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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2일 수요일

[서평-이준구 교수님] 높이 치켜든 자유민주의 횃불

높이 치켜든 자유민주의 횃불

이준구 교수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일상생활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흔하게 쓰고 있지만, 그것이 정확하게 무엇을 뜻하느냐고 물으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나를 위시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확하게 뭔지는 몰라도 그저 좋은 체제라는 의미에서 그 말을 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친숙한 일상의 사례를 들어가며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자유민주주의의 ABC를 풀어서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후에야 비로소 자유민주주의가 과연 무엇을 뜻하는지 그 윤곽이 차츰 분명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땅의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조그만 성냥불을 들어 올리는 심정으로 이 책을 썼다는 저자의 말에 짙은 감동을 느낀다. 그의 바람대로 이 조그만 성냥불이 온 세상을 환히 비치는 밝은 횃불로 활활 타오르기를 함께 기원해 본다. 그는 왜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귀중히 여기고 그것이 우리 사회에 굳건한 뿌리를 박을 수 있도록 힘써야 하는지 그 이유를 한 점 의심의 여지가 없이 분명하게 밝혀주고 있다.

저자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실천하며 사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사회 도처에 권위주의적 사고방식, 낡은 사회질서와 도덕률이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큰 이유는 자유민주주의의 적(敵)인 권위주의가 교묘하게 자유민주주의의 가면을 쓰고 발호하고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내가 늘 개탄하고 있는 바지만, 우리 사회에서 소리 높여 자유민주주의를 부르짖고 있는 사람일수록 더욱 권위주의적인 경우가 그리 드물지 않다. 이런 사기행각 때문에 존중의 대상이 되어야 할 자유민주주의가 경멸의 대상이 되어 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 살벌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운하사업은 경제성이 없다는 말을 한 죄로 하루아침에 '좌빨'로 몰린 나인지라, 이 혼란한 세태에 유감이 없을 리 없다. 그렇지만 자유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저자의 지적에 적지 않은 위안을 느낀다. 자유민주주의냐 아니면 권위주의냐가 진정한 의미를 갖는 선택의 문제일 뿐, 보수냐 진보냐의 선택은 별 의미가 없다는 그의 말에 전적인 지지를 보낸다.

나는 저자가 이 책의 제목을 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으로 결정했는지 의아해했다. 책 중반에 가서야 비로소 그 의문이 풀렸다. 저자의 설명에 따르면, 권위주의자와 자유민주주의자 사이에서 맞짱 토론이 벌어졌을 때 자신만 옳다고 믿는 권위주의자가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 상대방도 옳을 수 있다는 유연한 사고를 갖고 있는 자유민주주의자는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이 책의 제목에는 자유민주주의자들이 뭉쳐야만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겨져 있다. 표지의 그림을 보면 포식자 상어에게 떼를 지어 용감하게 대항하는 고등어의 무리를 연상하게 된다.

저자는 타인의 방종을 묵인하면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길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싸운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중시하는 이기적 관점에서 볼 때도 유리한 전략이라는 메시지다. 사실 우리는 권위주의의 위협이 심각한 상황에서도 "내가 뭘?" 혹은 "나 대신 남들이 싸워 주겠지"라는 편리한 구실을 붙여 뒷걸음치기 일쑤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 번번이 권위주의가 승리를 거둬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자유민주주의자가 함께 뭉쳐서 싸우지 않으면 권위주의가 발호하는 사회가 되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귀담아 들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흥미롭게 느낀 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신고전파 경제학을 공부한 나보다도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더욱 긍정적으로 바로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기심과 개인주의에 대한 긍정이라는 측면에서 신고전파 경제학을 능가하는 것을 생각하기 힘들 텐데 말이다. 여기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읽어내는 것은 과히 어렵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하면서 어떤 거창한 명분을 갖다 대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사회를 위한다는 둥, 공익을 위한다는 둥 거창한 얘기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싸움은 바로 자신을 위한 싸움임을 깨우쳐 주는 데 저자의 주안점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가 소중하다고 생각하면 권위주의에 과감하게 맞서 싸우라는 독려의 메시지다.

이 책의 많은 부분이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데 부어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아야 이것이 왜 소중한지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이 점에서 보면 비록 범위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훌륭한 정치학의 소개서 역할을 한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이든 배울 바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치학에 과문한 나 자신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느낀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우리 모두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한 조그만 성냥불을 켜들자고 외치는 저자의 열정이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흔들림 없는 신뢰는 우리를 감동하게 만든다. 우리가 왜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논거는 한 점 의혹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그를 따라 나도 목이 터져라 "자유민주주의 만세"를 외치고 싶다.

출처: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댓글 4개:

  1. 메이데이 2010/03/07 12:20
    안 선생님, 제가 횃불은 어렵더라도 성냥불은 켜야 하는데... 성냥불은 손이 델까 무서워서(아이 때 한 번 덴 적이 있어서, 그 뒤로 라이터도 못 켭니다.^^) 그냥 횃불을 들겠습니다. 거창한 명분은 딱 잘라 버리고, 제 자신의 행복을 위해!

    안병길 청해 2010/03/07 14:48
    ㅎㅎㅎ 아주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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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메이데이 2010/03/07 15:30
    고맙습니다. 성냥불 켜 들자고 하면 횃불을 들자고 하는 것보다 더 무서워 할 사람들 저말고 몇 더 있을 것 같습니다. 물어보니 제 딸도 그냥 횃불로 들겠답니다. 성냥불은 켜 본 적이 없어서^^ 무슨 물건인지도 잘 모르네요. 한참 설명했습니다. 횃불 동지들 갑니다.

    안병길 청해 2010/03/07 16:11
    아이들이 성냥불을 보지 못했을 수 있겠네요.
    자유민주 촛불이나 라이터도 괜찮을 것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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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메이데이 2010/03/08 10:31
    아들놈은 촛불 쪽입니다. 촛불의 현장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을 몹시 안타까워합니다. 정치학으로 전공을 바꾸라고 건의를 하고 싶은 정도인데 중국에는 '정치학'이 워낙 다른 '정치학'인지라(국제정치학이라고 있기는 하던데요) 그냥 계속 물리 공부하고 나서 그 다음에 보자고 하는 중입니다. ngo에서 일하는 게 꿈이라니 늙으막에 용돈 얻어쓰긴 글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딸은 그쪽 지망이 아니라 '양로 보험금' 반쪽은 건질 수 있을까 희망을 품고 있습니다만^^)

    안병길 청해 2010/03/08 13:29
    ㅎㅎㅎ 나중에 길고 짧은 것은 재봐야 알 겁니다. 아드님이 더 많은 '양로 보험금'을 드릴지도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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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메이데이 2010/03/08 17:24
    그럼 저는 홈런 타자 될 수 있겠네요. 양로원 월사금이라도 건질 수 있으면 좋겠는데... 선생님 말씀에 희망을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사실 ngo에 들어가서 일하더라도 기부금을 내며 일하라는 게 저의 희망사항입니다. 들어가지 말라는 이야기보다 더 심하다나요.

    안병길 청해 2010/03/09 00:21
    엄마에게 기부하는 것도 기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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