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은 못내 그림이 되고...
청량한 가을로 계절이 익어가는 날에
늘 아련함으로만 남아 있던
살아온 날들의 그리움이 못내 그림이 되었습니다.
청솔 숲 가장 큰 나무 곁에 자리 잡은 우리들의 작업공간은
그동안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봄에 가지마다 새순을 터트리며 오소소 피어난 나뭇잎들은
봄빛 찬란한 연두와 초록의 향연이었고,
가을에는 갈색 낙엽들의 장맛비로 내려 내 가슴 속에 삶의 소중한 이야기를 고여 놓았다.
그 나무는 내 작업 속으로 들어와, 꿈을 영그는 나무, 호수의 물빛을 닮은 나무, 아파도 아프지 않다고 견디게 하는 나무, 사람의 뒷모습을 읽어주게 하는 나무,
덜어내는 기쁨을 알게 해 주는 나무, 아낌없이 피어나는 꽃들이 있는 바다 빛 나무가 되었다.
그 나무의 이미지는 끝없이 변용되면서, 이름 모를 꽃망울을 터트리기도 하고,
가지 사이로 물고기들이 유영하기도 하며, 뭇 새들이 모여 정겹게 노래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인연의 얼굴로 교차하기도 하며,
희미한 달빛에 숨죽인 강릉의 깊고 고요한 정경들을 펼쳐 주기도 하고,
잎새 같은 조개껍데기들도 나뭇가지에 걸려 새와 꽃들과 교감하면서
여전히 살아 있는 생명체로 존재한다.
삶, 추억 그리고 사랑...
이런 말들이 하나씩 별이 되어 간다.
물감으로 컴으로는 도저히 그 느낌을 그리지 못해
도자기 유약들이 1250℃의 고온에서 몸을 사르며 그려낸 투명한 그림이
맑은 향기를 내뿜고, 그 향기에 취해 잊고 있던 자연과 삶에 대한 아련함을 일깨워 주기를....
살아오면서 어느 땐가 들은 것 같은 화사하면서도 소탈한 정겨운 그림의 이야기들이
지친 일상에 온기와 활력을 불어넣어주기를 기대한다.
2009년 가을 작업노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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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친구인 현대도예가 염미란 교수의 예쁜 글입니다. 다음 주 15일 화요일까지 서초동 한전플라자 갤러리에서 전시회를 합니다. 다른 도예가들의 작품도 볼 좋은 기회인데 저는 멀리 있어서 참석하지 못합니다. 관심 있는 분은 가셔서 늦가을, 초겨울의 정취를 예술과 함께 하시길 권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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