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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26일 토요일

[자유] 비행기 안에서...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11)

제가 태평양을 몇 번 건넜는지 정확한 숫자는 모릅니다만, 한 때는 일 년에 두세 번은 왕복할 정도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최근에는 3 년 정도 비행기를 타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장거리 비행도 별로 지루하게 느끼지 않는 편입니다. 영화를 보든지, 모 외국 항공사 비행기를 타면 슈퍼마리오를 즐기며 혼자서도 잘 놉니다.^^

글을 적을 때도 있었습니다. 한 번은 노트북에 열심히 타이핑을 하고 있었는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담배 냄새였습니다. 그 비행기는 전 좌석 금연이었는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담배는 기호 식품이라서 애연가는 몇 시간 피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오기도 하죠, 이렇게 생각하면서 봐주는 것은 관용의 자유 행위일까요?

우리가 관용이라고 하면 오해할 때가 잦습니다. 무조건 봐주는 것을 관용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무골호인 혹은 핫바지가 관용의 챔피언이죠. 그러나 불관용 대상을 관용하는 것은 방종이 될 수 있습니다. 그냥 놔두는 자유를 남용한 것이죠. 이런 종류의 방종에 경계선을 그어주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담배를 피우는 승객은 외국인이었습니다. 승객들 대부분이 우리나라 사람인데, 그 승객 근처에만 외국인 몇 명이 있더군요. 나중에 보니 화장실에 들어가서 피는 것 같기도 하고, 그 승객은 아예 앉아서 피더군요. 승무원을 포함해서 아무도 그 사람들의 일탈 행위에 시비를 걸지 않았습니다. 국제선 전면 금연을 시행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라서 그랬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전에는 장거리 비행은 뒷좌석 일부는 흡연석으로 지정했었죠.

그나저나 한번 정해진 규정이고, 특히 다른 승객들의 건강권과 직결된 그런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제가 이렇게 얘기하면, 간접흡연이 사람 생명을 단축시킨다는 명시적 증거가 없다더라, 이렇게 얘기하는 분도 있겠죠. 이 문제는 말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피해에 관한 얘기입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세상에 무슨 절대적인 진리가 있겠습니까, 많은 학자가 연구를 통해서 그렇게 추정하고,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으면, 조심하면 되죠. 조심하지 않아서 간접흡연으로 나중에 아무 죄 없는 승객이 건강을 상하게 된다면 그 억울함은 어떻게 합니까. 거기에 담배 피우는 사람의 행복감을 돈으로 계산하고, 기타 등등 해서 효용 대 효용으로 비교하자고 주장하는 우는 범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떤 승객이 담배 피는 승객에게 직접 시비를 걸면, 승객끼리 감정이 상할 수 있죠. 그래서 쓰리 쿠션 방법을 써야 합니다. 그날은 제가 총대를 메었습니다. 스튜어디스에게 슬쩍 얘기했죠. 시정되었습니다.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30 초만 신경 쓰면 되거든요. 그런데 승객 대부분은 귀차니즘에 빠졌는지, 영어로 직접 얘기해야 되는데 영어가 고생할 것을 걱정했는지, 지나치게 봐줘서 일종의 방종이 되었던 것이죠.

그 외국인들은 자유를 만끽한다고 생각했겠죠. 결국, 제가 호루라기를 점잖게 불어서 방종의 경계선을 제시해봤던 것입니다. 제 이야기가 기장에게 전달되었는지, 기장이 저에게 직접 와서 고맙다고 인사도 하고, 스튜어디스들은 애들 갖다 주라고 온갖 기념품을 챙겨주고 그러더군요. 호.호.호.

제 도움에 진심으로 감사해서 그랬을까요?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둘이 뒤섞여 있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기내 흡연을 승무원들이 방조했다는 식으로 제가 고객카드라도 한 장 적어 보십시오. 항공사 본부에서 나중에 난리가 날 걸요? ㅋ

자유주의 세상이 그렇습니다... 만만찮습니다. 즐거운 하루, 시작하시길...

댓글 1개:

  1. 안병길
    (2009/07/11 00:54) 이 사례는 소극적 자유(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가 방종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홍기호
    (2009/07/11 07:41) 자신의 직무를 다 하지 않는 승무원에 대한 항의로 볼 수도 있는데, 기장과 스튜어디스들이 감사표시를 했다는 점이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담배를 꺼달라고 말할 구실을 주었기 때문일까요? 누군가의 항의가 없이는 흡연자를 방치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가 있어 보이긴 합니다만..

    안병길
    (2009/07/11 10:25) 제가 30초 동안 의제 설정을 하고 정치적 조작을 쬐끔 했습니다.^^

    권도형
    (2009/07/11 11:38) 박사님께서 영어로 말씀하신건가요? ㅋ
    저의 이해력이 딸리는지 스튜어디스가 영어로 말을 했다는 것인지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안병길
    (2009/07/11 11:47) 도형씨, 그 비행기는 국적기였습니다. 우리말로 승무원과 얘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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