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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송년 특선]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인터뷰 3

3. 여행: 그동안 여행하신 중에 겪었던 재미있는 일화를 한 가지만 소개해주세요.

[이 교수님 세 번째 답변, 2009/01/02]



여러분, 내가 여행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겠지요? 여행을 하면서 새로운 것들 보고 맛있는 것 먹는 게 정말 큰 즐거움이지요.

여행 중 겪은 가장 재미있는 일화는 15년 전쯤 Rome에서의 일입니다. 사회대의 한 교수와 학회 끝난 다음 유럽을 한 열흘쯤 여행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Rome는 그 여행의 막바지여서 그 일을 당한 것은 조금 해이해진 탓도 있었을 것입니다.

어느 날 저녁때 우리는 이름 없는 레스토랑을 찾았는데, 식사가 의외로 싸고 맛있었습니다. 그때는 이탈리아 식이라면 파스타 한 가지만 먹을 줄 알았지 first dish, second dish 이런 게 있는 줄 몰랐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거기선 풀 코스 요리가 나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중간에 나온 파스타도 스파게티 봉골레였는데, 늘 토마토 미트 소스만 먹던 촌놈에게는 엄청난 별식이었습니다.

저녁을 맛있게 먹고 Trevi 분수를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뒤에서 "Excuse me."라는 소리가 들려오더군요. 이탈리아 말 몰라 늘 고생하던 우리에게 영어가 음악과도 같이 아름답게 들리데요. 반가운 마음에 뒤를 돌아 보았더니 두 사람이 "Do you know how to go to Trevi fountain?" 이라고 말을 걸어왔습니다. 우리도 거기 가는 길이니 같이 가자고 제의했습니다.

분수로 가는 길에 우리는 통성명도 하고, 몇 마디 대화도 나눴습니다. 한 녀석은 Brazil, 한 녀석은 Saudi Arabia 출신이라고 자기를 소개하더군요. 분수에 도착했더니 거긴 완전히 환락의 밤이었습니다. 동전 던지고 술 마시고 한 마디로 난리법석이었습니다. 우리도 동전 던지고 떠들고 했는데, 그 녀석들이 그 동네에 좋은 piano bar가 있으니 함께 가자고 꼬시더군요, 그 분위기에서 아주 그럴듯한 제의였습니다.

나와 동행인 사회대 교수는 술을 엄청 좋아합니다. 그런데 그 동안의 여행에서 술 안 먹는 나 때문에 조금 재미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도 있어 내가 함께 가자고 나섰지요. 그런데 그 녀석들이 말한 피아노 바에 도착하니 "어럽쇼?"였습니다. 젊은 여성들이 로비에 한 무더기 앉아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여튼 그들이 이끄는 대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더니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는데 여성이 한 명씩 오더니 옆 자리에 앉더군요. 그 녀석들에게 "왠 일이냐?"고 물었더니 어깨만 들썩하데요.

우리는 오렌지 쥬스 두 잔과 진 토닉 두 잔을 시켰습니다. 그런데 시키지도 않은 안주가 나오더니 갑자기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동료 교수에게 눈짓해 나가자고 했습니다. 그 말을 하는 도중에 샴페인이 또 한 병 터지더군요. 가지 말라고 말리는 그 녀석들을 뿌리치고 카운터에 가서 계산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술집 녀석들 쉴 새 없이 계산기를 두드려대더군요. 뭘 그리 많이 시켰는지. 계산 금액을 보니 우리 돈으로 25만원 정도가 나왔습니다. 난 오렌지 쥬스 한 모금 마시고 나왔을 뿐인데요.

주머니에 그렇게 많은 현금이 있을 리 없었습니다. 우리 카드를 갖고 가더니 결제가 안 되니까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끌어가더군요. 사무실로 끌려 들어가니 떡대 좋은 몇 녀석이 문을 가로막데요. 그러더니 주머니 검사 하고 돈이란 돈은 다 뺏어갔습니다. (이탈리아 돈, 독일 돈, 프랑스 돈 모두요.) 그래도 얼마가 모자라니 남은 돈 어떻게 할 거냐고 다그치더군요. 우리는 호텔에 가면 있으니 그리로 데리고만 가 달라고 애원했지요. 정말로 있느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전화를 걸어 차를 부르더군요. 그걸 타고 호텔로 돌아와 잔금을 치르고 풀려났습니다. 정말로 황당한 경험이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두 놈들은 삐끼였구요. (우리가 돈 없어 그 놈들에게 억류 되었다면 삐끼 생활 몇 달 해줘야 풀려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날 밤 한 가지 위안 거리가 있었습니다. 내 동료 교수가 억울한지 한잠도 못자고 밤새 뒤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 전까지만 해도 자리에 눕자마자 고래처럼 골아떨어지던 사람였는데요. 그 많은 밤들을 그 분 코고는 소리에 잠못 이루고 뒤척이며 살았는데, 그 날만은 그 반대였던 것입니다. 나는 그리 억울하지 않아 잘 잤지만, 그 분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그 날 밤 나는 상쾌하게 자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Every cloud has its silver lining."이란 말이 생각나데요.

ps. 첨부한 Trevi 분수 사진은 지난 여름에 찍은 것입니다.

[댓글]

안병길
(2009/01/02 13:53) 헉, 국제삐끼단에게 당하셨군요. 이번 말씀도 너무 재미있습니다. 15년 전에 25만 원이면 상당한 금액이었을텐데요. 그래도 다치시지 않고 풀려나셔서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태리에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된다고 들었는데 삐끼까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영도스키
(2009/01/02 13:56) 국제삐끼단ㅠ 글은 재미 있지만, 정말 그 당시에는 화나고 답답하셨을듯해요ㅠ 그래도 아무일 없이 나오셔서 다행입니다ㅠ

이주현
(2009/01/02 15:54) 저도 5년 전에 로마에 가서 트레비 분수를 보고 왔습니다.. 아 그때 유럽이 50년만에 최고의 폭염이라 친구들이랑 사우나 하는 줄 알았습니다. ㅠㅠ 너무 더워서 이태리 일정을 7일에서 5일로 줄이고 대신 스위스에서 2일을 더 보냈었죠^^

그래도 교수님 다치지 않으셔서 천만 다행이예요 ㅠㅠ 저는 친구들이랑 배낭여행가서
후질근하게 하고 다녔더니, 그런 사기꾼들이 접근을 안한 것 같습니다.

이준구
(2009/01/02 17:11) 그 삐끼 녀석들과 일당이 그렇게 포악한 녀석들 같지는 않았어. 그냥 건달패 정도? 몸이 다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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