 큰 사건이 될 것입니다. 여러모로 힘든 미국인들에게 오바마의 당선은 미국의 꿈을 다시 떠올리면서 새 출발하는 활력이 되는 것만 해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많은 미국인이 경제 패닉에 이어서 다시 한번 실의에 빠지게 되겠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그 유명한 "I have a dream." 연설을 아래에 올립니다. 영어 공부도 됩니다. ^^



... that one day this nation will rise up and live out the true meaning of
its creed: "We hold these truths to be self-evident: that all men are created equal."
...
I have a dream that one day, down in Alabama, with its vicious racists, with its governor having his lips dripping with the words of interposition and nullification; one day right there in Alabama, little black boys and black girls will be able to join hands with little white boys and white girls as sisters and brothers.

I have a dream today.

I have a dream that one day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 every hill and mountain shall be made low, the rough places will be made plain, and the crooked places will be made straight, and the glory of the Lord shall be revealed, and all flesh shall see it together.

This is our hope. This is the faith that I go back to the South with.
...
With this faith we will be able to work together, to pray together, to struggle together, to go to jail together, to stand up for freedom together, knowing that we will be free one day.
...
I say to you today, my friends.
...
So let freedom ring from the prodigious hilltops of New Hampshire. Let freedom ring from the mighty mountains of New York. Let freedom ring from the heightening Alleghenies of Pennsylvania!

Let freedom ring from the snowcapped Rockies of Colorado!
Let freedom ring from the curvaceous slopes of California!
But not only that; let freedom ring from Stone Mountain of Georgia!
Let freedom ring from Lookout Mountain of Tennessee!
Let freedom ring from every hill and molehill of Mississippi. From every mountainside, let freedom ring.

And when this happens, when we allow freedom to ring, when we let it ring from every village and every hamlet, from every state and every city, we will be able to speed up that day when all of God's children, black men and white men, Jews and Gentiles, Protestants and Catholics, will be able to join hands and sing in the words of the old Negro spiritual, "Free at last! free at last! thank God Almighty, we are free at last!"

[음악] 김대중 전 대통령 추모

오늘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국장이 있는 날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면서, 우리 자유민주주의를 생각하는 경건한 하루를 보내겠습니다.
추모 음악으로 모짜르트 레퀴엠 처음부터 라크리모사까지 듣겠습니다.

(유튜브 동영상에 함께 있는 설명입니다.)
John Eliot Gardiner conducts the English Baroque Soloists and the Monteverdi Choir. This performance was filmed at the Palau de la Musica Catalana, Barcelona in Dec. 1991.

A Requiem Mass in the Roman Catholic tradition is a service designed to pray for the souls of the departed. The parts of the liturgy that are meant to be sung are what constitute all Requiem Mass compositions, including Mozart's.

The structure is as follows:
1. Introit
2. Kyrie
3. Sequence: a. Dies irae b. Tuba mirum c. Rex tremendae d. Recordare e. Confutatis f. Lacrimosa
4. Offertory: a. Domine Jesu Christe b. Hostias
5. Sanctus
6. Benedictus
7. Agnus Dei
8. Lux Aeterna

Mozart died before finishing the Requiem Mass, and his wife Constanze gave the task of finishing the work to a pupil of Mozart's named Süssmayr. From the Sanctus onward, the Requiem is the creation of Süssmayr, though he did use portions of the Introit and Kyrie for the Lux Aeterna. Despite, or maybe partially because of, the controversy surrounding this Requiem Mass, it is widely regarded as Mozart's greatest masterpiece.


Mozart's Requiem Mass in D Minor I - Introitus and Kyrie

Introit
Requiem æternam dona eis, Domine (Eternal rest grant unto them, Lord)
Requiem æternam dona eis (Eternal rest grant unto them)
et lux perpetua (and perpetual light)
et lux perpetua luceat (and perpetual light shine)
luceat eis. (shine on them.)

Te decet hymnus Deus (A hymn comes to you)
in Sion (in Zion)
et tibi reddetur votum in Ierusalem. (and to you a vow shall be repaid in Jerusalem.)
Exaudi Exaudi Exaudi (Hear, hear, hear)
orationem meam (my prayer)
ad te, ad te (to you, to you)
omnis caro veniet. (all flesh will come.)

Requiem æternam dona eis,

Domine et lux perpetua
et lux perpetua
luceat eis.

Kyrie

Kyrie eleison, eleison. (God have mercy.)
etc.

Christe eleison, eleison. (Christ have mercy.)
etc.

Kyrie eleison. (God have mercy.)


Mozart's Requiem Mass in D Minor II - Dies Irae

Dies iræ! dies illa (Day of wrath and terror looming!)
Solvet sæclum in favilla (Heaven and earth to ash consuming,)
Teste David cum Sibylla! (David's word and Sibyl's truth foredooming!)

Quantus tremor est futurus, (What horror must invade the mind,)
quando judex est venturus, (when the approaching judge shall find,)
cuncta stricte discussurus! (and sift the deeds of all mankind.)


Mozart's Requiem Mass in D Minor III - Tuba Mirum

Bass:
Tuba mirum spargens sonum (The trumpet casts a wondrous sound)
Tuba mirum spargens sonum (The trumpet casts a wondrous sound)
Per sepulcra regionum, (Through the tombs all around,)
Coget omnes ante thronum. (Surrounding the throne)
Coget omnes ante thronum. (Surrounding the throne)

Tenor:
Mors stupebit et natura, (Death is struck and nature quaking)
Cum resurget creatura, (All creation is awaking)
Judicanti responsura. (To its judge an answer making)
Liber scriptus proferetur, (The written book shall be proffered)
In quo totum continetur, (In which is contained all)
Unde mundus judicetur. (From which the world is to be judged.)

Alto:
Judex ergo cum sedebit, (When the Judge shall sit,)
Quidquid latet apparebit: (Whatever is hidden shall be seen)
Nil inultum remanebit. (othing shall remained unpunished.)

Soprano:
Quid sum miser tunc dicturus? (What am I, wretched one, to say?)
Quem patronum rogaturus, (What protector to implore,)
Cum vix justus sit securus? (When even the just will scarcely be confident?)

All Soloists:
Cum vix justus sit securus?
Justus sit securus?
Cum vix justus
vix justus sit securus?


Mozart's Requiem Mass in D Minor IV - Rex Tremendae


Mozart's Requiem Mass in D Minor V - Recordare


Mozart Requiem Mass in D Minor VI - Confutatis and Lacrimosa

CONFUTATIS
Confutatis maledictis, (When the damned are cast away)
Flammis acribus addictis, (and consigned to the searing flames,)
Voca me cum benedictus. (call me to be with the blessed.)
Oro supplex et acclinis, (Bowed down in supplication I beseech Thee,)
Cor contritum quasi cinis: (my heart as though ground to ashes:)
Gere curam mei finis. (Help me in my final hour.)

LACRIMOSA
Lacrimosa dies illa, (O this day full of tears,)
Qua resurget ex favilla. (when from the ashes arises)
Iudicandus homo reus: (guilty man to be judged:)
Huic ergo parce, Deus. (O Lord, have mercy upon him!)
Pie Jesu Domine, (Gentle Lord Jesus,)
Dona eis requiem. Amen. (grant them eternal rest. Amen.)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미사에 참석하였습니다.

어제 오후 7시에 명동성당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님 장례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주례사제는 정진석 추기경이었고, 김홍일 씨를 비롯한 유가족 그리고 전현직 국회의원 여러분과 경향각지에서 찾아온 추모객들로 성당안은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정 추기경님은 강론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뵐 때 마다 왜 사람들이 김대중 대통령을 '선생님!' 이라고 하는지 알겠다."며 "김 대통령이 자신을 박해한 사람을 용서해 주는 미덕을 보여 주셨는데, 그것은 진정한 자유주의자가 아니고선 하기 힘든일이다."고 하셨습니다. 흔히 볼수 있는 고인에 대한 북받치는 그리움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돌아가신 분에 대한 그리움을 차분한 어투로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이번 장례미사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끈 또 다른 하나는 휠체어에 앉아서 병마 속에 힘겹게 몸을 지탱하던 김홍일 씨의 모습이었습니다. 파킨슨 병으로 그 옛날의 풍채당당하던 모습은 사라져 버리고 뼈만 앙상하게 남은 가련한 모습으로 나타난 김홍일 씨의 모습은 보는 사람마다 한숨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습니다.

대체로 가톨릭 신자들은 정치에 대해서 보수적인 견해를 갖고 계신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몇몇 가톨릭 신자 분들은 고인에 대한 근거 없는 중상모략에 부화수동(附和隨動)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고인에 대한 추모의 정을 표출하는 가톨릭 신자들의 모습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될까요? 그것은 후회, 회한 그리고 아쉬움의 감정이 뒤섞여진 것이지만, 이 나라에 참된 권위를 갖고 국민들을 아우르는 진정한 의미의 지도자를 잃어버렸다는 아쉬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9년 8월 22일 토요일

La Peregrinación


Jose Carreras, album-Misa Criolla by Ariel Ramirez (Argentina)

한가한 주말 오후 ... 노래 한 곡으로도 마음에 흥이 생길 수 있다는.

[수필] 바닷가 수녀님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0/04)
사진: http://cyw.pe.kr/xe/files/attach/images/17863/158/078/P6013666.jpg
이해인 수녀님의 편지,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부산 광안리 바닷가에서 산 쪽으로 10~15분 정도 걸어 올라가면 숲 속에 조용한 수도원이 있습니다. 성 베네딕토 수녀회 본원입니다. 시인 이해인 수녀님이 오랫동안 머물렀고, 지금도 그곳에서 암 투병 중이시라고 합니다. 수녀님의 쾌유를 빕니다.

최근 탈옥수 "조카" 신창원과 "이모" 수녀님의 서신 교환이 언론에 보도되었더군요. 소외된 사람들과 마음으로 소통을 해오셨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해인 수녀님의 시를 소개합니다.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 이해인

손 시린 나목의 가지 끝에
홀로 앉은 바람 같은
목숨의 빛깔

그대의 빈 하늘 위에
오늘은 내가 반달로 떠도
차 오르는 빛

구름에 숨어서도
웃음 잃지 않는
누이처럼 부드러운 달빛이 된다

잎새 하나 남지 않은
나의 뜨락엔 바람이 차고
마음엔 불이 붙는 겨울날

빛이 있어
혼자서도
풍요로워라

맑고 높이 사는 법을
빛으로 출렁이는
겨울 반달이여

"빛이 있어/혼자서도/풍요로워라" 너무 멋진 말입니다. 요즘은 광안리가 광안대교와 함께 많이 알려졌지만, 개발 이전에는 한적한 어촌 해수욕장이었습니다. 해수욕장 양쪽 끝 근처에 조그만 돌섬들이 있었고, 중간에는 해변에 허름한 횟집들이 쭉 늘어서 있었죠. 어느 날,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 끝에 있는 돌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제방을 쌓고 매립을 하더니 거대한 아파트 군락이 들어섰습니다. 그 이후로 급속도로 도회지화 되어서 매우 번잡한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개발되기 전의 광안리는 모래도 깨끗했고, 사람들도 비교적 많이 찾지 않는, 정취가 있는 도시 속의 바닷가였죠. 최근 모 드라마에서 송정을 배경으로 촬영하여 광안리로 소개했다고 누리꾼들이 잔소리하는 것을 읽었는데, 개발되기 전 광안리를 염두에 둔 촬영지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이해인 수녀님 필명에 바다 해자가 들어간 것이 아마 그 시절 광안리 바다의 영향일 것 같습니다. 수녀님이 낭송하시는 "초대의 말" 동영상이 있군요. 친구여/오십시오... 중간에 광안리 바닷가도 잠깐 나옵니다.




후기(2009/08/22): 이 글을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렸을 때, 차현정 님이 긴 댓글을 달았습니다. 게시판에 문제가 생겨서 그 댓글을 지금은 볼 수 없습니다. 성 베네딕토 수녀원 부설인 성 분도 유치원에 다녔다는 이야기가 내용에 있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제 고향이거든요. 성 분도 치과에서 치아 치료도 여러 번 받았습니다. ^^

그때는 소심하여 제 고향을 밝히지 못해서 더 친한 화답을 못했네요. ㅜ.ㅜ. 차현정 님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 차현정 님은 제 고향 후배가 되겠습니다. 저는 부전유치원과 남천국민(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차현정 님이 이 글을 보시면 좋겠네요.

[음악] 차이코프스키 음악

차이코프스키(1840-1893) 음악을 들어보면 왠지 모르게 우수에 젖는 느낌을 받습니다. 한국적 정서를 "한"으로 흔히 표현합니다. 그래서인지 저에게 차이코프스키 음악은 친화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차이코프스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줬던 사람은 어머니였는데, 14살 때 어머니가 콜레라로 돌아가시죠. 그때까지 공무원 양성 교육기관에 다니고 있었는데, 그 이후 차이코프스키는 음악에 매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음악으로 달랬던 모양입니다. 콜레라는 차이코프스키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도 알려졌습니다. 마지막 교향곡인 "비창"을 작곡한 직후 콜레라로 사망했다는 것이 정설인데, 자살설도 있습니다. 노래 부르는 듯 그의 서정성을 잘 나타내는 비창의 2악장입니다.

SEIJI OZAWA /Berlin Philharmonic Orchestra, Tchaikovsky Symphony No.6, Part3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을 보로디노에서 잘 막아낸 것을 기념하여 차이코프스키가 작곡한 "1812년 서곡"에는 대포를 쏘는 부분이 있습니다. 실제로 대포를 쏘기도 하고 큰 북으로 같은 효과를 내기도 하는데, 불꽃놀이에 잘 어울리는 음악입니다. 빵빵 터지는 불꽃과 함께 듣는 1812년 서곡을 한번 상상해보시죠.

Concluding part too Tchaikovsky's famous 1812 Overture performed by the Hallé Orchestra, conducted by Mark Elder at the Royal Albert Hall during the Nations Favourite Prom 2004.

차 선생의 발레 음악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마법에 걸려서 백조가 된 공주 오데트와 신부감을 구하는 왕자 지그프리드 이야기를 발레로 만든 "백조의 호수" 중 한 장면입니다. 지그프리드가 악마의 딸 오딜 흑조를 오데트 공주 백조로 오인하죠. 백조의 호수는 안무에 따라서 비극으로 끝나기도 하고, 오데트와 지그프리드가 악마를 물리치면서 끝나기도 하는데, 음악을 전반적으로 참조하면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적절한 것 같습니다.

Swan Lake Black Swan Pas De Deux Pt.1, American Ballet Theatre
Gillian Murphy as Odile, with Angel Corella.
Marcello Gomes as Von Rothbart
-Odile's Entrance
-Grand Pas De Deux
-Seigfried's Variation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되면 반드시 듣게 되는 "호두까기 인형"... 크리스마스 전날 밤, 주인공 마리는 예쁜 호두까기 인형을 선물로 받습니다. 동생 때문에 인형이 망가지고, 마리는 인형을 품에 꼭 껴안고 잠이 듭니다. 꿈속에서 호두까기 인형이 마리의 도움을 받아서 생쥐왕을 물리치고, 인형은 역시 왕자로 변해서 마리를 동화의 나라로 안내하여 즐거운 시간을 가집니다. 꿈이었죠.^^ 아래는 키로프 발레단의 꽃의 왈츠입니다.

P.I.Tchaikovsky - The Nutcracker

[단상] 음성 안내

(아래는 2003년 9월 27일에 작성한 메모입니다. 2009년 현재는 장애인을 위한 제도나 시설 개선이 많이 이뤄졌을까요?)

방금 다녀온 우체국에서 요금을 계산할 때 음성으로 얼마라고 불러주는 것을 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들에게 편리한 제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이 엘리베이터에서 버튼을 손으로 더듬어서 가고자 하는 층을 누를 수 있도록 점자를 새겨넣는 것도 좋은 장애인 도우미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조금만 신경을 쓰면 장애인들의 생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개선을 이뤄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간단하고 꼭 필요하지만, 우리 사회에 도입되지 않은 장애인 도우미 제도/시설/장치 등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2009년 8월 21일 금요일

[공지] 글 분류에 대해서

안녕하세요. 좋은 주말 시작하고 계신지요.

글 분류를 다음과 같이 해봤습니다.

[자유] 자유민주주의 3대 원칙인 자유, 평등, 참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정치] 정치 현상에 대한 제 주장이나 견해를 밝힌 글입니다.
[단상] 사회 현상에 대한 짧은 견해나 소회를 적은 글입니다.
[수필] 신변잡기 위주로 제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음악] 음악 동영상을 링크하거나 감상을 적은 글입니다.
[여행기] 제 여행 경험입니다.

해당 분류 글을 보시려면 블로그 왼쪽 위에 있는 검색 기능을 이용하시거나 해당 주제어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주제어 클릭 기능이 더 잘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즐거운 주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친노신당 - 어쩌면 관련있을지도 모르는 개혁당의 실패

제가 보기에는 현재 유시민씨가 행보를 자제하고 있는 것은 예전의 개혁당의 실패(저도 자세히는 모르지만 마치 신민회처럼 발전적 해소 명분처럼 민주당에 합당했었죠..) 떄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어설픈 추측일지 모르지만 제가 보기엔 친노신당의 스펙트럼에 아마 가장 가깝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예전에 개혁당의 실패 - 그리고 현재 친노신당 - 이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덧)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포스팅하시는 글과는 상당히 관련이 있으리라 제 맘대로 오판해서..
다른 분들도 읽어보시면 현재 정국과도 좀 관련이 있는 이야기라 재밌어 하시리라 철없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원래 댓글로 달려고 했는데 댓글이 글자 수 제한이 있더군요..

죄송합니다 앞으로 링크 법칙(?)을 꼭 지키도록 하겠습니다 ^^

p.s. 링크된 사이트는 저와 관련이 없고
그냥 네이버에 글 제목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사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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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당 단상(斷想)/유시민 개혁당 대표

http://usimin.net/4/bbs/board.php?bo_table=dg_book&wr_id=303&page=8

[자유] 현 정치판에서 "공룡" 정당 쪼개기 전략이란? (중)

1. 의제 설정의 미학

어제 글에서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는 것은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 자신이 괴물이 되는 어리석음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특정 지역에서 선출직을 얻는 것의 반작용으로 다른 지역에서 표가 분산되면, 그 역효과는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을까요? 라이커 교수님은 <정치적 조작술(The Art of Political Manipulation)>이라는 책에서 적절한 의제 설정을 통하여 원하는 정치적 결과를 정당하게 얻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링컨이 노예해방이라는 의제를 세워서 당시 민주당을 남부와 북부로 쪼개고 대통령이 된 사례를 대표적인 것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렇다면 공룡 정당을 쪼개는 쓸 만한 의제는 무엇이 있을까요?

2.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의 정치

최근 8.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은 지역주의 극복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을 제안했습니다. 행정구역 개편과 묶어서 정치권에 던졌기 때문에 의제 설정의 빛이 약간 바랬다는 해석을 이전 글에서 제가 주장했죠. 이 대통령으로서는 여러 현안을 헤쳐나가는 의제로 제법 그럴 듯한 것을 골랐습니다.

그런데 제1 야당인 민주당의 대응이 저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제안에 중대선거구제를 들고 나왔는데, 이것이 명분도 시원찮고, 여야합의를 이룰 가능성도 적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치 협상을 하려면 제대로 된 협상카드를 골라야 합니다. 녹슨 과도를 들고 나와서 딱딱한 무를 썰자고 하면 상대방이 웃습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정부/여당은 권역별 정당명부 비례대표제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권역 비례대표를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에 대한 협상이 걸릴 수 있겠죠. 독일식과 일본식이 있습니다. 독일식은 아래 제 글 "공공선택으로서 국회의원 선거제도(http://ahnabc.blogspot.com/2009/07/blog-post_29.html)"에서 설명했습니다. 우리 실정에 도입하기 어려운 복잡한 제도입니다. 일본식은 권역 비례대표를 배분할 때 권역 내 정당득표율을 적용합니다. 따라서 지역주의 완화 효과가 미미합니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이, 영남에서는 한나라당이 대부분의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죠.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면서 지역주의 완화 효과를 노릴 수 있는 유력한 방법은 이미 설명했듯이 전국 정당득표율로 권역 비례대표 의석을 일률배분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40% 정당 득표를 했다면, 각 권역에서 권역 비례대표 정원의 약 40%씩 의석을 갖는 제도입니다. 이렇게 하면 영남에서 민주당 의원이, 호남에서 한나라당 의원이 상당수 탄생합니다. 영남의 인구가 더 많으므로 영남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호남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민주당이 손해 볼 것이 없고, 지역주의 완화 대의명분도 살릴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보기에 민주당의 적절한 대응은 짐짓 모른 척하면서 정부/여당의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받아들일 수도 있다고 협상에 임하는 것입니다. 모르죠, 민주당이 고도의 작전을 짜서, 처음에는 중대선거구제를 슬쩍 흘린 다음, 협상에 들어가서는 일률배분을 주장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일률배분은 별 협상 거리도 안 됩니다. 다른 유력한 방안이 없으니까요. 또한, 제 경험에 의하면 정치인들이 중대선거구제에 집착하는 것은 일종의 관성과 같습니다. 이것저것 따져보지도 않고, 막연히 나눠 먹기라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참조: "중대선거구제 집착증?" http://ahnabc.blogspot.com/2009/08/blog-post_18.html )

3. 결선투표제와 쪼개기 의제 설정

이 부분에서 야당이 머리를 잘 굴리면 쪼개기 의제 설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만약 여당이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제안하면,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결선투표제를 제안하는 것입니다. 결선투표제가 왜 공룡 정당을 쪼개는 의제 설정이 될 수 있을까요? 국회의원 선거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분열된 야당 후보가 많은 지역구에서 단일화되는 효과가 생기죠. 후보 단일화를 위해서 여론조사를 하는 등 난리법석을 떨지 않아도 됩니다. 아울러서 공룡 정당에서는 일부 지역에서 2등을 노리는 정치인들이 딴살림을 차려서 나갈 가능성이 생깁니다. 결선을 노리는 것이죠.

결선투표제 도입의 필요성은 바로 아래 글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 개선"에서 설명했습니다. 단순 다득표제보다 결선투표가 민주주의 기본 원리인 단순과반수 원칙을 더 잘 지킬 가능성이 크다는 것입니다. 만약 대통령 선거에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이것도 공룡 여당을 쪼갤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습니다. 박근혜 씨가 차기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이기고, 야권의 후보가 지리멸렬이면 한나라당 일부가 뛰쳐나가서 결선을 노리는 시나리오가 충분히 가능하죠.

그런데 정치인들은 선거를 한 번 더 하는 것을 별로 환영하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거라고 하면 일단 돈(특히 검은돈) 문제가 떠오르기 때문에 국민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민주주의에서는 투표(선거, 주민 발안, 주민 소환 등)를 밥 먹듯이 하는 것이 정상인데, 우리나라는 투표에 헛돈을 쓴다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동안 정치자금이 투명하지 않았고, 선거가 끝나면 부정 시비로 얼룩진 적이 많아서 그럴 것입니다. 따라서 야당이 결선투표를 제안할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제안해도 여당이 받아줄 가능성도 크지 않겠죠. 매우 어려운 협상이 되겠습니다.

4. 선거제도 변경이라는 정치적 조작

선거제도 변경은 대표적인 정치적 조작입니다. 애로우(Kenneth Arrow) 교수님의 불가능성 정리(The Impossibility Theorem)와 라이커 교수님의 투표 제도 연구를 참조하면, 민주주의가 돌고 도는 세상이 될 수 있습니다. 즉, 시민의 선호순서는 합리적이라도, 전체 사회의 선호순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비합리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죠. A보다 B를 더 좋아하고, B보다 C를 더 좋아하고, C보다 A를 더 좋아하는 돌고 도는 세상에서는 선거제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런 속성이 있기 때문에 뚜렷한 명분이 없으면 특정 선거제도를 관철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여러 다른 잣대를 들이댈 수 있기 때문에, 야당이 갑이라는 기준을 제시해서 특정 제도를 관철하려면 여당은 을이라는 기준으로 적당히 거부할 수 있죠.

국회의원 선거제도 변경에서 이런 정치적 조작의 구조적 문제를 벗어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잣대가 정치적 지역주의 극복입니다. 이야기가 옆으로 조금 샜는데, 이 글에서 드리고 싶었던 말씀은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서 공룡 정당 쪼개기 의제 설정이 가능하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또 다른 방안은 없을까요? 다음 글로 넘어갑니다.^^

[정치]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 개선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2/26)

[설명]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흔히 부른다. 국민 개별 선호가 전체 의사결정이 되는 선거는 그만큼 중요하다. 특히 국가지도자를 뽑는 우리 대통령 선거는 모든 국민의 관심을 끄는 최고 중요 정치 이벤트임이 틀림없다. 이 글에서 필자는 현행 대통령 선거제도가 심각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결선투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차기 대통령으로 선호하는 인물 1위가 박근혜 의원, 그리고 2위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대통령 중심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새 대통령을 선출한 지 1년밖에 안 됐지만, 다음 대통령에 대해서 관심을 두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여당은 정권 재창출에 항상 관심을 두고, 야당도 정권 재탈환에 큰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죠. 야당에서는 급기야 반기문 총장을 차기 대선 후보로 떠올리는 비상수단까지 고려하는 모양입니다. 별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언제 다시 유엔 사무총장과 같은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인사를 쉽사리 배출할 수 있겠습니까. 연임하는 관례를 고려하건대, 반 총장은 한 번 더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는 것이 본인이나 국민에게 득이 된다고 봅니다.

저는 1995년에 작성한 한 발제문에서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제도가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으므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현행 대선제도가 절차적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시되는 원리인 “단순과반수 원칙”을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있어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아직 그대로입니다. 그동안 제 주장을 여러 전문가와 정치인에게 설명하고 반응을 살펴봤는데, 이론상으로는 맞는 이야기이지만 현실에 적용하기는 어렵겠다는 평이 제법 있었습니다.

1) 선거를 한 번 더 하는 비용 문제, 2) 제도 수정의 현실적 난관(예컨대, 야당의원은 여당이 합의해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여당의원은 야당이 반대할 것이라는 반응), 이 두 문제였죠. 그런데 대선 결선투표를 채택하는 프랑스와 러시아 등을 참조한다면 절차적 민주주의를 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발생하는 편익이 그 비용을 능가하는 것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제는 우리 경제 역량이 가장 중요한 선거를 한 번 더 하는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죠.

따라서 두 번째 문제만 해결된다면 우리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여 단순과반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의 탄생을 지켜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 이후 과반수 유효득표를 한 대통령 당선자가 없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공선택이론으로 심하게 이야기하면 결정적인 결함이 있는 제도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표가 분산되어서 40% 득표를 했지만, 그 당선자를 55%가 반대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라면 그 후보는 당선되면 안 됩니다.

저는 앞으로 정치부문의 화두로 대통령 선거제도 개선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경제가 위중해서 쟁점이 될 것 같지는 않지만, 장기 국가발전 프로젝트로 검토되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입니다. 현 국회의장께서 취임 초에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정황을 고려하면, 제18대 국회에서 개헌을 하기는 힘든 것 같습니다. 만약 개헌범위를 권력구조 개편이라는 최소한으로 국한한다면 혹시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쟁점과 관련하여 우리 대선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려면 개헌이 반드시 필요한지 의문이 있습니다. 헌법 관련 조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 제67조

1. 대통령은 국민의 보통·평등·직접·비밀선거에 의하여 선출한다.

2. 제1항의 선거에 있어서 최고득표자가 2인 이상인 때에는 국회의 재적의원 과반수가 출석한 공개회의에서 다수표를 얻은 자를 당선자로 한다.

3. 대통령후보자가 1인일 때에는 그 득표수가 선거권자 총수의 3분의 1 이상이 아니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없다.

4. 대통령으로 선거될 수 있는 자는 국회의원의 피선거권이 있고 선거일 현재 40세에 달하여야 한다.

5. 대통령의 선거에 관한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

제2항이 문제가 될 수 있겠습니다. 이 의문을 포함하여 여러분의 고견을 듣고 싶습니다. //


[토론]

[회원1] 헌법 제67조 제5항은 결선투표를 법률로 규정할 수 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선투표를 도입하려면 개헌을 해야 한다.

[필자] 공직선거법, 제187조(대통령 당선인의 결정·공고·통지)에는 대통령 당선을 어떻게 결정하는지 규정하고 있죠. 이 규정에 결선투표를 삽입해서 개정하면 위헌이 될까요?

[회원2] 결선투표 도입은 50보 100보이다. 오히려 칼 포퍼를 참조하여 “사악한 지도자”를 뽑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 회원2님은 제 문제제기를 너무 확대하여 해석하신 것 같습니다. a, b, c 대선 후보가 있다고 합시다. 각각 40%, 35%, 25%를 득표했습니다. 현행 제도로는 a가 대통령이 됩니다. 그런데 결선투표를 하면 b가 60:40으로 a를 꺾을 수도 있습니다. 이 경우 a가 대통령이 되는 것은 비민주주의이며 비효율이라는 것이 제 주장의 요점입니다. 오십보백보라는 식으로 대충 해석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큰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회원1] 공직선거법은 관련 헌법 조항을 구체화 내지는 반복하는 규정이다. 헌법 제67조 제2항 결선투표 외에 다른 형태의 결선투표를 공직선거법에 넣는 것은 헌법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필자] 회원1님이 해석한 것과 같이 유추할 수는 있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최고 득표자”, “다수표”라는 표현이 있어서 결국 단순다득표제(plurality)를 내포하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크겠네요.

[게시판 주인] “좋은 아이디어입니다만, 우리가 지난 선거를 다른 방식으로 치렀다고 지금의 상황이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네요.”

[회원3] 게시판 주인 생각에 동감이다. 더 늦기 전에 개선이 필요하므로, 필자 생각에도 동감이다.

[필자] 제 생각에도 제17대 대선 결과는 결선투표를 했어도 다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결선투표 대부분이 과반수 획득을 선출조건으로 하지만, 변형도 있습니다. 예컨대 1등이 45%, 46%, 혹은 47% 이상 득표하면 결선투표 없이 당선을 결정짓는 것입니다. 이 변형은 이론상 결함은 있지만, 일부 불필요한(경험적으로) 결선투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습니다. 기준이 자의적이라서 저는 변형을 찬성하지 않습니다.

[회원4] 게시판 주인과 동감이다. 미국식 중임제는 어떨까?

[필자] 연임 허용 4년 임기 대통령제에 결선투표를 결합하는 형태를 지지하는 정치학자들이 지금은 제법 있습니다.

[회원5] 개헌 없이 결선투표 도입은 안될 것이다. 결선투표 도입은 찬성한다. 단순다수제와 지역구도가 결합하여 특정 지역은 일당 독재나 마찬가지이다. 연대와 연합을 조장하는 결선투표가 국회의원 선거에도 도입되면 좋겠다.

[필자] 회원5님의 의견에 동감입니다. 일단 대선에 결선투표를 도입해서 시행하고, 다음 단계에 총선까지 확산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심려 깊은 의견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

[토론 평] 이 토론에서 발제자인 필자는 필요한 정보를 획득했고, 여러 회원으로부터 발제 취지에 동의하는 호응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일부 회원은 그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한 회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국회의원 선거에도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하여 필자의 동감을 이끌어냈다.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에서 각자의 의견이 제대로 전달된 잘 된 토론이라고 볼 수 있다.

[음악] 베토벤 장엄미사 키리에


Beethoven - Missa Solemnis (D-Dur, opus 123) Kyrie
Edda Moser - Soprano, Hanna Schwarz - Mezzosoprano, Rene Kollo - Tenor, Kurt Moll - Bass, Concertgebouw Orchestra, Conductor, Leonard Bernsrein

베토벤 장엄미사의 첫 곡 키리에입니다. 다른 많은 미사곡처럼 베토벤의 장엄미사도 키리에(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글로리아(대영광송), 크레도(신앙고백), 상투스(거룩하시도다), 아뉴스 데이(하느님의 어린 양)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베토벤이 작곡할 때 성당이 아닌 큰 연주회장에서 공연할 것도 염두에 둬서 대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곡도 베토벤이 청력을 잃은 상태에서 작곡한 것이라서 들을 때마다 숙연합니다.

2009년 8월 20일 목요일

저도 추모곡..


이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소식을 들은 날 제 다이어리 블로그에 올렸었죠..
하루종일 이 곡이 제 머리에서 울렸는데 블로그에 올리고 엄청 울었더랬습니다...




김대중 전대통령의 영면에 드립니다..
절망의 색조에 마음이 몹시 아픕니다... 하지만 진정 아름다운 삶이셨습니다...

[자유]현 정치판에서 "공룡" 정당 쪼개기 전략이란? (상)

(故 William H. Riker 교수님)

약자가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느냐는 시리즈 글 마지막에 한나라당 쪼개기 문제제기를 했었습니다. 현 정치판에서 제1당인 한나라당을, 가만히 있는 공당을 왜 쪼개느냐 마냐는 문제를 던지는가? 라는 의견이 올라올 것으로 기대했는데, 무플의 굴욕을 맛봤습니다. ㅜ.ㅜ 그런 의견에 대한 제 답은, 한나라당은 쪼개질 거리라도 있지만, 다른 정당은 그런 거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다른 정당들은 오히려 연합해야 될 것입니다. 연합할 명분도 있고, 약자이니까요.

1. 호텔링과 블랙: 중위 투표자 정리

1929년에 호텔링(Harold Hotelling)이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에 대한 중요한 정치적 해석을 제시합니다. 두 정당의 정책이 비슷하다는 것이죠. 이 아이디어를 논리적인 공간모형으로 제시한 것이 1948년 블랙(Duncan Black)의 "중위 투표자 정리(Median Voter Theorem)"입니다. 아시듯이, 선거 쟁점 하나(일차원), 단봉(single-peaked) 선호순서를 가진 합리적 유권자들, 정당 혹은 후보자 둘이라는 가정에서 중위 투표자에 더 가까이 가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이긴다는 내용입니다. 호텔링의 해석을 논리적으로 잘 정리한 것이죠.

듀베르제(Maurice Duverger)는 영국 정치를 관찰하여 이 정리가 경험적으로도 말이 된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영국 선거를 살펴보니, 2, 3백만의 중도 성향 유권자가 보수당과 노동당의 선거 승패를 좌지우지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선거에 결정적인(decisive)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죠. 미국 정치에서는 무당파 스윙(independent swing) 유권자라는 존재입니다.

중위 투표자 정리의 기본 가정에도 합리성이 역시 들어갑니다. 유권자의 합리성과 정당/후보자의 합리성이죠. 유권자는 자신의 선호순서에 따라서 효용을 극대화하려고 투표하며, 정당은 표를 더 많이 모으려고 한다는 가정이 들어 있습니다. 이 가정에 의문을 제기한 정치학자가 제 미국 사부님 중 한 분인 故 라이커(William H. Riker) 교수님입니다.

2. 라이커: 최소 승리연합 정리 (The Theorem of Minimum Winning Coaltion)

라이커 교수님은 정당이나 후보가 이길 정도만 표를 모으면 되지, 더 많은 표를 모을 필요는 없다는 매우 중요한 아이디어를 제시합니다. 예컨대 후보자가 둘일 때는 단순과반수만 확보하면 이기므로, 그 이상의 표는 필요 없다는 다른 내용의 합리성을 제시합니다. 표를 모으는 데 비용이 들어간다는, 더 경제학적인 분석입니다. 비용-편익 분석이죠. 경제학의 재정학이나 공공선택 분야에서 이런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학자로 부캐넌(Buchanan)과 툴락(Tullock)이 있다고 합니다. 다음은 라이커 교수님의 최소 승리연합 정리에 대한 설명입니다.

"First he says that the intentional exploitation of the outsiders is maximized when the deciding coalition is as small as possible, but still decisive. Then he predicts that exactly for this reason such minimal coalitions will form."
http://www.mobergpublications.se/arguments/ideology.htm#minimal

조금 살벌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한나라당 예를 들어서 위 인용이 암시하는 바를 살펴보겠습니다.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뒀습니다. 민주주의에서 다수의 지배라고 하면, 과반수만 확보하면 되는데, 과반수를 훨씬 넘는 국회의원을 한나라당이 확보한 것이죠. 그런데 정치판의 이익은 무한한 것이 아니죠. 파이는 일정한데 그것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탐욕"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파이를 나눠 먹을 수 있는 그룹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각자가 챙길 몫은 작아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의 압승은 파이를 챙길 수 있는 국회의원 각자의 이해관계 잣대를 따르면, 그들에게 별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라고 해석하는 것이 라이커 교수님의 최소 승리연합 정리입니다. 효용의 극대화를 이루려면 승리연합이 최소화되어야 하고, 현실에서 그런 양상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미국 정치를 경험적으로 살펴보면 라이커 교수님의 정리는 매우 일리가 있습니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거의 반반으로 의원수를 나눠 갖습니다. 이것이 유권자의 선호순서 때문에 그렇게 된 측면도 있지만, 정치인들의 합리적 효용 극대화 추구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지난 18대 총선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국회의원 숫자는 다다익선이라는, 거의 일당독재를 향하는 정치세계의 냉혹함을 엿볼 수 있는 것이 우리 정치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라이커 교수님의 정리가 우리 정치판에 전혀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정권을 잡고 나면 그 내부에서 항상 권력투쟁이 벌어졌습니다. 이것을 최소 승리연합을 향한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박근혜 씨가 한나라당을 뛰쳐 나가지 않는 이유도 라이커 교수님 정리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정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최소 승리연합 요건에 한나라당이라는 브랜드가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초부터 지금까지 친박계, 친이계라고 하면서 권력투쟁이 있었던 셈이죠. 친이계는 현재 최소 승리연합을 구축하기 위해서, 친박계는 미래 최소 승리연합을 달성하기 위해서 그런 행보를 보여줬다고 저는 봅니다.

이런 구조적 특성 때문에 한나라당은 내부적 요인에 의해서 쪼개질 가능성은 크지 않습니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쪼개지려면 외부의 충격이 가해져야 가능할 것입니다. 어떤 충격이 가능할까요?

3. 정치적 지역주의를 쪼개기

지역주의도 건설적인 것이 있습니다.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리는 전통과 문화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할 수 있죠. 전라남도 담양의 대나무 문화라든지, 경상북도 안동의 하회탈 전통문화 등의 지역주의는 더 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정치적 지역주의는 긍정적인 측면보다는 고질적 병폐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 그 부작용이 심각합니다. 이 글에서 앞으로 지역주의는 정치적 지역주의를 말합니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지역주의 혜택을 받았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이 지역주의를 완화 혹은 극복해야 하는 이유는 자유민주주의 정치에 비이성적인 왜곡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프레시안>에 장문의 기고문을 연속으로 게재한 전북대 박동천 교수는 이 지역주의를 "허위문제"라고 주장했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박 교수의 주장은 지역주의 문제 자체가 정치인들이 만들어낸 괴물이기 때문에,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는 것이죠. 일부 일리가 있지만, 원인이 어디에 있든 현재 우리 정치의 발목을 잡는 "물귀신"이라는 점만 들어도 저로서는 허위가 아닌 진짜 문제입니다. 지역주의 해소를 외치면서 속으로는 딴 주머니를 차는 정치인이 허위이지요. 박 교수도 아마 그런 의미에서 지역주의가 허위라는 주장을 펼쳤을 것으로 봅니다.

한나라당이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지역주의에 기대서 그렇게 많은 의석을 차지했습니다. 물론 참여정부에 대한 실망감, 경제를 살려주겠다는 장밋빛 약속, 뭘 상실했는지 모르지만 하여튼 "잃어버린 10년"이라는 정치적 수사 등도 크게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래도 지역주의 영향이 결코 적지 않았다는 것이 제 소견입니다. 따라서 공룡을 만든 한 원인인 지역주의를 깨면서 한나라당을 쪼개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습니다.

4.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기: 친노 신당?

며칠 전에 드디어 친노 신당의 출범을 알리는 뉴스가 들려왔습니다. 헌법에는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명시하였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은 누구라도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을 규합하여 정당을 만들 수 있죠. 따라서 친노 신당도 노 전 대통령의 유지를 계승한다는 대의명분을 걸고, 전국 정당을 목표로 나아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정치적 결사의 자유를 존중합니다.

대의명분도 좋고, 전국 정당 목표도 좋습니다. 문제는 현재 정치 지형입니다. 야권이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으로 삼분되어 있는데, 신당까지 실제 정치세력으로 작동하면 사분되는 것이죠. 사분오열이라는 표현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선거에서 연합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정리할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재보궐 선거에서 진보신당의 조승수 후보가 선거 연합을 이뤄내서 이긴 것을 보면, 앞으로도 그렇게 하면 되겠다는 판단이 설 수도 있겠죠. 그러나 그런 성공 사례가 얼마나 되며, 그 사례마저도 여러 고비를 넘기면서 힘들게 성사된 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친노 신당이 구색을 갖춘다면 PK 지역에서는 선전할 것입니다.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며, TK 지역과는 원래 정서도 다르다고 평가할 수 있죠. 또한,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PK 지역의 현 정부 지지도가 TK보다 훨씬 낮다고 합니다. 따라서 친노 신당이 제대로 작동하면, 내년 지방 선거나 2012년 총선에서 PK 지역 일부를 한나라당에서 쪼개는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것이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는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죠.

그런데 다른 지역은 어떻게 될까요? 예컨대 서울/경기 지역에서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친노 신당이 전반적인 선거 연합을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야권표가 분산되는 효과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렇게 되면 친노 신당은 전국 정당이 아니고 지역 정당이 되죠.

정치에서는 결과가 중요합니다. 친노 신당에 아무리 좋은 명분과 목표가 있어도, 결과적으로 선출직 당선자가 특정 지역에 몰린다면, 그것은 지역 정당입니다. 특정 정치문화에 따라서 지역 정당이 건설적인 순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연방제를 채택한 나라에서는 그런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같이 지역주의가 이미 심각한 문제인 사례에서 새로운 지역 정당이 생긴다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역주의를 깨는 효과가 설사 있더라도, 또 다른 지역주의를 만드는 것이니까요. 친노 신당이 전국 정당으로 성공하여 제 예측이 빗나가면 좋겠습니다.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서 자신이 괴물이 되면 곤란합니다. 지역주의를 지역주의로 쪼개는 것이 비슷한 이야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 공룡 정당을 쪼개는 다른 방법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음악] 상록수와 광야에서

추모 음악으로 듣겠습니다.


양희은, 상록수


안치환, 광야에서

[단상]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제가 학부 시절 국제법 강의를 들으면서 배웠던 라틴말 구절 중에 Pacta sunt servanda라는 것이 있습니다. 영어로 번역하면 "Promises made should be kept." 혹은 "Pacts should be served." 정도가 될 것입니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는 뜻으로서 국제법에서는 조약 체결의 기본 원칙이 됩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 특히 엘리트(권력, 재력, 지적, 문화)들이 얼마나 그 원칙을 잘 지키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잦습니다. 약속 시간의 예를 들어봅시다. 5명 이상이 모이는 모임이면 정시에 모임에 나가는 것이 일종의 바보 취급받지는 않는지요. 약속한 시간에 나타난 사람은 멍하니 천정을 쳐다보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지요. 10분이 지나면 1명 나타나고, 또 15분이 지나면 1명 나타나는 식은 아닌지요. 늦으면 늦는다고 연락을 취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지요.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요.

술좌석에서 한 약속도 약속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예술인들과의 술좌석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그 모임의 주인공인 화가의 전시회에 장미 100송이를 선물하겠다고 약속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종합정책연구원에서 일했기 때문에 예술 부문도 많이 배워야 했었습니다. 그날 많이 배웠기에 고마워서, 또 예술인들의 애로사항이 많은 것 같아서 서로 돕자는 의미에서 꽃을 선물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입니다. 그 다음 날 고속버스 터미널의 꽃 도매시장에 가서 꽃바구니를 사서 삼청동에 있는 화랑에 제가 직접 전달했습니다. 그 화가는 전화를 걸어와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정도면 제가 비정상입니다. 술좌석에서 지나가는 말로 여겼기 때문에 꽃이 전달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저는 Pacta sunt servanda가 얼마나 중요한 사회 운용의 원칙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약속을 이행했던 것입니다.

Pacta sunt servanda도 있지만 "사정변경의 원칙"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약속이 성립된 당시와 현저하게 다른 사정이 생기면 그 약속은 파기되고 새로운 계약이 성립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정변경을 함부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원래 약속의 본질과 관련된 사정이 뚜렷하게 변경되어야 합니다. 지엽적인 문제를 제기하여 사정변경을 내세워서 약속이행을 못 하겠다고 하면, 그것은 매우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이 됩니다.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서로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됩니다. 신용이 없는 사회가 됩니다. 그러면 서로 견제하게 되고 불편한 하루하루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심하면 서로 싸우게 되지요.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합니다. 돈을 갚는 사람이 큰소리치는 사회가 되면 안됩니다. 갚으면서 빌려줘서 고맙다고 인사하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고리대금업자에게 갚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엘리트는 그 사회에 빚이 많은 사람입니다. 엘리트가 되는 경로에서 수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엘리트는 도움받은 만큼 그 사회에 이바지할 약속을 맺은 것으로 저는 해석합니다. 그렇다면 Pact sunt servanda 원칙에 따라서 그 빚을 갚아야 합니다. 자신보다 더 권력이 많고, 더 재산이 많고, 더 지적인 사람들이 많다는 것만 인식하고 위로만, 위로만 가려고 하면 빚을 갚을 여력이 생기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엘리트들은 자신이 갖춘 능력의 한도 내에서 사회에 빚을 갚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야 진정한 엘리트가 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