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서 이벤트가 진행 중입니다. 이 선생님께서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라는 회고 시리즈를 마치신 기념으로 한 회원이 제안한 이벤트인데, 경품으로 제 책을 협찬할 예정입니다. 저는 참가 자격이 되지 않지만, 이벤트를 응원하는 뜻에서 추억담을 적었습니다.)
<번외>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 안병길 편
이 선생님 게시판 이벤트에 제가 참여하지 않으면 왠지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은 이상야릇한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이렇게 졸고를 제출합니다. 이 선생님의 화려한 회고록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먼지 같은 기억이지만 어여삐 여겨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는 어릴 때 복숭아 나무 과수원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유치원 때인지 국민학교 1학년 때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날 스케치북을 들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복숭아 밭에 갔던 기억이 아직 납니다. 어머니께서는 예쁜 한복을 입으신 채 점심 도시락을 차리셨고, 아버지는 열심히 복숭아 밭을 메셨습니다. 저는 옆에서 복숭아 나무를 그렸죠.
아버지는 벼농사가 주업인 어느 가난한 농촌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할아버지 형제가 셋이었는데 큰할아버지는 그 마을의 유지로서 훈장까지 하셨지만, 막내이셨던 할아버지는 어릴 때 서당에 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시골 농부로 일생을 사셨죠. 어릴 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서 후회가 되셨는지, 그 농촌 시골 출신인 아버지를 도회지에 유학 보내셨습니다. 일제 강점기 때 이야기이죠.
그 당시 가장 선망하는 학교는 사범학교였다고 합니다. 대구 사범에 응시했지만, 낙방하고 방향을 틀어서 한강 이남 상업학교로서는 가장 좋았다는 부산 상업학교로 진학하셨답니다. 대구 사범에 합격했다면, 박정희 씨의 후배가 되셨겠죠. ㅋ 장남만 아니라면 군인이 되고 싶었다고 하시더군요. 그랬다면 별 하나 정도는 거뜬히 되었을 것이라고, 별로 농담을 즐기지 않으시는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아무튼 6남매 장남이신 아버지는 9남매 장녀이신 어머니와 일찍 결혼하셨고, 부산 상업학교를 졸업하신 다음 손아래 형제들의 뒷바라지를 위해서 바로 은행에 취직하셨습니다. 이후 저희 집을 거쳐 간 친인척이 10여 명 된다고 하시더군요. 아버지는 돈을 버시고, 어머니는 반 무료 하숙을 치는 식이었던 모양입니다. 어릴 때 제 기억에도 거의 항상 친척 한두 명은 우리 형제와 함께 지냈습니다. 요즘 세태에서는 찾아 보기 힘든 모습이죠.
제 책 감사의 말씀에 아버지 이야기를 가장 길게 적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생각해보니 아버지가 자유민주주의자이셨던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든지 권위주의적으로 자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명을 내릴 수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자식 교육에 무관심해서 귀찮아서 그러셨을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원래 스타일이 잔소리하는 것을 싫어하셨던 것 같습니다.
1981년 학부 2학년 때 저는 외교학과로 진학했죠. 학부 4학년이 되어서 유학을 준비할 때 하루는 아버지께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시다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길이는 법대로 갔어도 잘했을 텐데….”
이런… 아버지는 제가 법대로 진학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좀 일찍 말씀하셨어야지요… ^^ 그런데 중고등학교 때 신나게 성적을 받아오던 저에게 한 번도 법대 진학을 권하지 않으셨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형들과 의논해서 알아서 결정하라는, 대학에 가보지 않은 당신보다는 대학 경험이 있는 형들 자문을 더 존중해주신 것이었습니다.
“내가 대학에 대해서 뭐 아는 게 있나.”
이런 식이었습니다. 개발 독재 시대를 사시면서도 독재나 권위주의와는 전혀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이셨죠.
대입 준비 때문에 암울한 고등학생 시절을 끝내고 대학교에 진학하면서 많이 놀았습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습니다만, 80년대 초반 대학생들이 학부 저학년 때는 고시준비 하는 학생 외에는 공부보다는 놀거나 데모하는 것이 주였다고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저는 데모 10%, 공부 30%, 노는 것 60% 정도였다고 대충 말씀 드릴 수 있겠네요. ㅋ
학부 1학년 때는 5.17 쿠데타가 일어나서 일찍 휴교를 했죠. 그래서 그때부터 9월 초에 개학할 때까지 신나게 놀았습니다. 클래식 음악다방에 가서 놀았고, 미팅은 가끔 했고, 친구들과 술도 자주 마셨고, 심지어는 프랑스 어를 배우러 간 알리앙스 프랑세즈에서도 놀았죠. 고향집이 바닷가라서 해변에서도 많이 놀았습니다. 하루는 바닷가에서 장발로 잡혀서 자칫 잘못 됐으면 삼청교육대에 끌려 갈 뻔 했습니다. ㅎㅎㅎ 삼청교육대라고 하면 요즘은 삼청동에 있는 교육대학으로 알아듣는 사람이 많다고 하더군요.
이 이벤트를 주최하신 이 선생님께서 술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이 글을 적을까 말까 제법 주저했습니다. 기본 점수가 깎이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한다는 자유인지 방종인지 직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 주제로 제가 이기면 더 빛이 날까요? 아니면, 이겨도 져도 창피를 당할까요? 미래에 벌어질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복골복이겠죠. ^^
1. 처음 술 마시기
제가 마신 첫 술은 옆집 독일인 가족 이야기에 등장한 100년 된 술이었습니다. 그때 고등학생이었죠. 그런데 그것은 위스키 싱글 딱 한 잔이어서 술을 마셨다기보다 맛을 본 것으로 봐야겠습니다.
서울대 합격 통보를 받고 고3 담임 선생님 댁에서 술을 마신 것이 첫 경험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축하주로 정종 됫병을 내놓으셨죠. 막 권하시더군요. 그래서 겁도 없이 막 마셨습니다. 그냥 술술 넘어 가더군요. 술 권하는 사회였습니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발생했습니다. 천정이 빙빙 돌더군요. ㅋ 제 방이 2층에 있었는데, 사태가 심상찮음을 알아채신 아버지가 올라오셨습니다. 꿀물을 들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2층에 올라오시는 것은 집 수리할 때밖에 없었을 정도였는데, 졸업도 하지 않은 고등학생 막내가 술에 떡이 되어서 마음을 졸이셨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야단은 맞지 않았습니다.
2. 그날 관악산에는 보름달이 떴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와서 관악사 라동에 짐을 풀었습니다. 1980년 서울대 기숙사인 관악사는 가, 나, 다, 라, 마동까지 있었습니다. 여학생 기숙사는 없었습니다. 미팅을 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미팅을 주선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고등학교 선배가 미팅 자리가 비었다고 쪽수를 채우라고 하더군요. ㅜ.ㅜ 그래서 첫 미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바닷가 출신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여자 친구 사귀면 서울대에 못 간다는 어른들의 엄포에 억눌렸던 한심한 청춘이었죠.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으면서, 아! 나도 골드문트처럼 사는 부분도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시무시한 엄포가 금방 머리에 떠올라서 감정을 삭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인간의 감정이 잘 삭여집니까. 특히 사춘기의 본성은 눌러도 스프링같이 다시 튀어오르죠. 그런 때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혹시 압니까. 지나가는 여학생이 저에게 먼저 말을 걸어올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ㅋㅋㅋ
예쁜 조개 껍데기를 많이 주웠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어여쁜 녀석을 골라서... 대학생이 되면 첫 미팅 상대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관악사 라동에서 부린 짐 속에 있었죠. 첫 미팅 상대에게 그 조개 껍데기가 전달된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애프터를 신청했습니다. 그것은 누나의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했지만, 아주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으나 싫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마! 이 정도면 됐다!"를 속으로 외친 결과였습니다. 촌뜨기 주제에 최상급 여학생을 사귀는 것은 미리 포기한 셈이었죠. ㅜ.ㅜ
누나의 조언은... 대학생이 된 막냇동생에게 누나 왈, "길아! 미팅 나가서 세 가지를 지켜라. 첫째, 맘에 들든 안 들든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애프터도 신청해라! 둘째, 커피 값은 네가 내라! 셋째, 헤어질 때 여학생이 싫다고 하지 않으면 집 근처까지 데려다 줘라!"였습니다. 순진한 저는 누님 조언대로 다 했습니다. 누님이 여자라는 사실을 제가 깜빡했었던 것이죠. ㅜ.ㅜ
애프터는 제가 서울 지리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 여학생 집과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했습니다. 남영역이었습니다. 드디어 애프터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날이 고등학교 선배들이 환영식을 해주는 날과 겹쳤습니다. ㅜ.ㅜ 낮부터 소주를 먹이는데, 꾀를 한껏 부렸지만, 기본은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애프터 시간을 지키려고 정신은 바짝 차렸습니다. 몰래 도망쳤죠. ㅋ 약속 시간에 무려 30분이나 일찍 남영역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술이 약합니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져서 함께 마시는 이들이 놀리기도 했습니다. 그날도 그랬죠. 시간은 30분이 남았죠. 남영역 계단에 술이 약간 취한 상태에서 앉아 있으니 저절로 졸음이 왔습니다. 잠깐 졸고 있는데, 웬 청바지를 입은 여학생이 저를 툭툭 치는 것이었습니다. 미팅을 할 때는 분명히 치마를 입은 여학생이었는데, 사람이 아니 옷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저... OO 씨 맞습니까?"
"낮부터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요?"
그 한마디만 하고 획 하니 뒤돌아서서 가더군요. 쫓아갔습니다. 저녁이라도 드시고 들어가시라고 했는데,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뒤로 돌아서 서울대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는 학교 안에 들어가는 버스가 없었습니다. 밤에 정문에서 관악사까지 산길로 올라가는데 보름달이 휘영청 떴더군요. 완전 처량했습니다. ㅜ.ㅜ
관악사 라동 앞에서 전화했습니다. 들어오지 않았다는 답. 또 했습니다. 또 들어오지 않았다는 답. 세 번째 시도에서 통화가 되었습니다. 별로 할 말이 없더군요. 미안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미팅을 계속 하실 겁니까?"
"같이 영화 보러 갈 사람이 생길 때까지 하려고요."
"그럼 제가 영화를 같이 보러 다닐 테니 앞으로 미팅을 하지 않으시는 것은 어떨까요?"
"글쎄요..."
저는 "글쎄요."가 No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주위 분들에게 물어보니, Yes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ㅜ.ㅜ
(끝이 약하다는 어느 성냥불 조원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미팅 이야기로 보강합니다. 두 번째 파트너는 미팅할 때 바지를 입고 왔는데, 애프터에는 치마를 입고 왔었습니다. 그런데 막 신경질을 내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평소에 치마를 입지 않는데 그날 입었더니 친구들이 놀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신경질을 냈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ㅜ.ㅜ)
3. 술, 노래, 그리고 휘파람
세월이 흘러서 졸업도 하고 유학도 다녀와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노래방도 가고, 가라오케도 갔습니다. 제가 노래를 잘 못 부릅니다. ㅜ.ㅜ 술도 잘 못 마시고, 노래도 잘 못 부르니 다른 장기라도 있어야 될 것 같아서 휘파람을 개발했습니다. 친구들 말이, 제가 술을 조금 마신 다음 휘파람을 불면 그래도 들어줄 만하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들이 취해서 그랬을 겁니다. ㅋ
하루는 강남의 어느 대형 가라오케 술집을 갔습니다. 넓은 홀에 스테이지가 있더군요. 제 차례가 되어서 올라갔습니다. 다음 노래를 불렀습니다.
간주 부분에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이상하게 그날은 제법 되더군요. ^^ 노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손님이 저에게 와서 자신의 맥주를 따라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자기가 부를 테니 간주가 나오면 휘파람을 불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헉...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같은 노래에 같은 휘파람을 두 번 불었습니다. ㅋ
4. 삐끼와 조(석?X)우하다.
삐끼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호객꾼을 지칭하는 말이지요. 주로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로 술집으로 유인한 다음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을 뜻합니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삐끼를 보면 저는 기분이 매우 나빴습니다. 밤에 귀가하면서 지나는 어떤 사거리에는 삐끼와 국가기관이 혼재해서 공존공생하고 있었습니다. 즉, 삐끼가 술 취한 사람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도 바로 옆의 경찰은 전혀 단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호객행위는 엄연한 불법행위입니다. 경찰은 국가기관입니다. 국가가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광경을 보면 왠지 화가 났습니다.
하루는 그 사거리에 삐끼들이 떼로 몰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은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아서 관할 파출소에 들어가서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경찰들은 제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전혀 출동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출소 안에 있는 공중전화를 들고 112에 신고했습니다. 제 실명을 밝히고 그 사거리에 호객꾼이 많으니 단속하라고 신고했습니다.
범죄신고 112는 중앙에서 통제하기 때문에 금방 출동합니다. 출동한 경찰이 저에게 다가와서 누가 삐끼냐고 물어보기에 한 명을 지칭했습니다.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즉석에서 대질심문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찰: “당신 호객꾼 맞아?”
P: “아닌데요”
P: (저를 바라보면서) “아저씨, 나 알아요?”
경찰: (저에게) “호객꾼 아니라고 하잖아요. 바쁜데 그렇게 허위신고해서 되겠어요?”
안: (경찰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근무에 지장을 주어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안: (P에게) “미안하게 됐습니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저는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그 추운 겨울날에 벌벌 떨면서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쳐다보면서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히 호객행위를 하지 못하고 제 눈치만 계속 봤습니다. 그 와중에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그 사거리에서 어떤 중년남자가 중년여자를 때리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엄연한 폭력행사였음에도 아무도 말리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습니다. 말리고 싶었는데 워낙 우락부락한 남자라서 제가 다칠 것 같아서 망설였습니다.(저도 이 선생님처럼 겁이 많습니다. ^^) 그때 번득 아이디어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힘 좋은 호객꾼을 동원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P를 불렀습니다.
“내가 술을 한 잔 살 테니 저 무지막지한 인간을 말려주게나.”
“정말 술 사주시는 겁니까?”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네.”
저와 P가 그 폭력을 막았습니다. 소란스러워져서 경찰이 왔지만, 그 중년남자를 연행하지는 않더군요. 조금 지나자 여자가 졸도했습니다. 아니, 졸도한 척했습니다.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연기를 하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우리가 말리고 경찰이 등장하자, 그 남자는 여자를 끌다시피 택시에 태우더니 어디론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여자는 처음에는 타지 않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스스로 택시에 올랐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들이 부부 사이인지 무슨 다른 관계인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약자가 강자에게 당하는 것을 국가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광경을 다시 한 번 목격했을 뿐이었습니다.
약속대로 그 P와 저는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삐끼더군요. 술을 시키고 말을 해보니 저와 동향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배에게 술 한 잔 사주는 셈치고 환담하면서 술을 몇 잔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이 술병을 채 비우기도 전에 다른 술병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더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고, 계산서를 가져오라고 해서 일단 계산한 다음 다시 관할 파출소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파출소에서 출동했습니다. 제가 신고한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112에 신고하면 관할 파출소에 통보됩니다.) 저를 경찰차에 태운 다음 그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집입니다. 호객꾼을 고용하여 장사하는 집입니다. 단속하십시오.”
“단속할 근거가 없습니다. 영업시간 제한이 풀렸기 때문에 단속할 수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단속할 것이 없을까요?”
“잠시 문 앞에서 기다리세요. 우리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경찰이 문을 두들기면서) “문 열어!”
의도하지 않았던 닌자 역할이 의도한 트로이의 목마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 왜 영업시간 제한이 없는데 그 집이 문을 닫아놓고 있었겠습니까? 경찰이 출동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셔터를 내린 것이지요.
결국, 저와 술집 사장, 그리고 호객꾼은 파출소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전모가 확인되었고 경찰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처리해 드릴까요? 고발하시겠습니까?”
“저는 고발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약자를 등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야단치고 훈방하시기 바랍니다.”
술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술 마시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면, 술 취한 약자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원래 사회계약이었습니다. 사전에 그런 약자가 흔히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술집이 문을 닫도록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술집에서 각 손님에게 일정량 이상의 술은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일정 시간대에는 주류를 팔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을 등치려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계약이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덧 붙임: 삐끼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 문제를 들면서 제가 신고한 것을 비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회구조 탓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삐끼의 방종이나마 지적하는 인간의 노력이 사회개선에 적어도 성냥불 정도의 도움은 된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서 현재 미션 이벤트가 진행 중입니다. 회원 여러분의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꾸벅~ 여러분의 소중한 댓글 하나, 추천 하나가 성냥불 조 10년을 좌우합니다! 주소는 http://tinyurl.com/ahn-event5 입니다. 아래는 경과 보고입니다. 미리 감사합니다. ^^)
[잡담] 성냥불 조의 결성 (2009/08/18)
성냥불 조가 Foremost Five가 되었습니다. 오늘 신비아님이 새로 참여하셔서 현재 다섯 명이 되었습니다. Star Six를 향해서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습니다.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특별 고문: 이준구 선생님 (승낙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조장: 안병길
조원(가입 순): 영도스키, 임형찬, 소민우, 신비아
막강 전력입니다. Mission Impossible도 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조는 자유가 모토이기 때문에 참여하시는 자유도 존중하고, 떠나시는 자유도 존중합니다.
2009년 9월 1일, 우리 조에 첫 미션이 전달될 예정입니다. 사전 준비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비밀 아지트, "우리는 성냥불이다!"를 만들었습니다. 조원들에게 연락이 갈 것이니 한 분도 빠짐없이 아지트로 모이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성냥불 조] 특별고문님의 왕림을 요청합니다. (2009/08/23)
특별고문님께,
저희 성냥불 조가 미션을 대비한 용맹정진에 들어간 지 며칠이 지났습니다. 매우 힘든 마음 단련 프로그램이라서 조원들이 이미 지친 기색이 역력합니다.
특별고문님의 특별 격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바쁘시더라도 왕림하셔서 지도편달을 해주시면 영광으로 여기겠습니다. 선생님의 gmail 계정으로 왕림하실 수 있는 초청장을 발송했습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성냥불 조장 안병길 올림
p.s. 성냥불 조에 훼밀리쥬님이 참여하기로 하여서 이제 저희는 Star Six!가 되었음을 보고합니다.
[성냥불 조] 성냥불 조 외인구단 타순입니다. (2009/09/02)
자유민주주의 깃발을 든 성냥불 외인구단은 자유민주주의적으로 다음과 같은 타순을 결정했습니다.
1번 타자: 소민우 (법륜을 굴립니다.)
2번 타자: 신비아 (멋진 화폭을 펼칩니다. 혹시 바람의 화원 신윤복?)
3번 타자: 임형찬 (기계부터 정치사회 문제까지 섭렵합니다.)
4번 타자: 훼밀리쥬 (이 선생님 게시판 선덕여왕입니다.)
5번 타자: 안병길 (듣보잡 자유민주주의 해설꾼입니다.)
6번 타자: 영도스키 (러시아 상인이라는 설도 있고, 신촌 다크호스라는 전설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