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12월 31일 목요일

[인사 말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음악] 송구영신

한 해를 보내면서 듣는 음악이 있죠. 대표적으로 베토벤 교향곡 제9번 제4악장의 "Ode to Joy"가 있습니다. 베토벤의 인간승리를 되새기면서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희망으로 출발하자는 의미가 있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지금까지 흔히 들으셨을 테니 생략합니다. ^^

스웨덴에서는 ABBA의 "Happy New Year" 노래를 들으면서 새해를 맞는 경우가 잦다고 하는군요. 스웨덴의 국민가수이니까 당연한 것 같습니다.

Happy New Year (ABBA), This is the version that most people just call: "ABBA around the piano". This video has been shown on many New Years Eve's in Sweden at midnight.

감사하는 마음으로 들으면 숙연해지는 "Amazing Grace"송구영신 음악이죠.

Hayley Westenra's live performance of the heavenly traditional hymn "Amazing Grace", from Anniversary of Welsh Anthem,2006.

그리고 스코틀랜드 민요풍의 "Auld(Old) Lang(Long) Syne(Since)"을 빼놓을 수 없죠.

A girl from the German mountain infantry band and the orchestra of nations. Conductor: Lieutenant Colonel Martin Koetter, Military Tattoo Bremen 2006.

좋지 않았던 일은 훌훌 털어내시고 힘찬 새해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음악]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음악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7/04)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모짜르트 작품 일부를 모았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Mozart Symphony no. 25 k. 183, Wiener Philharmoniker - Karl Bohm
I. Allegro con brio, 교향곡 25번, 1악장


Serenade for Winds, K. 361, 3rd Movement:
Mozart Serenade for 13 Winds - 'Gran Partita'
관악기를 위한 세레나데, "그랑 파르티타"


The Queen of the Night - The great Luciana Serra
오페라 마술피리, "밤의 여왕"


Detlef Roth and Gaële Le Roi perform the Papagena/Papageno duet from "Die Zauberflöte." Also includes the last few lines of Roth's solo before the duet. Paris 2001.
오페라 마술피리, "파파게나/파파게노"


Bow Valley chorus performing Confutatis and Lacrymosa from Mozart's Requiem. 2006
레퀴엠, "콘푸타티스/라크리모사"


Friedrich Gulda playing and conducting Mozart piano concerto n°20 in d minor, K.466, second movement (romance), with Munich Philharmonic Orchestra, 피아노 협주곡 20번, 2악장


조수미, 밤의 여왕

2009년 12월 29일 화요일

[정치경제]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12/03)

"저는 순수합니다. 정치적인 야욕이나 계산이 없습니다. 오로지 나라와 국민을 위해서..."

"필자는 공공복리뿐만 아니라,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국익(국가이익), 공동체 운명, 공익(공공의 이익) 등의 표현을 만나면 일단 의심하게 된다. 국가, 민족, 공동체, 공공 등에는 일정 수 이상의 사람들이 집단을 구성한다는 개념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돌고 도는 전체 선호가 가능하고, 힘있는 집단이 특정 결과를 조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가 유별나게 그런 용어들을 좋아하는 사실을 주목하시기 바란다. 겉으로는 공공을 외치면서 속으로는 사사로운 이익을 좇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볼 만하다."

앞 인용은 모 정치인이 최근 국민과 대화에서 했던 발언이라고 합니다. 그 밑의 인용은 제 책 졸고 제3장 "민주주의" 부분에 나오는 설명입니다. 다음과 같은 주장도 이 게시판에서 했었죠.

"여러분, 정치인이 저는 착합니다, 좋은 사람입니다, 기타 등등을 공적 자리에서 말하면 믿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배경음악으로 틀어 놓고, 피카소 게르니카 좋지예?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치인은 정치적 소양이나 이전에 무엇을 이뤘는지를 보고 엄하게 다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치가 공금을 만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국민이 세금을 거둬서 줍니다. 공금이죠. 그것을 권위라는 무형의 칼로 이렇게 나눠주고, 저렇게 나눠주는 것이 정치입니다. 따라서 국민이 눈을 싯!퍼렇게 뜨고 감시를 잘 하지 않으면, 언제 in 정치인 포켓이 될지 모릅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출처: http://tinyurl.com/lincoln-ahn2

이하 생략입니다.

[음악] 비엔나 신년음악회 2009

작년 연말에 비엔나 신년음악회에 대한 글을 제가 올렸습니다. 시간이 쏜살같이 참 빨리 지나갔습니다. 벌써 1년이 지났군요. 다가오는 새해 첫날에 열릴 2010년 신년음악회 지휘봉은 2008년에 지휘했던 Georges Pretre가 다시 잡는다고 합니다.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한 2009년 "라데츠키 행진곡"을 들어보시죠.


The Radetzky March at the New Year's Concert 2009 in Vienna.
Vienna Philharmonic Orchestra, Conducted by Daniel Barenboim

다음은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천둥 번개 폴카"입니다.



이어서 요한 스트라우스 2세의 형제인 요셉이 작곡한 "천체 음악(Music of the Spheres) 폴카"입니다. 음악회 방송 중에 멋진 겨울 알프스를 소개했군요.



마지막으로 비엔나 신년음악회 약방의 감초인 "푸른 다뉴브 왈츠"입니다. 즐거운 연말을 지내고 계시죠? ^^

[음악] 비엔나 신년음악회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2/26)

새해 첫날 비엔나 필은 오랜 전통의 신년음악회를 엽니다. 오스트리아의 자랑인 아빠/아들 스트라우스의 왈츠, 폴카, 마주르카, 행진곡 등이 주요 레퍼토리로 구성되는 신나는 음악회죠. 2009년 신년음악회는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한다고 하는군요.

저는 이 음악회 TV 중계는 매년 놓치지 않고 봅니다. 능력만 되면 직접 보고 싶은데 능력이 되더라도 1년 전에 표를 신청해야 되고, 그것도 추첨에 당첨되는 행운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 음악회에서 아들 스트라우스의 "푸른 다뉴브 왈츠"와 마지막에 연주되는 아빠 스트라우스의 "라데츠키 행진곡"은 거의 매년 앵콜곡으로 연주되는 레퍼토리입니다. 관중들이 선율에 맞춰 박수를 치면서 새해를 향해 힘차게 행진하는 것 같습니다. 프랑스 지휘자 Pretre의 2008년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된 두 곡을 올립니다.


J. Strauss II, The Blue Danube
Vienna Phil New Year's Concert 2008, Georges Pretre


J. Strauss Sr., Radetzky March
Vienna Phil New Year's Concert 2008, Georges Pretre


J. Strauss Sr., Radetzky March
Vienna Phil New Year's Concert 2007, Zubin Mehta


Tritsch-Tratsch Polka (Ballet)


Sports Polka

[댓글]

김선영
(2008/12/26 15:30) 추첨에 의해 입장할 수 있다면, 그 가격 또한 상당할 것 같습니다 ㅠㅠ

홍두령
(2008/12/26 16:48) 이걸 TV 중계로도 해주는군요. 전 제가 좋아하는 Carlos Kleiber가 지휘한 녹음은 음반으로 구해서 종종 듣곤 하지요. ^^

이번엔 Daniel Barenboim이네요. 전 그 양반은 지휘자보단 피아니스트로 더 인상이 좋은 터라.. 모차르트 후기 협주곡은 참 괜찮았던 것 같습니다. ^^

이준구
(2008/12/26 17:52) 신나는 연주군요. 그런데 역시 서양에서 기원한 음악인지라 그쪽 사람들은 생활의 일부가 되어 있다는 느낌입니다. 불행히도 우리는 영원히 나그네일지도 모르지요.
물론 예술에 국경이 있을 리 없지만요.

신비아
(2008/12/26 20:27) 와~ 종종 올려주시는 안박사님의 이런 자료덕에 소양을 늘리는 기분이에요!^^ 지난번에 디즈니 자료도 추억을 회상하며 너무 재밌게 봤어요^^라데츠키 행진곡에서 pretre가 관객들의 박수와 같이 지휘하는게 너무 인상적이네요.

관객들과 함께 하는 다른 지휘자들의 모습도 가끔 봤지만 이 영상에서 pretre는 관객을 관객이 아닌 오케스트라 한 구성으로 보고 지휘하는 것 같아서 저 공연장에 앉아 있고 싶은 생각을 들게 하네요. 관객이 참여함으로써 작품이 되는 참여미술이 연상되기도 하구요. 클래식에는 문외한이라 좋아하는 지휘자가 아바도와 카라얀 뿐이였는데 오늘 pretre라는 지휘자를 알게되었네요~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안병길
(2008/12/26 22:20) 우리 정서에는 역시 정초에 괭과리, 북, 장구 등을 두들기는 것이 흥이 더 나겠습니다. 직접 보고 들으면서 덩실덩실 춤까지 추면 더 신나죠.

근래에는 유명 지휘자를 매년 바꿔서 신년음악회를 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습니다. 약 10억 명 이상이 시청한다고 하죠. 우리나라도 분명히 중계가 있을 것입니다. 입장료는 찾아보지 않았는데 고가일 것 같습니다.^^ 비엔나 시민에게는 추첨에서 특별할당이 있다고 합니다.

2007년 주빈 메타가 지휘한 라데츠키 행진곡을 참고로 올렸습니다. Pretre 지휘와 차이가 나는 점은 특정 부분에서는 관객들에게 아예 박수를 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Pretre는 강약을 요구했죠.

hugo
(2008/12/27 16:54) 디씨 인사이드 클래식 갤러리에 빈 신년 음악회를 소개한 좋은 글이 있어서 링크해보겠습니다.

http://gall.dcinside.com/list.php?id=classic&no=11453
http://gall.dcinside.com/list.php?id=classic&no=11496

홈페이지 특성상 반말이 사용되지만, 내용은 좋으니 혹여나 기분 나빠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kim
(2008/12/27 19:00) 작곡가,지휘자, 연주자, 저 곳에 있는 열정적인 청중들,그리고 이 음악을 올리신 교수님, 덕분에 들을 수 있는 저희까지 ...잠시 행복함에 젖었습니다. 동서의 경계를 넘어 소리를 통해 아름다운 영혼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안병길
(2008/12/27 23:21) hugo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냈죠? 링크한 글들은 잘 읽었습니다. 비엔나 필 신년음악회의 이런저런 면모를 재미있게 적었네요. 댓글에는 HTML 기능이 없더군요.

Ekim님이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다고 하시니 저도 뿌듯하고 고맙습니다.

hugo
(2008/12/28 13:17) 네. 정말 잘 지냈습니다...^^;; 성적도 꽤 올랐구요. 이게 다 박사님과 교수님, 그리고 이 홈페이지 분들의 은총 덕분입니다 ㅠㅠ)

박정민
(2008/12/28 23:27) 금년 신년음악회 때는 오스트리아-스위스가 공동개최하는 유로컵 기념으로 축구공 복장을 한 무용수(?)들이 끝부분에 나왔던 것같은데, 제 기억이 맞는지 모르겠네요.^^

안병길
(2008/12/29 02:49) Tritsch-Tratsch(잡담) Polka를 연주할 때 축구 흉내 발레를 하는 장면을 방영했죠.

Sports Polka를 연주할 때는 지휘자가 축구공을 들고 입장했고, 악장과 옐로, 레드카드를 서로 교환했죠.^^ 두 동영상을 첨부했습니다.

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송년 특선]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인터뷰 4 (끝)

4. 공부: 프린스턴에서 세부 전공을 정하셨을 때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교수님 네 번째 답변, 2009/01/03]

오늘은 내가 어떻게 재정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씀 드릴 차례군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제 논문은 소득분배이론이고, 어쩌면 응용미시 쪽에 가깝습니다. 다만 H. Rosen, R. Gordon 같은 재정학자들이 second, third advisor 이기 때문에 재정학 전공이라 해도 무방한 점은 있습니다.

원래 Princeton 에 갈 때는 화폐금융론 쪽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달리 그런 것이 아니고 조순 선생님께 배운 학부 화폐금융론의 영향이었습니다. 내가 학부 다닐 때는 솔직히 말해 체제를 갖춘 강의가 몇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거시 같은 중요과목을 가르치는 분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조순 선생님이 가르치신 화폐금융론은 예외적으로 체계가 잘 갖춰진 강의였습니다. 그 강의를 들은 영향으로 나도 화폐금융론을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지요.

Princeton에 가서 정운찬 선배를 만나 화폐금융론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 드리니 똑같은 대학에서 둘이 같은 전공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시더군요. 그 말도 맞는 것 같아 일단 화폐금융론은 전공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대안으로 국제경제학이나 경제발전론을 생각했지 재정학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1학년이 끝나고 여름 방학을 맞아 Musgrave & Musgrave 라는 학부 재정학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으면서 보니 생각 밖으로 재미있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학부 때 재정학 과목을 수강하기는 했지만 흥미는 전혀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2학년 때 선택해야 하는 세 가지 필드 중 하나로 재정학을 선택했지요. 이때 재정학을 전공으로 하려는 결심이 섰던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논문의 main advisor 이신 A. Blinder 교수는 거시가 전공이지만, 학위논문은 소득분배이론으로 쓰셨습니다. 나도 그 분과 소득분배이론 논문을 쓰고선 재정학으로 전공을 바꾼 셈이지요.

나는 재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데 대해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재정학 특유의 training 때문에 다른 경제학자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자화자찬같이 들려서 미안하지만, 내가 쓰는 시평은 다른 경제학자들이 쓰는 것과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그 차이가 바로 재정학의 training을 받았는지의 여부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재정학을 전공하지 않은 경제학자들은 사회후생의 평가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떤 정책을 평가할 때 도대체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이지요.
그 결과 무조건 효율성만 부르짖게 됩니다. 지난 번 종부세 논쟁 때 동료 경제학자에게 수평적 공평성의 개념에 대해 얘기했더니 잘 알아듣지 못하더군요.

나는 재정학이야말로 진정 Gentleman's economics 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교육의 목표가 교양 있는 신사와 숙녀를 양성하는 데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재정학을 반드시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A. Smith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오는 political economy의 정수가 녹아 있는 분야가 바로 재정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요.

재정학은 춥고 배고픈 분야입니다. 요즈음 소위 '뜨는' 분야가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금융이론이라든가 산업조직론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재정학은 공부해 보았자 사회적 수요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춥고 배고픈 분야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에게는 그 점이 재정학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돈과 아무 관계 없이 사회적 관점에서 경제적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의연함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지식인이야말로 이런 즐거움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댓글]

이경훈
(2009/01/03 13:25) 정운찬 선생님께서 선생님 선배셨군요. 프린스턴에서 같이 공부하시고 서울대학에서도 같이 오랫동안 계셨으니 두 분이서 남다르실 것 같아요.

또 미시, 거시 교과서의 대표적인 저자들이라는 공통점도 있군요. 저도 학부 때 두 분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가르치시는 스타일은 약간 다른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무척 꼼꼼하시면서도 대범하신데, 정운찬 선생님은 대범하신 겉과는 다르게 속으로는 꼼꼼한 모습을 느꼈거든요. 이건 제가 선생님들의 수업을 통해 느낀점이니 사실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겠군요.

김규식
(2009/01/03 18:37) 재정학, 올해에는 수강할 수 있게 되겠군요.
올해에는 경제학의 진수들을 마음껏 맛 볼 수 있는 한해가 되겠네요.^^ (하지만 쓰디씀도 같이 맛 볼지도..ㅠ)

안병길
(2009/01/03 22:51) 아, 그런 계기로 우리나라 미시와 거시를 두 분께서 분점?하셨군요.^^ 두 분께서 같은 분야를 전공하지 않으신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학계를 위해서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질문을 드렸을 때 한 쪽 정도의 전체 답변을 해주실 것을 예상했는데, 각 질문에 한 쪽씩 장문을 올려주시니 황송합니다. 선배님의 자상하심에 다시 감복하고 있습니다.

은기환
(2009/01/08 13:03) 아 이렇게 보니 프린스턴에서 정운찬선생님께서 하셨던 말 한마디가 정말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네요. 두 분께서 만약 다른 학교로 가셨더라면 그 결과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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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육: 평소 하셨던 말씀을 참조하면 교육자로서 항상 보람을 느끼시겠지만 가르치시면서 특히 어떤 때 보람을 느끼시는지요? (이 질문은 고리타분하지만 정말 궁금합니다.)

[이 교수님 다섯 번째 답변, 2009/01/06]

4번 질문에 답한 후 한참을 끌었습니다. 공연히 게으름을 피우게 되더군요. 사실 이 질문에 답하기 힘들어 질질 끈 측면도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 났으면 바로 썼을 텐데요. 여러분이 기대하는 대답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1. 잘 따라오지 못하던 학생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가르치는 보람을 느꼈다.
  2. 내가 가르친 제자가 무언가 훌륭한 일을 했을 때 그를 가르친 선생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3. 어떤 학생이 찾아와 내 강의를 듣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대략 이런 유형의 답변을 기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고리타분한 대답은 정말로 재미가 없지요. 그리고 나에게는 여러분들을 졸리게 만들 의사가 전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박사의 마지막 질문이 가장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동문서답을 해보기로 하겠습니다. 내가 왜 가르치는 것을 즐기느냐는 얘기를 해보기로 하지요.



내 연구실을 찾아온 학생들은 잘 알겠지만, 난 대체로 젊은 세대와의 대화를 즐기는 편입니다. 솔직히 말해 젊은 세대의 모든 것을 인정해 주는 너그러운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 세대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많이 이해해 주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젊은이들과의 대화는 나를 즐겁게 만듭니다. 강의실에서도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그래서 강의실 들어가는 게 즐거운 것입니다.

그리고 강의하는 과정이 일종의 창조적 작업이라는 생각에서 강의를 좋아합니다. 나는 강의하러 들어가기 전에 어떤 예를 들어 설명할 것인지를 구상하고 들어갑니다. 최근에 읽은 책, 신문, 최근에 본 TV 프로그램들을 생각해 보면서 그 중 어떤 것을 오늘 강의와 관련 지어 소개할 것인지를 구상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심지어는 어떤 맥락에서 무슨 조크를 할지까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과정이 즐거워지는 거죠.

나보다 젊은 교수들 중에도 강의하고 나오면서 무척 피곤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 볼 때 "앞으로 가르칠 날들이 많은데 벌써부터 저러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듭니다. 최소한 나는 강의하고 나오면서 그렇게 피곤한 적은 없습니다. 한 마디로 강의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난 18년 동안 연구교수가 되지 않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6년에 1년을 연구교수 될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교수가 된 것에 100% 만족하며 삽니다. 적성에 딱 맞는 직업을 찾은 나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지요.

안병길
(2009/01/06 23:31) 우문에 현답이옵니다. 선배님과 같이 교육에 열정과 재미를 항상 느끼시는 교육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강의를 끝내시고 "음, 오늘 강의는 내가 생각해도 잘 됐어"라는 자평을 하시면서 행복해하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선배님처럼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를 즐기시는 스승을 둔 학생들은 정말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촐한 우문들에 성찬을 내려주신 선배님께 다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터뷰 끝.)

[송년 특선]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인터뷰 3

3. 여행: 그동안 여행하신 중에 겪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한 가지만 소개해주세요.

[이 교수님 세 번째 답변, 2009/01/02]



여러분,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 보고 맛있는 것 먹는 게 정말 큰 즐거움이지요.

여행 중 겪은 가장 재미있는 일화는 15년 전쯤 Rome에서의 일입니다. 사회대의 한 교수와 학회 끝난 다음 유럽을 한 열흘쯤 여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Rome는 그 여행의 막바지여서 그 일을 당한 것은 조금 해이해진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때 우리는 이름 없는 레스토랑을 찾았는데, 식사가 의외로 싸고 맛있었습니다. 그때는 이탈리아 식이라면 파스타 한 가지만 먹을 줄 알았지 first dish, second dish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선 풀 코스 요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간에 나온 파스타도 스파게티 봉골레였는데, 늘 토마토 미트 소스만 먹던 촌놈에게는 엄청난 별식이었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Trevi 분수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뒤에서 "Excuse me."라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이탈리아 말 몰라 늘 고생하던 우리에게 영어가 음악과도 같이 아름답게 들리데요. 반가운 마음에 뒤를 돌아 보았더니 두 사람이 "Do you know how to go to Trevi fountain?" 이라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도 거기 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분수로 가는 길에 우리는 통성명도 하고, 몇 마디 대화도 나눴습니다. 한 녀석은 Brazil, 한 녀석은 Saudi Arabia 출신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더군요. 분수에 도착했더니 거긴 완전히 환락의 밤이었습니다. 동전 던지고 술 마시고 한 마디로 난리법석이었습니다. 우리도 동전 던지고 떠들고 했는데, 그 녀석들이 그 동네에 좋은 piano bar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꼬시더군요, 그 분위기에서 아주 그럴듯한 제의였습니다.

나와 동행인 사회대 교수는 술을 엄청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의 여행에서 술 안 먹는 나 때문에 조금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있어 내가 함께 가자고 나섰지요. 그런데 그 녀석들이 말한 피아노 바에 도착하니 "어럽쇼?"였습니다. 젊은 여성들이 로비에 한 무더기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그들이 이끄는 대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더니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여성이 한 명씩 오더니 옆 자리에 앉더군요. 그 녀석들에게 "왠 일이냐?"고 물었더니 어깨만 들썩하데요.

우리는 오렌지 쥬스 두 잔과 진 토닉 두 잔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시키지도 않은 안주가 나오더니 갑자기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동료 교수에게 눈짓해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도중에 샴페인이 또 한 병 터지더군요. 가지 말라고 말리는 그 녀석들을 뿌리치고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술집 녀석들 쉴 새 없이 계산기를 두드려대더군요. 뭘 그리 많이 시켰는지. 계산 금액을 보니 우리 돈으로 25만원 정도가 나왔습니다. 난 오렌지 쥬스 한 모금 마시고 나왔을 뿐인데요.

주머니에 그렇게 많은 현금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우리 카드를 갖고 가더니 결제가 안 되니까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끌어가더군요. 사무실로 끌려 들어가니 떡대 좋은 몇 녀석이 문을 가로막데요. 그러더니 주머니 검사 하고 돈이란 돈은 다 뺏어갔습니다. (이탈리아 돈, 독일 돈, 프랑스 돈 모두요.) 그래도 얼마가 모자라니 남은 돈 어떻게 할 거냐고 다그치더군요. 우리는 호텔에 가면 있으니 그리로 데리고만 가 달라고 애원했지요. 정말로 있느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전화를 걸어 차를 부르더군요. 그걸 타고 호텔로 돌아와 잔금을 치르고 풀려났습니다. 정말로 황당한 경험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두 놈들은 삐끼였구요. (우리가 돈 없어 그 놈들에게 억류 되었다면 삐끼 생활 몇 달 해줘야 풀려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한 가지 위안 거리가 있었습니다. 내 동료 교수가 억울한지 한잠도 못자고 밤새 뒤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자리에 눕자마자 고래처럼 골아떨어지던 사람였는데요. 그 많은 밤들을 그 분 코고는 소리에 잠못 이루고 뒤척이며 살았는데, 그 날만은 그 반대였던 것입니다. 나는 그리 억울하지 않아 잘 잤지만, 그 분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그 날 밤 나는 상쾌하게 자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Every cloud has its silver lining."이란 말이 생각나데요.

ps. 첨부한 Trevi 분수 사진은 지난 여름에 찍은 것입니다.

[댓글]

안병길
(2009/01/02 13:53) 헉, 국제삐끼단에게 당하셨군요. 이번 말씀도 너무 재미있습니다. 15년 전에 25만 원이면 상당한 금액이었을텐데요. 그래도 다치시지 않고 풀려나셔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태리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된다고 들었는데 삐끼까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영도스키
(2009/01/02 13:56) 국제삐끼단ㅠ 글은 재미 있지만, 정말 그 당시에는 화나고 답답하셨을듯해요ㅠ 그래도 아무일 없이 나오셔서 다행입니다ㅠ

이주현
(2009/01/02 15:54) 저도 5년 전에 로마에 가서 트레비 분수를 보고 왔습니다.. 아 그때 유럽이 50년만에 최고의 폭염이라 친구들이랑 사우나 하는 줄 알았습니다. ㅠㅠ 너무 더워서 이태리 일정을 7일에서 5일로 줄이고 대신 스위스에서 2일을 더 보냈었죠^^

그래도 교수님 다치지 않으셔서 천만 다행이예요 ㅠㅠ 저는 친구들이랑 배낭여행가서
후질근하게 하고 다녔더니, 그런 사기꾼들이 접근을 안한 것 같습니다.

이준구
(2009/01/02 17:11) 그 삐끼 녀석들과 일당이 그렇게 포악한 녀석들 같지는 않았어. 그냥 건달패 정도? 몸이 다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네.

[송년 특선]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인터뷰 2

2. 화초 키우기: 키우시는 모든 화초를 아끼시겠지만 그래도 더 정이 가는 소장 화초는 무엇일까요? (텃밭 포함)


[이 교수님 두 번째 답변, 2009/01/01]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사회대 뒤 편의 내 꽃밭에는 수백만원이나 되는 돈이 투입되었습니다. 야생화들의 가격이 상당히 높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비싼 돈을 들여 심어 놓은 꽃들이 계속 수난을 당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무실에서 에어컨을 설치할 때면 실외기를 놓기 위해 사람들이 작업화 바람으로 그 꽃밭으로 들어갑니다. 그 친구들이 들어갔다 오면 꽃밭 일부분이 거의 초토화되다시피 망가집니다. 그 사람들 눈에는 그 비싼 꽃들이 그저 잡초로 보이나 봅니다.

또 한 번은 꽃밭에 도둑이 든 적도 있습니다. 새우란이라고 노란꽃이 피는 난과 식물이 제법 군락을 이루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들어가 몽땅 쓸어간 거였습니다. 사실 그 때가 가장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 사람이 남기고 간 몇 그루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그 때의 화려한 모습은 되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비싼 난과 식물이 몇 개 있는데, 사람들 눈에 띌까봐 어떤 때는 일부러 꽃을 따버리기도 합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들어가 짓밟고 파 가고 하는 일을 당하고 보면 꽃들에게 애착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웬만한 피해가 생겨도 덤덤하게 넘겨 버리려고 노력합니다.

내 연구실에도 화분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에 대해서도 특히 애착을 갖지는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가끔 죽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내가 장기 해외여행을 갔다 오면 하나, 둘 정도가 죽어 있습니다. 누구에게 부탁을 해 두고 가지만, 아무래도 내가 있을 때와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니까 어느 화분이든 특히 애착을 갖지는 않고 그저 살아 있을 때 잘 돌보아 주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한때 난을 기르려고 노력해 본 경험도 있습니다. 난 보러 서초동 화원들을 기웃거리기도 해봤구요. 그러나 난은 워낙 손이 많이 가서 나한테는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은 난 화분이 들어오더라도 잘 기르는 사람에게 주어 버립니다.

아, 우리 집에 있는 화분 중 특히 아끼는 게 하나 있군요. 20년 전 정영일 선생님께서 회초리만한 동백나무를 한 그루 주셨습니다. 동래 본가에 큰 동백나무가 있는데 씨가 떨어져 그 밑에서 자란 묘목이라고 하시더군요. 그게 20년 동안 자라 이젠 제법 큰 나무가 되었습니다. 그건 우리 재래종 동백이라 화원에서 파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꽃이 예쁩니다. (사진 참조)

화원에는 파는 것은 대부분 꽃이 겹인 일본산입니다. 꽃이 홑으로 피는 우리나라 토종 동백은 구하기가 무척 힙들답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새우란 군락이 가장 아쉬운 녀석들입니다. 현재 제일 아끼는 것은 바로 이 동백나무일 것 같군요.

[댓글]

안병길
(2009/01/01 16:26) 귀한 동백꽃 사진이 따끈따끈합니다. (파일 기록으로는 어제 촬영하신 것으로 나옵니다.) 선배님께서 20년이나 정성을 들이셨으니 애지중지 자식과 다르지 않겠습니다. 저희 집 마당에도 작은 동백꽃이 몇 그루 있는데, 말씀대로 겹꽃인 일본산입니다. 예쁜 토종 꽃을 구경시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식물들을 무단으로 가져가는 사람들의 심보는 도대체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라는 식물들을 볼 때마다 "공짜"라는 뿌듯한 마음일까요? 정상적이라면 볼 때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될텐데요...

은기환
(2009/01/08 13:08) 동심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가 화초기르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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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안병길, 2009/01/02]



오늘 촬영했습니다.^^ 교수님께서 보여주신 토종 동백꽃과 비교해보면 다른 종류 꽃처럼 보입니다. 교수님 사진에 비하면 조야합니다. 프로와 아마츄어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ㅜ.ㅜ

이준구
(2009/01/02 11:32) 안박사 댁 동백꽃도 꽤 예쁘네요. 그런데 일본의 겹동백들도 원산지는 한국이라는 설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때 울산 부근에서 다섯 가지 색의 동백도 채귀해 갔다나요? 정확한 것은 잘 모르지만요.

2009년 12월 27일 일요일

[송년 특선]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인터뷰 1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시경제학자인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은 언론의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으시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래는 작년 12월 27일 이 교수님 게시판에 제가 송년 특선 서면 인터뷰를 요청한 글입니다. 이 교수님은 다섯 번에 걸쳐서 제 질문에 친절하게 답해 주셨습니다. 이 교수님께 다시 감사드립니다.)


(사진 설명: 올해 여름에 이 교수님께서 파리에 가셨을 때 Monet가 수련 연작을 그렸다는 Giverny에서 마련하신 인증샷, 출처: 이 교수님 홈페이지 http://jkl123.com/)

올해를 보내면서 교수님께 여쭤보고 싶은 것을 "특선"으로 생각해봤습니다. 여러 훌륭한 글들을 통해서 교수님의 고견을 일부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남아 있는 호기심이 있어서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여러분도 여쭤보고 싶은 "특선" 질문을 댓글로 올리시면 교수님께서 비답을 내려주시겠죠?

  1. 테니스: 지금까지 함께 운동하신 테니스 친구 중에서 제일 "강적"이라고 느끼셨던 경우와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2. 화초 키우기: 키우시는 모든 화초를 아끼시겠지만 그래도 더 정이 가는 소장 화초는 무엇일까요? (텃밭 포함)
  3. 여행: 그동안 여행하신 중에 겪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한 가지만 소개해주세요.
  4. 공부: 프린스턴에서 세부 전공을 정하셨을 때 어떤 동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5. 교육: 평소 하셨던 말씀을 참조하면 교육자로서 항상 보람을 느끼시겠지만 가르치시면서 특히 어떤 때 보람을 느끼시는지요? (이 질문은 고리타분하지만 정말 궁금합니다.) 
일종의 서면 인터뷰가 되었네요.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은 거절하시지만, 이 정도 인터뷰는 허락하실 것으로 기대합니다.^^

[댓글]

이준구
(2008/12/28 09:02) 비행기를 타기 직전이라 자세한 답변을 할 수 없습니다. 다른 질문과 함께 수요일에 올려 드리겠습니다. 안박사의 인터뷰 요청을 받아 영광입니다.

안병길
(2008/12/28 09:52) 선배님, 대단히 감사합니다. 잘 다녀오세요!

김선영
(2008/12/28 10:32) 교수님의 인터뷰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특히 내년에 학교에서 체육실기로 테니스를 수강할 예정이라서 1번 답이 특히 궁금합니다~테니스 초보자가 라켓 고르는 법도 추가로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

오키프
(2008/12/28 20:59) 선생님, 또 여행가시는거에요? 와~~잘다녀오세요. 그리구 전 4번 답변이 기대됩니다.


[이 교수님 첫 번째 답변, 2008/12/31]

이제 돌아 왔으니 약속대로 안박사 인터뷰에 응하기로 하겠습니다. 답변에 앞서 안박사 같은 고명하신 분과 인터뷰하는 것을 무상의 영광으로 안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오늘은 테니스에 대한 얘기로 시작해 볼까 합니다.

제가 가장 강적으로 생각하는 상대는 역시 이지순 교수지요. 솔직히 말해 이 교수의 테니스 실력이 두려운 것은 아닙니다. 내가 두려워 하는 것은 욕심 내지 않고 공을 되넘기는 그 참을성입니다. 나는 성질이 조금 급한 편입니다. 그래서 공이 몇 번 왔다갔다 하면 이내 참지 못하고 공을 후려쳐 버립니다. 나 같은 하수의 경우 그런 볼의 성공률은 낮을 수밖에 없구요. 내가 공을 날려버렸을 때 이 교수 얼굴에 스쳐가는 미소는 정말로 얄밉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내가 내 성질 통제하지 못해 자충수를 둔 것인데요.

그렇지만 나는 승부를 떠나 플레이 그 자체를 즐긴다는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승리를 위해 공을 살짝살짝 넘기는 것은 사나이 답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화려한 자폭의 길을 선택하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입니다. 이런 나를 제물로 삼는 이 교수가 짓궂은 사람이지요.

그런데 요즈음 이 교수는 테니스를 끊었습니다. 무슨 이유인지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아 납득이 안 가지만, 아무리 꼬여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한때 경제학부에는 총 8명의 테니스 선수들이 있었습니다. 두 팀을 만들어 플레이한 적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하나 둘 떠나고 나니 이제 류근관 교수와 나 단 둘만 남았습니다. 류 교수는 A조라 B조인 나와 함께 칠 기회가 적습니다. 이제는 인문대 교수들과 주로 치지요.

몇 년 전 내가 사회대 테니스회 회장으로 있을 때 회원 부족으로 인해 더 이상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회비 백만원 정도 남은 것을 인문대 테니스회에 헌납하고 남은 사회대 회원을 그쪽으로 편입시켰습니다. 더부살이를 시작한 셈이지요.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현실이 그러니 어쩔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테니스 어떻게 하면 잘 칠 수 있는지 물었던 것 같은데요. 내 철학은 잘 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늘 즐거운 마음으로 테니스 즐기시기 바랍니다.

[댓글]

와사비
(2008/12/31 23:15) 사나이는 강스트로크라고 예전에 저두 생각했었어요. 네트에 닿을락말락하면서 고속으로 날아가는 볼 진짜 멋있어요.

교수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안병길
(2008/12/31 23:45) 선배님께서 저를 비행기 태우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무한한 영광이며, 재미있는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지순 교수님이 멋진 로빙을 띄우시던 모습이 언뜻 생각납니다.^^

92년인지, 93년인지 스탠포드에서 류 선배와 단식을 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저는 학위논문을 마무리지으려 스탠포드를 방문 중이었고, 류 선배는 UCLA에 재직 중이었는데 잠깐 모교를 방문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매년 열렸던 스탠포드-버클리 한국 학생 테니스 정기전에 류 선배도 참가했고, 저는 스탠포드 학생도 아니었지만 평소 자주 교류를 한 경력이 인정되어서 참가할 수 있었습니다. 스탠포드가 완패한 다음, 류 선배가 저에게 단식을 한 게임 하자고 제안하시더군요. 실력 차가 엄청나게 있었지만 영광으로 여기고 단식에 임했습니다. 영패는 아니었지만 결과는 제가 "떡 실신" 했습니다.^^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류 선배는 발이 굉장히 빠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스토로크의 정확성과 힘도 대단했구요.

강 스트로크라면 이창용 교수도 뺄 수 없겠습니다. 로체스터에서 저와 테니스를 칠 때면 테니스 코트 바닥을 부수는 식으로 쳐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서울대로 직장을 옮긴 다음에는 테니스를 즐기는 것 같지 않더군요. 요즘은 바빠서 아무 운동도 못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아래 선영님이 초보자의 테니스 라켓 선택에 관한 질문을 올렸는데, 헤드/그립 사이즈, 라켓 무게, 스트링 텐션 등이 자신에게 맞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선배님께서 한 말씀 해주시면 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이준구
(2009/01/01 09:38) 류 교수는 요즈음 실력이 더 늘었습니다. 프로 선수 지도까지 받는 모양입니다. 그 친구 운동 잘 하려는 욕심은 언제까지 버리지 않고 있으려나 궁금합니다. 타고난 천성인가 봐요. 내가 여기 처음 왔을 때 류 교수가 조교 일을 하고 있었지요. 그때 경영대와 농구시합을 했는데, 류 교수가 볼을 치고 가면 모두들 도망가더라구요. 부딪쳐 봐야 자기만 손해날 것 같으니까요.

이창용 교수는 강스트로크 때문에 나한테 맞을 뻔 했답니다. 1984년 여름 이 교수가 Harvard로 가기 직전이었습니다. 대학원생들 하고 테니스를 치는데, 옆에서 보고 있던 이 교수가 자기도 쳐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그러더니 첫 번째 공을 하늘로 날려 보내더니 안 치겠다고 자리를 뜨데요. 그 태도가 불손해서 불러다가 한 대 때려 주려 했답니다. 덩치가 워낙 커서 조금 겁이 났지만 교수가 때리면 맞아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때 참기를 잘 했습니다. 만약 구타라도 했다면 경제학원론 공저를 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선영군, 글씨 잘 못 쓰는 사람이 붓타박 한다는 말을 생각하게. 라켓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얘기일세. 요즈음은 웬만한 라켓은 모두 괜찮다네. 그립은 예전에는 가능한 한 큰 것을 쓰리고 했는데, 요즈음은 편하게 가느다란 것을 쓰는 것으로 교리가 바뀌었다네. 그리고 스트링 텐션은 강하게 묶으면 컨트롤이 잘 되고, 약하게 묶으면 파워가 강해지는 점이 있지만 그것도 애매한 점이네. 그래서 난 늘 중간 정도로 맨다네. 테니스 오래 치다 보면 저절로 무엇이 좋은지 알게 되니 미리 알려고 할 필요가 없다네.

안병길
(2009/01/01 09:58) 선배님 말씀이 너무 재미있어서 뒤로 자빠질 뻔 했습니다. 이창용 교수가 홈런쳤던 모습이 머리 속에 쉽게 그려집니다. 그런데 선배님 앞에서 그 때 이 교수의 간이 몸 밖으로 나왔었군요.^^

이주현
(2009/01/01 21:30) 이창용 교수님 구타미수사건은 너무 재밌는데요?? ^^

류근관 교수님께서는 그 유명한 HOBAS(중앙 농구 동아리; 스펠이 맞는지.. ㅋ) 출신이시라는 이야기를 익히 들었습니다. 역시 테니스도 잘치시는군요..

james
(2009/01/04 16:06) 예전에 류근관 교수님이 자기랑 테니스 쳐서 이기면 A 주겠다는 말씀이 생각나네요 ^^;

궁금한게 있는 데 류근관 교수님과 이준구 교수님 중에선 누가 테니스 더 잘 치시나요 ^^;;;;

[음악] 중저음의 매력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26)

음악감상을 좋아한다고 말하면, "무슨 곡을 가장 좋아하시나요?"라는 대략난감 형 질문을 받을 때가 제법 있습니다. 그 많은 음악 중에 한두 개를 골라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한순구 교수님 게시판을 보니, 우스개로 무슨 전문가로 만들어주겠다는 시리즈가 있더군요. 경제학은 아담 스미스와 케인즈를 꼽아서는 안 된다, 클래식 음악 지휘자는 카라얀과 번스타인을 꼽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을 읽고 한참 웃었습니다.

저는 우연한 기회에 그런 대략난감 질문에 저만의 답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베토벤이나 모짜르트는 안 되죠. 바하나 헨델도 조금 위험합니다. 폼을 잡으려면 말이죠. ^^ 베버라는 작곡가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가장 좋아한다고 하면, 왠지 있어 보이는 것 같지 않습니까? ㅋ

협주곡이 보통 3 혹은 4악장으로 구성되는데, 느린 2악장을 먼저 사귀기는 어렵더군요. 제 경험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클라리넷이라는 악기의 매력인 중저음은 2악장이 가장 어울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더 빠르고 경쾌한 다른 악장보다 클라리넷 협주곡 2악장이 저에게는 더 매력적입니다. 기분을 착 깔아 앉히면서 소소한 행복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일요일 아침에 베버와 모짜르트(아! 포스가 약간 줄어듭니다.^^) 2악장을 한번 들어보시죠. 커피나 차를 곁들이면 더 좋습니다.


Weber, concert n. 1. (II mov. Adagio) Calogero Palermo clarinet
Calogero Palermo plays Carl Maria Von Weber, concerto n° 1 in fa minore per clarinetto e orchestra op. 73 - Adagio


Andrew Marriner plays Mozart clarinet concerto - II. Adagio
London Symphony Orchestra (chamber)


Kanon Matsuda @ 10 y.o. playing "Invitation to the Dance", Op.65 by C. von Weber. November 2006, International Young Musicians' TV Contest "Nutcracker"

2009년 12월 26일 토요일

[잡담] TV 단상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26)


(저는 특정 방송본부와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1. NOVA

제가 가장 즐기는 TV 프로그램이 미국 공영방송인 PBS에서 매주 화요일에 방영되는 NOVA입니다. 어제는 뉴턴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를 방영했는데요, 그 숨겨진 이야기를 처음으로 파헤친 인물이 경제학자 케인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뉴턴이 "연금술"과 "비정통" 종교주의에도 심취했다는 "어두운 쪽" 이야기였습니다.

http://www.pbs.org/wgbh/nova/newton/
http://www-groups.dcs.st-and.ac.uk/~history/Extras/Keynes_Newton.html

2. 드라마 이산의 명대사

"사람의 마음은 사람으로 채워야지, 그림으로 채울 수 있겠나..."
화원 송연에게 던져준 음담 선생의 화두.

3. 연기 잘하는 배우

드라마 대장금에서 의녀 장금의 스승 의녀 장덕 역의 김여진은 S 방송본부의 토지에도 출연했고, 현재 방영되고 있는 이산에서는 정순왕후 역으로 나옵니다. 볼 때마다 연기를 잘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특히 토지에 강청댁 역으로 출연했을 때, 완벽한 사투리 구사와 함께 보여준 온몸 연기는 인상 깊었습니다. 찾아보니 영화 박하사탕에도 출연했다고 하는군요. 기억이 나지 않네요. 박하사탕을 구해서 다시 봐야겠습니다.

[수필] 백 교수님, 슈퍼 화산, 그리고 청춘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6/19)

(그림 출처: 백주영 교수 이전 홈페이지)

1. 음대 백주영 교수님

서울대 음대 기악과(바이올린) 백 교수님을 2002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 당시에는 미국에서 촉망받는 연주가로서 막 알려지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자원봉사자로서 Korean-American Music Supporters' Association을 돕고 있었는데, 그 단체에서 백 교수님을 초청하여 서부지역 데뷔 리사이틀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었습니다. 연주도 훌륭했고, 성품이 털털해서 인상 깊었는데, 나중에 서울대 음대로 가시더군요.

인터넷을 보니 일본 NHK 측에서 백 교수님을 솔리스트로 초청했다는 기사가 보이네요. 본인으로서도 영광이고 서울대를 알리는 기회도 되겠습니다. 백 교수님의 좋은 연주를 기대해봅니다. (연주 동영상이 있으면 올리려 했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

2. 슈퍼 화산

어제 PBS 과학 프로그램 NOVA는 슈퍼(메가) 화산에 대한 과학자들의 탐구를 보여줬습니다. 그중에서 제 관심을 끌었던 것은 미국 국립공원 1호인 옐로스톤 국립공원이었습니다. 대부분 와이오밍 주에 있고 몬태나 주와 아이다호 주에 걸쳐 있는 옐로스톤은 수많은 간헐천(geyser)을 포함한 특유의 화산 지형으로 유명합니다. 장대한 폭포, 넓은 산정호수와 함께 다양한 동식물도 관찰할 수 있는 천혜의 국립공원입니다. 그 지역이 슈퍼 화산 폭발로 형성되었는데, 연구에 의하면 60만 년 주기로 폭발한다는군요.

문제는 지난 폭발 이후 이미 60만 년이 지났답니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것이죠. 슈퍼이기 때문에 폭발하면 화산재가 미국 대부분을 뒤덮는다고 합니다. 그럼, 제가 사는 캘리포니아도? 지진도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데, 화산까지??? 한국에 계신 여러분이 부럽습니다. ㅠ.ㅠ


3. 청춘은 아름다워라

아래의 청춘 사업 얘기들을 읽으면서 청춘은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음, 일부 예비역 아저씨들도 있으니 청춘이라고 얘기하기가 그런가요? 결혼도 안 했고, 중년도 아니니 그 아저씨들도 청춘은 청춘이죠. 장마철에 우산 밑에서 나란히 같이 걸어갈 짝을 빨리빨리 구하시길... 비 맞지 않으려면 두 사람이 찰싹 들러붙어야 될 겁니다. ㅎㅎㅎ 아름다운 청춘의 한 삽화를 그려보시길 바래요.

그런 의미에서 노래 한 곡... Let it be me...


Everly Brothers, Let it be me
The song the Everlys always end their concerts with, the lovely french song, Let it be me, is the last in this group of videos.

I bless the day I found you.
I want to stay around you .
And so I beg you,
Let it be me.

Don't take this heaven from one.
If you must cling to someone.
Now and forever,
let it be me.

Each time we meet love,
I find complete love.
Without your sweet love,
what would life be.

So never leave me lonely.
Tell me you'll love me only.
And that you'll always
let it be me.

So never leave me lonely.
Tell me you'll love me only.
And that you'll always
let it be me.

2009년 12월 25일 금요일

[수필] 여성 지배와 섹스는 평화로 가는 길인가?

지난 화요일 PBS의 NOVA 프로그램 "The Last Great Ape (http://www.pbs.org/wgbh/nova/bonobos/)" 에서는 보노보(Bonobo) 원숭이를 다뤘습니다. 침팬지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전혀 다른 행태를 보여주는 보노보 원숭이는 그동안 동물학자들의 귀중한 연구 대상이었던 모양입니다. 

보노보 원숭이는 섹스를 밥 먹듯이 한다고 합니다. 인간으로 치면 악수하는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섹스를 자주 하는지 짐작할 수 있죠. 그들은 서로 심하게 싸우지 않는 특성도 있다고 합니다. 섹스할 시간도 모자라는데 다툴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상대적으로 싸움을 더 많이 하는 침팬지를 비웃는 것 같기도 합니다. ^^

인간처럼 꼬리가 없는 영장류 원숭이는 오랑우탄, 보노보, 침팬지, 그리고 고릴라가 있습니다. 모두 같은 조상에서 진화했다고 하는군요. 그 다섯을 비교한 내용을 표로 정리해봤습니다.
(출처:  http://www.pbs.org/wgbh/nova/bonobos/primate.html)


 오랑우탄
인간 
보노보
 침팬지
 고릴라
개체수 (2006)
 약 55,000
65억 이상
 2만 ~ 5만
 약 20만
 약 10만
수명
 약 35년 (야생)
약 65년
 약 40년 (야생)
 약 40년 (야생)
 약 35년 (야생)
사회성
수컷 어른은 혼자 생활하면서 짝짓기 때에만 암컷과 교류, 암컷과 자식들은 수컷의 영역에서 느슨한 집단을 형성함. 
영장류 중 가장 다양한 사회성, 혼자 살기도 하고 가족이나 집단을 이루기도 함.
약 200마리까지 집단을 형성해서 생활함.
약 150마리까지 집단을 형성해서 생활, 수컷이 우위인 위계질서
 수컷 한 마리가 암컷과 자식을 20 마리까지 거느림.
누가 지배하나?
 각 영역의 수컷 한 마리
상황에 따라 다름. 
암컷이 집단적으로
수컷
 수컷
섹스 행태
짝짓기 시즌에 매일 섹스하면서 20일까지 암컷과 같이 지냄.
다양함. 괘락으로 자주 하지만 보노보보다는 적은 사회적 기능을 수행함. 
모든 연령대에서 다양하게 이뤄짐, 암-수, 수-수, 암-암 등, 섹스는 단순한 인사부터 갈등 해소까지 다양한 사회 기능이 있음,  
우월적인 수컷과 발정기 암컷이 다른 침팬지와는 따로 짝짓기, 난교도 관찰됨
다른 영장류에 비해서 섹스 횟수가 적음. 
성질
대체로 나무 위에서 홀로 살아감, 영역 다툼이 심할 수 있음.
오랑우탄처럼 영역지향적, 고릴라/보노보처럼 평화적, 침팬지처럼 전쟁광적
 대체로 평화적임 (섹스 때문인 듯)
왕왕 평화적이고 협력적이지만 수컷이 연합을 이뤄 인근 침팬지를 죽이기도 함 ("전쟁")
건드리지 않으면 전형적으로 평화적임.
식성
 주로 과일, 가끔 잎, 나무 껍질, 작은 포유류 등 
스시, 피자, 부리토 등 먹을 수 있는 것 대부분
 과일, 잎, 버슷, 작은 동물(원숭이는 절대 먹지 않음)
 과일, 잎, 꽃, 가끔 작은 동물(원숭이 포함)
 주로 잎, 새순, 과일, 줄기를 먹으며 가끔 벌레와 썩운 나무



학자들은 네 영장류 원숭이의 특성이 인간에 모두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모양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보노보의 존재는 인간의 평화적 특성을 보여주는 본보기로서 매우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 같습니다.

인간도 보노보처럼 여성이 지배하고 섹스를 더 많이 하면 더 평화적으로 될까요? ^^

2009년 12월 24일 목요일

[음악] 겨울 낭만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2/24)


Jose Feliciano - Feliz Navidad


겨울연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김범수, 보고 싶다

2009년 12월 22일 화요일

[정치] 미국 의료보험 개혁: 필리버스터(Filibuster)와 클로쳐(Cloture)

미국 연방 상원에서 동부 시간으로 21일 월요일 새벽 1시에 중요한 표결이 있었습니다. 클로쳐(Cloture) 혹은 Closure라는 표결인데, 법안 통과를 지연하는 필리버스터를 못하도록 하는 표결입니다. 지난 대선과 함께 치러진 일부 연방 상원의원 선거에서 관심의 초점은 민주당이 클로쳐를 할 수 있는 최소 의석인 60석을 확보하느냐 마느냐 여부였습니다. 60표 이상을 얻어야 필리버스터를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8년 선거 결과, 민주당 상원 의석은 57석, 공화당은 41석, 그리고 나머지 2석이 무당파로 판가름났습니다. 무당파 상원의원 두 명은 민주당에 가깝워서 결국 민주당 쪽이 59석, 공화당이 41석을 확보한 것으로 보였습니다. 클로쳐 최소 기준에 한 표가 모자란 의석 분포였죠. 그런데 미네소타 선거 재검표에서 당선자가 번복되어 결국 민주당 쪽이 상원에서 60석을 확보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클로쳐가 항상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특히 민주당은 이념 스펙트럼이 넓어서 특정 안건에 따라서 민주당 쪽에서는 다양한 입장이 표출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두 명의 무당파 상원의원까지 있으니 클로쳐는 현실적으로 상당히 어려운 것이죠.

오바마가 추진하는 의료보험 개혁 관련 법안이 하원에서 통과되었고, 현재 상원에서는 관련 상원 법안이 통과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민주당은 크리스마스 휴가가 시작되기 전에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스케쥴을 잡았는데, 그렇게 하려면 21일 월요일 새벽까지는 클로쳐를 성사시켜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례적으로 새벽 1시에 클로쳐 표결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60 대 40으로 클로쳐가 성공했습니다. 따라서 남은 절차를 거쳐서 민주당의 스케쥴에 맞춰 상원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오바마 의료보험 개혁에 대한 공화당 상원의원 40명의 반대는 확고하지만, 민주당 쪽은 상원의원에 따라서 미묘한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예컨대, 코네티컷 주 무당파 상원의원인 조 리버만은 그동안 민주당 주도 의료보험 개혁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애매한 견해를 흘렸죠. 그래서 클로쳐 60표를 얻기 어렵다는 관망도 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클로쳐가 성공함으로써 하원에서 관련 법안이 통과된 것과 같은 오바마의 정치적 승리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이제 남은 숙제는 의료 개혁 관련 상원 법안과 하원 법안의 차이를 어떻게 조정하느냐는 어려운 문제입니다. 상원 법안은 상대적으로 그 개혁 강도가 약합니다. 상원이 하원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보수적이죠. 미국 의회가 지혜롭게 잘 움직여서 엉망진창인 현행 의료보험 제도를 혁파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Cloture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정치] 사회통합위원회 출범

고건 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회통합위원회가 23일 출범한다는 뉴스를 읽고 참여정부 초기의 일이 생각났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치개혁연구실 활동을 끝내고 캘리포니아 집에 돌아왔는데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출범 예정이었던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프로젝트 검토를 요청했다. 그 주제가 "사회통합"이었다.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아이디어였다.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렀던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을 탈피하는 와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사회갈등을 어떻게 완화 혹은 극복할 것인지 고민한 것이었다. 아주 기초적인 방안도 있었는데, 16개 시도를 대표하는 특정 수의 명망 있는 인사들로 구성하는 국가 원로원과 비슷한 조직 제안도 포함하고 있었다. 새로 출범하는 사회통합위원회도 지역을 안배한다고 하니 비슷한 아이디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미국 의회의 상원은 영어로 Senate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원로원을 뜻한다. 2003년에 나는 그 프로젝트가 오히려 사회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정부에서 추진하지 말 것을 건의했다. 왜냐하면, 그 조직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원로원 격인 상원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단원제인 우리 국회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원로원을 추진하는 과정에 국회와 정부가 맞서는 모양새가 될 것이며, 사회통합은 물론이고 사회협력도 아닌 불협화음이 생길 여지가 크다고 봤다. 

우리 사회가 과연 통합이 더 필요한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표적인 레토릭이 몇 개 있는데, 약방의 감초처럼 통합도 자주 등장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구호를 연상시키는 이 통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 통합이라는 정치 구호를 주장하는 것은 남북통일에나 적용하는 것이 옳다. 남한만 국한한다면 이미 통합된 사회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미 통합된 사회에서 무엇을 더 통합하자고 주장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만약 사회통합위원회의 통합이 여러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을 뜻한다면 그것은 사회협력이지 통합이 아니다. 굳이 통합이라는 용어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정치인이나 정당이 "공동체" 개념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뭔지는 몰라도 개인이 아닌, 전체를 위하는 것이 더 옳다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토양에서 출발하여 공공/국가/전체 이익을 추구해야지, 막무가내로 공동의 이익을 주장하면 그것이 다수 이익이 아니라 소수 이익으로 귀결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새로 출범하는 사회통합위원회는 각각 다른 이해관계가 우리 사회에서 표출될 수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제 사회세력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확보할 것은 충분히 확보하는 사회협력을 목표로 제대로 기능을 하기 바란다.  그 권위가 인정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지만, 내 희망사항이다.

관련 글:
[정치] 통합과 협력
[정치] 참여정부에 대한 이런저런 추억거리

2009년 12월 19일 토요일

[음악] 비제 오페라 카르멘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11/15)

프랑스 작곡가 비제(G. Bizet)는 1875년 37살에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마지막 오페라가 집시 여성이 주인공인 "카르멘(Carmen)"입니다. 줄거리는 간단합니다. 자유연애를 추구하는 여주인공 카르멘, 그녀와 사랑을 나누는 군인 호세가 있는데, 카르멘은 호세에게 싫증 내면서 인기 투우사 에스카미요에 마음이 끌립니다. 호세는 카르멘의 마음을 돌리려고 노력하지만 카르멘은 듣지 않고, 결국 호세가 카르멘을 죽입니다.

배경은 스페인 남부 지역이고, 불어로 작곡되었습니다. 초연은 프랑스 파리에서 했지만, 그 당시로는 소재가 조금 유달라서인지 큰 호응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그 와중에 비제는 유명을 달리했고, 따라서 안타깝게도 카르멘의 대성공을 생전에 보지는 못했습니다.

먼저 전주곡을 들어보시죠. 1997년 아바도가 지휘한 베를린 필 하모닉입니다.



카르멘이 매혹적으로 부르는 "하바네라"가 유명하죠. 마리아 칼라스가 1962년에 부른 것과 Agnes Baltsa가 James Levine이 지휘한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단과 함께 부른 동영상입니다.


Maria Callas sings Habanera in Covent Garden 1962.


Agnes Baltsa, Jose Carreras, Samuel Ramey, Leona Mitchell;
Metropolitan Opera Orchestra and Metropolitan Opera Chorus,
Conductor: James Levine

사라사테는 비제 카르멘의 주선율을 모아서 "카르멘 환상곡"을 작곡했습니다. 장영주가 어렸을 때 영국에서 연주한 동영상(part 2/2)입니다.



오페라 카르멘에 대한 자세한 해설은 다음 링크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주말을 보내세요~

비제 오페라 카르멘 해설

[공지] Season's Greetings!


Merry Christmas and a Happy New Year!
연말연시 댁내에 행복이 깃들길 빕니다!

2009년 12월 16일 수요일

[사진] 네이버 블로그에 올린 사진들

구글 블로그가 사진을 정리하기에는 매우 불편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싸이에 있는 사진첩에(http://cyworld.com/ahnbg) 사진을 올렸는데, 앞으로는 네이버 블로그에 정리하려고 합니다. 다음은 최근에 올린 사진 목록입니다. 클릭하시면 연결됩니다.

[수필] 클래식 음악과 나

나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들었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어린 생각이었지만 다양한 교양을 갖추는 것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되리라 판단하여 클래식 음악을 듣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이후 클래식 음악은 나의 편한 친구가 되었다.

클래식 음악은 처음에는 가까이하기가 조금 어렵지만, 자꾸 반복해서 들으면 그 맛이 더 우러난다고 생각한다. 내가 종합적으로 좋아하는 작곡가는 베토벤과 모짜르트이다. 베토벤은 중후한 멋이 있고 모짜르트는 역시 천재성이 엿보이면서 경쾌함이 멋이 있다. 개별적인 곡으로는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과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좋아한다. 베버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제2악장은 날씨가 흐릴 때 들으면 그 정취가 더 배어난다고 할 수 있다. 구노의 파우스트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오페라 전체의 곡들이 보석과 같다는 느낌을 항상 받았다. (아래는 오페라에 나오는 "보석의 노래" 아리아임.)


Angela Gheorghiu "Oh Dieu! que de bijoux" Faust (2004)

1980년 대학교 1학년 때 5.18이 일어나 휴교하자 나는 일찍 고향으로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5월 17일에는 누님댁에서 잤는데, 그다음 날 5.18이 일어났던 것이다. 서울대 기숙사인 관악사에 전화를 해서 짐을 가지러 들어가도 괜찮으냐고 문의하자 들어올 수는 있는데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는 직원의 안내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뒤에 들은 얘기지만 기숙사에서 잠을 자던 학생들이 계엄군에 의해서 난타당했다고 한다. 나는 운이 좋아서 계엄군의 폭력에 당하지 않고 몸 성히 고향으로 향할 수 있었다.

휴교 중이라서 다른 소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아이디어를 낸 것이 평소 좋아했던 클래식 음악 공부나 해보자는 것과 외교학과 지망생으로서 불어를 배워보자는 것이었다. 그때 집에는 구식 전축이 하나 있는 정도라서, 좋은 시설에서 음악을 듣고 싶은 욕심에 부산의 부심지인 서면에 막 개업한 클래식 커피숍에 자원봉사 DJ를 신청하기로 했다. (수필 "藝田" 참조) 주인아주머니는 빈자리가 없다면서 거절하셨는데, 내 뜻을 설명하고 DJ의 점심때를 넣어서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하니 승낙하셨다.

그 커피숍에서는 음악을 일단 올리면 그 곡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들을 수 있었다. 나는 구노의 오페라 파우스트를 그 당시 매우 즐겼는데, 길이가 2시간 반이 넘는 긴 음악이었다. 오전 10시경부터 2시경까지 4시간 정도 DJ 박스를 지켰는데, 파우스트를 올리면 담당시간 대부분이 지나가버리는 식이었다. 몇몇 손님은 신청곡이 나오지 않는다고 나에게 항의도 했었다. 그 당시에 나는 좋은 시설에서 많은 클래식 음악을 들을 수 있어서 참 행복했었다.

이런 클래식 음악에 대한 관심 때문에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지역에 살면서 KAMSA(Korean-American Music Supporters' Association, http://www.kamsa.org/)라는 한국인 음악인 후원회의 Webmaster 겸 이사로 자원봉사를 한 적도 있다. KAMSA는 매년 한국인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연주회를 하며, 가을에는 유망한 젊은 한국인 음악인을 초청하여 샌프란시스코의 Herbst Theatre에서 미국 서부 데뷔 연주회를 연다. 모든 이사의 활동은 자원봉사로 이루어진다.

유학 시절 이후로는 클래식 음악을 자주 듣지는 못하고 있다. 요즘은 인터넷이 발달하여 많은 클래식 음악을 인터넷으로 들을 수 있어서 좋다. 클래식 음악을 배경에 깔고 컴퓨터로 작업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권해 드리고 싶다. 음악을 들으면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잦다.

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잡담] 개강 특집, Prof. Lee vs. Prof. Rhee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04)

제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첫 글을 올린 것이 작년 2월 12일이었습니다. 이 교수님은 베스트 셀러 경제학 교과서 저자로 잘 알려진 분이죠. 경제학 원론은 같은 학부의 이창용 교수가 공저자입니다. 개학을 맞아서 두 공저자를 대비하는 조크 포스팅을 했는데, 반응이 괜찮았습니다. ^^ 원 글과 댓글을 그대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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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이지만, 이 교수님 강의 관찰기를 읽으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이 이창용 교수를 언급하신 유머였습니다. 이창용 교수가 이 교수님을 '능멸'했고(이창용 교수: 미시 누구에게서 배웠니? 학생들 답: 이준구 교수님이요. ㅋㅋ), 이 교수님이 이창용 교수보다는 더 유명한 경제학자로 평가된다는(가장 유명한 경제학자 5 명 중에 이 교수님 성함은 나왔지만 이창용 교수 이름은 없었다는...) 유머에서 뒤로 자빠질 뻔했습니다.

혹시 두 분은 상호협력 관계이면서 애매모호한 라이벌 의식도 함께 갖고 계신 것은 아닐까요? ^^ (죄송합니다, 선배님. 저나 이창용 교수와 거의 띠동갑이신데 이런 불경한 말을 했습니다. 이 후배를 죽여주시옵소서. 요즘 사극을 너무 많이 본 것 같네요. 죽여달라고 하면 반드시 살더군요.)

이왕 엎질러진 물... 내친 김에, 이 교수님 vs. 이창용 교수, 10종 경기를 상상해봤습니다.

100미터 달리기: 이창용 교수 승
팔씨름: 이창용 교수 승
테니스: 이 교수님 승
화초 이름 알아맞히기: 이 교수님 승
소주 마시기: 이창용 교수 승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얘기 해주기: 무승부
디카 사진 찍기: 이 교수님 승
수제자 자랑하기: 이 교수님 승
연대 학생들과 교류관계 갖기: 이 교수님 승
정치학 공부한 후배와 의견 교환하기: 이 교수님 승

6승 3패 1무로 선배님 승입니다! 축하드립니다. ㅋㅋㅋ

(종목 선택이나 잠정 판정에 이의가 있는 분들은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려 주십시오.)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자유민주] 미국 흑인과 여성의 투표권, 어느 쪽이 먼저 도입되었나?

제가 박사과정 공부를 했던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 대학교 캠퍼스에 Susan B. Anthony Hall이라는 기숙사가 있습니다. 미국 대학교에 사람 이름을 딴 건물이 대부분이라서, 처음 그 건물 이름을 봤을 때는 별다른 생각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서 그 여성이 어떤 일을 했는지 알게 된 이후에는 평범한 콘크리트 건물인 Anthony Hall 기숙사가 매우 특별하게 보였습니다.

미국이 대표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죠.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참모습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자유민주주의가 다양한 모습을 띠고, 또한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으므로 특정 기준을 제시하여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인 일반 투표권(참정권, universal suffrage)를 한번 살펴봅시다. 일반 투표권은 일정 나이 이상의 시민은 인종, 성별, 피부색, 재산,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해서 투표권 차별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흑인과 여성이 투표권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흑인 남성이 먼저 투표권을 가졌을까요, 백인 여성이 먼저 가졌을까요? 흑인 남성이 먼저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1870년에 인준된 수정헌법 제15조에 따라서 흑인 남성도 투표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Section 1. The right of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to vote shall not be denied or abridged by the United States or by any State on account of race, color, or previous condition of servitude."
인종, 피부색, 그리고 이전에 노예였는지 여부에 따라서 투표권을 차별할 수 없다는 명문입니다. 반면에 여성 투표권은 19세기가 아닌, 20세기에 부여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여성이 인격체 대접을 받은 역사가 1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실 겁니다. 1920년에 인준된 수정헌법 제19조에 다음과 같이 여성 투표권을 인정했습니다.

"The right of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to vote shall not be denied or abridged by the United States or by any State on account of sex."
몇몇 주는 그전에 여성 투표권을 도입했습니다. 와이오밍 주가 1869년에 제일 먼저 도입했고, 아이다호, 콜로라도, 유타 주가 20세기가 되기 전에 여성 투표권을 인정한 정도였습니다. 유타 주는 여성 투표권이 일부다처제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도입했는데, 오히려 여성이 일부다처제를 투표로 옹호하자 연방정부가 여성 투표권을 취소하는 해프닝까지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1893년 뉴질랜드가 국가 전체로 여성 투표권을 가장 먼저 인정했습니다. 덴마크는 1915년, 영국과 아일랜드는 1918년, 그리고 네덜란드는 1919년에 인정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자유, 평등, 박애 대혁명의 나라 프랑스는 1944년에, 직접 민주주의 대명사인 스위스는 1971년에 여성이 일반 투표권을 가졌습니다. 중동의 사우디는 여성 투표권을 아직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여성 투표권은 당연히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항과 투쟁의 결과였죠. 그 중심에 Susan B. Anthony 여사가 있었습니다. 여성 킹 목사라고나 할까요. 1820년 매사추세추 주 애덤스에서 태어나서 1906년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운명한 앤쏘니 여사는 여성 투표권을 주장하는 연설을 약 45년 동안 매년 75~100번을 했다고 합니다. 아울러서 여성 투표권을 주장하는 시민운동 조직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미국 여성 인권운동을 대표하는 인사입니다.

앤쏘니 여사의 노력은 20세기에 들어와 결실을 보게 된 셈입니다. 1918년 윌슨 대통령은 연방헌법에 여성 투표권을 명문화할 것을 의회에 요청했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1920년에 수정헌법 제19조로 여성 투표권이 미국 헌법에 들어왔습니다. 앤쏘니 여사를 비롯한 많은 미국 여성들의 노력이 대통령과 의회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우리 민주화 운동처럼 많은 운동가가 체포되었고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로체스터 대학교에 앤쏘니 여사의 이름을 딴 기숙사가 있는 것은 여사가 인권운동을 했던 시기 대부분을 로체스터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뉴욕 주 로체스터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지역 인사이기도 한 것이죠.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 국회가 열리면서 일반 투표권이 시행되었습니다. 여성 투표권 운동은 필요 없지만, 앤쏘니 여사의 인권운동과 같은 노력은 현재 대한민국 여성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헌법이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명문화된 규정만큼 여성의 자유와 평등의 권리가 잘 보호되는지 의문입니다. 앤쏘니 여사와 같은 지도자가 있으면 우리 여성 인권운동이 더 활성화될 것이고, 여성 인권이 더욱더 진작 될 것입니다. 제 희망사항이기도 합니다.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Susan_B._Anthony
http://en.wikipedia.org/wiki/Women's_suffrage

2009년 12월 13일 일요일

[단상] 한겨레21에 인용된 맞대응(Tit-for-Tat) 전략

인터넷을 떠돌다 제 이름이 나오는 기사를 만났습니다. 저는 그런 기사가 있는지도 몰랐는데 신기하군요. 2000년 3월 30일, <한겨레21> 제301호에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정부패 등의 반칙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그 기사에 용의자(죄수)의 딜레마 반복게임과 맞대응(Tit-for-Tat) 전략에 대한 제 소견을 소개했습니다. 게임이론에 대한 설명이 약간 불충분하지만 주 논점은 잘 정리했습니다. 아래에 그대로 옮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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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 사회에 태클을 걸자

불법과 졸속이 지배하는 대한민국을 꺽을 반칙왕을 기다린다

최근 서울대에는 영화 <반칙왕> 포스터를 패러디한 안내문이 붙어 학생들의 눈길을 붙잡았다. 전직 원로교수들의 친일행적을 거론한 뒤 석연치 않은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 김민수(40) 전 서울대 교수(산업디자인학부)의 ‘무학점 강의’ 강행을 알리는 이 안내문은 반칙이 어지럽게 춤추는 우리 사회에 대한 풍자를 영화에서 읽어낸 학생들의 작품이다.

식민지 시대의 유물, 반칙 사회

사실, 눈앞의 승리를 챙기기 위해 최소한의 염치마저 저버린 채 약속을 깨뜨리는 반칙선수들은 링 밖에서 더 현란한 테크닉을 선보이고 있다. 지역감정 조장해 국회의원 되기, 군의관 매수해 군대 안 가기, 내부정보로 주식투자하기, 변칙상속으로 세금 안 내기…. 실정법을 위반한 범죄행위, 그 틈새를 교묘히 비집고 들어가는 편법들, 아예 양심을 마비시켜버리는 관행이라는 이름의 반칙 등 그 층위도 다양하다.

“초등학교 때 한개 틀릴 것을 컨닝해서 만점 맞았다.” “외근 핑계대고 집에서 하루 놀았다.” “아버지가 슈퍼에서 물건 값을 잘못 거슬러받고 너무 좋아한다.” “차가 없을 때는 집 앞 도로를 무단횡단한다.” <인터넷 한겨레>에 올린 반칙고백 설문조사에 네티즌들이 보내온 답변은 ‘게임의 룰’이 깨져 예리한 파편으로 널려 있는 세상에서 너무 순진한 고백으로 들릴 정도다.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아? 쟝글이야, 쟝글!” <반칙왕>에 나오는 대사는 ‘정글의 법칙’이 반칙왕들의 바이블임을 보여준다. 반칙은 “정도를 지켜봤자 결국 막심한 손해를 보고 바보 취급만 당한다”는 신앙으로 내면화해 있다. 그 강포한 신념이 빚어 내는 씁쓸한 풍경 하나. 지난 3월1일 서울의 한 놀이공원에서 초등학생에게 주먹질을 한 40대 여인이 경찰에 입건됐다. 그는 새치기를 하려다 어린 아이의 항의를 받자 화가 나 일을 저질렀다고 한다. 과연 언제부터, 왜, 우리는 이런 세상에 살게 됐을까.

최봉영 항공대 교수(사회학)는 반칙 사회의 출발점을 일제 식민지 경험에서 찾는다. “국가는 공동체를 위해 희생한 개인이 명예로서 보상받는 역사의 무대였다. 그 무대가 사라지자 개인적인 영화를 최상의 가치로 삼게 됐다. 입신양명이 입신출세로, 다시 출세로 대체되는 용어의 변천은 이런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한다.” 여기에 급격한 사회문화적 변동과 곤궁의 역사가 겹쳐지면서 비정상적인 처세 심리가 굳어졌다는 것이다.

한일합방과 태평양 전쟁, 6·25 전쟁, 군사 쿠데타, 오일 쇼크…. 위기의 연속이었던 현대사에서 새치기와 빽과 뇌물없이는 살아남기 힘들었고, 갖은 편법과 졸속과 무리가 꾸준한 노력과 정상적인 절차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어냈다. 연줄이나 금품 동원, 새치기, 거짓말, 규정 위반, 남의 불행을 이용하는 일 등이 비상시라는 이유로 정당화했던 것이다.

상대방을 배반하는 전략은 유용하지 않다

(사진/삼풍백화점 붕괴사고는 편법과 졸속이라는 반칙이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가를 보여준 본보기인 셈이다)

한경구 국민대 교수(문화인류학)는 이런 상황을 통해 형성된 독특한 삶의 태도를 ‘위기 인성’이라 정의한다. 특히 생존을 위협받을 정도로 수탈이 극심했던 일제 말기나 극한상황인 전쟁 기간에 청소년기를 보낸 이들은 이때 형성된 가치관의 영향 아래 평생을 살게 된다고 한다.

모리시마 미치오 런던정경대 교수의 저서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1999)에 사용된 세대론적 접근을 한 교수가 우리 사회에 적용한 결과를 보면, 2000년대에도 위기 인성의 영향 아래에 있는 세대가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한 교수는 쿠데타로 얼룩진 60년대에 10대 시절을 보낸 1940∼49년생까지를 1차 위기인성 집단으로, 이후 1979년생까지는 위기를 직접 경험하지는 않았지만 윗세대로부터 위기상황의 행동방식을 학습한 2차 위기 인성 집단으로 본다.

한 교수는 “이처럼 위기 인성을 가진 사람이 사회에서 인구학적으로 다수가 되고 각종 조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면 각자는 상대방도 위기상황의 행동방식에 따를 것이라고 여기며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게 된다”고 설명한다.

반칙 심리는 이처럼 역사 속에 뿌리를 대고 있고 당시의 절박한 생존 욕구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보이는 반칙 가운데는 생존을 위한 궁여지책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 많다.

지난 2월 말 발표된 고위공직자 재산변동신고 내역을 보면 재산이 늘어난 상위 20명 가운데 14명이 주식투자를 했고 이들의 평균 수익은 7억7천여만원이었다. 시민단체들은 뇌물성 정보를 이용한 재산증식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수사가 진행중인 병역비리 사건에서는 정치인 27명의 아들 31명과 사회지도층 인사의 아들 35명이 대상에 올라 있다. 재벌들의 탈세와 변칙상속까지 떠올리다보면, ‘배부른 사자는 사냥을 하지 않는다’는 정글의 법칙마저 덧없어진다.

‘제아무리 맹수라도 자기가 다칠 위험이 있으면 사냥을 포기한다’는 규칙도 찾아볼 수 없다. 노동부가 지난달 추락·낙하·붕괴 등 재해발생 요인이 높은 중·소규모 건설현장을 점검한 결과 안전규정 위반으로 45개소가 작업중지 조처돼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배 높은 수치를 보였다. 잇따른 대형 붕괴사고는 희생자 명단 이외에 아무런 교훈도 남기지 못한 셈이다. 구속될 위험을 감수하는 은밀한 거래는 이 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점점 투약 강도를 높이다 스스로 치사량을 주사하는 약물중독자처럼 제 몸을 상하게 해서라도 승부수를 던져야 하는 게 반칙선수들의 운명이다. 해결책은 더욱 미궁에 빠진다. 세대론의 접근법처럼, 위기 인성의 소유자가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될 2020년대에 가서야 반칙의 지리한 악순환은 치유될 것인가.

게임이론은 이 의문에 대해 흥미롭고도 의미심장한 해답을 던지고 있다. 게임이론은 이해가 엇갈리는 상황에서 각 행위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하고 그 결과는 어떤지를 다루는 학문이다. ‘죄수의 딜레마’는 널리 알려진 게임이론의 하나다. 이 이론은 두 죄수가 따로 심문을 받으면서 ①2명 모두 범행을 부인하면 1년형 ②한쪽만 부인하면 자백한 쪽은 무죄, 부인한 쪽은 10년형 ③모두 자백하면 5년형이라는 조건을 제시받았을 때, ②의 경우를 염려해 모두 자백하게 된다는 것이다. 상대방이 나를 배신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협력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①)보다 나쁜 결과(③)를 초래하는 행동을 택하게 됨을 보여준다. 인생이 한판의 게임이라면 반칙왕들의 선택은 자명하다.

그러나 미국 미시간대 정치학 교수인 악셀로드는 죄수의 딜레마 게임을 반복할 경우 상대방을 배반하는 전략이 궁극적인 이득이 되지 않음을 입증했다. 항상 부인하기, 항상 자백하기, 부인과 자백을 번갈아 하기 등 여러 가지 전략을 가진 죄수들이 모두 1 대 1로 죄수의 딜레마 상황에서 만나도록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을 반복했을 때, 각각 받은 형량의 최종 합계가 가장 적은 것은 이른바 ‘팃포탯’(Tit-for-Tat) 전략이었다.

분명하고도 엄한 처벌을 정착시켜야

(사진/툭하면 난장판이 돼버리는 국회. 정치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권의 반칙은 민주주의 발전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많은 심리학자, 사회학자, 게임이론가들이 내놓은 전략들을 제친 팃포탯 전략은 특정 상대와 첫 번째 만났을 때는 무조건 협력(부인)한 뒤 한번 협력한 상대방에게는 다음번에도 협력하고 배신(자백)한 상대방에게는 다음번에 배신을 안겨준다는 간단한 내용이다. 배신한 상대방이 협력으로 돌아서면 그뒤로는 다시 협력한다. 이 전략은 일본 자동차회사인 혼다 등에서 기업 경영원리로 차용되기도 했다.
첫판에서는 항상 배신하는 전략이 이득을 얻거나 최소한 동점을 챙길 수 있겠지만, 게임이 반복되면서 협력하는 전략끼리 만나게 되면 전세는 역전된다. 악셀로드는 “반복되는 게임에서 팃포탯 전략이 확인되면 상대방은 배신으로 단기적인 이익을 챙기기보다는 협력을 통해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며 “대화가 없는 이기주의자들 사이에서 상호 협력과 신뢰를 이끌어낼 수 있는 유용한 전략”이라고 설명한다.

안병길 서울대 교수(국제지역원)는 팃포탯 전략을 차용해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우선, 선거와 같이 한 차례의 승부로 마감된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는 ‘무조건 배신’ 전략을 택할 것이므로, 반칙행위에 대해 분명하고도 엄한 처벌을 정착시키는 것이다. <정치개혁 이렇게 한다>는 책을 펴낸 박태석 법무부 법무과장 등 현직 검사 4명은 “제도를 좀더 세밀히 규정하고 이를 정확히 집행하는 것”이야말로 최선의 부정부패 방치책이라고 말한다.

또 “개별 행위자들이 사회개선의 장기적인 이익을 제대로 인식해 팃포탯 전략을 택해 나가야 한다”는 게 안 교수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 “촌지 관행을 거부하는 등 사회개선을 향한 ‘돈키호테’와 같은 행위를 최소한 좌절시키지 말고 격려해줄 수 있는 제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학생들이 뒷날 사회에 진출해 팃포탯 전략에 따라 행동할 수 있는 성냥불이 된다면 몇십년 뒤에는 들불처럼 그들이 충분히 보상받는 제도적 개선이 뒤따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한경구 교수도 위기 인성을 극복하기 위한 기성세대의 자기 단련 필요성과 함께 제3차 위기 인성이 형성되지 않도록 자라나는 세대에 대한 교육에 적극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전국교직원노조가 수도권 중·고교생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은 2000년대 사회에 대해 환경이 파괴되고(79.7%) 경쟁은 치열해지는(78.3%) 각박한 세상을 예상하고 있다. 소외받는 사람의 권리가 신장된다(40.7%)거나 인간성이 좋아진다(16.2%)는 전망은 소수에게 나타났다. 하지만 학생들은 △돈을 더 많이 벌면 세금을 더 많이 내야 한다(72.8%) △사회에서 특별한 권익을 누리는 사람은 그만큼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수행해야 한다(83.3%) △모든 계층은 평등한 사회적 대우를 받아야 한다(88.9%) 등 건전한 사회의식을 보여줬다. 조사를 담당한 현원일 면목중 교사는 “미래 사회에 대한 전망에는 어른 사회에 대한 절망감이 내포돼 있다”며 “정의감 있는 사람으로 자랄 가능성을 되레 거세하는 교육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최봉영 교수는 “이제 남을 해쳐서라도 잘살겠다는 강박증으로부터 벗어나 삶의 여유를 지닌 세대가 자라나고 있고 지역감정 등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반칙을 극복하려는 시민운동이 시작됐다”며 “반칙 사회의 대표적 폐단인 ‘연줄’을 놓고 ‘연대’로 나아가자”고 제안한다.

무자비한 정글에 통쾌한 반칙을

고아원 출신인 황아무개(41)씨는 지난 2월29일 교도소를 나온 뒤 갈 곳이 없어 나흘 만에 일부러 폭력을 저질렀다. 경찰이 불구속 입건하자 다시 사흘 뒤 슈퍼마켓에서 돈없이 술을 마시고 주인과 싸움을 벌였다. 전과 12범인 그는 이 시대 반칙왕의 반열에 오를 만하다. 어쩌면 평생 반칙만 해야 하는 반칙전문 선수일지도 모른다. 그는 정글의 법칙에 따르면 도태돼야 할 존재다. 그런 이들에게도 협력의 손을 내밀 수 있는 존재는 사람뿐일 것이다. 사람이야말로 무자비한 정글의 법칙에 통쾌한 반칙을 걸 수 있는 최후의 반칙왕이 아닐까.

박용현 기자
piao@hani.co.kr
한겨레21 2000년 03월 30일 제301호
http://www.hani.co.kr/h21/data/L000320/1paq3k33.html

[잡담] Ice Storm!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에 폭풍이 와서 TV 뉴스에 시끄럽더군요. 매년 있는 기상이변이지만 해가 갈수록 조금씩 심해지는 것 같네요. 지구 온난화 때문이라고 추정하는 전문가도 많다고 합니다. 다음 글은 올해 2월 1일,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렸던 기상이변에 관한 글입니다.)

오늘(2009년 2월 1일) 뉴스를 보니 켄터키주에 Ice Storm이 몰아쳐서 큰 피해를 보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자연재해로 남동부의 태풍 허리케인, 북동부의 눈폭풍 블리자드, 중서부의 회오리바람 토네이도, 그리고 서부의 지진을 들 수 있는데(안전한 지역이 별로 없죠^^), 북동부 겨울에 엄습하는 Ice Storm도 직접 겪어보면 무시무시합니다.

Ice Storm은 눈비가 내린 다음 기온이 급강하 되면서 얼음 알갱이가 나뭇가지 등에 두껍게 붙으면서 큰 피해를 줍니다. 예컨대 큰 나뭇가지가 얼음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면서 전선이나 전봇대를 치면 전기공급이 끊어지게 되죠. 저도 북동부에 살 때 큰 Ice Storm을 한번 겪었는데 전기도 없고 차도 다닐 수 없게 되니 정말 갑갑하더군요. 백 독이 불여일견! 아래의 동영상을 보시죠.

이번 겨울에 한순구 교수님이 계신 지역에 몰아쳤던 Ice Storm입니다. 한 교수님 가족이 피해를 당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비슷한 엄한 경치는 구경하셨을 것 같습니다. 위험하지만 경치는 좋습니다.^^ 훨씬 남쪽인 켄터키주에서도 강력한 Ice Storm이 발생한 것은 흔히 있는 일은 아닙니다. 지구 온난화 영향도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이 추정하고 있답니다.


다음은 인디애나주 Ice Storm을 경치 위주로 촬영한 동영상입니다. '아베 마리아' 배경음악과 잘 어울리네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2009년 12월 12일 토요일

[사진] 역사가 숨 쉬는 산책로

요즘 제가 운동 겸 매일 산책한다고 말씀드렸죠. 한 코스만 다니면 지겨워서 몇 코스를 개발해서 적당히 섞어서 다닙니다. 그 중 하나가 팔로알토 멘로파크를 연결하는 산책로입니다. 일단 분위기를 보시죠.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가을 정취가 괜찮죠? 일주일 전에 찍은 사진입니다. 며칠 전에 비가 많이 와서 지금은 잎이 거의 다 떨어졌습니다. 겨울이 시작된 것이죠. 산책로 중간에 큰 레드우드가 몇 그루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역사 안내 표지가 있습니다. 사진을 찍었습니다. ^^

















때는 바야흐로 1769년, 스페인은 북부 캘리포니아에 전진 기지를 구축하고자 육로 탐험대를 보냅니다. 러시아보다 먼저 그 지역을 차지하려는 의도로 남자 63명, 말과 나귀 200여 마리로 탐험대를 꾸렸습니다. 그 이전 기록에 따라서 몬테레이를 발견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샌디에고에서 출발한 탐험대가 너무 북쪽으로 갔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몬테레이는 지나쳤고, 꿩 대신 닭인지, 닭 대신 꿩인지는 몰라도, 대신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제가 "발견"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만, 정확하게는 "서양인의 발견"이겠죠. 이미 인디언들이 살고 있었으니 최초 발견자는 그들이었고, 서양인이 처음 샌프란시스코 베이를 본 것이 1769년 11월이라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1769년 11월 6일부터 11일까지 그 탐험대가 사진의 큰 나무들이 있는 바로 그곳에서 캠핑을 했다는 기록이 표지에 적혀 있습니다. 그 원정에서 탐험대가 거목인 캘리포니아 레드우드를 처음 봤고,   "큰 나무"를 뜻하는 팔로알토(Palo Alto)로 불렀습니다. 팔로알토라는 지명은 스페인의 캘리포니아 점령을 뜻한다고 봐도 되겠습니다. 인디언들에게는 별로 좋지 않은 역사 기록이겠죠.

그 탐험대는 샌프란시스코 베이가 너무 커서 모두 둘러보지 못하고 샌디에고로 되돌아갔습니다. 몬테레이는 결국 보지 못했죠. 그 사실을 기록한 표지도 산책로에 있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산책로 중간에 만나는 오리들입니다.
즐거운 주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예술] 그리움은 못내 그림이 되고...

그리움은 못내 그림이 되고...


청량한 가을로 계절이 익어가는 날에
늘 아련함으로만 남아 있던
살아온 날들의 그리움이 못내 그림이 되었습니다.

청솔 숲 가장 큰 나무 곁에 자리 잡은 우리들의 작업공간은
그동안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봄에 가지마다 새순을 터트리며 오소소 피어난 나뭇잎들은
봄빛 찬란한 연두와 초록의 향연이었고,
가을에는 갈색 낙엽들의 장맛비로 내려 내 가슴 속에 삶의 소중한 이야기를 고여 놓았다.
그 나무는 내 작업 속으로 들어와, 꿈을 영그는 나무, 호수의 물빛을 닮은 나무,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견디게 하는 나무, 사람의 뒷모습을 읽어주게 하는 나무,
덜어내는 기쁨을 알게 해 주는 나무, 아낌없이 피어나는 꽃들이 있는 바다 빛 나무가 되었다.
그 나무의 이미지는 끝없이 변용되면서, 이름 모를 꽃망울을 터트리기도 하고,
가지 사이로 물고기들이 유영하기도 하며, 뭇 새들이 모여 정겹게 노래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인연의 얼굴로 교차하기도 하며,
희미한 달빛에 숨죽인 강릉의 깊고 고요한 정경들을 펼쳐 주기도 하고,
잎새 같은 조개껍데기들도 나뭇가지에 걸려 새와 꽃들과 교감하면서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체로 존재한다.
삶, 추억 그리고 사랑...
이런 말들이 하나씩 별이 되어 간다.
물감으로 컴으로는 도저히 그 느낌을 그리지 못해
도자기 유약들이 1250℃의 고온에서 몸을 사르며 그려낸 투명한 그림이
맑은 향기를 내뿜고, 그 향기에 취해 잊고 있던 자연과 삶에 대한 아련함을 일깨워 주기를....
살아오면서 어느 땐가 들은 것 같은 화사하면서도 소탈한 정겨운 그림의 이야기들이
지친 일상에 온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를 기대한다.

2009년 가을 작업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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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인 현대도예가 염미란 교수의 예쁜 글입니다. 다음 주 15일 화요일까지 서초동 한전플라자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합니다. 다른 도예가들의 작품도 볼 좋은 기회인데 저는 멀리 있어서 참석하지 못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가셔서 늦가을, 초겨울의 정취를 예술과 함께 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단상] 서울대 국제지역원 소통 사례

서울대 국제지역원 전관 금연 토론 (1999년)

[설명] 이 토론은 1999년 서울대 국제지역원 게시판에서 있었던 토론이다. 그 당시 많은 비흡연 학생들이 실내 흡연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학생회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실내 흡연을 삼가도록 권고하였지만, 여전히 일부 흡연자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들에 대한 비판 글이 대학원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토론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흡연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자유주의에서 자유가 서로 부딪힐 때 규범이 생기는 점을 강조하고, 흡연자들이 전관 금연 규범을 다시 바꾸려면 민주적 절차를 밟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전관 금연은 실외에 파라솔을 비치하여 흡연자 편의를 살피는 설비가 마련되어 예정대로 시행되었다. //

(출처: 1999년 서울대 국제지역원 홈페이지 게시판, 당시 주소 http://gias.snu.ac.kr)

[글 0] 문제 제기

“금연”, 결정된 것 아니었습니까? 얼마 전에 학생회에서 투표했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휴게실에서 남들 밥 먹는 거 뻔히 보면서, 약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꼭 피워야 되겠습니까? 자기가 피우는 담배 연기를 다른 사람이 맡는 거... 애연가들이 생각하기에는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금연족들은 왜 왜 담배를 안 피우겠습니까? 몸에 나쁘니까 일부러 애써 안 하는 거죠... 몸에 나쁜 거 이 기회를 빌려 휴게실에서만이라도, 또는 밖에 나가서 피우는 거 귀찮아서라도 좀 줄여보시죠.

담배가 싫어요. 우리 아빠도 가족들 생각해서 끊었는데 그 연기를 내가 학교에 공부하러 와서 맡아야 되겠습니까? 흡연자들은 모르겠지만, “정말 정말 머리 아프게, 피우는 사람의 인격이 순간 의심될 정도로 싫다고요~~!!!”

[글 1] 금연 문제에 대해서 (학생회)

사실 많은 반발이 있어도 실내 금연을 강제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학생회에서 결정하는 것은 별 구속력이 없더군요. 교수 회의에서 이 결의 사항을 참고, 채택하여 공식적으로 공포해야 효력이 발생한답니다. 어쨌든 흡연자들을 야만인, 에티켓 없는 괴물 취급하지 마시기를 바라면서 공식 견해로 선생님들께 공포하시기를 부탁하겠습니다.

새 건물에는 흡연실이 만들어질 것을 확신하고, 야외에도 아름다운 휴게실이 생길 것을 믿습니다. 어쨌든, 앞으로는 야외에서 흡연하시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글 2: 필자] 금연 문제

국제지역원(신관 및 구관 모두)을 금연 건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금연 규정은 국제지역원 옥외에 흡연자 편의를 위하여 파라솔(우천시 고려), 피크닉 테이블, 재떨이 등을 비치하는 시점부터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서 조만간 저도 제 연구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잘 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건강을 위해서...

[글 3]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휴게실에서 못 피우게 하면 화장실에서 피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불쾌하기는 휴게실 못지않습니다. 오히려 연기 농도는 휴게실보다 훨씬 높지요. 그러니 해악은 더 큽니다.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글 4: 필자] Re: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실내 흡연은 어떤 곳에서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화장실도 금연구역입니다.

[글 5] 왜 이러죠? (흡연자 시각)

이런 예외없는 규칙 적용은 분명히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 것입니다. 건물 내 흡연공간 설치가 더 중요할 듯싶습니다. 흡연자들께서는 아시겠지만, 수업 중간마다 한 대가 얼마나 피로회복에 좋은지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바깥 파라솔까지 가는 것은 무리가 있을 듯싶습니다. 4개의 화장실 중 하나라도, 3층이 가장 무난할 듯, 흡연 가능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안 선생님 방에서 교수님 흡연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과연 이런 조치가 어떻게 옮겨질지 의심스럽습니다. 휴게실에서 담배피우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가중시켜 오히려 나가서 담배를 더 피우게 하는 부작용도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 어느 정도 타협합시다. 전관 금연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발언입니다. 흡연구역은 별도로 지정되어야 합니다.

[글 6: 필자] Re: 왜 이러죠?

구체적인 사례로 한번 생각해봅시다. 공항에 가면 건물 안에 흡연실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건물 밖으로 나가서 흡연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그런 흡연 구역을 지정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국제선 출국장에서는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우리 건물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교수회의를 할 때, 흡연자 편의를 위해서 환풍시설이 있는 흡연실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값비싼 최고성능 환풍시설이 아닌 이상, 담배 연기는 새나올 것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전관 금연으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흡연자인 저도 동의했습니다. 국제지역원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초도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방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저는 지금까지는 금연 방침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방안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 담배 연기가 복도로 가끔 새나올 때(방문을 열고 닫을 때가 잦으므로),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국제지역원이 허용한 것이었으니까요.

이제 비흡연자 건강에도 좋고, 제 건강에도 좋은 새로운 방침을 도입했으니, 저로서는 제 방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해도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환영합니다. 차제에 담배를 끊으면 더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담배를 줄일 좋은 기회이고, 담배를 줄이지 못하더라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4층과 1층을 오르내리면 가벼운 운동이라도 될 것입니다.

물론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내 정신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긴다. 그것도 화장실이나 실내에서 꼭 피워야 내가 돌지 않는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내가 도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남이 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이 자유주의에서 규범이 생기고 규제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장은 “간접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라는 연구결과를 인정하는 가정에서 펼쳐졌습니다. 그 전제가 틀렸으면 다른 주장도 가능할 것입니다.)

[글 7] 밤샘자 (흡연자)

저는 언제나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름대로 담배를 즐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흡연 혹은 금연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1. 제가 본 바로는 공항청사 입구에서 바로 들어간 곳, 그러니까 각종 절차를 하기 이전의 장소 바로 그곳에도 흡연실은 있었다고 기억하는데요? 물론 그곳은 조금 나가기만 하면 바로 밖인데도 말이죠. 제 기억이 틀린 건가요?

2. 만약 지금 3층 화장실이 흡연실이라고 생각하면, 제 판단으론 창문 위에 달린 환풍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는데요. 그리고 거기서 피우는 담배연기가 그 밖에서 지나가는 비흡연자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3. 24시간 개방이 이뤄지는 지금, 밤새는 사람, 혹은 최소 3, 4시까지 버티다 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가 넘으면 대개 문은 쇠사슬로 동여매어 잠급니다. 이럴 때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어떻게 합니까? 쇠사슬을 푼 다음에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다시 돌아와야 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것 같습니다...

4. 마지막으로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른바 ‘모니터링’ 문제입니다. 야심한 시각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어떻게 전관 금연체제가 집행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물론 금연이 선포되고 하기로 했으면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담배와 같이 개인의 정서적 심리적 기호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안은, ‘선포한 규칙’에 대한 반응과 수용 정도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흡연 문제가 일상에서 민주주의와 권리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흡연 문제를 두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보도하고, 논리적 공방을 벌이는 것이 무슨 대단한 민주주의와 관련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미국적 사회분위기가 대단히 마음에 안 듭니다.)

단지 정서와 기호, 혹은 예의 문제라고 저는 느낍니다. 하지만, 시대도 변하고 사회도 변했고, 비흡연자들 건강도 당연히 생각해야겠으니, 정서, 기호 혹은 예의에 관련된 이 문제를 되도록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흡연실 설치라고 생각합니다.

[글 8: 필자] Re: 밤샘자

> 1. 공항

그것도 맞습니다. 그 경우에는 흡연자의 편의를 도모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시카고 오헤어 공항은 아예 어떤 곳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하지요. 제가 있었던 미시간 주립대에서는 건물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실외 흡연도 인정하죠. 왜냐하면, 밖에서 피운 담배 연기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제가 든 것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수업 시간 중에도 담배를 피우겠죠. 따라서 움직이는 거리와 흡연의 인정은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객관적 판단일 것입니다. 공항 국제선은 그런 합리적 설명(rationale)을 인정할 수 있는데, 국제지역원은 그런 설명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죠.

> 2. 흡연실 환풍시설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담배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 정도 냄새는 괜찮다고 이야기하겠죠. 일반적으로 약간의 연기는 환풍시설을 설치해도 새어 나온다고 보면, 그것이 간접흡연을 일으킬 수 있으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제도는 완벽할 수 없을 것입니다. 흡연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흡연실을 만드는 방향으로 “민주주의적”으로 의견을 모아서 건의하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 의견만으로는 안됩니다.

> 3. 24시간 개방

지문인식기 공사를 곧 시작합니다. 아마 금연 건물이 되기 전에 그 쇠사슬은 풀릴 것입니다.

> 4. 이른바 ‘모니터링’ 문제

저는 완벽한 모니터링은 불가능해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실내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가정하죠. 비흡연자가 지나가면서 본다면 지적할 수도 있고, 익명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담배꽁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건물 밖에 흡연 테이블과 재떨이를 비치하려는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아무 곳에나 버리면, 그것은 금연 건물 지정과는 다른, 흡연자 교양 문제가 되겠죠.

> 3층 정수기 옆도 담배 피우기 ‘좋은’ 장소

위에 언급했습니다. 모니텅링이 잘되지 않는다고 합시다. 그것이 실내 금연을 규정하지 못할 타당한 사유가 될까요? 금연으로 규정할 때와 하지 않을 때, 그런 식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숫자는 차이가 없을까요? 모니터링이 잘되지 않으면, 잘 되는 식으로 제도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 저는 무례한 말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론을 한번 모아보십시오. 그러면 다시 교수회의에서 논의할 수 있습니다. 제도는 항상 변할 가능성을 갖고 있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글 9: 필자] 금연 규정 시행 시점

방금 전자우편을 확인해보니 오해가 풀렸군요. 금연 규정은 옥외에 파라솔, 테이블, 재떨이가 갖춰지는 시점에 발효합니다. 따라서 그때까지 지금 현행대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저에게 반론을 제시하신 분은 그 물건들을 가능하면 비치하지 않도록 비시고, 혐연자분들은 가능한 한 빨리 비치하도록 비실 것 같은데... 저요? 저는 그냥 얼마나 빨리 비치되는지 보려고 합니다.)

[글 10: 필자] 오늘부터 전관 금연입니다.

실외 흡연구역이 생겼으니 오늘부터 전관 금연입니다. 불만이 있는 흡연자들께서는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이시길 권고합니다. //

[토론 소감] 갈등은 소통으로 풀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사회 갈등은 정보 전달이 잘못된다든지, 상대방 진의를 오해한다든지,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 필자를 비롯한 토론 참여자들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어서 갈등 상황이 해결된 사례이다. 현 정부가 참조할 만하다는 것이 필자의 오래된 생각이다.

당시 필자는 국제협력전공 교수이면서 전산실/도서관 담당 교수였는데, 학생들 토론에 참여하여 학교의 뜻을 전달하고, 학생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하였다. 당시 국제지역원은 설립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고, 학사 프로그램 개발, 건물 신축 등, 대학원을 안정화하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학생들 민원 사안이 가끔 발생했는데, 이 사례도 그중 하나이다. 소통을 통해서 학교 방침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학생들을 설득하여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2009년 12월 10일 목요일

[단상] 교직에 있는 어느 후배의 편지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12/22)

연말이면 이런저런 모임이 많습니다. 저도 우리나라에 있으면 여러 송년 모임에 바쁜 밤을 보내고 있을 텐데 이곳은 그런 모임이 별로 없어서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파면/해임된 교사들에 대한 언론보도를 접하면서 요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상태인데, 중고등 교직에 있는 어떤 후배에게서 두 통의 편지를 지난주에 받았습니다. 송년 모임의 한 참석자가 교사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을 얘기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우리 교육의 불안한 모습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공유하고자 합니다. 포스팅을 허락해준 그 후배에게 감사하면서 시작합니다.

<시작>
어딜가나 자녀 교육 문제는 가장 큰 화두이고,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이 왜 이리도 힘든지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되었는지 답답하지요.

그런데 교육문제를 이야기 하는 도중에 교직에 있지 않는 어떤 근엄한 후배가 갑자기 뜬금없이 "강남에 선생들이 많이 몰려 사는 값싼 동네"라는 말을 꺼내면서, "저기 일원동 저층 아파트 값싼 동네에 선생들이 많이 몰려 산다", 또 "전세가 아주 싸다"고 하면서, 연거푸 반복해서 "선생들이 그 값싼 동네에 많이 산다"고 강조 하더군요. 그 어조와 표정은 농담이 아니었습니다.

선생인 제 입장에서 선생님도 아닌 선생들이 무더기로 비하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교육문제 얘기하다, 갑자기 값싼 동네에 몰려사는 선생이라니요. 그 의도가 무엇인지, 아마 무의식속에 잠재되어 있던 교사에 대한 인식에 그런 발언을 낳았나 봅니다.

집값이 싸고 안 싸고가 문제가 아닙니다. 이런 발언은 일반인이 교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느냐를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예이지요. 낯선 모임에 가면 '선생들' 욕하는 소리에 얼굴을 들기가 힘듭니다.

마치 돈없는 교사가 강남 한 구석에 비집고 전세들어 와 부유층에 끼어 살려고 발버둥 치는 매우 모멸적이고 경멸적인 언사로 들렸습니다. 같은 말이라도 '아'와 '어'가 다르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지요.

그 동네에 교사만 사는 것도 아니고, 택시 운전사, 교수, 상점주인 등,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교사들은 서울 어디에나 골고루 살고 있습니다. 상계동 목동 송파구... 부자인 교사도 있고 가난한 선생도 많습니다.

우리 현실은 경기가 좋을 때는 교사는 관심에도 없다가, 경기가 어려울 때는 교사 집단은 철밥통이라고 매도되며 숱한 뭇매를 맞습니다. 사실 제가 봐도 한심한 교사 많구요, 교직 사회에는 큰 수술대에 올라야 할 부분이 상당합니다. 어떤 획기적인 혁명이 일어나서 게으르고 실력없고 열정없는 교사는 물러나고, 아이들도 사람간의 예의나 배려, 기본적인 인성을 갖추고, 밤늦게까지 학원에 가지 않고, 선행학습이란 것을 없애고, 학교는 진정 배움의 장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교사는 돈이 없어 값싼 집에 사니까 결국 힘이 없습니다. 요즘은 아무나 교사에게 대듭니다. 특히 가정에서 교사 비하 발언에 대해 많이 접해 본 아이들일수록 학교에 와서 안하무인으로 교실을 뒤집어 놓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자라서 역시 그 잘난 부모들까지 무시하지요.

제가 18년 전에, 프라이드(이건 자동차입니다)를 몰고 교정을 빠져 나오는데 한 학생이 "무슨 돈으로 차 샀어(요)?" 합니다. 얼마 전 조선일보에도 "학부모 노릇하기 힘들다"는 교사 고발 기사가 있었습니다. 참고로 저는 아직도 (그리고 앞으로도) 촌지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습니다.

제가 좋아하고 즐겨 보는 미국 드라마가 있어요. - "The West Wing"
백악관의 west wing 에서 근무하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그 보좌관들이 등장하는 정치 드라마입니다. 대부분 하바드, 예일, 버클리 법대 등등을 졸업한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던 대통령과 국내는 물론 세계 정치를 논하며 매일 매일 숨가쁘게 살아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 속에 아주 왜소하고 늙고 주름이 조글조글한 한 할머니가 대통령의 비서로 있습니다. 그 할머니는 두 아들을 군대에 보낸 후 전쟁에서 모두 잃고, 남편과도 사별하고, 평생을 중고차만 몰고 다닌,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지 않은 전직 교사입니다. 대통령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이지요. 대통령에게는 누나 같은 존재로 사소한 부분까지 배려해 주고 챙겨주지만, 때로 대통령이 괜한 고집을 부릴 때는 아무도 안 보는 데서 대통령을 호되게 야단도 치는 이 할머니가 어느날 드디어 평생 처음으로 새 자동차를 구입하게 됩니다. 다른 직원들 모두가 자동차를 싸게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왜 비싸게 샀느냐며 도와주겠다고 해도 이 꼿꼿한 할머니는 정당한 값을 주었을 뿐이라며 거부합니다.

그 새 차를 운전하고 출근하는 첫 날 아침, 이 할머니는 어느 과속 운전자의 부주의로 사고를 당하고 그만 세상을 뜨고 맙니다. 교회에서 장례식을 마친 후 대통령은 모든 사람을 교회 밖으로 나가게 한 후, 선생님에게 새 자동차 한 번을 타보는 호사로움 조차 허락하지 않았던 무자비한 하나님을 향해 욕설을 퍼붓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아버지가 교장이었던 그 사립고등학교 시절에 반항의 표시로 했던 것 처럼, 담배를 피우고는 그 꽁초를 교회 바닥에 버려 짓밟습니다. 그 후로도 대통령은 종종 선생님의 빈 자리에 쓸쓸해 합니다.

물론 드라마이긴 하지만 여기에는 "나에게는 스승이 없다"고 울부짖고 전국의 모든 교사들을 학생들을 볼모삼아 학부모로부터 촌지나 울궈먹는 사기꾼 집단으로 매도하여 교사의 권위를 짓밟아 뭉개고 우리나라 교육문제의 원인을 나약한 교사의 책임으로만 전가하고, 그 후 교실을 봉숭아 학당보다 더 난장판으로 만들어 놓은 우리 나라 교육부 장관같이 똑똑하신 분은 없습니다. 이 드라마가 추구하는 가치가 바로 이 작은 선생님의 일화에 그려져 있어서 저는 좋습니다.

좋은 학교 가려고 대부분의 사람들 바둥거리지만, 그 목적이 자기보다 못난 사람을 비하하고, 반대로 자기 보다 공부 열심히하고 잘 살고 많이 배운 사람을 어떻게든지 끌어 내리려 하는 사회 분위기에서는 그 궁극의 결과가 어찌될지 자못 무섭습니다.

저는 우리의 아이들이 제대로된 성품을 갖춘 인간으로 자라기 위해서는, 그런 도덕 문제를 시험지로 풀 것이 아니라 우리 어른들이 일상에서 몸으로 실천하며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먼저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겠지요.
다가오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기를 빕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