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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3일 일요일

[수필] 컴퓨터와 인터넷과의 만남

1. 컴퓨터와 만나다.

제가 본격적으로 컴퓨터를 처음 접해본 것이 학부 4학년 겨울방학 때 학교에서 개설한 포트란 강좌를 들었을 때였습니다. 천공기로 카드에 구멍을 내어 제출하면 큰 출력지에 결과가 프린트되어 나오는 것이 매우 신기하더군요. 포트란 프로그래밍에 재미를 붙여서 강좌 마지막에는 같이 수강한 친구들과 만능 달력을 누가 더 짧게 짜는지 경쟁하기도 했죠. ^^

그다음에 컴퓨터를 구경한 것이 1987년에 박사과정 유학을 갔을 때였습니다. 옆의 사진과 같은 IBM PC 사용법을 가르쳐 주더군요. 8086 혹은 8088 CPU에 도스 디스켓을 넣어서 부팅하는 초기 PC였습니다. 집에 PC를 장만한 것이 1988년이었습니다. 그때 이미 80286을 거쳐서 80386도 나왔는데, 286과 386의 짬뽕 보급형인 386SX를 거금을 들여서 장만했었습니다. 유학생이 간이 부었었죠. 그 PC를 사게 된 동기는 아내가 전공을 바꾸면서 집에서 메인 프레임에 접속해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를 키우면서 공부하려니 꼭 필요했던 것이죠. 그런데 아내 공부보다는 제 장난감으로 더 많이 이용했던 것 같습니다. 한 때는 프로그래밍을 정식으로 배워볼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는데, 그렇게 하면 이것도 저것도 안 될 것 같아서 포기했습니다. ㅋ

제가 공부한 로체스터 정치학과는 경제학에 가까운 정치학을 주로 가르쳤습니다. 제 학위논문에 게임이론을 심각하게 적용했기 때문에 수식이 많아서 보통 워드프로세서로는 작성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이공계 학생들이 사용하는 LATEX으로 논문을 썼습니다. 정치학 학위논문이지만 수식과 증명이 1/3 정도 됩니다. 주로 좌변과 우변 크기를 비교하는 간단한 수식이지만, 수식은 수식이라서 복잡했죠. ^^

컴퓨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제가 더 좋아했던 것 같습니다. 정치학을 공부하다 보면 이 주장도 맞는 것 같고, 저 이야기도 맞는 것 같아서 허무하게 느낄 때가 잦습니다. 애매모호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구름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느낄 때도 있죠. 그것이 정치학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 반면에 컴퓨터와 놀면 입력과 출력이 딱딱 맞아떨어져서 명쾌한 기분이 들죠. 출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찾아서 해결하면 되니 책임 소재도 분명한 편이고요.

2. 인터넷과 만나다.

그런 장점에 인터넷까지 더하면 금상첨화가 되죠. 1994년에 첫 직장인 미시간 주립대에 부임하니 당시로는 최고급 PC와 커다란 모니터가 제 책상에 덩그렇게 놓여 있더군요. 좋은 장난감이 하늘에서 떨어졌던 것이죠. WWW라는 것이 있다는 정보를 접하고 인터넷 바다를 누볐습니다. 그때부터 인터넷 소통에 눈을 뜨게 되었고, 1995년에는 본격적으로 인터넷 토론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개인 홈페이지도 그때 만들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인터넷 BBS가 처음 도입된 것이 제가 알기로 1991년이었습니다. 어느 것이 먼저인지는 모르겠지만, KAIST의 아라 BBS와 서울대와 KAIST 이공계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한국통신의 무료 서버에 개설한 KIDS(Korea Internet Dream Space, http://kids.kornet.net/)가 최초 BBS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우연한 기회에 KIDS를 알게 되어 가입했고 지금까지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KIDS는 지금도 웹으로는 글을 올릴 수 없고, 텔넷으로 접속해서 올리는 구닥다리 방식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폐쇄적인 동호회로 운영하려고 그렇게 하는 것 같습니다.

1995년에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인터넷 신문을 테스트하기 시작했습니다. 독자 여론광장도 만들었죠. 미시간 촌구석에서 고국 소식도 고팠고 신기하기도 해서 두 인터넷 신문의 테스트 서비스를 애용했습니다. 여론광장에서 토론도 많이 했죠. 급기야 디지털 조선일보에서 저에게 연락하여 인터넷 신문 사용소감을 적어 달라고 하더군요. 요즘 같으면 거절했을 텐데 그때는 고국 소식을 웹으로 편하게 접할 수 있게 해줘서 고맙기도 하여 감상문을 적어줬습니다. 디지털 조선일보 개통 축하 메시지를 제가 적었던 셈이죠. 찾아보니 그 흔적이 아직 남아 있네요. http://pr.chosun.com/digital/news_951116_1.html 끝에 제 글을 붙여 놓았군요. 종이 신문에도 실렸습니다.

3. 서울대 국제지역원 전산실과 도서관

1997년 서울대에 부임한 이후로 컴퓨터와 인터넷은 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재직하고 있던 대학원 원장실을 지나치는데 전산실 웹 매스터가 원장 PC를 붙들고 낑낑거리고 있더군요.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들여다보니 제가 고칠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고치고 있었는데, 원장이 방에 들어오면서 그 장면을 본 것입니다.

(원장) "안 교수가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직원) "교수님이 원장님 PC를 고치고 계십니다."
(원장) "아, 그래요? 안 교수가 그런 재주를 갖고 있단 말이죠..."
며칠 뒤 원장이 조용히 저를 부르더군요. 전산실 책임교수를 맡으라는 것이었습니다. 행이었는지 불행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전산실에 웹 매스터 한 명과 그래픽스 디자이너 한 명, 그렇게 두 직원이 있었습니다. 원장이 책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그래픽스 디자이너를 채용했더군요. 재미있어서 신나게 일했습니다. 대학원 설립 초창기라서 학생 컴퓨터실도 만들어야 했고, 학교 홈페이지도 구축해야 해서 일이 많았죠.

조금 지나니 원장이 저를 또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도서관도 함께 맡으라고 했습니다. 도서관에는 사서가 세 명 있었고, 디지털 도서관 구축을 계획하고 있어서 컴퓨터를 조금 아는 교수가 맡는 것이 좋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맡았습니다. 일복이 터졌었죠. 우리나라는 교수가 연구와 교육 이외에 해야 하는 잡일이 참 많더군요. ㅜ.ㅜ

조금 더 지나서 책임자급 사서도 채용하여 전산실 두 명, 도서관 네 명, 모두 여섯 명의 직원과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지금도 같이 일했던 직원 세 명이 아직 그곳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찾아가면 반갑게 맞아줍니다. 그때 열심히 일해준 것이 고마워서 안부인사를 그분들에게 가끔 보내죠. 제가 컴퓨터를 알아봤자 아마추어였죠. 뭘 그렇게 잘 알았겠습니까. 아는 척하면서 직원들이 신명나게 일할 수 있도록 바람잡이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확한 평가가 되겠습니다.

아무튼, 컴퓨터와 인터넷에 대한 제 개인적인 관심이 학교에서 공부할 때나 일할 때 다양한 사람과 세상을 만나게 해줬던 것 같습니다. 유익한 경험이었습니다.

댓글 6개:

  1. 박사님이 보시기에 아마추어가 컴퓨터를 어디까지 알아야 한다고 보시나요? 요즘같은 IT시대에는 컴퓨터도 어느정도 할 줄 알아야 한다고 보는데 어느정도가 어디까지 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박사님은 컴퓨터를 어떻게 활용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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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사람마다 사정이 다를 테니 어느 정도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 어렵겠네요.

    저는 컴퓨터로 워드프로세싱, 인터넷 소통, 초보 HTML(웹 페이지 만드는 언어) 활용, 기초적인 그래픽 에디팅 정도를 주로 합니다. 일반인은 그 정도만 할 수 있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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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답변감사합니다. 인터넷만 조금 하는컴맹이라 앞으로 배울게 많네요. 블로그에 좋은 글이 많은 것같습니다. 자주 찾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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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자주 오셔서 쉬었다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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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지난번에 말씀해 주셨습니다만..

    박사님께서 만드신 우리정책협력연구원의 이공계분야와의
    조율과 관심도, 과거의 경험하신 것(컴퓨터,인터넷)의 연장선이 아닌가 하네요.

    컴퓨터에 대해 아마추어라 스스로 칭하시지만, 가끔 올리시는 글을 보면, 글 내용자체를 떠나서 컴퓨터 지식과 기술도 상당하실 것 같으시다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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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영환 씨, 더욱 힘찬 한 해를 보내기 바랍니다.

    영환 씨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평균적으로 일반인보다는 관심도 많았고 아는 것도 조금 더 많다고 볼 수 있겠죠. 2000년~2002년에 인터넷 네트워킹 장비업체에 재직한 경험도 있으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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