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1월 6일 토요일
2010년 11월 5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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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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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2:30
- [단상] 4대 강 사업 찬반, 역사 기록에 남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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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캘리포니아 Redwood Sho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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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7일 화요일
[단상] 4대 강 사업 찬반, 역사 기록에 남기기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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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5:20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10/07/13, 사진은 서울대 환경대학원 김정욱 교수님의 신간입니다.)
현 정부가 세종시 사업을 수정하려고 끝까지 용을 썼죠. 국회 상임위에서 부결된 수정안을 여당/청와대가 무리하게 본회의에 부쳤을 때, "역사 기록에 남기자!"라는 주장을 제시했었습니다.
4대 강 사업이야말로 역사 기록에 남기기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야당이 4대 강 사업 중단/재검토 특별법안을 제출하는 것이죠. 상임위에서 부결되면, 의원 30명의 서명을 받아서 본회의에 올리는 것입니다. 어떤 의원이 4대 강 사업에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 역사 기록에 남기는 것은 어떨까요?
현 정부가 세종시 사업을 수정하려고 끝까지 용을 썼죠. 국회 상임위에서 부결된 수정안을 여당/청와대가 무리하게 본회의에 부쳤을 때, "역사 기록에 남기자!"라는 주장을 제시했었습니다.
4대 강 사업이야말로 역사 기록에 남기기를 해주면 좋겠습니다. 야당이 4대 강 사업 중단/재검토 특별법안을 제출하는 것이죠. 상임위에서 부결되면, 의원 30명의 서명을 받아서 본회의에 올리는 것입니다. 어떤 의원이 4대 강 사업에 찬성했는지, 반대했는지 역사 기록에 남기는 것은 어떨까요?
2010년 9월 6일 월요일
2010년 9월 5일 일요일
[단상] 고등학생의 진로 선택에 대해서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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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4:23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10/09/01)
우리나라 대입제도가 복잡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학생을 선발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이곳에 글을 올리는 고등학생이 가진 문제의식이나 고민도 제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때에는 그냥 담담하게 제 경험을 풀어놓아서 읽는 분이 뭔가 얻어가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일 때 막연히 외교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새로운 것을 구경하는 것을 그때도 매우 좋아했습니다. 외교관이 되면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가서 우리나라에서 겪어보지 못하는 것을 많이 접할 수 있겠다는 소박한 생각이었죠. 그래서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고, 학부 2학년 때는 초지일관하여 외교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외교학과가 외무고시 준비를 시켜주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외교관이 되려면 따로 시험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의 학교 분위기는 관료가 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가를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이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 군부 권위주의 정권의 관료가 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합리화도 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하면서 외무고시는 포기했습니다. 어영부영하다 외교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했고, 미국 대학교 박사과정에 유학도 갔습니다. 학문의 길을 걸었던 것이죠.
외교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느냐 없느냐는 논란이 있을 정도로 그 범위가 좁습니다. 외교 혹은 외교술이라는 표현은 흔히 쓰죠. 그런데 외국에서도 외교학과 혹은 외교학에 준하는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외교학과 학생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외교학과’에서 ‘국제관계’(외교학과 영문 이름: Department of International Relations)를 다루는 ‘국제정치학’을 공부한다고 했죠.^^
최근에 정치학과와 외교학과가 합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잘 결정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제정치학은 정치학의 한 분과입니다. 국제정치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특히 정치학 전반을 더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회과학 분야도 기본 지식을 더 많이 갖추면 좋죠. 심지어 자연과학적/공학적 지식이 국제정치학을 크게 도울 수도 있습니다. 핵무기의 국제정치학을 상상해 보시면 금방 감이 올 겁니다.
학부에서 3년, 석사과정에서 2년 반을 외교학 혹은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다 미국 대학교의 정치학 박사과정에 들어가니 좁혀져 있던 범위가 거꾸로 넓어졌습니다. 좁게 시작한 것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나라에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합리적 선택이론’이라는 새로운 분야도 소개받았습니다. 오히려 그 분야가 제 흥미를 더 끌었습니다. 그래서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국제정치이지만, 방법론은 경제학의 게임이론을 썼습니다.
세상에는 제가 모르는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제 공부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재미있는지, 무엇이 제 취향과 맞지 않는지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접해보지 않으면 거의 모른다고 봐야겠죠.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바뀔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공부의 선호와 취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선택 영역을 좁히면 좁힐수록 모르는 부분이 넓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효율도 고려하고, 현실의 벽도 참작하면 A부터 Z까지 모두 경험할 수는 없겠죠.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잣대를 활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선생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듯이 학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경제학의 세부 분야를 파고들어서 더 훌륭한 학생이나 학자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선진 교육계의 관행을 참조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대학도 교양 교육(Liberal Education)을 매우 중시하죠. 여기서 Liberal은 결국 다양한 세계를 만남을 뜻합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제 경험에 따른 기본에 대한 것입니다. 그 기본을 바탕에 두면서 현실 입시제도의 (별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는) 요구 사항에 적절히 대처하면 될 것 같습니다. 주어진 입시 환경이 일시에 바뀌지는 않을 테니까요.
(참조)
스탠포드 대학교의 학부 일반 전형에서 요구하는 에세이 문항을 보면 특정 학문의 세부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구체적 진로 계획을 전혀 요구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대입 전형이 그런 것을 필수 요건으로 따진다면 저로서는 매우 엉뚱하다고 생각합니다.
http://www.stanford.edu/dept/uga/application/freshman/essays.html
우리나라 대입제도가 복잡해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학생을 선발하는지 저는 잘 모릅니다. 이곳에 글을 올리는 고등학생이 가진 문제의식이나 고민도 제가 제대로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때에는 그냥 담담하게 제 경험을 풀어놓아서 읽는 분이 뭔가 얻어가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고등학생일 때 막연히 외교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새로운 것을 구경하는 것을 그때도 매우 좋아했습니다. 외교관이 되면 비행기를 타고 외국으로 가서 우리나라에서 겪어보지 못하는 것을 많이 접할 수 있겠다는 소박한 생각이었죠. 그래서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고, 학부 2학년 때는 초지일관하여 외교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외교학과가 외무고시 준비를 시켜주는 곳은 아니었습니다. 외교관이 되려면 따로 시험공부를 해야 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의 학교 분위기는 관료가 되는 것이 과연 잘하는 짓’인가를 고민할 정도였습니다. 외무고시를 준비하는 과정이 ‘무서워’ 보이기도 하고, 군부 권위주의 정권의 관료가 되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합리화도 하는 등, 이런저런 이유를 생각하면서 외무고시는 포기했습니다. 어영부영하다 외교학과 석사과정에 진학했고, 미국 대학교 박사과정에 유학도 갔습니다. 학문의 길을 걸었던 것이죠.
외교학이라는 학문 분야가 있느냐 없느냐는 논란이 있을 정도로 그 범위가 좁습니다. 외교 혹은 외교술이라는 표현은 흔히 쓰죠. 그런데 외국에서도 외교학과 혹은 외교학에 준하는 표현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인지 외교학과 학생들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외교학과’에서 ‘국제관계’(외교학과 영문 이름: Department of International Relations)를 다루는 ‘국제정치학’을 공부한다고 했죠.^^
최근에 정치학과와 외교학과가 합쳤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정말 잘 결정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국제정치학은 정치학의 한 분과입니다. 국제정치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특히 정치학 전반을 더 잘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회과학 분야도 기본 지식을 더 많이 갖추면 좋죠. 심지어 자연과학적/공학적 지식이 국제정치학을 크게 도울 수도 있습니다. 핵무기의 국제정치학을 상상해 보시면 금방 감이 올 겁니다.
학부에서 3년, 석사과정에서 2년 반을 외교학 혹은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다 미국 대학교의 정치학 박사과정에 들어가니 좁혀져 있던 범위가 거꾸로 넓어졌습니다. 좁게 시작한 것이 별로 바람직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나라에서 공부할 기회가 없었던 ‘합리적 선택이론’이라는 새로운 분야도 소개받았습니다. 오히려 그 분야가 제 흥미를 더 끌었습니다. 그래서 박사학위 논문 주제는 국제정치이지만, 방법론은 경제학의 게임이론을 썼습니다.
세상에는 제가 모르는 것이 매우 많다는 것을 제 공부 경험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재미있는지, 무엇이 제 취향과 맞지 않는지도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특히, 접해보지 않으면 거의 모른다고 봐야겠죠. 사람이 잘 바뀌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바뀔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공부의 선호와 취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선택 영역을 좁히면 좁힐수록 모르는 부분이 넓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효율도 고려하고, 현실의 벽도 참작하면 A부터 Z까지 모두 경험할 수는 없겠죠. 과유불급(過猶不及)의 잣대를 활용하면 될 것 같습니다.
이 선생님께서 항상 강조하시듯이 학문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경제학의 세부 분야를 파고들어서 더 훌륭한 학생이나 학자가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선진 교육계의 관행을 참조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대학도 교양 교육(Liberal Education)을 매우 중시하죠. 여기서 Liberal은 결국 다양한 세계를 만남을 뜻합니다.
지금까지 드린 말씀은 제 경험에 따른 기본에 대한 것입니다. 그 기본을 바탕에 두면서 현실 입시제도의 (별로 바람직하지 않을 수도 있는) 요구 사항에 적절히 대처하면 될 것 같습니다. 주어진 입시 환경이 일시에 바뀌지는 않을 테니까요.
(참조)
스탠포드 대학교의 학부 일반 전형에서 요구하는 에세이 문항을 보면 특정 학문의 세부 분야에 대한 지식이나 구체적 진로 계획을 전혀 요구하지 않습니다. 만약 우리 대입 전형이 그런 것을 필수 요건으로 따진다면 저로서는 매우 엉뚱하다고 생각합니다.
http://www.stanford.edu/dept/uga/application/freshman/essays.html
2010년 8월 15일 일요일
[사진] 캘리포니아 Redwood Shores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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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12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사진도 오랜만에 찍었네요.^^ 클릭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남쪽에 있는 Redwood Shores 지역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만으로 연결되는 저습지 지역이죠.
Redwood Shores에 유명한 건물이 있습니다.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회사인 Oracle 본사입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로봇으로 나오는 영화 Bicentennial Man의 한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샌프란시스코 남쪽에 있는 Redwood Shores 지역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만으로 연결되는 저습지 지역이죠.
Redwood Shores에 유명한 건물이 있습니다. 컴퓨터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회사인 Oracle 본사입니다. 로빈 윌리엄스가 로봇으로 나오는 영화 Bicentennial Man의 한 장면을 이곳에서 촬영하기도 했습니다.
Oracle 건물 맞은 편에 Oracle이 기부한 아담한 도서관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석양 사진입니다.
태그:
미국,
사진,
캘리포니아,
Redwood Shores
2010년 6월 26일 토요일
[단상] 자연과 인간: 바닷가 모래 이야기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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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29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10/05/22)
화면 캡쳐 1: 천리포 해변
화면 캡쳐 2: 해운대 해변
4월 14일 KBS에서 방영한 환경스페셜 "살아숨쉬는 땅, 모래"를 뒤늦게 보았습니다.
http://www.kbs.co.kr/1tv/sisa/environ/vod/1645289_1151.html
인간이 자연을 섣불리 건드리면 큰코다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바닷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프로그램에 생생하게 나오는 망가진 우리 해안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었습니다. 여름 해수욕 철이 되면 해운대 해변에 트럭으로 모래를 쏟아 넣어야 된다고 합니다. 개발을 잘못했기 때문이죠. 자연을 섣불리 건드려서 그 큰돈과 노력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이전 해운대의 고운 모래는 이제는 다시 구경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바닷가 모래는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크게 보면 강에서 오든지, 바다에서 오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강에 쓸데없는 보를 건설한다든지 해서 자연을 잘못 건드리면, 해안에 도착할 모래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모래가 줄어들면 백사장이 자갈마당이 된다는 것을 환경스페셜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에 보인지 댐인지를 건설하는 4대 강 사업이 떠오르더군요. 모래의 수난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댓글)
미누스
(2010/05/22 16:42)
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댐이나 둑 따위를 쌓는 것은 매우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 합니다.
실례로 이집트 나일 강 중-상류 지방에 댐을 만듬으로 인하여 정어리의 어획수가 엄청나게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철갑상어로 유명한 아랄해가 황폐화 된 것은 목화 대농장을 만든답시고 소련 정권에서 아랄해로 흘러드는 강줄기를 막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외국의 사례가 그러하다면, 심사숙고하여서 강 정비를 할 것이지, 대운하의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 강산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짓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준구
(2010/05/22 21:41)
새만금 때문에 이웃 변산해수욕장의 모래가 몇 미터 깊이로 파여나갔다는 보도는 보셨는지요?
생태계라는 게 아주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존재하는데, 삽질 좋아하는 친구들은 너무나 겁없이 달려 드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야 할 텐데요.
purejungs
(2010/05/22 22:29)
고맙습니다, 잘 보겠습니다^^ 근데 위에 사진, 해변이 저렇게 되면 정말 웩! 끔찍하네요>.<
임형찬
(2010/05/22 22:52)
안 박사님의 고향인 광안리의 명물, '광안대교' 건설 후에 부산 해변들은 조금씩 이상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광안대교에 대한 의혹일 뿐, 인간은 정확하게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대규모 해안가의 시설로 인해 해변이 사라진 예는 많이 발견됩니다만은 여전히 인간의 지혜는 자연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해운대의 해안 침식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이 다름 아닌 광안리의 광안대교입니다. 둘 사이의 관계를 짐작만 할 뿐,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 하는게 오늘의 현실인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카오스 이론이 가장 잘 적용되는 것이 기상과 해류 분석인 것 같습니다. 말이 좋아 카오스 이론이지 '나도 몰라!'라는 소리와 같거든요;;;
임형찬
(2010/05/22 22:57)
갑자기 교수님의 미시경제학 1장에 나오는 균형과 관련된 그림이 생각납니다.불안정한 균형과 안정적 균형.
안병길
(2010/05/23 00:45)
광안대교가 건설되기 전에도 광안리와 해운대는 이미 침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주 원인은 해안도로를 해변에 너무 가깝게 만든 것이었죠.
해운대보다 광안리가 더 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관찰했던 그 변화가 아직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광안리 모래의 슬픈 이야기이죠.
임형찬
(2010/05/23 12:32)
저는 KNN(구 PSB)의 방영을 봤는데, 실제로는 더 일찍 그런 현상이 있었군요. 저도 해운대에 살았기 때문에 가물하지만 당시에는 백사장의 경사가 완만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매우 급하고 백사장도 좁아져있더군요.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광안리는 대체로 파도도 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갑자기 높아져서 그런지 조그마한 파도만;;
전에 한 번 뉴튼이라는 과학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연안 해류는 조그마한 방파제 하나로도 많이 바뀐다고 하더라구요.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연안 수심의 변화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이준구
(2010/05/23 18:12)
해안도로 건설이 주범이라는 말씀이 정확할 겁니다.
지난 번 어떤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태안국립공원 부근도 그런 문제 때문에 엄청난 침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화면 캡쳐 1: 천리포 해변
화면 캡쳐 2: 해운대 해변
4월 14일 KBS에서 방영한 환경스페셜 "살아숨쉬는 땅, 모래"를 뒤늦게 보았습니다.
http://www.kbs.co.kr/1tv/sisa/environ/vod/1645289_1151.html
인간이 자연을 섣불리 건드리면 큰코다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제가 바닷가 출신이라서 그런지 프로그램에 생생하게 나오는 망가진 우리 해안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더 들었습니다. 여름 해수욕 철이 되면 해운대 해변에 트럭으로 모래를 쏟아 넣어야 된다고 합니다. 개발을 잘못했기 때문이죠. 자연을 섣불리 건드려서 그 큰돈과 노력을 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이전 해운대의 고운 모래는 이제는 다시 구경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바닷가 모래는 어디에서 오겠습니까? 크게 보면 강에서 오든지, 바다에서 오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강에 쓸데없는 보를 건설한다든지 해서 자연을 잘못 건드리면, 해안에 도착할 모래가 줄어들 수밖에 없습니다. 모래가 줄어들면 백사장이 자갈마당이 된다는 것을 환경스페셜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강에 보인지 댐인지를 건설하는 4대 강 사업이 떠오르더군요. 모래의 수난이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댓글)
미누스
(2010/05/22 16:42)
저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댐이나 둑 따위를 쌓는 것은 매우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 합니다.
실례로 이집트 나일 강 중-상류 지방에 댐을 만듬으로 인하여 정어리의 어획수가 엄청나게 감소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철갑상어로 유명한 아랄해가 황폐화 된 것은 목화 대농장을 만든답시고 소련 정권에서 아랄해로 흘러드는 강줄기를 막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 합니다.
외국의 사례가 그러하다면, 심사숙고하여서 강 정비를 할 것이지, 대운하의 유혹에서 헤어나오지 못하여 강산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 짓은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준구
(2010/05/22 21:41)
새만금 때문에 이웃 변산해수욕장의 모래가 몇 미터 깊이로 파여나갔다는 보도는 보셨는지요?
생태계라는 게 아주 미묘한 균형을 이루며 존재하는데, 삽질 좋아하는 친구들은 너무나 겁없이 달려 드는 것 같습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 두려움을 가져야 할 텐데요.
purejungs
(2010/05/22 22:29)
고맙습니다, 잘 보겠습니다^^ 근데 위에 사진, 해변이 저렇게 되면 정말 웩! 끔찍하네요>.<
임형찬
(2010/05/22 22:52)
안 박사님의 고향인 광안리의 명물, '광안대교' 건설 후에 부산 해변들은 조금씩 이상해졌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광안대교에 대한 의혹일 뿐, 인간은 정확하게 그 원인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대규모 해안가의 시설로 인해 해변이 사라진 예는 많이 발견됩니다만은 여전히 인간의 지혜는 자연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해운대의 해안 침식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것이 다름 아닌 광안리의 광안대교입니다. 둘 사이의 관계를 짐작만 할 뿐, 과학적으로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 하는게 오늘의 현실인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카오스 이론이 가장 잘 적용되는 것이 기상과 해류 분석인 것 같습니다. 말이 좋아 카오스 이론이지 '나도 몰라!'라는 소리와 같거든요;;;
임형찬
(2010/05/22 22:57)
갑자기 교수님의 미시경제학 1장에 나오는 균형과 관련된 그림이 생각납니다.불안정한 균형과 안정적 균형.
안병길
(2010/05/23 00:45)
광안대교가 건설되기 전에도 광안리와 해운대는 이미 침식이 진행되었습니다. 주 원인은 해안도로를 해변에 너무 가깝게 만든 것이었죠.
해운대보다 광안리가 더 심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관찰했던 그 변화가 아직 제 기억에 생생합니다. 광안리 모래의 슬픈 이야기이죠.
임형찬
(2010/05/23 12:32)
저는 KNN(구 PSB)의 방영을 봤는데, 실제로는 더 일찍 그런 현상이 있었군요. 저도 해운대에 살았기 때문에 가물하지만 당시에는 백사장의 경사가 완만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매우 급하고 백사장도 좁아져있더군요.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광안리는 대체로 파도도 좀 높았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갑자기 높아져서 그런지 조그마한 파도만;;
전에 한 번 뉴튼이라는 과학 잡지에서 본 적이 있는데, 연안 해류는 조그마한 방파제 하나로도 많이 바뀐다고 하더라구요. 겉보기에는 멀쩡해도 연안 수심의 변화가 매우 크다고 합니다.
이준구
(2010/05/23 18:12)
해안도로 건설이 주범이라는 말씀이 정확할 겁니다.
지난 번 어떤 방송에서도 나왔지만, 태안국립공원 부근도 그런 문제 때문에 엄청난 침식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2010년 6월 21일 월요일
[서평-Slimer님] 권위주의의 가면을 쓴 '엉터리' 자유민주주의와 싸우자!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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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33
(누리꾼 Slimer님의 제 책에 대한 서평을 퍼서 옮깁니다. Slimer님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http://slimer.tistory.com/512
책 뒷 표지에 적혀있는 한 구절을 그대로 가져와 포스팅의 제목으로 사용했습니다. '권위주의의 가면을 쓴 '엉터리' 자유민주주의와 싸우자!' 이 말이 가장 이 책을 잘 표현 하는 것 같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약자가 '권위주의'의 강자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앞 표지에 적혀있는 '대통령도 모르는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라는 문구가 책을 집어 든 순간 느낌이 왔습니다. 정말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초등학생 만큼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다른 개념의 정치이념일 뿐, 서로 대립되는 의미는 아닙니다. 냉전시대에 양 체제를 내세운 국가가 대립을 했을 뿐이지 이념 자체가 대립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 둘을 극과 극으로 생각하게 하는 반공교육으로 사람들을 세뇌시켜 놓았습니다. 덕분에 요즘 같은 21세기에도, 아이폰을 비난하고 싶으면, '아이폰 사용자는 빨갱이'라고 하면 통합니다.
그래도 일단 헌법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확정해 두었으니 우리는 분명 자유민주주의의 체제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겉 모습만 그럴 뿐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회주의'에 더 가까운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면, 조직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며 개인의 입을 막습니다. 이런 게 가능한 '공동체의식'이란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 등을 통해 교육 받습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라고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좀 분해해서 보면 '자유 + 민주주의' 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유'에 대한 부분을 보면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자유와 관련되어 요즘 많이 나오는 말이 개인주의 입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개인주의는 원래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단위로 나뉘기 때문에, 각자의 영역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것을 올바른 개인주의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나의 영역이 보호 받으려면, 다른 사람의 영역을 먼저 침범하지 않는 것이 개인주의입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보았던 한 김제동 씨의 말이 기억납니다. 자신의 말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고민되어 함부로 방송에서 말을 할 수 없다 라는 내용으로 기억되는데, 폭로, 비난, 뒷담화가 빠지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요즘 방송에서 이런 것 없이 재미있게 웃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자로 생각됩니다. 다소 지나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관점에서 저는 김제동 씨를 철저한 개인주의자로 생각합니다. 반면, 개인의 자유는 매우 소중히 하면서 남의 자유를 마음대로 침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통 인터넷에 XX남, XX녀로 소개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럼 '자유민주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은 무엇일까요?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는 '권위주의'가 정답일 것입니다. 이 권위주의는 주로 힘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세습하는데 사용합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자꾸 무언가 특권을 챙기려는 권위주의는 출발선을 평등하게 설정 하도록 규정한 민주주의에 매우 강한 불만이 있습니다. 출발선이 같다면,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노력을 덜려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 출발선을 앞으로 당겨놓아야 하니, 민주주의란 눈에 가시 같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누구나 평등하게 1인 1표인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항상 선거의 결과를 보면, 다수의 약자보다 소수의 강자에 유리한 결과가 나옵니다. 사람의 힘이 아닌 머릿수로 결정되는 것이 선거이지만, 이런 결과를 보면, 선거 역시 그 과정에서 강자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 채 강자의 감언에 눈을 흐리기도 합니다.
분명 이론 상으로는 강자이든 약자이든 다수가 이겨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하지만 이게 현실과 다르게 적용된다면, 그 방법이나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구도에서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권위주의의 강자를 우리 약자는 어떻게든 잡아 내려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차근차근 그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또 후기를 적다 보니 책 읽고 공부하자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그 방법 밖에는 아직 더 좋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생각보다 읽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드문드문 읽어야 하기도 했지만,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페이지 쉽게 넘겨버릴 수가 없습니다. 뭐처럼 제대로 나온 '민주주의 학습서'라고 하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출처: http://slimer.tistory.com/512
책 뒷 표지에 적혀있는 한 구절을 그대로 가져와 포스팅의 제목으로 사용했습니다. '권위주의의 가면을 쓴 '엉터리' 자유민주주의와 싸우자!' 이 말이 가장 이 책을 잘 표현 하는 것 같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에서는 '자유민주주의'라는 약자가 '권위주의'의 강자를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앞 표지에 적혀있는 '대통령도 모르는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라는 문구가 책을 집어 든 순간 느낌이 왔습니다. 정말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초등학생 만큼이라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반대말이 무엇일까? 이 질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공산주의' 또는 '사회주의'라고 답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사회주의'는 다른 개념의 정치이념일 뿐, 서로 대립되는 의미는 아닙니다. 냉전시대에 양 체제를 내세운 국가가 대립을 했을 뿐이지 이념 자체가 대립을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이 둘을 극과 극으로 생각하게 하는 반공교육으로 사람들을 세뇌시켜 놓았습니다. 덕분에 요즘 같은 21세기에도, 아이폰을 비난하고 싶으면, '아이폰 사용자는 빨갱이'라고 하면 통합니다.
그래도 일단 헌법이 '자유민주주의' 국가임을 확정해 두었으니 우리는 분명 자유민주주의의 체제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겉 모습만 그럴 뿐 사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회주의'에 더 가까운 느낌을 많이 받습니다. 자신의 의견이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면, 조직에게 피해가 될 수 있다며 개인의 입을 막습니다. 이런 게 가능한 '공동체의식'이란 것을 아주 어렸을 때부터 교과서 등을 통해 교육 받습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라고 하기만 하면 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좀 분해해서 보면 '자유 + 민주주의' 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자유'에 대한 부분을 보면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이 자유와 관련되어 요즘 많이 나오는 말이 개인주의 입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개인주의는 원래 나쁜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가 아닌 개인의 단위로 나뉘기 때문에, 각자의 영역이 철저하게 분리되는 것을 올바른 개인주의로 설명합니다. 따라서 나의 영역이 보호 받으려면, 다른 사람의 영역을 먼저 침범하지 않는 것이 개인주의입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보았던 한 김제동 씨의 말이 기억납니다. 자신의 말로 인해 누군가가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고민되어 함부로 방송에서 말을 할 수 없다 라는 내용으로 기억되는데, 폭로, 비난, 뒷담화가 빠지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 요즘 방송에서 이런 것 없이 재미있게 웃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회자로 생각됩니다. 다소 지나칠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관점에서 저는 김제동 씨를 철저한 개인주의자로 생각합니다. 반면, 개인의 자유는 매우 소중히 하면서 남의 자유를 마음대로 침해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통 인터넷에 XX남, XX녀로 소개되는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럼 '자유민주주의'와 반대되는 개념은 무엇일까요?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에서는 '권위주의'가 정답일 것입니다. 이 권위주의는 주로 힘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고 세습하는데 사용합니다. 자신들의 힘으로 자꾸 무언가 특권을 챙기려는 권위주의는 출발선을 평등하게 설정 하도록 규정한 민주주의에 매우 강한 불만이 있습니다. 출발선이 같다면, 자신들의 힘을 유지하는 데에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이 노력을 덜려면, 가지고 있는 힘을 이용해 출발선을 앞으로 당겨놓아야 하니, 민주주의란 눈에 가시 같습니다.
민주주의라는 게 누구나 평등하게 1인 1표인데, 현실적으로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항상 선거의 결과를 보면, 다수의 약자보다 소수의 강자에 유리한 결과가 나옵니다. 사람의 힘이 아닌 머릿수로 결정되는 것이 선거이지만, 이런 결과를 보면, 선거 역시 그 과정에서 강자에게 유리하게 설정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약자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모른 채 강자의 감언에 눈을 흐리기도 합니다.
분명 이론 상으로는 강자이든 약자이든 다수가 이겨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하지만 이게 현실과 다르게 적용된다면, 그 방법이나 구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현재의 구도에서 민주주의를 방해하는 권위주의의 강자를 우리 약자는 어떻게든 잡아 내려야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차근차근 그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또 후기를 적다 보니 책 읽고 공부하자는 이야기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만, 현실적으로 그 방법 밖에는 아직 더 좋은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생각보다 읽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오랜 시간 드문드문 읽어야 하기도 했지만, 천천히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어느 한 페이지 쉽게 넘겨버릴 수가 없습니다. 뭐처럼 제대로 나온 '민주주의 학습서'라고 하면 맞을지 모르겠습니다.
2010년 6월 12일 토요일
[단상] 낙동강을 괴롭히지 맙시다!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후 7:39
제가 고등학생이었던 1978년에 낙동강 보존회가 발족했습니다. 32년 전 일이군요. 그때 회원으로 가입하여 낙동강 하구에서 쓰레기를 줍는 행사에 참여했던 기억이 아직 납니다. 환경운동에 유별난 관심이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중학교 시절 생물 선생님께서 낙동강 보존 운동에 참여하고 계셔서 취지에 동감하면서 도와 드린다는 뜻에서 동참했었습니다. 제가 다녔던 고등학교도 적극적으로 그 환경운동 참여를 권장했었죠.
수많은 사람의 애틋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그 낙동강이 4대 강 사업으로 어이없이 파헤쳐지는 모습을 기록한 아래 동영상들을 보니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낙동강을 괴롭히지 맙시다!
수많은 사람의 애틋한 관심의 대상이었던 그 낙동강이 4대 강 사업으로 어이없이 파헤쳐지는 모습을 기록한 아래 동영상들을 보니 마음이 매우 아픕니다.
낙동강을 괴롭히지 맙시다!
2010년 6월 6일 일요일
[단상] 4대 강 사업 반대 홍보 동영상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2:19
이번 지방선거 결과는 국민이 4대 강 사업을 반대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해줬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국민의 뜻을 존중해서 당장 그 사업을 중단하고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 아래는 누리꾼 푸른영상님이 인터넷에 올린 4대 강 사업 반대 홍보 동영상입니다.
출처: http://vimeo.com/11778236
안녕하세요. 푸른영상입니다.
저희가 천주교 신부님들의 의뢰로 4대강 사업 저지 홍보영상을 제작했습니다. 빠른 시간에 끝내야 하는 작업이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실에 다른 감독님들이 낙동강과 팔당에 들어가 찍고 계시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품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시고 많이들 퍼 날라주세요. 생명을 파괴하는 이 무식한 4대강 사업, 우리 꼭 막아냅시다!!
제목: 江의 진실
작품정보: HDV/ 23min / 2010
제작: 수원교구공동선실현사제연대
4대강사업저지를위한천주교연대
푸른영상
작품설명:
4대강 어디든 한 번만 가봐주세요!
이 영상은 전국의 4대강 사업 현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지금 강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도록 황폐화 되고 있습니다.
이 영상으로 그 현장을 확인하시고 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널리 퍼뜨려 주세요.
출처: http://vimeo.com/11778236
안녕하세요. 푸른영상입니다.
저희가 천주교 신부님들의 의뢰로 4대강 사업 저지 홍보영상을 제작했습니다. 빠른 시간에 끝내야 하는 작업이어서 아쉬움이 많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빨리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무실에 다른 감독님들이 낙동강과 팔당에 들어가 찍고 계시니 앞으로도 계속해서 작품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많은 관심과 지지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보시고 많이들 퍼 날라주세요. 생명을 파괴하는 이 무식한 4대강 사업, 우리 꼭 막아냅시다!!
제목: 江의 진실
작품정보: HDV/ 23min / 2010
제작: 수원교구공동선실현사제연대
4대강사업저지를위한천주교연대
푸른영상
작품설명:
4대강 어디든 한 번만 가봐주세요!
이 영상은 전국의 4대강 사업 현장을 기록한 것입니다.
지금 강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도록 황폐화 되고 있습니다.
이 영상으로 그 현장을 확인하시고 강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을 함께 고민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널리 퍼뜨려 주세요.
강의 진실 _ 4대강 사업의 진실 by 푸른영상 from simock on Vimeo.
2010년 6월 3일 목요일
[정치] 정치적 조작, 지역주의, 결선투표, 그리고 자유민주주의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10:27
2010 지방선거 단상
1) 정치적 조작: 어설픈 의제 설정은 정치적 조작으로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보여줬습니다.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정황입니다. 4대 강 사업 반대 의제는 유효했습니다.
2) 여전한 정치적 지역주의: 호남과 대구/경북의 정치적 지역주의는 여전함을 보여줬습니다. 제도개선을 통해서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2012년 총선에서 전국득표율 일률배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것이 한 방안입니다. 장기적으로 지역주의 위세가 약해질 것을 고려하면, 대구/경북 지역에서 그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력한 정치인은 유시민 씨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유시민 씨가 그 토대를 조금 더 다질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3) 부산/경남 정치적 지역주의 변화: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40% 이상을 득표했고,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간판은 민주당과 무소속이지만, 결국 친노 지지가 표심으로 작용한 것을 의미합니다. 영남 지역주의가 부분적으로 깨어졌다는 평가도 가능합니다.
4) 선거연합의 딜레마와 결선투표제: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 후보가 완주한 것을 야권에서 궁극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선거제도 결함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결선투표를 도입하여 '억지 춘향식' 선거연합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선투표제는 단순과반수 득표가 없어도 당선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씨와 한명숙 씨가 1:1로 붙어서 이기는 후보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승자일 겁니다.
5) 깨어 있는 유권자: 우리 민주주의가 혹시 중우정치가 아닐까라는 우려가 일부 있었는데, 이번 선거결과가 그것이 기우임을 보여줬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이끌어낸 시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4대 강 사업에 제동을 거는 경고장을 국민이 보여준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입니다.
1) 정치적 조작: 어설픈 의제 설정은 정치적 조작으로서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보여줬습니다. 우리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정황입니다. 4대 강 사업 반대 의제는 유효했습니다.
2) 여전한 정치적 지역주의: 호남과 대구/경북의 정치적 지역주의는 여전함을 보여줬습니다. 제도개선을 통해서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를 추구할 수 있습니다. 2012년 총선에서 전국득표율 일률배분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채택하는 것이 한 방안입니다. 장기적으로 지역주의 위세가 약해질 것을 고려하면, 대구/경북 지역에서 그 과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유력한 정치인은 유시민 씨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유시민 씨가 그 토대를 조금 더 다질 수도 있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3) 부산/경남 정치적 지역주의 변화: 부산시장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40% 이상을 득표했고, 경남도지사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간판은 민주당과 무소속이지만, 결국 친노 지지가 표심으로 작용한 것을 의미합니다. 영남 지역주의가 부분적으로 깨어졌다는 평가도 가능합니다.
4) 선거연합의 딜레마와 결선투표제: 서울시장 선거에서 노회찬 후보가 완주한 것을 야권에서 궁극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선거제도 결함에 더 주목해야 합니다. 결선투표를 도입하여 '억지 춘향식' 선거연합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결선투표제는 단순과반수 득표가 없어도 당선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 씨와 한명숙 씨가 1:1로 붙어서 이기는 후보가 진정한 자유민주주의적 승자일 겁니다.
5) 깨어 있는 유권자: 우리 민주주의가 혹시 중우정치가 아닐까라는 우려가 일부 있었는데, 이번 선거결과가 그것이 기우임을 보여줬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이끌어낸 시민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보여줬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이런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정부의 4대 강 사업에 제동을 거는 경고장을 국민이 보여준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입니다.
2010년 6월 2일 수요일
[정치] 마음으로 투표했습니다.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후 2:48
저는 재외국민이라서 이번 선거에는 투표권이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으로 투표했습니다. ^^ 2012년 선거에는 재외국민도 투표를 할 수 있다고 하는군요. 이번 선거기간에 제가 느꼈던 점을 생각나는 대로 간단하게 말씀 드립니다.
1) 4대강 사업은 국토 전체에 걸린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여당은 그 쟁점을 가능한 피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특정 4대강 사업 반대 홍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간주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도대체 공직자 선출 선거가 무엇인지 아는지 의심이 듭니다.
2) 안보는 국가 존재의 기본입니다. 여야, 좌우를 떠나서 어떤 관점에서 안보를 바라보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 안보 쟁점에서 휴전 상태의 상대방 편을 드는 주요 정파는 없습니다. 그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제설정을 통한 정치적 조작을 노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3) 결선투표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군소정당도 1차 선거에서는 끝까지 정견을 홍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반 여당 연합을 위해서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더구나 막판에 어쩔 수 없이 후보를 사퇴하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그런 문제가 해결됩니다.
4) 어떤 후보는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두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발전에 부분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이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궁극적으로는 독재자였습니다. 대한민국 상징으로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에 독재자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우스개 감이 될 것입니다.
5) 자유민주주의 발전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정체 혹은 후퇴한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0년 전 우리 정치와 현재 정치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희망을 품고 참여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자유민주주의는 발전할 것입니다.
1) 4대강 사업은 국토 전체에 걸린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여당은 그 쟁점을 가능한 피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특정 4대강 사업 반대 홍보를 선거법 위반으로 간주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도대체 공직자 선출 선거가 무엇인지 아는지 의심이 듭니다.
2) 안보는 국가 존재의 기본입니다. 여야, 좌우를 떠나서 어떤 관점에서 안보를 바라보느냐는 차이가 있을 뿐, 안보 쟁점에서 휴전 상태의 상대방 편을 드는 주요 정파는 없습니다. 그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의제설정을 통한 정치적 조작을 노리는 것이라고 봅니다.
3) 결선투표 도입을 검토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군소정당도 1차 선거에서는 끝까지 정견을 홍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반 여당 연합을 위해서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더구나 막판에 어쩔 수 없이 후보를 사퇴하는 정치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결선투표가 도입되면 그런 문제가 해결됩니다.
4) 어떤 후보는 광화문 광장에 이승만, 박정희 동상을 세우자는 제안을 했다고 합니다. 두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발전에 부분적으로 기여한 바가 있다는 평가도 가능하겠지만, 이 대통령과 박 대통령은 궁극적으로는 독재자였습니다. 대한민국 상징으로서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광화문에 독재자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우스개 감이 될 것입니다.
5) 자유민주주의 발전에는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자유민주주의가 정체 혹은 후퇴한다고 해서 포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30년 전 우리 정치와 현재 정치를 비교하면 장족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깨어 있는 시민이 희망을 품고 참여한다면 장기적으로 우리 자유민주주의는 발전할 것입니다.
[서평-이준구 교수님] 높이 치켜든 자유민주의 횃불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후 12:20
높이 치켜든 자유민주의 횃불
이준구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일상생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흔하게 쓰고 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를 위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확하게 뭔지는 몰라도 그저 좋은 체제라는 의미에서 그 말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의 사례를 들어가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유민주주의의 ABC를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그 윤곽이 차츰 분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조그만 성냥불을 들어 올리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에 짙은 감동을 느낀다. 그의 바람대로 이 조그만 성냥불이 온 세상을 환히 비치는 밝은 횃불로 활활 타오르기를 함께 기원해 본다. 그는 왜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귀중히 여기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굳건한 뿌리를 박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 도처에 권위주의적 사고방식, 낡은 사회질서와 도덕률이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자유민주주의의 적(敵)인 권위주의가 교묘하게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발호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늘 개탄하고 있는 바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리 높여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권위주의적인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다. 이런 사기행각 때문에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할 자유민주주의가 경멸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살벌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운하사업은 경제성이 없다는 말을 한 죄로 하루아침에 '좌빨'로 몰린 나인지라, 이 혼란한 세태에 유감이 없을 리 없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저자의 지적에 적지 않은 위안을 느낀다.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면 권위주의냐가 진정한 의미를 갖는 선택의 문제일 뿐, 보수냐 진보냐의 선택은 별 의미가 없다는 그의 말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나는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으로 결정했는지 의아해했다. 책 중반에 가서야 비로소 그 의문이 풀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권위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자 사이에서 맞짱 토론이 벌어졌을 때 자신만 옳다고 믿는 권위주의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도 옳을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자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책의 제목에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뭉쳐야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포식자 상어에게 떼를 지어 용감하게 대항하는 고등어의 무리를 연상하게 된다.
저자는 타인의 방종을 묵인하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길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기적 관점에서 볼 때도 유리한 전략이라는 메시지다. 사실 우리는 권위주의의 위협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내가 뭘?" 혹은 "나 대신 남들이 싸워 주겠지"라는 편리한 구실을 붙여 뒷걸음치기 일쑤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번번이 권위주의가 승리를 거둬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자가 함께 뭉쳐서 싸우지 않으면 권위주의가 발호하는 사회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흥미롭게 느낀 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신고전파 경제학을 공부한 나보다도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기심과 개인주의에 대한 긍정이라는 측면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능가하는 것을 생각하기 힘들 텐데 말이다. 여기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하면서 어떤 거창한 명분을 갖다 대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회를 위한다는 둥, 공익을 위한다는 둥 거창한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바로 자신을 위한 싸움임을 깨우쳐 주는 데 저자의 주안점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권위주의에 과감하게 맞서 싸우라는 독려의 메시지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부어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이것이 왜 소중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점에서 보면 비록 범위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정치학의 소개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든 배울 바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학에 과문한 나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조그만 성냥불을 켜들자고 외치는 저자의 열정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흔들림 없는 신뢰는 우리를 감동하게 만든다. 우리가 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논거는 한 점 의혹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를 따라 나도 목이 터져라 "자유민주주의 만세"를 외치고 싶다.
출처: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이준구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일상생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흔하게 쓰고 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를 위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확하게 뭔지는 몰라도 그저 좋은 체제라는 의미에서 그 말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의 사례를 들어가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유민주주의의 ABC를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그 윤곽이 차츰 분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조그만 성냥불을 들어 올리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에 짙은 감동을 느낀다. 그의 바람대로 이 조그만 성냥불이 온 세상을 환히 비치는 밝은 횃불로 활활 타오르기를 함께 기원해 본다. 그는 왜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귀중히 여기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굳건한 뿌리를 박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 도처에 권위주의적 사고방식, 낡은 사회질서와 도덕률이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자유민주주의의 적(敵)인 권위주의가 교묘하게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발호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늘 개탄하고 있는 바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리 높여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권위주의적인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다. 이런 사기행각 때문에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할 자유민주주의가 경멸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살벌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운하사업은 경제성이 없다는 말을 한 죄로 하루아침에 '좌빨'로 몰린 나인지라, 이 혼란한 세태에 유감이 없을 리 없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저자의 지적에 적지 않은 위안을 느낀다.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면 권위주의냐가 진정한 의미를 갖는 선택의 문제일 뿐, 보수냐 진보냐의 선택은 별 의미가 없다는 그의 말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나는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으로 결정했는지 의아해했다. 책 중반에 가서야 비로소 그 의문이 풀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권위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자 사이에서 맞짱 토론이 벌어졌을 때 자신만 옳다고 믿는 권위주의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도 옳을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자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책의 제목에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뭉쳐야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포식자 상어에게 떼를 지어 용감하게 대항하는 고등어의 무리를 연상하게 된다.
저자는 타인의 방종을 묵인하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길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기적 관점에서 볼 때도 유리한 전략이라는 메시지다. 사실 우리는 권위주의의 위협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내가 뭘?" 혹은 "나 대신 남들이 싸워 주겠지"라는 편리한 구실을 붙여 뒷걸음치기 일쑤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번번이 권위주의가 승리를 거둬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자가 함께 뭉쳐서 싸우지 않으면 권위주의가 발호하는 사회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흥미롭게 느낀 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신고전파 경제학을 공부한 나보다도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기심과 개인주의에 대한 긍정이라는 측면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능가하는 것을 생각하기 힘들 텐데 말이다. 여기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하면서 어떤 거창한 명분을 갖다 대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회를 위한다는 둥, 공익을 위한다는 둥 거창한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바로 자신을 위한 싸움임을 깨우쳐 주는 데 저자의 주안점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권위주의에 과감하게 맞서 싸우라는 독려의 메시지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부어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이것이 왜 소중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점에서 보면 비록 범위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정치학의 소개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든 배울 바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학에 과문한 나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조그만 성냥불을 켜들자고 외치는 저자의 열정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흔들림 없는 신뢰는 우리를 감동하게 만든다. 우리가 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논거는 한 점 의혹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를 따라 나도 목이 터져라 "자유민주주의 만세"를 외치고 싶다.
출처: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서평-낭만수학자님] 자유민주주의 바로알기
[작성자]
낭만수학자
//
오후 12:10
안 박사님, 책 출간을 다시 한번 축하드립니다. 좋은 내용의 글을 읽고, 제 자신의 무지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를 가졌습니다. 짧은 독후감을 올립니다. 글의 성격 상 존칭은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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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치학에 문외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때로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으로 외쳐대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감정을 가져왔다. 솔직히 말해, 나 자신도 그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아내에게, 우리나라에서 그 개념이 정립되지 않고 혼란스럽게 쓰이는 건 대학 입시에 안 나와서 그럴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정치학에 문외한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전혀 다른 의미로, 때로는 완전히 상반되는 개념으로 외쳐대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상당히 불편한 감정을 가져왔다. 솔직히 말해, 나 자신도 그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우스갯소리로 아내에게, 우리나라에서 그 개념이 정립되지 않고 혼란스럽게 쓰이는 건 대학 입시에 안 나와서 그럴 거라고 말하기도 했다.
필자는 ‘자유민주주의란 바로 이것이요’하고 처음부터 답을 던지지 않는다. 마치 데카르트가 모든 것에 회의하고 백지상태에서 ‘나’를 정의해 나가듯, 필자는 자유의 개념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하지만 매우 설득력 있게 정의해나간다. 이런 신중한 접근을 통해 온갖 엉터리 자유민주주의로부터 진정의 의미를 구분해낸다. 엉터리 자유민주주의는 반공에서 전체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스펙트럼 또한 다양하다.
일단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을 온갖 엉터리 개념들로부터 구하고 난 필자는 정치사상에서 헌법, 게임 이론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현실 속에서 그 이상을 잘 실현하는 방법을 모색한다. 촛불 시위와 같은 구체적인 사회 현상에 대한 시론과 인터넷 공간에서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방안에 대한 제언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인터넷 관련 부분은 필자의 오랜 경험이 잘 묻어나는 재밌는 내용이다. 단순히 예의를 지키자거나 무식하게 법으로 규제하자는 내용이 아니라, 자유주의에 입각하면서 적절한 전략을 통해 회원 스스로 악화를 구축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필자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라는 일관된 논지를 여러 가지 일상 사례를 통해 설명하는 한편, 투표 제도와 남북한 문제와 같은 전문적인 분야에 대한 제언도 덧붙이고 있다. 선거에서 단순 과반수원칙을 지키기 위해 결선 투표제를 제안하고 실제로 이 제도를 시행하는 나라들의 사례를 들려준다. 또한, 지역주의를 완화하기 위한 다양한 선거 제도 개선 방안을 비교하고 권역별 비례대표제의 도입을 주장한다. 남북한 관계에 대한 분석과 평가 역시 관련 사안에 대한 필자의 전문적인 식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사족으로 한때 뉴라이트라는 이름을 걸고 진정한 자유주의를 실현하겠다는 사람들이 나타난 적이 있는데, 정치학을 공부하던 한 선배는, ‘그들이 자유주의에 대해 뭘 알기나 알아? 도대체 밀의 자유론도 제대로 한번 읽어보지도 않았을 사람들이 무슨 자유주의야!’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선배의 우려대로 그 단체의 핵심 구성원들은 국회에 입성하면서, 운동권 내에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권력지향적임이 드러났고, 개인의 자유는 고사하고 온갖 권위주의적인 입법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다. 만약 그들이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앞부분만 일독했다면 부끄러운 마음에라도 자유주의를 전면에 내걸지 못했을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라는 단어를 전가의 보도인 양 휘두르며 남의 자유를 심각하게 해치는 권위주의자들이 이 책을 통해 뭔가 작은 깨달음이라도 얻었으면 좋겠다.
2010년 5월 8일 토요일
2010년 5월 3일 월요일
[사진, 동영상] 독일 풍경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6:25
미러 사이트인 네이버 블로그에 독일 풍경 사진과 동영상을 올리고 있습니다.
[사진]
[사진]
- 독일 풍경 1 - Mülheim 소재 Uhlenhorst 호텔
- 독일 풍경 2 - 프랑크푸르트
- 독일 풍경 3 - 쾰른 대성당
- 독일 풍경 4 - 쾰른 라인 강변
- 독일 풍경 5 - Wetzlar
- 독일 풍경 6 - 쾰른 대성당 내부
2010년 4월 29일 목요일
[여행기] 새 짖는 소리에 잠을 깨다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후 4:14
(사진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해서 유럽의 주요 공항이 마비되었었죠. 제 출장 일정표에는 4월 1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여 다음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서 에센 지역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예약한 비행기가 예정대로 출발하는 것을 당일 아침에 확인하고 공항에 갔습니다. 걱정은 조금 되었지만, 항공사가 잘 판단했을 것으로 믿고 독일로 향했습니다.
출발이 1시간 반 정도 지연되어서 도착이 늦어졌고, 미리 예약한 기차 편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기차표를 바꾸기 위해서 줄을 섰는데요... 안내를 정말 침착하게 하더군요. ㅜ.ㅜ 제 앞에 서 있었던 고객 그룹은 약 7~8개, 담당 안내원은 3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안내원 앞에 설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45분이었습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정말 갑갑하더군요. 제가 기가 차서 가끔 빙긋이 웃으니 앞에 서 있던 독일인이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자신이 봐도 너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살아봐서 제 심정을 더 잘 알겠다고 하더군요. ^^
다행히 추가 요금을 내지 않고 다음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ICE가 독일 고속열차입니다. 우리 KTX와 거의 같더군요. 좌석은 ICE가 조금 더 넓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Duisburg까지 ICE로 약 1시간 45분이 걸리는데, 출발은 정시에 했지만 10분 연착하더군요.
그래서 호텔이 있는 Mülheim까지 갈 기차에 겨우 탔는데... 출발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참 있으니 안내방송이 나오고 승객들이 우루루 내리더군요. 독일어를 모르는 제가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어떤 청년이 저에게 영어로 설명하더군요. 환자가 생겨서 치료하고 있는 중이어서 그 열차가 운행하지 못한다는 친절한 안내였습니다. 바로 옆 플랫폼에서 다음 열차를 타고 Mülheim에 도착했습니다. 같은 역에 있는 전기차로 다시 갈아타기 전에 근처를 구경했습니다. 독일 택시는 모두 벤즈더군요. ^^
고즈넉한 전기차를 타고 종착역에 도착하여 호텔로 걸어서 들어갔습니다. Duisburg 역에서 택시를 타지 않고, 두 번이나 환승하면서 호텔을 찾아간 것은 ICE 요금만 내면 행선지까지 기차를 무료로 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독일 풍경도 더 구경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화산재?'를 뚫고 도착한 호텔은 조용한 시골 장원 느낌을 주었습니다. 독일에 사는 분이 예약했는데, 우연히 제 취향에 딱 맞더군요. 호텔 안에 제법 긴 산책로가 있었고, 새들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새 짖는 소리에 잠을 깨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한 날 저녁에 먹은 피자와 독일 맥주가 맛있었고, 다음 날 아침에 먹은 뷔페도 훌륭했습니다. 즐거운 기분으로 독일 출장을 시작했습니다.
아이슬란드 화산이 폭발해서 유럽의 주요 공항이 마비되었었죠. 제 출장 일정표에는 4월 19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발하여 다음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거쳐서 에센 지역에 도착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예약한 비행기가 예정대로 출발하는 것을 당일 아침에 확인하고 공항에 갔습니다. 걱정은 조금 되었지만, 항공사가 잘 판단했을 것으로 믿고 독일로 향했습니다.
출발이 1시간 반 정도 지연되어서 도착이 늦어졌고, 미리 예약한 기차 편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기차표를 바꾸기 위해서 줄을 섰는데요... 안내를 정말 침착하게 하더군요. ㅜ.ㅜ 제 앞에 서 있었던 고객 그룹은 약 7~8개, 담당 안내원은 3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안내원 앞에 설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45분이었습니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저로서는 정말 갑갑하더군요. 제가 기가 차서 가끔 빙긋이 웃으니 앞에 서 있던 독일인이 저에게 말을 걸더군요. 자신이 봐도 너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 살아봐서 제 심정을 더 잘 알겠다고 하더군요. ^^
다행히 추가 요금을 내지 않고 다음 기차를 탈 수 있었습니다. ICE가 독일 고속열차입니다. 우리 KTX와 거의 같더군요. 좌석은 ICE가 조금 더 넓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Duisburg까지 ICE로 약 1시간 45분이 걸리는데, 출발은 정시에 했지만 10분 연착하더군요.
그래서 호텔이 있는 Mülheim까지 갈 기차에 겨우 탔는데... 출발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한참 있으니 안내방송이 나오고 승객들이 우루루 내리더군요. 독일어를 모르는 제가 어리둥절하고 있으니, 어떤 청년이 저에게 영어로 설명하더군요. 환자가 생겨서 치료하고 있는 중이어서 그 열차가 운행하지 못한다는 친절한 안내였습니다. 바로 옆 플랫폼에서 다음 열차를 타고 Mülheim에 도착했습니다. 같은 역에 있는 전기차로 다시 갈아타기 전에 근처를 구경했습니다. 독일 택시는 모두 벤즈더군요. ^^
고즈넉한 전기차를 타고 종착역에 도착하여 호텔로 걸어서 들어갔습니다. Duisburg 역에서 택시를 타지 않고, 두 번이나 환승하면서 호텔을 찾아간 것은 ICE 요금만 내면 행선지까지 기차를 무료로 탈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독일 풍경도 더 구경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화산재?'를 뚫고 도착한 호텔은 조용한 시골 장원 느낌을 주었습니다. 독일에 사는 분이 예약했는데, 우연히 제 취향에 딱 맞더군요. 호텔 안에 제법 긴 산책로가 있었고, 새들이 많았습니다. 아침에 새 짖는 소리에 잠을 깨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도착한 날 저녁에 먹은 피자와 독일 맥주가 맛있었고, 다음 날 아침에 먹은 뷔페도 훌륭했습니다. 즐거운 기분으로 독일 출장을 시작했습니다.
독일에서 찍은 사진을 네이버 블로그에 올리고 있습니다.
2010년 4월 8일 목요일
[수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안병길 편 (2)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후 3:12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서 이벤트가 진행 중입니다. 이 선생님께서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라는 회고 시리즈를 마치신 기념으로 한 회원이 제안한 이벤트인데, 경품으로 제 책을 협찬할 예정입니다. 저는 참가 자격이 되지 않지만, 이벤트를 응원하는 뜻에서 추억담을 적었습니다.)
<번외>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안병길 편 (2)
눈물을 머금고 화엄사로 하산했습니다. 억울했죠. 돈도 남았습니다. 방향을 바꿔서 바다로 가기로 했습니다. 충무로 가서 비진도에서 며칠 놀았는데, 비진도에서도 비를 흠뻑 맞았습니다. ㅜ.ㅜ 지리산은 그 다음 해에 김 교수와 아주대 에너지학과 김수덕 교수와 함께 역종주(천왕봉 => 노고단)를 하여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세 명이 쿵짝이 잘 맞아서 역종주를 마친 다음 더 놀았습니다. ㅋ
어둠을 뚫고 목포 해양대학교 앞의 야산으로 올라가서 텐트를 치려고 보니… 공동묘지였습니다. ㅜ.ㅜ 야심한 시간이라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죠. 소주 한 잔을 올리고, 텐트를 쳤습니다. 많이 으스스하더군요. 김수덕 군이 귀신 나온다고 분위기도 잡아서 더 쫄았습니다. 다행히 귀신님들이 저희 수면을 방해하지 않았고, 그 다음 날 홍도로 가서 며칠 잘 놀다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세 명이 쿵짝이 잘 맞아서 그 다음 해에 함께 한라산에 올랐고, 한양대 김 교수와는 4학년 때 설악산도 함께 올랐습니다. 최근에 두 김 교수를 만나니 그때가 좋았다고 하더군요. 저도 동감입니다. ^^
메이데이님이 제 어릴 때 이야기도 궁금하다고 하셔서 조금 해보겠습니다. 김영산 교수가 제 중학교 동창입니다. 부산진 역 앞에 있었던 동아중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 첫 시험을 쳤는데 제가 운 좋게도 공동 전교 1등을 했습니다. 겸손이 아니고, 운이 좋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셋째 형이 사회 참고서를 한 권 사줬는데, 사회 문제가 모두 그 참고서 연습문제를 그대로 옮겨서 출제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일도 있더군요.
이 선생님께서도 공부에서 계기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제 경험에 비춰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서 전교 1등을 하니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전교 1등 성적표를 자주 받았습니다. 집과 학교에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죠. 공부 잘한다고 교생 선생님이 제 이름을 새긴 멋진 만년필을 선물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교생 선생님, 이 글 보시면 연락해주세요. 제가 다음에 귀국하면 찾아 뵙고 인사 드릴게요. ㅋ)
음…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이 선생님께 폐가 되지 않도록 이 정도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점을 물어보시면 댓글로 답할게요.
여러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벤트에 많이 많이 참가해주세요~
<번외>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안병길 편 (2)
대학교 1학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전에 말씀 드렸던 지리산 종주 도전이었습니다. 경제학과 80학번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김영산 교수와 친구 한 명과 함께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종주를 해보겠다고 배낭을 짊어지고 구례 화엄사로 갔습니다. 라면을 끓여 먹고 화엄사에서 출발한 것이 큰 착각이었습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만만하게 봤는데, 그것이 아니더군요. ㅜ.ㅜ 계속 오르막이라서 깔딱고개와 코재를 넘어 노고단에 도착했을 때 세 명 모두 체력이 바닥이 났습니다. 그래서 대충 텐트를 치고 저녁도 간이식으로 겨우 해결한 다음 뻗었는데… 밤에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텐트 안으로 물이 들어와 도저히 산행을 계속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눈물을 머금고 화엄사로 하산했습니다. 억울했죠. 돈도 남았습니다. 방향을 바꿔서 바다로 가기로 했습니다. 충무로 가서 비진도에서 며칠 놀았는데, 비진도에서도 비를 흠뻑 맞았습니다. ㅜ.ㅜ 지리산은 그 다음 해에 김 교수와 아주대 에너지학과 김수덕 교수와 함께 역종주(천왕봉 => 노고단)를 하여 제대로 구경할 수 있었습니다. 세 명이 쿵짝이 잘 맞아서 역종주를 마친 다음 더 놀았습니다. ㅋ
홍도로 가자! 목포에 도착하니 밤이더군요. 저는 목포가 제법 큰 도시라서 도심지는 번화할 줄 알았는데, 1981년 목포는 전혀 아니더군요. 도심의 한 여인숙에 들어가서 자려고 방을 보니, 돈을 내고 잘 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텐트를 치기로 했습니다. ㅋ
어둠을 뚫고 목포 해양대학교 앞의 야산으로 올라가서 텐트를 치려고 보니… 공동묘지였습니다. ㅜ.ㅜ 야심한 시간이라서 어떻게 할 수도 없었죠. 소주 한 잔을 올리고, 텐트를 쳤습니다. 많이 으스스하더군요. 김수덕 군이 귀신 나온다고 분위기도 잡아서 더 쫄았습니다. 다행히 귀신님들이 저희 수면을 방해하지 않았고, 그 다음 날 홍도로 가서 며칠 잘 놀다 집으로 돌아 갔습니다.
세 명이 쿵짝이 잘 맞아서 그 다음 해에 함께 한라산에 올랐고, 한양대 김 교수와는 4학년 때 설악산도 함께 올랐습니다. 최근에 두 김 교수를 만나니 그때가 좋았다고 하더군요. 저도 동감입니다. ^^
메이데이님이 제 어릴 때 이야기도 궁금하다고 하셔서 조금 해보겠습니다. 김영산 교수가 제 중학교 동창입니다. 부산진 역 앞에 있었던 동아중학교를 같이 다녔습니다. 중학교에 올라와서 첫 시험을 쳤는데 제가 운 좋게도 공동 전교 1등을 했습니다. 겸손이 아니고, 운이 좋았던 것은 확실합니다. 셋째 형이 사회 참고서를 한 권 사줬는데, 사회 문제가 모두 그 참고서 연습문제를 그대로 옮겨서 출제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일도 있더군요.
이 선생님께서도 공부에서 계기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제 경험에 비춰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모로 가도 서울로 가서 전교 1등을 하니 자신감이 생기더군요. 그 다음부터는 전교 1등 성적표를 자주 받았습니다. 집과 학교에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죠. 공부 잘한다고 교생 선생님이 제 이름을 새긴 멋진 만년필을 선물해줬던 기억이 납니다. (교생 선생님, 이 글 보시면 연락해주세요. 제가 다음에 귀국하면 찾아 뵙고 인사 드릴게요. ㅋ)
저는 수재형은 아니었습니다. 한양대 김 교수가 수재형이었습니다. 슬슬 놀면서 공부해도 전교 1등을 한 번씩 했습니다. ^^ 중학교 2학년 때까지 1등을 유지했는데, 3학년에 올라와서 제가 조금 난조에 빠지고, 다크호스도 등장하여 3학년은 2등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추첨을 하니 동성고등학교에 배정되더군요. 울 뻔했습니다. 큰형과 작은형은 경남고, 셋째 형은 부산고, 그러면 저는 부산고로 가면 균형이 잡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서 속상했죠. 어릴 때 마음이 그랬습니다. 평준화가 되었다 해도 이전 명문고에 가고 싶었던 것은 인지상정이었으니까요.
고등학교에서도 범생이로 착실하게 살면서 서울대만 바라봤죠. 3학년 때 약간 주춤했지만 수석으로 졸업하기는 했습니다. 이 선생님께서 하신 수석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일 때는 몸이 조금 약해서 열공하는 친구들에 비해서 공부하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대신 방학 때를 포함해서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항상 있어서 방에 불을 켜놓고 잘 때가 잦았죠. 뒷집 여학생이 하루는 제가 잘 때까지 공부해보겠다고 결심하고 제 방을 살폈는데, 결국 조명등이 꺼지지 않아서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저는 불 켜놓고 쿨쿨 자고 있었는데 말이죠. ㅎ
초등학교는 두 군데를 다녔습니다. 2학년 때 이사를 해서 바닷가 학교로 옮겼죠. 제 기억에 1, 2학년 때까지는 여학생 친구를 좋아한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한가요? ㅋ) 제가 주동하여 친구들과 여학생 집에 쳐들어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남학생은 여학생과, 여학생은 남학생과 짝을 하고 싶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하신 사건이 큰 변화를 불러 왔습니다. 눈을 감고 손을 들라고 했으면, 눈을 감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저만 끝까지 눈을 감았고, 저만 손을 들었더군요. 그리고 모두 저를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아! 좋아도 좋다고 표현하면 안 되는구나!”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초딩, 중딩, 고딩의 무미건조한 범생이 인생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ㅜ.ㅜ 그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은 책임져야 합니다. ㅋ
음… 이야기가 길어졌네요. 이 선생님께 폐가 되지 않도록 이 정도로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혹시 궁금한 점을 물어보시면 댓글로 답할게요.
여러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이벤트에 많이 많이 참가해주세요~
2010년 4월 7일 수요일
[수필]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안병길 편 (1)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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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3:34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서 이벤트가 진행 중입니다. 이 선생님께서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라는 회고 시리즈를 마치신 기념으로 한 회원이 제안한 이벤트인데, 경품으로 제 책을 협찬할 예정입니다. 저는 참가 자격이 되지 않지만, 이벤트를 응원하는 뜻에서 추억담을 적었습니다.)
<번외>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안병길 편
이 선생님 게시판 이벤트에 제가 참여하지 않으면 왠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이렇게 졸고를 제출합니다. 이 선생님의 화려한 회고록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먼지 같은 기억이지만 어여삐 여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버지는 벼농사가 주업인 어느 가난한 농촌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형제가 셋이었는데 큰할아버지는 그 마을의 유지로서 훈장까지 하셨지만, 막내이셨던 할아버지는 어릴 때 서당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시골 농부로 일생을 사셨죠. 어릴 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 후회가 되셨는지, 그 농촌 시골 출신인 아버지를 도회지에 유학 보내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이야기이죠.
그 당시 가장 선망하는 학교는 사범학교였다고 합니다. 대구 사범에 응시했지만, 낙방하고 방향을 틀어서 한강 이남 상업학교로서는 가장 좋았다는 부산 상업학교로 진학하셨답니다. 대구 사범에 합격했다면, 박정희 씨의 후배가 되셨겠죠. ㅋ 장남만 아니라면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랬다면 별 하나 정도는 거뜬히 되었을 것이라고, 별로 농담을 즐기지 않으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6남매 장남이신 아버지는 9남매 장녀이신 어머니와 일찍 결혼하셨고, 부산 상업학교를 졸업하신 다음 손아래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바로 은행에 취직하셨습니다. 이후 저희 집을 거쳐 간 친인척이 10여 명 된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는 돈을 버시고, 어머니는 반 무료 하숙을 치는 식이었던 모양입니다. 어릴 때 제 기억에도 거의 항상 친척 한두 명은 우리 형제와 함께 지냈습니다. 요즘 세태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모습이죠.
제 책 감사의 말씀에 아버지 이야기를 가장 길게 적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자유민주주의자이셨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든지 권위주의적으로 자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을 내릴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자식 교육에 무관심해서 귀찮아서 그러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원래 스타일이 잔소리하는 것을 싫어하셨던 것 같습니다.
1981년 학부 2학년 때 저는 외교학과로 진학했죠. 학부 4학년이 되어서 유학을 준비할 때 하루는 아버지께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시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길이는 법대로 갔어도 잘했을 텐데….”
이런… 아버지는 제가 법대로 진학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좀 일찍 말씀하셨어야지요… ^^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 신나게 성적을 받아오던 저에게 한 번도 법대 진학을 권하지 않으셨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형들과 의논해서 알아서 결정하라는, 대학에 가보지 않은 당신보다는 대학 경험이 있는 형들 자문을 더 존중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대학에 대해서 뭐 아는 게 있나.”
이런 식이었습니다. 개발 독재 시대를 사시면서도 독재나 권위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셨죠.
대입 준비 때문에 암울한 고등학생 시절을 끝내고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많이 놀았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80년대 초반 대학생들이 학부 저학년 때는 고시준비 하는 학생 외에는 공부보다는 놀거나 데모하는 것이 주였다고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저는 데모 10%, 공부 30%, 노는 것 60% 정도였다고 대충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ㅋ
학부 1학년 때는 5.17 쿠데타가 일어나서 일찍 휴교를 했죠. 그래서 그때부터 9월 초에 개학할 때까지 신나게 놀았습니다. 클래식 음악다방에 가서 놀았고, 미팅은 가끔 했고, 친구들과 술도 자주 마셨고, 심지어는 프랑스 어를 배우러 간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도 놀았죠. 고향집이 바닷가라서 해변에서도 많이 놀았습니다. 하루는 바닷가에서 장발로 잡혀서 자칫 잘못 됐으면 삼청교육대에 끌려 갈 뻔 했습니다. ㅎㅎㅎ 삼청교육대라고 하면 요즘은 삼청동에 있는 교육대학으로 알아듣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번외>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안병길 편
이 선생님 게시판 이벤트에 제가 참여하지 않으면 왠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이렇게 졸고를 제출합니다. 이 선생님의 화려한 회고록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먼지 같은 기억이지만 어여삐 여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어릴 때 복숭아 나무 과수원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유치원 때인지 국민학교 1학년 때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날 스케치북을 들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복숭아 밭에 갔던 기억이 아직 납니다. 어머니께서는 예쁜 한복을 입으신 채 점심 도시락을 차리셨고, 아버지는 열심히 복숭아 밭을 메셨습니다. 저는 옆에서 복숭아 나무를 그렸죠.
아버지는 벼농사가 주업인 어느 가난한 농촌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형제가 셋이었는데 큰할아버지는 그 마을의 유지로서 훈장까지 하셨지만, 막내이셨던 할아버지는 어릴 때 서당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시골 농부로 일생을 사셨죠. 어릴 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 후회가 되셨는지, 그 농촌 시골 출신인 아버지를 도회지에 유학 보내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이야기이죠.
그 당시 가장 선망하는 학교는 사범학교였다고 합니다. 대구 사범에 응시했지만, 낙방하고 방향을 틀어서 한강 이남 상업학교로서는 가장 좋았다는 부산 상업학교로 진학하셨답니다. 대구 사범에 합격했다면, 박정희 씨의 후배가 되셨겠죠. ㅋ 장남만 아니라면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랬다면 별 하나 정도는 거뜬히 되었을 것이라고, 별로 농담을 즐기지 않으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6남매 장남이신 아버지는 9남매 장녀이신 어머니와 일찍 결혼하셨고, 부산 상업학교를 졸업하신 다음 손아래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바로 은행에 취직하셨습니다. 이후 저희 집을 거쳐 간 친인척이 10여 명 된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는 돈을 버시고, 어머니는 반 무료 하숙을 치는 식이었던 모양입니다. 어릴 때 제 기억에도 거의 항상 친척 한두 명은 우리 형제와 함께 지냈습니다. 요즘 세태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모습이죠.
제 책 감사의 말씀에 아버지 이야기를 가장 길게 적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자유민주주의자이셨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든지 권위주의적으로 자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을 내릴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자식 교육에 무관심해서 귀찮아서 그러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원래 스타일이 잔소리하는 것을 싫어하셨던 것 같습니다.
1981년 학부 2학년 때 저는 외교학과로 진학했죠. 학부 4학년이 되어서 유학을 준비할 때 하루는 아버지께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시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길이는 법대로 갔어도 잘했을 텐데….”
이런… 아버지는 제가 법대로 진학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좀 일찍 말씀하셨어야지요… ^^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 신나게 성적을 받아오던 저에게 한 번도 법대 진학을 권하지 않으셨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형들과 의논해서 알아서 결정하라는, 대학에 가보지 않은 당신보다는 대학 경험이 있는 형들 자문을 더 존중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대학에 대해서 뭐 아는 게 있나.”
이런 식이었습니다. 개발 독재 시대를 사시면서도 독재나 권위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셨죠.
대입 준비 때문에 암울한 고등학생 시절을 끝내고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많이 놀았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80년대 초반 대학생들이 학부 저학년 때는 고시준비 하는 학생 외에는 공부보다는 놀거나 데모하는 것이 주였다고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저는 데모 10%, 공부 30%, 노는 것 60% 정도였다고 대충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ㅋ
학부 1학년 때는 5.17 쿠데타가 일어나서 일찍 휴교를 했죠. 그래서 그때부터 9월 초에 개학할 때까지 신나게 놀았습니다. 클래식 음악다방에 가서 놀았고, 미팅은 가끔 했고, 친구들과 술도 자주 마셨고, 심지어는 프랑스 어를 배우러 간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도 놀았죠. 고향집이 바닷가라서 해변에서도 많이 놀았습니다. 하루는 바닷가에서 장발로 잡혀서 자칫 잘못 됐으면 삼청교육대에 끌려 갈 뻔 했습니다. ㅎㅎㅎ 삼청교육대라고 하면 요즘은 삼청동에 있는 교육대학으로 알아듣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내일 계속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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