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9월 16일 수요일

[자유] 토론 사례: 과학이란? (중)

또 다른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kids.kornet.net/cgi-bin/Boardlist?Article=garbages&Num=85890)

"영구기관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과학적으로 절대적 진리인가요? 아니면 상대적 진리인가요? 절대적 진리가 되려면 무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구기관은 무조건 불가능한가요?"
어제 말씀드린 토론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영구기관에 큰 관심을 보여온 동호회 회원이 있습니다. 그 회원이 영구기관에 대해서 설을 풀면 많은 회원이 비판하거나 빈정거렸죠. 그 관심사를 활용하여 제가 의제 설정을 한 것은, 어제 말씀드린 "자연과학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이론"이 있느냐는 문제를 토론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제 예상을 넘어서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http://kids.kornet.net/cgi-bin/Boardlist?Article=garbages&Num=85892)

"넘겨 짚기로 불편하게 해드릴까 걱정도 되지만.. 플로지스톤에 대한 언급이나 '절대적 진리'에 대한 궁금증에서 토마스 쿤에 대한 일반적 오해가 느껴지는군요. ..."
"토마스 쿤에 대한 일반적 오해"라는 부정적 표현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불편하든지 말든지 할 것이니, "넘겨 짚기"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또한, "플로지스톤 이론이 과학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비과학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 질문에 대해서 그 회원은 자신이 과학을 정의할 "깜냥"은 안 되고, 플로지스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도로 "대충 얼버무리겠습니다.^^"라고 얼버무렸습니다. ^^ 아울러서 "일반적 오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습니다.

"'일반적 오해'라는 말은 '인위적 실수'라는 말 처럼 애매한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토마스 쿤이 과학의 다원성을 지적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상대적 입장이 아니라고 주장했다지요. 그쯤 되면 오해하는 것이 사람들인지, 쿤 자신인지 애매해지는 상황인데 저는 자연과학 발달의 패러다임 이론을 다원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당시 인문 사회 분야의 분위기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지, 자연과학 이론의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문 사회 분야의 반향은 대단했지만 정작 자연과학자들은 시큰둥했던 것으로 압니다. ..."
사실, 토마스 쿤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제가 질문한 것과 관련은 있지만 토론의 본질은 아니죠. 생각은 열려 있는 것이 좋지만 토론 자체는 닫혀 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회과학에서도 현실은 열려 있지만, 모형은 닫혀 있습니다. 예컨대 게임 모형이 현실처럼 열려 있다면 과학적 분석이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토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론의 범위가 한정되어야 어느 정도 의견교환이 이뤄진 다음에 적어도 잠정 결론이라도 내릴 수 있겠죠. 그렇지 않고 토론 범위가 열려 있다면, 몇 년 동안 토론해도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회원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토론 범위가 열릴 수 있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막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회원님이 설명하신 일반적 오해가, 오해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쿤 책을 읽어봤고 여러 해석도 봤지만, 이런 해석도 가능하고 저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생각만 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토론을 할 때 지레짐작이나, 넘겨 짚기는 가능한 한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플로지스톤 이론이 falsify된 과학 이론이라고 생각해요. 회원님은 동의하시나요?"
토론 상대방의 뜻을 넘겨 짚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여 토마스 쿤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토마스 쿤은 일종의 과학철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죠. 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하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겠습니다. 원래 의제 설정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서 저는 플로지스톤 이론과 falsify 개념을 꺼내들었습니다. 제 질문에 대한 응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런데 falsified theory라는 말을 들으니 또 지레 포퍼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보고 들은 게 많지 않아 그런가 봅니다.
매 답글에 번번히 yes/no 질문을 하시는군요. 이번엔 저도 대답 전에 질문하나 하자면 falsified theory 는 theory 인가요? 저는 말장난 같이 느껴지는데요. ㅎㅎ"

토마스 쿤은 성공적으로 막았는데, 이번에는 포퍼를 들고 나왔습니다. 제 해석으로는, 또 다시 토론 범위가 열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장난"이란 표현이 있어서 토론에 물타기가 들어올 수 있다고도  보았습니다. 또 막아야죠.

"falsified theory 는 falsified theory입니다. 회원님은 falsified theory는 theory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런가요?
저는 회원님과 말장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회원님이 말장난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회원님이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당대의 다른 천문이론에 비해 행성의 역운동을 '더 잘' 설명했기 때문에 주류 이론이 된 것으로 압니다.'
이것은 회원님의 의견입니다. 천동설은 falsified theory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회원님은 천동설을 '주류 이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천동설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theory입니까, 아닙니까?"
제 의견에 대해서 그 회원은 "falsify된 과학 이론"을 제가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포퍼가 어쩌구, falsified theory가 theory냐 하는 헛소리들을 한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습니다. 조금 허무하죠.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헛소리"라고 했으니 진지하게 토론에 임한 저는 힘이 저절로 빠졌습니다. ^^ 제가 falsify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금방 포퍼를 언급한 사람이 이렇게 나왔으니... 그렇게 마무리되면 좋았을 텐데, 다음과 같은 엉뚱한 넋두리를 덧붙였습니다.

"... 충분한 설명 없이 질문만 하시면 답변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란합니다. 지금처럼 쓸데 없이 말도 길어지구요, 넘겨 짚는 것을 피할 수 없어져서 괜히 소모적인 논쟁이 되기도 하겠지요."
적반하장으로 가는 낌새가 나타났습니다. 용어 정의와 함께 이것도 막아야죠.

"회원님, clarifying ques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넘겨 짚거나 지레짐작하는 것보다 clarifying question을 던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넘겨 짚으면 오히려 소모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falsify는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런 의미로 사용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alsifiability"
그다음에는 theory가 뭔지 모르겠다, 혹은 애매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저로서는 흥미있는 elusiveness라고 봤습니다. 또 막아야죠. 그래야 제가 설정한 원래 의도를 살릴 수 있으니까요.

"흠... 이번에는 theory이군요. 좋습니다. 제가 의미했던 theory는 다음에서 설명하는 scientific theories를 의미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Theory ..."
결국, 그 회원은 천동설이 과학 이론이라고 한 셈이라고 스스로 인정은 했지만, 사족으로 "같은 문서의 '교육적 정의'에 따르면 이론이라고 부르기 좀 애매하겠군요."를 붙여서 마지막 여운을 남겼습니다. 저는 더 이상 토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많이 배웠다는 인사를 하고 토론을 마무리했습니다.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소기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제가 의제 설정을 해서 천동설과 플로지스톤 이론이 폐기된(defunct) 혹은 반증된(falsified) 과학 이론이라는 견해를 펼칠 수 있었고, 그 점에 대해서 제대로 반박하는 회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토론이었습니다. 내일 마무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댓글 4개:

  1. 천동설이 폐기된 이론임은 맞겠지만 반증된 이론이라고 하기엔 좀 거시기 한 게, 무한한 주전원을 도입하면 천체의 운동을 원리상 설명할 수 있기 때문에 반증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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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익명님, 의견을 남겨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제가 조금 더 배우고 싶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을 보충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특히 "무한한 주전원"이 어떤 개념인지 더 자세하게 알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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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아시리라고 생각하지만,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별의 운동이 완벽한 원운동임에 반해 행성의 운동은 그렇지 않다는 걸 설명하는 겁니다. 특히 화성같은 외행성은 역주행을 하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원운동의 중심이 원운동(주전원)을 한다고 하면 설명됩니다. 하지만 원운동 두 개만 도입해서는 관측 데이터를 잘 설명 못하니 이를 위해 주전원을 계속 추가하게 됩니다. 코페르니쿠스가 이를 계산하다가 짜증나서 지구가 돈다고 하면 간단히 설명된다는 걸 발견했지만, 천동설보다 행성의 움직임을 더 정확히 계산해낼 수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아주 정확한 관측 데이터를 갖고 있던 티코 브라헤는 천동설을 지지했고, 그의 제자였던 케플러는 원이 아닌 타원을 도입해서 문제를 해결하여 지동설을 확고한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천동설은 반증된 것이 아니라 지동설보다 복잡하기 때문에 '오캄의 면도날'에 의해 잘려나갔다고 보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비슷한 일이 뉴턴의 중력과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론에도 일어난다고 할 수 있는데,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기 위해 중력이 거리의 제곱에 반비례한다는 뉴턴의 이론에 거리의 세제곱 이상의 보정항을 더 넣을 것이냐, 즉 힘의 개념을 계속 고수할 것이냐, 아니면 등가원리에서 출발한 일반상대론을 받아들일 것이냐, 즉 시공간이 휘었다는 개념을 받아들일 것이냐 인데, 물리학자들은 후자를 선택했습니다. 뉴턴도 곤란해 했던 힘의 정체가 무어냐는 질문에 쩔쩔매기보다는 관성질량과 중력질량이 같은 거(뉴턴 역학에는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라는 원리에서 출발해서 시공간이 휘었다는 데카르트적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이 물리학자들을 설득하기 더 쉬웠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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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아, 그런 뜻이었군요. 이제 눈치를 챘습니다. 친절한 설명에 매우 감사드립니다.
    키 포인트는 "무한"에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이해하는 falsifiability 개념으로는 반증된(falsified) 것으로 이해했는데 더 공부해야겠습니다. 좋은 점을 일깨워 주셔서 거듭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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