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표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이죠. 지금은 그렇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현대 자유민주주의의 참모습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자유민주주의가 다양한 모습을 띠고, 또한 상대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으므로 특정 기준을 제시하여 판단해야 할 것입니다. 현대 민주주의의 기본인 일반 투표권(참정권, universal suffrage)를 한번 살펴봅시다. 일반 투표권은 일정 나이 이상의 시민은 인종, 성별, 피부색, 재산,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해서 투표권 차별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흑인과 여성이 투표권을 가진 것은 언제부터일까요? 흑인 남성이 먼저 투표권을 가졌을까요, 백인 여성이 먼저 가졌을까요? 흑인 남성이 먼저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1870년에 인준된 수정헌법 제15조에 따라서 흑인 남성도 투표권을 갖게 되었습니다.
"Section 1. The right of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to vote shall not be denied or abridged by the United States or by any State on account of race, color, or previous condition of servitude."인종, 피부색, 그리고 이전에 노예였는지 여부에 따라서 투표권을 차별할 수 없다는 명문입니다. 반면에 여성 투표권은 19세기가 아닌, 20세기에 부여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정치적으로 여성이 인격체 대접을 받은 역사가 100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우습지 않습니까. 지금 상식으로는 이해가 잘 안 되실 겁니다. 1920년에 인준된 수정헌법 제19조에 다음과 같이 여성 투표권을 인정했습니다.
"The right of citizens of the United States to vote shall not be denied or abridged by the United States or by any State on account of sex."몇몇 주는 그전에 여성 투표권을 도입했습니다. 와이오밍 주가 1869년에 제일 먼저 도입했고, 아이다호, 콜로라도, 유타 주가 20세기가 되기 전에 여성 투표권을 인정한 정도였습니다. 유타 주는 여성 투표권이 일부다처제를 없애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도입했는데, 오히려 여성이 일부다처제를 투표로 옹호하자 연방정부가 여성 투표권을 취소하는 해프닝까지 있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는 1893년 뉴질랜드가 국가 전체로 여성 투표권을 가장 먼저 인정했습니다. 덴마크는 1915년, 영국과 아일랜드는 1918년, 그리고 네덜란드는 1919년에 인정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자유, 평등, 박애 대혁명의 나라 프랑스는 1944년에, 직접 민주주의 대명사인 스위스는 1971년에 여성이 일반 투표권을 가졌습니다. 중동의 사우디는 여성 투표권을 아직 인정하지 않습니다.
미국의 여성 투표권은 당연히 하늘에서 툭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저항과 투쟁의 결과였죠. 그 중심에 Susan B. Anthony 여사가 있었습니다. 여성 킹 목사라고나 할까요. 1820년 매사추세추 주 애덤스에서 태어나서 1906년 뉴욕 주 로체스터에서 운명한 앤쏘니 여사는 여성 투표권을 주장하는 연설을 약 45년 동안 매년 75~100번을 했다고 합니다. 아울러서 여성 투표권을 주장하는 시민운동 조직에도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미국 여성 인권운동을 대표하는 인사입니다.
앤쏘니 여사의 노력은 20세기에 들어와 결실을 보게 된 셈입니다. 1918년 윌슨 대통령은 연방헌법에 여성 투표권을 명문화할 것을 의회에 요청했고,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1920년에 수정헌법 제19조로 여성 투표권이 미국 헌법에 들어왔습니다. 앤쏘니 여사를 비롯한 많은 미국 여성들의 노력이 대통령과 의회를 움직였던 것입니다. 그 와중에 우리 민주화 운동처럼 많은 운동가가 체포되었고 수형 생활을 하기도 했습니다. 로체스터 대학교에 앤쏘니 여사의 이름을 딴 기숙사가 있는 것은 여사가 인권운동을 했던 시기 대부분을 로체스터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뉴욕 주 로체스터가 자랑스럽게 여기는 지역 인사이기도 한 것이죠.
우리나라는 1948년 제헌 국회가 열리면서 일반 투표권이 시행되었습니다. 여성 투표권 운동은 필요 없지만, 앤쏘니 여사의 인권운동과 같은 노력은 현재 대한민국 여성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 헌법이 여성을 사회적 약자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런 명문화된 규정만큼 여성의 자유와 평등의 권리가 잘 보호되는지 의문입니다. 앤쏘니 여사와 같은 지도자가 있으면 우리 여성 인권운동이 더 활성화될 것이고, 여성 인권이 더욱더 진작 될 것입니다. 제 희망사항이기도 합니다.
참조: http://en.wikipedia.org/wiki/Susan_B._Anthony
http://en.wikipedia.org/wiki/Women's_suffrage
메이데이 2009/12/16 11:10
답글삭제저는 그나마 하늘에서 툭 떨어진 권리조차도 제대로 행사해보지 못했습니다. 재외동포 투표가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참 궁금합니다.
안병길 청해 2009/12/16 11:24
아, 메이데이님도 저와 처지가 같군요. 정부에서 준비하고 있다고 하니 2012년 총선부터는 투표하실 수 있을 겁니다.
페이스북에 링크하여 인용하였습니다. 트럼프당선에 놀라서 검색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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