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수님 네 번째 답변, 2009/01/03]
오늘은 내가 어떻게 재정학을 전공으로 선택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말씀 드릴 차례군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제 논문은 소득분배이론이고, 어쩌면 응용미시 쪽에 가깝습니다. 다만 H. Rosen, R. Gordon 같은 재정학자들이 second, third advisor 이기 때문에 재정학 전공이라 해도 무방한 점은 있습니다.
원래 Princeton 에 갈 때는 화폐금융론 쪽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달리 그런 것이 아니고 조순 선생님께 배운 학부 화폐금융론의 영향이었습니다. 내가 학부 다닐 때는 솔직히 말해 체제를 갖춘 강의가 몇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거시 같은 중요과목을 가르치는 분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조순 선생님이 가르치신 화폐금융론은 예외적으로 체계가 잘 갖춰진 강의였습니다. 그 강의를 들은 영향으로 나도 화폐금융론을 공부하겠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이지요.
Princeton에 가서 정운찬 선배를 만나 화폐금융론에 관심이 있다고 말씀 드리니 똑같은 대학에서 둘이 같은 전공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하시더군요. 그 말도 맞는 것 같아 일단 화폐금융론은 전공 대상에서 제외했습니다. 그 때만 해도 대안으로 국제경제학이나 경제발전론을 생각했지 재정학은 생각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1학년이 끝나고 여름 방학을 맞아 Musgrave & Musgrave 라는 학부 재정학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으면서 보니 생각 밖으로 재미있는 것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학부 때 재정학 과목을 수강하기는 했지만 흥미는 전혀 느끼지 못했었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으니 의외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2학년 때 선택해야 하는 세 가지 필드 중 하나로 재정학을 선택했지요. 이때 재정학을 전공으로 하려는 결심이 섰던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논문의 main advisor 이신 A. Blinder 교수는 거시가 전공이지만, 학위논문은 소득분배이론으로 쓰셨습니다. 나도 그 분과 소득분배이론 논문을 쓰고선 재정학으로 전공을 바꾼 셈이지요.
나는 재정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데 대해 무척 만족하고 있습니다. 재정학 특유의 training 때문에 다른 경제학자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자화자찬같이 들려서 미안하지만, 내가 쓰는 시평은 다른 경제학자들이 쓰는 것과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그 차이가 바로 재정학의 training을 받았는지의 여부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재정학을 전공하지 않은 경제학자들은 사회후생의 평가에 대해 잘 모릅니다. 그러니까 어떤 정책을 평가할 때 도대체 어떤 기준을 적용해야 하는지를 잘 모르는 것이지요.
그 결과 무조건 효율성만 부르짖게 됩니다. 지난 번 종부세 논쟁 때 동료 경제학자에게 수평적 공평성의 개념에 대해 얘기했더니 잘 알아듣지 못하더군요.
나는 재정학이야말로 진정 Gentleman's economics 라고 불릴 자격이 있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대학 교육의 목표가 교양 있는 신사와 숙녀를 양성하는 데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재정학을 반드시 공부할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A. Smith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오는 political economy의 정수가 녹아 있는 분야가 바로 재정학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요.
재정학은 춥고 배고픈 분야입니다. 요즈음 소위 '뜨는' 분야가 많지 않습니까? 예를 들어 금융이론이라든가 산업조직론 같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재정학은 공부해 보았자 사회적 수요가 별로 없다는 점에서 춥고 배고픈 분야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나에게는 그 점이 재정학의 가장 큰 매력입니다. 돈과 아무 관계 없이 사회적 관점에서 경제적 문제를 생각할 수 있는 의연함을 가질 수 있으니까요. 지식인이야말로 이런 즐거움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하지 않을까요?
[댓글]
이경훈
(2009/01/03 13:25) 정운찬 선생님께서 선생님 선배셨군요. 프린스턴에서 같이 공부하시고 서울대학에서도 같이 오랫동안 계셨으니 두 분이서 남다르실 것 같아요.
또 미시, 거시 교과서의 대표적인 저자들이라는 공통점도 있군요. 저도 학부 때 두 분 선생님의 수업을 들었는데 가르치시는 스타일은 약간 다른 것 같았어요. 선생님은 무척 꼼꼼하시면서도 대범하신데, 정운찬 선생님은 대범하신 겉과는 다르게 속으로는 꼼꼼한 모습을 느꼈거든요. 이건 제가 선생님들의 수업을 통해 느낀점이니 사실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겠군요.
김규식
(2009/01/03 18:37) 재정학, 올해에는 수강할 수 있게 되겠군요.
올해에는 경제학의 진수들을 마음껏 맛 볼 수 있는 한해가 되겠네요.^^ (하지만 쓰디씀도 같이 맛 볼지도..ㅠ)
안병길
(2009/01/03 22:51) 아, 그런 계기로 우리나라 미시와 거시를 두 분께서 분점?하셨군요.^^ 두 분께서 같은 분야를 전공하지 않으신 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학계를 위해서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뷰 질문을 드렸을 때 한 쪽 정도의 전체 답변을 해주실 것을 예상했는데, 각 질문에 한 쪽씩 장문을 올려주시니 황송합니다. 선배님의 자상하심에 다시 감복하고 있습니다.
은기환
(2009/01/08 13:03) 아 이렇게 보니 프린스턴에서 정운찬선생님께서 하셨던 말 한마디가 정말 엄청난 차이를 가져왔네요. 두 분께서 만약 다른 학교로 가셨더라면 그 결과 역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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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교육: 평소 하셨던 말씀을 참조하면 교육자로서 항상 보람을 느끼시겠지만 가르치시면서 특히 어떤 때 보람을 느끼시는지요? (이 질문은 고리타분하지만 정말 궁금합니다.)
[이 교수님 다섯 번째 답변, 2009/01/06]
4번 질문에 답한 후 한참을 끌었습니다. 공연히 게으름을 피우게 되더군요. 사실 이 질문에 답하기 힘들어 질질 끈 측면도 있습니다. 좋은 생각이 났으면 바로 썼을 텐데요. 여러분이 기대하는 대답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 잘 따라오지 못하던 학생이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가르치는 보람을 느꼈다.
- 내가 가르친 제자가 무언가 훌륭한 일을 했을 때 그를 가르친 선생으로서 보람을 느꼈다.
- 어떤 학생이 찾아와 내 강의를 듣고 공부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는 말을 하는 걸 들었다.
내 연구실을 찾아온 학생들은 잘 알겠지만, 난 대체로 젊은 세대와의 대화를 즐기는 편입니다. 솔직히 말해 젊은 세대의 모든 것을 인정해 주는 너그러운 사람은 절대 아닙니다. 그렇지만 내 세대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더 많이 이해해 주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튼 젊은이들과의 대화는 나를 즐겁게 만듭니다. 강의실에서도 대화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그래서 강의실 들어가는 게 즐거운 것입니다.
그리고 강의하는 과정이 일종의 창조적 작업이라는 생각에서 강의를 좋아합니다. 나는 강의하러 들어가기 전에 어떤 예를 들어 설명할 것인지를 구상하고 들어갑니다. 최근에 읽은 책, 신문, 최근에 본 TV 프로그램들을 생각해 보면서 그 중 어떤 것을 오늘 강의와 관련 지어 소개할 것인지를 구상하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심지어는 어떤 맥락에서 무슨 조크를 할지까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니 이 과정이 즐거워지는 거죠.
나보다 젊은 교수들 중에도 강의하고 나오면서 무척 피곤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 볼 때 "앞으로 가르칠 날들이 많은데 벌써부터 저러면 어떡하나?"라는 걱정이 듭니다. 최소한 나는 강의하고 나오면서 그렇게 피곤한 적은 없습니다. 한 마디로 강의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내가 지난 18년 동안 연구교수가 되지 않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습니다. (6년에 1년을 연구교수 될 수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교수가 된 것에 100% 만족하며 삽니다. 적성에 딱 맞는 직업을 찾은 나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지요.
안병길
(2009/01/06 23:31) 우문에 현답이옵니다. 선배님과 같이 교육에 열정과 재미를 항상 느끼시는 교육자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강의를 끝내시고 "음, 오늘 강의는 내가 생각해도 잘 됐어"라는 자평을 하시면서 행복해하실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선배님처럼 젊은 세대와 소통하기를 즐기시는 스승을 둔 학생들은 정말 복 받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조촐한 우문들에 성찬을 내려주신 선배님께 다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인터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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