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9월 22일 화요일

[정치] 참여정부에 대한 이런저런 추억거리

제 나름대로 평가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스타일이 적어도 정치 분야에서는 학자에 크게 의존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에 대해서 정치학자들이 별로 우호적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저는 불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실력 있고 명망 있는 정치학자분께 이래나 저래나 국가가 잘 되어야 하니 노 대통령에게 조언을 해주는 것이 좋겠다고 권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분은 언론을 통해서 가끔 비판을 하셨죠.

당시 노 대통령과 소위 주류 정치학자들 사이의 비협조관계가 학자들 잘못이냐, 참여정부 잘못이냐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정치가 매우 상대적인 개념임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양쪽 모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학자 문제는 어느 정도 짐작하실 수 있을 테니, 참여정부 쪽과 관련된 일화를 말씀드리죠.

하루는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라는 사람과 점심을 같이했습니다.

측: “대통령을 도와주십시오.”
나: “이미 도와 드리고 있습니다. 인수위에서 자원봉사도 했습니다.”
측: “코드에 딱 맞춰서 도와주십시오.”
나: “그렇게는 못 합니다. 제가 대통령의 스탭이면 그렇게 할 수도 있겠지만, 학자 배경을 가지고 외부에서 활동하는 사람으로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 있다고 판단하면 그대로 자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측근이 노 전 대통령 자신은 아니지만, 그 정도면 분위기를 대충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참여정부 집권 초기에 노 대통령 옆에 실력 있고 명망 있는 학자가 적어도 세 명은 붙어서 대통령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컨대 제가 인수위에서 읽은 한 자료에는, 정치학자와 의견 교환하던 중 당선자가 자유주의를 잘 모른다고 스스로 고백한 기록이 있었습니다. 대통령이란 직책이 매우 광범위한 영역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슈퍼맨이 아닌 다음에야 항상 빈 곳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노 전 대통령은 제가 보기에는 매우 똑똑한 사람입니다. 똑똑하기 때문에 더 실력 있는 학자들에게 배워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제가 알기에는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화가 또 생각나는군요. 취임식이 있었던 직후에 새로 생긴 위원회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특정 프로젝트를 맡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주로 연구한 분야가 아니라서 2주 정도 내용을 검토한 다음에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학자인 위원장은 그 프로젝트가 대통령의 아이디어이고 따라서 대통령의 관심이 매우 높다고 설명해줬습니다.

검토했습니다. 취지는 매우 훌륭한데 추진방안이 무리가 있다는 것이 제 판단이었습니다. 그래서 2주 뒤에 위원장을 만나서 무리한 프로젝트이므로 추진하지 않는 것이 좋으니, 대통령께 그렇게 보고하고 설득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 위원장 말씀이 대통령이 그렇게 설득될 스타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학자로서 제일 가까이 있는 사람인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니 어떤 학자가 대통령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인지 안타까웠습니다. 그 프로젝트는 이런저런 변형을 거쳤지만 원래 아이디어대로는 현실화되지 못했습니다.

얘기가 길어지는군요. 또 다른 일화가 생각나네요. 인수위 정치개혁연구실에서 정치개혁에 대한 광범위한 제안을 만들었습니다. 하루는 연구실장이 당선자에게 보고하러 가서 그 주요 내용을 외부에 발표해도 좋은지 문의하니, 좋은 내용은 발표해도 괜찮다는 언질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기자들에게 예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기자회견 2시간 전에 취소되었습니다.

그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홍보책임자가 연구실장과 만난 기자회견 당일 날, 그 책임자가 연구실장에게 당선자의 허락을 받았느냐고 재확인하려고 했는데 연구실장이 애매모호하게 얘기해버린 것입니다. 연구실장이 정치인이었다면, 당선자가 허락했는데 홍보책임자가 재확인할 필요가 무엇이 있느냐고 강하게 나갔을 것입니다. 일종의 기선 제압이죠. 그런데 그 학자분이 어정쩡한 태도로 나가니 홍보책임자가 재확인해야겠다고 나온 것입니다.

문제는 그때가 기자회견을 불과 몇 시간 남겨놓은 시점이었고, 당선자는 지방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앉아 있어서 연구실장이 기자회견 전에 당선자를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홍보책임자의 전언을 들은 정무책임자가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서 구체적 내용에 대한 설명 없이, 정치개혁연구실에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하니 확인해달라고 했답니다. 당선자가 구체적 내용을 모르니 오케이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무산됐습니다.

그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저는 연구실장에게 그 일로 우리 정치개혁의 앞길이 매우 험난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머릿속에서 어쩌면 우리 정치발전 역사에 흠이 이미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정치개혁 청사진을 빨리 국민에게 알려야 국민의 지지도 받을 수 있고 추진동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제 평소 입장 때문이었습니다.

기자실로 내려갔습니다. 큰 소리로 저와 식사를 같이할 기자분 계시느냐고 물어보니, 세 명의 기자가 따라나섰습니다. 자원봉사자가 조금 오버했죠. ^^ 식사하면서 정치개혁연구실장을 잘 취재하면 건수가 있을 것이라고 귀띔해줬죠. 그런 식으로라도 알려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을 되새김해보면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저는 2005년 가을에 참여정부와 당시 여당에 가끔 자문하는 역할과 서울에서 활동을 접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왔습니다. 그 이후 우리나라 정치에 아무런 직접적인 관계도 하지 않고 무당파 “관찰자”로서 우리 정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제가 지난 정치에 대해서 적는 글들은 두서없이 소회를 뇌까리는 정도로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주요 사항들을 모두 고려하면서 글을 적으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양해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의견교환은 환영합니다.

댓글 4개:

  1. 질문이 있습니다.
    "대화"라는 책은 시중에 판매되는 책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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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ttp://16cwd.pa.go.kr/cwd/kr/government/whitebook.html 로 가시면 디지털 자료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연결되도록 링크했습니다. 참여정부가 자료공개 시스템을 잘 정비했죠.

    정치개혁연구실의 연구 결과는 대외비로 분류되어 인수위 백서에는 구체적 내용이 없습니다. 저는 공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봤는데, 결국 비공개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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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위에 사이트 참 괜찮네요. 이런 국정자료 공개가 조금 더 활발히 이뤄지고, 이에 기반한 토론이 사회에 많아진다면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이트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언젠가 시간이 나면 좀 찬찬히 들여다 보고 싶네요.

    참여정부가 어느 정권 때보다 서울대 교수 출신의 입각이 적었고, 역사상 가장 많은 민주화운동 수형자 출신이 많이 들어간 정부라고 하더군요.

    다 모든 것에는 나름의 장점과 단점이 있기 마련이지만, 그리고 기본적으로 국정운영방향의 큰 틀 자체는 괜찮았다는 개인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습니다만, 조금 더 많은 학자들의 논의에 귀기울이고, 내걸었던 개혁의 깃발을 조금 더 보수적인(정치적인 담론 측면이 아닌, 조심스러운 접근방법으로서의) 입장에서 추진했다면 훨씬 괜찮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참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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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여담입니다만, 노 전 대통령이 토론을 좋아했죠. 그리고 정치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흔적이 여럿 있습니다. 퇴임 후 정치학 개론서를 적고 싶다고 말한 적도 있는 정도였으니까요. 현실 정치에서 고생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으니 일가견이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정치의 속성상 상대성이 매우 중요하게 작동합니다. 옳고 그른 잣대가 애매할 경우가 많죠. 안타깝게도 그 점을 활용해서 노 전 대통령과 맞짱토론하여 한 수 가르쳐주는 높은 내공을 가진 정치학자가 주위에 없었습니다. 그것은 학문적 지식만 많아서 되는 것이 아니고, 토론과 소통 테크닉이 출중해야 가능한 것이었거든요. 그래서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치학 연구를 스스로 설정한 잣대로 고르게 되었다고 저는 봅니다. 대연정 아이디어가 그렇게 해서 생긴 것으로 추정해요. 제 견해로는 어설픈 의제 설정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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