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씨를 위원장으로 하는 사회통합위원회가 23일 출범한다는 뉴스를 읽고 참여정부 초기의 일이 생각났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정치개혁연구실 활동을 끝내고 캘리포니아 집에 돌아왔는데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그때 출범 예정이었던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프로젝트 검토를 요청했다. 그 주제가 "사회통합"이었다. 노 대통령의 문제의식이 그대로 반영된 아이디어였다.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둘렀던 과거의 제왕적 대통령을 탈피하는 와중에 발생할 수 있는 사회갈등을 어떻게 완화 혹은 극복할 것인지 고민한 것이었다. 아주 기초적인 방안도 있었는데, 16개 시도를 대표하는 특정 수의 명망 있는 인사들로 구성하는 국가 원로원과 비슷한 조직 제안도 포함하고 있었다. 새로 출범하는 사회통합위원회도 지역을 안배한다고 하니 비슷한 아이디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미국 의회의 상원은 영어로 Senate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원로원을 뜻한다. 2003년에 나는 그 프로젝트가 오히려 사회갈등을 부추길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정부에서 추진하지 말 것을 건의했다. 왜냐하면, 그 조직이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려면 원로원 격인 상원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단원제인 우리 국회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원로원을 추진하는 과정에 국회와 정부가 맞서는 모양새가 될 것이며, 사회통합은 물론이고 사회협력도 아닌 불협화음이 생길 여지가 크다고 봤다.
우리 사회가 과연 통합이 더 필요한지도 여전히 의문이다. 정치인들이 즐겨 사용하는 대표적인 레토릭이 몇 개 있는데, 약방의 감초처럼 통합도 자주 등장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라는 구호를 연상시키는 이 통합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지금 우리나라 상황에서 통합이라는 정치 구호를 주장하는 것은 남북통일에나 적용하는 것이 옳다. 남한만 국한한다면 이미 통합된 사회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이미 통합된 사회에서 무엇을 더 통합하자고 주장하는 것인지 의심스럽다.
만약 사회통합위원회의 통합이 여러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을 뜻한다면 그것은 사회협력이지 통합이 아니다. 굳이 통합이라는 용어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 정치인이나 정당이 "공동체" 개념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뭔지는 몰라도 개인이 아닌, 전체를 위하는 것이 더 옳다는 이미지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는 토양에서 출발하여 공공/국가/전체 이익을 추구해야지, 막무가내로 공동의 이익을 주장하면 그것이 다수 이익이 아니라 소수 이익으로 귀결될 수도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새로 출범하는 사회통합위원회는 각각 다른 이해관계가 우리 사회에서 표출될 수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면서, 제 사회세력이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확보할 것은 충분히 확보하는 사회협력을 목표로 제대로 기능을 하기 바란다. 그 권위가 인정받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지만, 내 희망사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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