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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11일 금요일

[단상] 서울대 국제지역원 소통 사례

서울대 국제지역원 전관 금연 토론 (1999년)

[설명] 이 토론은 1999년 서울대 국제지역원 게시판에서 있었던 토론이다. 그 당시 많은 비흡연 학생들이 실내 흡연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학생회는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실내 흡연을 삼가도록 권고하였지만, 여전히 일부 흡연자는 실내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들에 대한 비판 글이 대학원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토론이 시작되었다.

 필자는 흡연자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자유주의에서 자유가 서로 부딪힐 때 규범이 생기는 점을 강조하고, 흡연자들이 전관 금연 규범을 다시 바꾸려면 민주적 절차를 밟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전관 금연은 실외에 파라솔을 비치하여 흡연자 편의를 살피는 설비가 마련되어 예정대로 시행되었다. //

(출처: 1999년 서울대 국제지역원 홈페이지 게시판, 당시 주소 http://gias.snu.ac.kr)

[글 0] 문제 제기

“금연”, 결정된 것 아니었습니까? 얼마 전에 학생회에서 투표했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휴게실에서 남들 밥 먹는 거 뻔히 보면서, 약간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담배를 꼭 피워야 되겠습니까? 자기가 피우는 담배 연기를 다른 사람이 맡는 거... 애연가들이 생각하기에는 별거 아닐지 모르지만, 금연족들은 왜 왜 담배를 안 피우겠습니까? 몸에 나쁘니까 일부러 애써 안 하는 거죠... 몸에 나쁜 거 이 기회를 빌려 휴게실에서만이라도, 또는 밖에 나가서 피우는 거 귀찮아서라도 좀 줄여보시죠.

담배가 싫어요. 우리 아빠도 가족들 생각해서 끊었는데 그 연기를 내가 학교에 공부하러 와서 맡아야 되겠습니까? 흡연자들은 모르겠지만, “정말 정말 머리 아프게, 피우는 사람의 인격이 순간 의심될 정도로 싫다고요~~!!!”

[글 1] 금연 문제에 대해서 (학생회)

사실 많은 반발이 있어도 실내 금연을 강제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학생회에서 결정하는 것은 별 구속력이 없더군요. 교수 회의에서 이 결의 사항을 참고, 채택하여 공식적으로 공포해야 효력이 발생한답니다. 어쨌든 흡연자들을 야만인, 에티켓 없는 괴물 취급하지 마시기를 바라면서 공식 견해로 선생님들께 공포하시기를 부탁하겠습니다.

새 건물에는 흡연실이 만들어질 것을 확신하고, 야외에도 아름다운 휴게실이 생길 것을 믿습니다. 어쨌든, 앞으로는 야외에서 흡연하시기를 부탁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글 2: 필자] 금연 문제

국제지역원(신관 및 구관 모두)을 금연 건물로 하기로 하였습니다. 금연 규정은 국제지역원 옥외에 흡연자 편의를 위하여 파라솔(우천시 고려), 피크닉 테이블, 재떨이 등을 비치하는 시점부터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이 결정에 따라서 조만간 저도 제 연구실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주 잘 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건강을 위해서...

[글 3]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휴게실에서 못 피우게 하면 화장실에서 피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하지만, 이것도 불쾌하기는 휴게실 못지않습니다. 오히려 연기 농도는 휴게실보다 훨씬 높지요. 그러니 해악은 더 큽니다.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글 4: 필자] Re: 화장실에서도 피우지 맙시다.

실내 흡연은 어떤 곳에서도 허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연히 화장실도 금연구역입니다.

[글 5] 왜 이러죠? (흡연자 시각)

이런 예외없는 규칙 적용은 분명히 어떤 부작용을 가져올 것입니다. 건물 내 흡연공간 설치가 더 중요할 듯싶습니다. 흡연자들께서는 아시겠지만, 수업 중간마다 한 대가 얼마나 피로회복에 좋은지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쉬는 시간을 이용해서 바깥 파라솔까지 가는 것은 무리가 있을 듯싶습니다. 4개의 화장실 중 하나라도, 3층이 가장 무난할 듯, 흡연 가능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 어떨까요... 그리고 안 선생님 방에서 교수님 흡연은 가능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과연 이런 조치가 어떻게 옮겨질지 의심스럽습니다. 휴게실에서 담배피우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가중시켜 오히려 나가서 담배를 더 피우게 하는 부작용도 생기지 않을까요? 우리 어느 정도 타협합시다. 전관 금연은 지나치게 이상적인 발언입니다. 흡연구역은 별도로 지정되어야 합니다.

[글 6: 필자] Re: 왜 이러죠?

구체적인 사례로 한번 생각해봅시다. 공항에 가면 건물 안에 흡연실이 있습니다. 저는 그 이유를 건물 밖으로 나가서 흡연하기 곤란하기 때문에 그런 흡연 구역을 지정한 것으로 해석합니다. 국제선 출국장에서는 한번 들어가면 밖으로 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우리 건물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교수회의를 할 때, 흡연자 편의를 위해서 환풍시설이 있는 흡연실을 설치하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주 값비싼 최고성능 환풍시설이 아닌 이상, 담배 연기는 새나올 것입니다. 그 이유 때문에 전관 금연으로 의견이 모였습니다. 흡연자인 저도 동의했습니다. 국제지역원은 건물 밖으로 나가는 데 걸리는 시간이 30초도 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 방을 한번 생각해봅시다. 저는 지금까지는 금연 방침이 없었기 때문에 마음대로 방안에서 담배를 피웠습니다. 그 담배 연기가 복도로 가끔 새나올 때(방문을 열고 닫을 때가 잦으므로), 미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국제지역원이 허용한 것이었으니까요.

이제 비흡연자 건강에도 좋고, 제 건강에도 좋은 새로운 방침을 도입했으니, 저로서는 제 방에서 담배를 피우지 못해도 전혀 불만이 없습니다. 오히려 환영합니다. 차제에 담배를 끊으면 더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담배를 줄일 좋은 기회이고, 담배를 줄이지 못하더라도,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4층과 1층을 오르내리면 가벼운 운동이라도 될 것입니다.

물론 흡연자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내 정신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긴다. 그것도 화장실이나 실내에서 꼭 피워야 내가 돌지 않는다.”라고 주장할지도 모르겠는데, 저에게는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내가 도는 것이 중요한 만큼 남이 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것이 자유주의에서 규범이 생기고 규제가 생기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장은 “간접흡연이 건강에 좋지 않다.”라는 연구결과를 인정하는 가정에서 펼쳐졌습니다. 그 전제가 틀렸으면 다른 주장도 가능할 것입니다.)

[글 7] 밤샘자 (흡연자)

저는 언제나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나름대로 담배를 즐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흡연 혹은 금연 문제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고 싶군요.

1. 제가 본 바로는 공항청사 입구에서 바로 들어간 곳, 그러니까 각종 절차를 하기 이전의 장소 바로 그곳에도 흡연실은 있었다고 기억하는데요? 물론 그곳은 조금 나가기만 하면 바로 밖인데도 말이죠. 제 기억이 틀린 건가요?

2. 만약 지금 3층 화장실이 흡연실이라고 생각하면, 제 판단으론 창문 위에 달린 환풍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보는데요. 그리고 거기서 피우는 담배연기가 그 밖에서 지나가는 비흡연자의 건강을 해칠 정도로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3. 24시간 개방이 이뤄지는 지금, 밤새는 사람, 혹은 최소 3, 4시까지 버티다 자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12가 넘으면 대개 문은 쇠사슬로 동여매어 잠급니다. 이럴 때 담배를 피우고 싶으면 어떻게 합니까? 쇠사슬을 푼 다음에 현관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다시 돌아와야 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운 것 같습니다...

4. 마지막으로 제가 우려하는 것은, 이른바 ‘모니터링’ 문제입니다. 야심한 시각에는 말할 것도 없지만, 어떻게 전관 금연체제가 집행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물론 금연이 선포되고 하기로 했으면 지키는 것이 기본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담배와 같이 개인의 정서적 심리적 기호가 강하게 작용하는 사안은, ‘선포한 규칙’에 대한 반응과 수용 정도는 다양할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에서는 흡연 문제가 일상에서 민주주의와 권리문제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흡연 문제를 두고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소송을 제기하고,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보도하고, 논리적 공방을 벌이는 것이 무슨 대단한 민주주의와 관련된 것처럼 이야기하는 미국적 사회분위기가 대단히 마음에 안 듭니다.)

단지 정서와 기호, 혹은 예의 문제라고 저는 느낍니다. 하지만, 시대도 변하고 사회도 변했고, 비흡연자들 건강도 당연히 생각해야겠으니, 정서, 기호 혹은 예의에 관련된 이 문제를 되도록 합리적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방법은 흡연실 설치라고 생각합니다.

[글 8: 필자] Re: 밤샘자

> 1. 공항

그것도 맞습니다. 그 경우에는 흡연자의 편의를 도모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시카고 오헤어 공항은 아예 어떤 곳에서도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하지요. 제가 있었던 미시간 주립대에서는 건물에서 일정 거리 이상 떨어져야 실외 흡연도 인정하죠. 왜냐하면, 밖에서 피운 담배 연기가 안으로 들어올 수 있으니까요. 제가 든 것은 하나의 예일 뿐입니다. 어떤 곳에서는 수업 시간 중에도 담배를 피우겠죠. 따라서 움직이는 거리와 흡연의 인정은 일반화시키기 어려운 것이 객관적 판단일 것입니다. 공항 국제선은 그런 합리적 설명(rationale)을 인정할 수 있는데, 국제지역원은 그런 설명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의견이었죠.

> 2. 흡연실 환풍시설

그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서 다를 것입니다. 어떤 이는 담배 냄새만 맡아도 머리가 아프다고 호소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그 정도 냄새는 괜찮다고 이야기하겠죠. 일반적으로 약간의 연기는 환풍시설을 설치해도 새어 나온다고 보면, 그것이 간접흡연을 일으킬 수 있으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제도는 완벽할 수 없을 것입니다. 흡연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흡연실을 만드는 방향으로 “민주주의적”으로 의견을 모아서 건의하시기 바랍니다. 한 사람 의견만으로는 안됩니다.

> 3. 24시간 개방

지문인식기 공사를 곧 시작합니다. 아마 금연 건물이 되기 전에 그 쇠사슬은 풀릴 것입니다.

> 4. 이른바 ‘모니터링’ 문제

저는 완벽한 모니터링은 불가능해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서, 누가 실내에서 담배를 피웠다고 가정하죠. 비흡연자가 지나가면서 본다면 지적할 수도 있고, 익명으로 게시판에 글을 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담배꽁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건물 밖에 흡연 테이블과 재떨이를 비치하려는 것입니다. 그래도 계속 아무 곳에나 버리면, 그것은 금연 건물 지정과는 다른, 흡연자 교양 문제가 되겠죠.

> 3층 정수기 옆도 담배 피우기 ‘좋은’ 장소

위에 언급했습니다. 모니텅링이 잘되지 않는다고 합시다. 그것이 실내 금연을 규정하지 못할 타당한 사유가 될까요? 금연으로 규정할 때와 하지 않을 때, 그런 식으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의 숫자는 차이가 없을까요? 모니터링이 잘되지 않으면, 잘 되는 식으로 제도를 만들 수는 없을까요?

> 저는 무례한 말을 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여론을 한번 모아보십시오. 그러면 다시 교수회의에서 논의할 수 있습니다. 제도는 항상 변할 가능성을 갖고 있답니다. 의견 감사합니다.

[글 9: 필자] 금연 규정 시행 시점

방금 전자우편을 확인해보니 오해가 풀렸군요. 금연 규정은 옥외에 파라솔, 테이블, 재떨이가 갖춰지는 시점에 발효합니다. 따라서 그때까지 지금 현행대로 하시면 되겠습니다. (저에게 반론을 제시하신 분은 그 물건들을 가능하면 비치하지 않도록 비시고, 혐연자분들은 가능한 한 빨리 비치하도록 비실 것 같은데... 저요? 저는 그냥 얼마나 빨리 비치되는지 보려고 합니다.)

[글 10: 필자] 오늘부터 전관 금연입니다.

실외 흡연구역이 생겼으니 오늘부터 전관 금연입니다. 불만이 있는 흡연자들께서는 자신의 권리를 확보하려는 노력을 보이시길 권고합니다. //

[토론 소감] 갈등은 소통으로 풀 수 있다는 교훈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다. 사회 갈등은 정보 전달이 잘못된다든지, 상대방 진의를 오해한다든지, 사실 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등, 소통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여지를 충분히 갖고 있다. 필자를 비롯한 토론 참여자들이 더 정확한 정보를 얻어서 갈등 상황이 해결된 사례이다. 현 정부가 참조할 만하다는 것이 필자의 오래된 생각이다.

당시 필자는 국제협력전공 교수이면서 전산실/도서관 담당 교수였는데, 학생들 토론에 참여하여 학교의 뜻을 전달하고, 학생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하였다. 당시 국제지역원은 설립된 지 2년밖에 되지 않았고, 학사 프로그램 개발, 건물 신축 등, 대학원을 안정화하려고 노력하던 시기였다. 그 와중에 학생들 민원 사안이 가끔 발생했는데, 이 사례도 그중 하나이다. 소통을 통해서 학교 방침을 명확하게 전달하고, 학생들을 설득하여 갈등을 해결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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