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4/11)
아내와 남편이 어떤 일로 부부싸움 직전까지 갔다고 합시다. 두 사람은 모두 전쟁을 치르기 보다는 평화를 더 좋아합니다.
(평화) > (싸움A) or (싸움B)
여기서 평화란 두 명 모두 돌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고, 싸움A는 A가 먼저 건 싸움, 싸움B는 B가 먼저 건 싸움입니다. 그런데도 부부싸움은 일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다음과 같은 선호도를 상정해봅시다.
A: 항복B > 평화 > 싸움A > 항복A > 싸움B
B: 항복A > 평화 > 싸움B > 싸움A > 항복B
A와 B 모두 가장 선호하는 것은 상대방의 항복입니다. 일반적으로 전쟁에서 선제공격 우위(first-strike advantage)를 인정합니다. 따라서 상대방이 먼저 걸어온 싸움보다는 자신이 먼저 건 싸움을 선호합니다. B는 자신이 항복하기 보다는 상대방이 돌진해올 때 되받아치지만, A는 상대방이 돌진해오면 그냥 항복하는 스타일이라고 합시다.
이 게임의 Subgame Perfect 균형은 싸움A(돌진, 돌진)입니다.
결정 분기점 4 (A의 선택): 항복A > 싸움B
결정 분기점 3 (B의 선택): 항복A > 평화 (4에서 A의 선택 참조)
결정 분기점 2 (B의 선택): 싸움A > 항복B
결정 분기점 1 (A의 선택): 싸움A > 항복A (4, 3, 2에서 선택 참조)
이 경우 남편과 아내 모두 평화를 싸움보다 선호하지만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만약 A의 선호도가 B 선호도의 대칭형인 (항복B > 평화 > 싸움A > 싸움B > 항복A)라면 균형은 평화가 됩니다. 즉,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서 A는 보다 센(tough) 선호도를 갖고 있어야 됩니다. 평화를 바란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경구를 연상시키지요.
Si vis pacem, para bellum.
이 모델은 Bruce Bueno de Mesquita 교수의 국제위기게임 모델입니다. 국제위기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전략적 상호작용을 매우 효과적으로 설명해주는 게임 모델로 알려져 있습니다.
부부는 서로 잘 알고 있고(완전 정보), 싸운 다음에는 후회하며 (칼로 물베기, 싸움보다는 싸우지 않는 것을 선호), 부부싸움 직전에는 각자 이익을 극대화 하려는 합리적 행위자가 되는 것을 감안하여 응용해봤는데, 제법 설득력을 갖는 것 같습니다. ^^
안병길
답글삭제(2008/04/11 23:26) 원 게임 모델에서 돌진은 F(fight)로, 피함은 ~F(not fight)로 표시됩니다.
제자*오
(2008/04/12 00:09) 저와 제 아내의 선호도를 곰곰히 생각해봐야겠는데요.^^
작년에 내신성적 반영 비율을 놓고 대학과 교육부가 밀고 당기기할 때 게임 이론을 간단히 적용해봤는데 재미있더군요.
미성년
(2008/04/12 07:06) 오랜만에 게임이론 보니 재미있네요 ㅋㅋ 아득한 옛날처럼 얘기하지만 사실 불과 1년 전 일인데... (작년 요맘때 게임 중간고사 공부를 했었죠.... 결과는 뭐 ㅠㅠ)
덧. Si vis pacem, para bellum의 원래 버전은 (Igitur) qui desiderat pacem, praeparet bellum. 이었다고 하네요. 번역하자면 "(고로) 평화를 원하는 자는 전쟁을 준비할 것이다." 라는데 좀 간명한 맛이 떨어지죠- 그래서 Si vis pacem, para bellum이란 말로 바꾸어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나온 독일의 총포상 이름 중에 Parabellum이란 것도 있었죠. 1차대전 중에 꽤 많은 기관총을 만들어 보냈던 걸로 아는데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iii
(2008/04/12 22:26) 혹시 파라블럼 탄의 그 파라블럼은 아닐까 하네요. 현재는 저 이름으로 나오는 총기류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미성년
(2008/04/12 23:09) 맞는 것 같습니다. 현재는 Parabellum이란 이름이 붙은 총탄만 있군요.
wiki에서 좀 더 찾아보니, 1차대전 중에 Parabellum MG14란 기관총이 있었답니다. 제작사는 DWM인가 DMW인가 하는 회사였는데 이곳에서 내놓은 브랜드(?)가 Parabellum이었다는군요... (그런데 웬 지엽말단으로 이렇게 빠지는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