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9월 27일 일요일

[단상] 서울역에서

(다음 주말이 한가위 연휴이군요. 2003년 9월 9일 추석 무렵에 작성한 메모입니다.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어머니를 마중하러 서울역에 갔을 때 생긴 일입니다.)

추석을 보내기 위해서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어머니를 마중하기 위해서 서울역에 나갔습니다. 연로하시기 때문에 첫날을 지내실 작은 형님댁까지 길 찾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안내해 드리러 나갔던 것입니다. 타신 열차의 객차번호를 확인하고 그 앞에서 기다리겠다고 약속을 했는데 서울역에 나가보니 연휴 수송시간 동안에는 입장권을 발부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난감해진 저는 안내 데스크 앞에 있는 서울역 직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입장을 할 수 있는지 문의했습니다. (승객들이 기차에서 내리면 두 군데로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엇갈리면 골치 아픕니다. 어머니는 핸드폰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직원: "그런 사정을 가진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선생님만 사정을 봐 드리기 곤란합니다."
나: "연로하셔서 길을 잃으실 염려도 있고, 저와 객차 앞에서 만나는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이런 때에는 융통성을 발휘해주실 수 없는지요? 입장을 시켜줄 수 있는 결정은 누가 하는지요?"
직원: "역장님께서 결정권자이십니다. 역장실로 가보시지요."
그래서 저는 서울역 1층에 있는 역장실에 가서 역장님을 만나겠다고 직원께 다시 문의하였습니다. 사정을 설명하고 제가 입장할 수 없으면 서울역 직원이라도 해당 객차에 가서 연로하신 어머니를 밖에 있는 저에게 안내해줄 수는 없는지 문의했습니다.

"아마 안내한 직원이 역장실로 선생님을 잘못 보내신 것 같습니다. 어떤 직원인가요? 지금 모든 직원이 바빠서 직원이 안내해 드리는 것도 힘듭니다. 제가 메모를 적어 드릴 테니 입장하셔서 어머님을 안내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저는 그 직원의 전화번호가 적힌 메모를 소중하게 받아들고 해당 출입구로 갔습니다. 지키는 직원이 아무도 없어서 그냥 입장했고, 어머니를 반갑게 만나서 출구로 모시고 나왔습니다. 기차표를 확인하는 직원이 제지하면 그 메모를 보여주려고 준비했는데 아무런 확인도 하지 않더군요.

역장실에 있는 직원의 설명으로는 안전문제 때문에 대수송 기간에는 입장표를 발부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앞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실 분이 마중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이 글을 올립니다.

즐거운 한가위 연휴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후기 ▷ 철도청 홈페이지에 이 글을 옮기고 다음과 같은 사족을 붙였습니다. (9월 9일 매우 바쁘신 와중에도 큰 도움을 주신 역장실 강동희님께 감사드립니다. 고객의 요청에 의해서 노약자를 친절하게 안내할 수 있는 제도를 검토해보실 것을 권해 드립니다. 조그만 서비스 개선에 고객들은 감동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2003/09/12]

댓글 4개:

  1. 그래도 그 정도의 융통성을 발휘해 준 게 고맙군요.
    안전이니 뭐니 하는 것은 편리한 핑계에 불과한 경우가 많지요.
    사실 하위직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드는 게 중요한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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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저는 그때 조금 황당했었습니다.
    상식적으로 노약자나 장애인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인데 예외 없이 입장을 막는 발상 자체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럴 때 도움을 주는 시스템이 완비되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역장실로 가보라고 안내했던 직원은 설마 제가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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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안박사 짐작이 맞을 겁니다.
    그때 어투가 어땠는지 몰라도 약간 짜증이 나서 난 알 바 아니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약자에 대한 배려라는 측면에서 우리 사회는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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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이상한 사람이 귀찮게 한다는 어투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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