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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7일 수요일

[자유] 마키아벨리와 링컨에 대한 평가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04, 원 제목: 링컨의 정치적 조작: 말의 향연 (2)]

(1) 어릴 때 읽었던 링컨 전기

링컨이라고 하면, 일단 저는 어릴 때 김동길 씨가 쓴 링컨 전기가 생각납니다. 서울에서 대학생 큰 형님(저와 10살 차이)이 방학 때 본가로 돌아오시면서, “길아, 자 봐라. 링컨 대통령 이야기다. 읽어봐라. 훌륭한 사람이다.” 하셔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노예해방을 성취한 훌륭한 대통령으로 칭송해놨던 이미지만 흐릿하게 남아 있습니다. 요즘 그 저자께서는 제가 옛날에 읽었던 링컨 대통령 전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언변을 보여주고 계시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그분은 자유주의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반공주의를 자유주의로 등치 하면 반응이 이럴 수 있습니다.), 특정인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는데, 이거 참. 무슨 신념이 그렇게 강하신지... 자유주의자는 극단적인 경우(예컨대,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편입니다.

절대적 선악의 구분도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못 됐다고 평가할 수는 있겠죠. 내가 존재할 자유는 있고, 남이 존재할 자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화시키기에는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죠. 내가 있으면 다른 사람도 당연히 있어야 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물론 권위주의 논리는 다르죠. 권위를 가진 쪽이 없는 쪽을 압박하는 것이니까, 심한 경우에는 너 없어져!라고 할 수도 있겠죠. 실제로 지난 권위주의 정권 때 사라진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삼가 명복을 빕니다. 또한, 생각의 자유는 그 자체 내에서는 신성불가침이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는 남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A를 악이라고 해도, 남은 최후의 한 명은 A를 선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애로우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에서 “Universal Domain”: 어떤 선호도 허용된다.)

여기서 지적 상대주의가 도출됩니다. 그렇습니다. 자유주의는 지적 상대주의를 취합니다. 무엇인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은 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종교가 아닌 세상에서 말입니다. 따라서 링컨 전기를 쓴 그분을 자유주의자로 평가하기는 조금 그렇죠. 아이러니입니다. 그런 분이 자유주의자 링컨 전기를 썼으니까요. 뭐, 그런 자유도 있습니다.^^

(2) 링컨에 대한 거시적, 미시적 평가

경제학을 미시와 거시로 나누는 것처럼, 링컨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나눠보면, 거시적으로는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그런 훌륭한 대통령, 큰 정치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쪼개질 수 있는 위기에서 전쟁도 잘 치렀고, 그 이후 봉합 혹은 통합(이런 경우가 통합입니다.)도 잘 마무리 지었으니까요.

그러나 링컨이 우리가 그냥 귀로 들었던 것 만큼 최고 도덕적 노예해방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노예해방론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제가 나눈 것입니다.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노예해방 전문가는 아닙니다.), 더 해방하자는 쪽과 해방은 하되 백인과의 차별은 이전대로 존속시키자는 쪽이 있었습니다. 전자를 “노예제 철폐론자(Abolitionist)”라고 하고, 후자는 대충 부르십시오.^^ 링컨파로 부르셔도 좋습니다. 뭐, 세세한 역사지식까지 우리가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큰 줄거리만 맞으면 되죠.^^ 예컨대, 링컨은 명시적으로 흑백 결혼을 반대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는 링컨 노예해방의 도덕성은 부풀려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링컨의 정치적 행보를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아는 그런 도덕군자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치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정치인을 도덕으로 평가하는 것은 영 궁합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3) 마키아벨리(Nicolo Machiavelli): 도덕과 정치의 분리

실제로 정치와 도덕은 마키아벨리 이후로 딱 구분해버립니다. 마키아벨리를 근대 정치사상의 시조로 부르기도 하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려면 그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군사적 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여러 소국으로 갈가리 찢겨 있었죠. 따라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국가 전체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그런 살벌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머리 좋은 마키아벨리는 양다리를 걸치게 됩니다. 어떤 다리냐고요? 한쪽은 군주 쪽에 걸치고, 다른 쪽은 공화국 쪽에 걸칩니다. 매우 안전한 처세술이죠.^^ 소국들이 그렇게 많으니 종류도 많을 것 아닙니까? 그 국가들을 크게 분류해보니 군주국 아니면 공화국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책을 양쪽으로 써서 군주국에는 군주론을 갖다 바치고, 공화국에는 공화국론을 갖다 바치는 아주 용이 주도한 머리 돌림을 보여줍니다. 마키아벨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의 분석으로는 마키아벨리는 오히려 공화국을 더 선호했다고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군주론도 적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죠.

기회가 왔습니다. 메디치가에서 “장자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그 유명한 군주론을 쓱 내밉니다. 군주론의 핵심은 "권모술수"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라고 하면 자동으로 권모술수를 떠올리는데, 마키아벨리로서는 많이 억울할 것입니다. 전형적인 부분 발췌 신공이 마키아벨리에게도 적용된 것입니다. 전체 맥락은 차치하고 극히 일정 부분의 표현을 따서 자신에게 덮어씌웠으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정치학계에서는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주의자가 아니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주장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국가가 망하면 군주고 백성이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안보론입니다. 더구나 그 이야기는 세습이 안정된 군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세습이 아직 확고하게 자리를 잡지 못한 신생 군주국에 대한 보신책이었습니다. 즉, 백성에게 조금 세게 대하더라도, 나약하여 남의 나라에 잡아먹히는 그런 경우보다는 훨씬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맞는 말이죠. 전쟁에 져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면, 그 전에 군주가 백성을 아무리 사랑했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정치와 도덕이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도덕은 도덕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따로 분리해서 평가하는 것이 맞다!라는 근대적 주장이 도출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링컨은 근대 이후의 정치가이니 당연히 도덕적 잣대를 그의 정치적 행보에 갖다대면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 정치인이 자신은 착합니다, 좋은 사람입니다, 기타 등등을 공적 자리에서 말하면 믿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배경음악으로 틀어 놓고, 피카소 게르니카 좋지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치인은 정치적 소양이나 이전에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보고 엄하게 다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치가 공금을 만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국민이 세금을 거둬서 줍니다. 공금이죠. 그것을 권위라는 무형의 칼로 이렇게 나눠주고, 저렇게 나눠주는 것이 정치입니다. 따라서 국민이 눈을 싯(!)퍼렇게 뜨고 감시를 잘 하지 않으면, 언제 “in 정치인 포켓”이 될지 모릅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아, 이야기가 또 이렇게 되었네요. 휴~ 링컨 한번 만나기 너무 어렵네요. 하기야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니 배알하기가 쉽겠습니까. 우리가 참아야죠. 내일 계속 이야기합시다. 미안합니다~ ㅋㅋㅋ

후기 1. 제가 인터넷에 찾아보니 라이커 교수님의 그 책이 디지털 자료로 있군요. 관심 있으신 분은 예습하셔도 좋고요. 몇 페이지 안됩니다.^^ http://tinyurl.com/riker-ahn

후기 2. “관습헌법” 좀 가르쳐주세요. 특히 법 쪽에 계신 분들~ 부탁해요. //

댓글 1개:

  1. 영도스키
    (2009/07/04 11:03) 아- 스크롤이 얼마 남지 않았을때의 조급함이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링컨얘기를 다음주 중반 쯤 들었으면 하는 소망도있습니다ㅋㅋㅋ 안박사님 안녕히 주무세요^^

    안병길
    (2009/07/04 11:13) 여기 이제 저녁 7시 막 지났는데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어린이?^^

    미시족
    (2009/07/04 12:26) 아아.. 선배님 글 너무 잘 읽고 있습니다 ㅠㅠ 이거 따로 게시판 드리자고 건의해야 하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계속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관습헌법 저도 궁금합니다 ㅠㅠ 그리고 어떻게 한국에서 유효할수도 있는지요...

    신영기
    (2009/07/04 12:55) 안 박사님, 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침대 맡에서 진도 안나가고 있는 '팀오브라이벌'보다 훨씬 흥미진진합니다. ^^

    안병길
    (2009/07/04 13:06) 미시족님, 외교학과 선배답나요? 미시족님도 제 나이가 되면 이렇게 말이 많아질 것입니다. 따로 게시판, 그 얘기가 나오면 방종이 될 수 있는데...농담임.^^

    신 교수님, 무협지 비슷합니까? ㅎㅎㅎ

    육공자
    (2009/07/04 13:37) 1. 역시 안박사님이십니다. 글을 박사님 만의 필치로 독특하고 흥미롭게 전개하시네요.

    2. UP을 소개해주신 신교수님 안녕하세요~* 마침 권력의 조건을 주문했는데 저도 빨리 읽어봐야 할것 같네요

    3. 훈남 영도스키 시험 보느라 수고했어~*

    소민우
    (2009/07/04 14:15) 관습헌법에 대해서는 다음 월요일날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정리해야 될 것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ㅠㅠ

    안병길
    (2009/07/04 14:19) 육공자님, 어서 오세요. 응원 감사합니다.

    민우씨, 홧팅!

    고고씽
    (2009/07/04 16:36) 글에 대한 관심 척도인 "댓글"남깁니다.ㅎ인터넷 게시글에 댓글 안달리면 좀 서운하지않나요?ㅎ 무플보다 악플이 나을때도 있다는..ㅋ

    5부작정도로 예상되는 링컨의 정치적 조작 계속 기대하겠습니다.ㅎ

    jK.
    (2009/07/04 22:23) 자꾸 무임승차하는 기분이 들어, 남깁니다.

    안박사님의 글 재밌고 배부르게 읽고 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

    안병길
    (2009/07/04 22:48)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소소한 재미있는 얘기 있으면 올려주셔도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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