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11월 4일 수요일

[수필] 남천동 친구

제가 태어난 곳은 부산 서면이지만 "국민"학교 2학년 때 광안리 남천동으로 이사했기 때문에 고향은 바닷가 남천동입니다. 지금은 남천동이 매우 번화한 곳인데, 30~40년 전 남천동은 한적한 어촌 시골이었습니다. 그 동네에 청기와집이라는 고대광실이 있었습니다. 오늘 이야기 주인공인 제 친구가 그 청기와집 막내아들입니다. 그 당시 남천동에서 가장 잘 사는 집 중 한 집이었죠.

그런데 친구가 어릴 때 아버님이 돌아가셔서 가세가 기울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저희 집에 친구가 찾아와서 빵을 팔아야겠다면서 혹시 소개할 가게가 없는지 저에게 물었습니다. 부모님이 아시는 동네 가게를 친구에게 소개했죠. 어린 나이에도 가게 주인아저씨에게 집에서 만든 빵의 장점을 열심히 설명하던 친구의 모습이 아직도 제 눈에 선합니다. 그날 빵 납품 약속도 받았죠.

그 친구와 저는 "국민"학생일 때 단짝이었습니다.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생이 된 다음 그 친구는 공부와 생업을 병행해야 했던 모양입니다. 가끔 저희 집에 찾아와서 전한 소식은 어린 저에게는 신기한 이야기였습니다. 소식이 오래 끊어져서 무엇을 하나 궁금할 즈음이 되면 반드시 저에게 연락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었을 때도 저에게 어김없이 나타나서 다른 국민학교 동창생들과 만남을 주선하기도 했죠.

1985년 어느 늦은 봄날 그 친구가 통기타를 들고 서울 신혼집에 나타났습니다. 가수 오디션을 보려고 상경했다고 하더군요. 함께 식사를 하고 꼭 오디션에 붙으라고 응원하면서 바이바이 했던 것이 젊은 시절 봤던 그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때까지 그 친구가 겪었던 산전수전 고생을 그날 들었던 것은 물론이었죠.

24년이 지난 올해 그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메일이 한 통 들어왔더군요. 반가운 마음에 금방 전화해서 미국에 살고 있다고 하니, 우리나라에 들어오면 꼭 연락해서 보자고 하더군요. 국민학생 단짝이니 당연히 그래야죠.

지난달에 귀국해서 그 친구를 고향 바닷가에서 만났습니다. 친구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친구들 몇 명도 함께 만났죠. 친구가 횟감을 직접 골라서 아는 횟집에 부탁하여 싱싱한 회로 가득한 큰 상을 차린 것이죠. 24년 만에 만나서 회포를 풀면서 회를 실컷 먹었습니다. 중간에 객기가 생겨서 친구에게 싱싱한 해삼도 부탁했죠. 염치도 없었습니다. 제 부탁을 들은 친구는 전혀 싫은 기색을 하지 않고 수산시장으로 가서 해삼과 낙지를 사서 상에 올려 주었습니다. 엄청 대단히 매우 고마웠습니다. 노래방에 가서 노래까지 불러 24년 동안 보지 못한 한을 마음껏 풀었습니다.


캘리포니아에 돌아오니 그 친구가 또 보고 싶네요. 그 친구뿐만 아니라 이번 귀국에서 만났던 모든 분이 또 보고 싶네요...

댓글 6개:

  1. 궁금해서 그런데, 그 친구분 지금 상황은 어떤지요?
    어렸을 때의 역경을 딛고 사회적으로 성공을 거두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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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지금은 일반 기업체에서 간부로 일하면서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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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혹시 출신 고등학교를 여쭈어보아도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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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부산 동성고등학교를 졸업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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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제 지갑에는 그 분 명함이....
    정말 술 사주세요라고 졸라도 될런지 모르겠습니다. ㅎㅎㅎ

    쩝~ 다음에 한국 오실 때에는 진도 홍주를 박사님과~
    크릅~

    아직도 식도에는 빼갈에 지나다니는 듯 합니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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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ㅎㅎㅎ 형찬 씨, 그날 재미있었습니다. 다음에 부산에서 만나면 진도 홍주를 마셔봅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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