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의 대운하 추진과 관련하여 서울대 교수님들이 결연히 일어나셔서 반대의 뜻을 밝히시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지성이 아직 살아 있다는 진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우리 서울대 교수님들이 4.19 혁명 때 거리에 나서서 이승만 정권의 퇴진을 부르짖으셨던 전통을 이으시는 것 같아서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최근에는 대통령 당선자가 대운하는 지구온난화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는 식으로, 대운하 만병통치약 설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도대체 누가 연구를 그렇게 단기간에 완벽하게 해서 당선자가 그런 신념을 갖게 되었는지 의문입니다. 원래 대운하를 종교처럼 떠받들던 분이라서 그 믿음을 쉽게 가지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당선자가 그런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의심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입니다. 인수위의 추 모씨도 상당히 신기한 경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TV 토론회에서 대운하에 대하여 청산유수로 설명하는 추 씨를 보고, "야! 저 양반은 대운하로 학위를 했나 보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추 모 이렇게 구글링을 해봤죠. 이력을 보고 그 양반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찾아보다 사진이 들어 있는 웹 페이지를 보고서야, 뜨악했던 것입니다. 대운하 전문가가 아니고 목사님, 목사님 우리 목사님이셨습니다. 추 모씨가 우리 교수님들을 인신공격하여 혼쭐이 난 것은 모두 알고 계실 것입니다.
대운하 추진 측에서는 처음에 "대운하, 돈 된다! 물류 수송 해결된다!" 이렇게 주장하다, "아니다, 돈 안 된다! 요즘같이 가볍고 빠르게 움직이는 시대에 운하가 어떻게 물류 수송을 해결하느냐? 식수 문제도 있다!" 이렇게 반박당하니까, "민자 유치하여 강바닥의 모래를 팔고, 대운하 주변을 관광개발하면 돈 된다! 식수는 간접취수하면 된다!"라고 강변했고, 이에 대해서 "연구조사 해보니, 그렇게 해도 돈은 안된다! 대운하 주변을 개발하면 대운하 사업자에게 간접적으로 수익을 보전해주는 것 아니냐? 땅값 올라가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이냐? 간접취수는 말도 안된다, 당선자가 서울시장을 할 때 한강변에 간접취수 조사했던 것도 실효성이 없어서 유야무야되지 않았느냐? 식수 문제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환경 문제도 매우 우려스럽다! 배가 산으로 가는 꼬락서니를 상상해보면 기가 막히지 않느냐!"라고 충고해주니, 이번에는 "환경은 무슨 소리냐, CO2 감소시켜서 지구온난화 문제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데!"라고 대답하는 형국입니다.
저 같은 정치학도의 관점에서 보면, "참말로 의제설정(agenda setting)도 다양하게 하네. 그런다고 그런 잘못된 정치적 조작(political manipulation, 원래 이 용어는 가치중립적임. 정치공작과는 다름)이 먹혀들어가나? 지금이 무슨 경부고속도로 놓던 그 시대인가?"라고 쓴웃음을 지을 수도 있겠습니다. (잘못된 정치적 조작의 예로 황우석 사례를 들 수 있겠습니다. 수염을 기른 채 입원해 있는 것을 보고, 참 저급한 의제 설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 되면 그 사태에 대한 제 생각도 글로 옮겨 보겠습니다. 미국 역사상 대표적인 쓸만한 정치적 조작으로 링컨-더글러스의 프리포트 논쟁을 많이 언급합니다. 링컨이 노예제 이슈를 절묘하게 이용하여 상대방 진영을 교란시켜 나중에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사례입니다.)
대운하 추진 측이 주장하듯이 대운하가 그런 만병통치약이라고 합시다. 그렇다면 왜 민자로 대운하를 건설합니까?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서 공적 자금으로 해야지요. 국토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는, 세종대왕 시대의 한글 창제에 버금가는 훌륭한 사업인데 민자 운운하는 아쉬운 소리를 합니까?(이렇게 얘기하면 추진 측에서는 "걱정하지 마라, 이미 공적 자금 쓸 작전을 짜고 있는 중이다."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 씨익 웃을지도 모르겠네요.) "당선자님, 떳떳하면 국민의 동의를 받아서 국민 세금 쓰세요. 모자라면 그 좋아하시는 국내외 자원봉사자도 모집하시고, 국민 성금도 걷고 그러세요. 들어간 공적 비용은 업그레이드된 국토를 통해서 자손만대 단물을 뽑아내 몇천 배의 혜택을 가져다줄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얘기하고 싶네요. 민자? 이 교수님이 말씀하셨듯이 "민자"라는 공짜 점심 없습니다. 공짜도 아닌 공짜 먹으려다 금수강산이라는 도자기 밥그릇 깨질 것이고, 그다음부터는 끼니 때울 때 밥그릇 없이 먹든지, 플라스틱 새 밥그릇이라도 만들기 위해서 또 돈 써야 합니다.
CO2 경우만 보더라도 대운하를 통해서 물류 수송에 변화가 온다면, 얼마나 육로 수송량이 선박 수송으로 전환될 것인지 예측해야 하고, 그때 육로 수송에서 감소하는 CO2 양과 배에서 뿜어져 나오는 CO2 양의 정확한 비교, 경부 축 육로 물류 수송의 장기 현황 파악, 대운하에 의한 환경 파괴와 지구 온난화의 상관관계, 기타 등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지 대운하의 지구온난화 완화 효과를 보다 완전하게, 또 실용적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덜렁 자동차 물류 수송이 대운하 쪽으로 일부 옮겨 가니까 지구온난화 감소에 도움을 준다는 아메바 식 계산법을 제시하면, "어쩌라고요?"라고 즉답을 주고 싶은 것은 저 혼자뿐일까요?
제가 조금 흥분해서 들어가는 말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대운하 문제를 보면 대형 정책 연구가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것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서울대 교수님들이 이공계, 인문사회계를 모두 망라하여 일종의 정책연구 네트워크를 구성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최근에 남대문이 불타버렸습니다. 일종의 대형 재난이지요. 남대문을 보면 우리의 대형 재난 관리 시스템의 현주소를 대충 알 수 있습니다. 남대문을 개방했으면 관리도 잘하고, 재난 대비도 잘했어야지요 // 불이 났으면 잘 껐어야지요, 담당 소방서에 국보 1호 구조도가 없었다니 이게 무슨 일인지요, 우리 소방 기술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요, 남대문 안으로 들어갔는데 사다리 길이가 짧았다고요? 천정이 너무 두꺼웠다고요? // 불이 꺼졌으면 뒤처리를 잘해야지요, 국보 1호 잔해가 왜 쓰레기장으로 갑니까?
저는 소방방재청이 행자부에 속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FEMA(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는 국토안전부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 미국의 부서 직제를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나라 행정부에는 부처 간의 암묵적인 서열화가 있고, 실제로 부처 견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대형 재난을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 비상시에는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하는데, 일을 당하면 삐거덕거릴 가능성이 큽니다. 소방방재청이 무슨 힘이 있나요. 최근의 삼성중공업/허베이 호 기름유출 사건을 봐도 그 문제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수위는 국가인권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하는 무리한 아이디어를 낼 것이 아니라, 국가재난관리위원회를 신설하여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직속으로 하고 그 밑에 소방방재청을 두는 "실용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이 좋았을 것입니다.
대운하나 대형 재난관리와 같은 종합정책 연구는 많은 학자가 다양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상호협력하여 분석해야 합니다. 이공계 학자들과 의견교환을 해보면, 그분들의 전문지식이 제대로 된 정책을 수립하기 위해서 얼마나 큰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독극성 화학물질을 수송하던 차량이 전복되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소방방재청은 그 뒤처리에 대한 매뉴얼을 이미 갖고 있어야 합니다. 화공학자, 생태학자, 기초의학자 등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그 매뉴얼을 만들 수 없습니다. KTX 사고가 나면 대형사고입니다. 사고가 나지 말아야 되겠지만, 인간의 일이란 알 수 없으므로 미리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다양한 시나리오 하에서 KTX 재난에 대한 매뉴얼을 준비해야 하므로, 이공계 학자들의 도움은 필수적입니다.
유사한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저는 대운하와 관련하여 구성된 서울대 교수님들의 연구 네트워크가 대운하뿐만 아니라 다른 종합정책연구도 수행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정부에서도 대형 종합정책 연구에 과감하게 투자해서 out-sourcing의 묘미를 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런 연구는 정부가 아니라 민간의 학자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검토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합니다. 우리 경제력이 세계 11등 정도 된다고 합니다. 충분히 그렇게 할 여력도 있고, 또한 그런 시기도 되었습니다. 그래야 선진국으로 갈 수 있습니다. 날림 식으로, 개발 만능 식으로 대형정책을 추진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고 봅니다. 수출 드라이브 식으로 큰 정책들을 추진하면 그 부작용은 오히려 우리들의 발목을 잡을 것입니다.
새 정부가 서울대 대운하 교수 네트워크에 충분한 연구비를 지급하여 제대로 된 대운하 사업 검토와 대형 재난관리 시스템 검토가 될 수 있도록 해주면 좋겠습니다. 가능성은 0에 가깝겠습니다. 대운하 추진과 관련해서는 이미 그쪽에 자원봉사에 가까운 검토를 해주겠다고 줄 선 사람들이 백 수십 명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중요한, 충분한 연구비가 필요한 사안을 거의 무료로 검토해주겠다는 것을 보면, 역사적 사명감이 있거나, 아니면 자다가도 떡이 생기는 경우라고 보면 되겠죠. 서울대 교수님들에게는 계속 깨어 계셔도 떡이 생기지 않을 테니 당연히 역사적 사명감으로 해석해야겠죠. 서울대 교수님들이 좋은 연구 네트워크를 계속 살리셔서 대운하 검토를 비롯하여 훌륭한 종합정책연구를 더 많이 하실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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