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동네에서 산책하다 세 명이 나란히 얘기를 하면서 저를 향해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이번에 귀국하여 복잡한 거리, 지하철, 상가 등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치킨 게임이 떠올랐습니다.
치킨 게임은 미국의 갱단이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게임으로서 두 플레이어가 자동차를 마주 달려서 담력을 시험하는 게임입니다. 만약 두 플레이어가 모두 양보하지 않으면 두 자동차가 충돌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고, 양쪽 모두 피하면 무승부, 한 쪽이 피하고 다른 쪽이 돌진하면 피한 쪽이 패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게임이죠. 이 게임의 순수전략 균형(Nash equilibrium, 영화 "Beautiful Mind"에 나오는 그 Nash)은 한쪽은 돌진하고 한쪽은 피하는 것입니다.
이 게임을 현실 예측에 적용한다면, 일방이 양보하고 다른 쪽은 승리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끼어들기 예를 보시죠. 접촉 사고라는 최악의 결과는 잘 생기지 않죠. 대부분 한쪽이 양보하는 식으로 게임이 끝납니다. 좌측통행 혹은 우측통행으로 미리 규칙을 정해 놓는 것은 서로 부딪히는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협조 규칙은 지켜질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지켜서 손해볼 것이 별로 없으니까요.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좌측통행하는 자동차를 보는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 그러나 사람이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므로, 과거 버릇이나 습관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이전에 했던 대로 행동하기도 하죠. 이번 보행 규칙 변경이 단기간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겁니다.
의식하든 아니든 우리나라 사람은 치킨 게임에 탁월한 솜씨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예컨대, 좁은 공간에서 서로 꽝하고 부딪힐 것 같이 마주 걷지만 잘 부딪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한쪽이 약간 몸을 틀어서 스쳐 지나가거나 몸이 아예 접촉하지 않고 무사통과가 되죠. 미국에서는 어떨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마주 오는 세 명과 저 사이의 치킨 게임 결과는? 부딪히기 약 5미터 전에 제 승리로 결판이 났습니다. 제가 한국인이죠. 모세 앞에서 홍해 바닷물이 갈라지듯이 길 중간이 훤히 트였고 저는 의기양양하게 그 사이로 통과했죠. ㅋ 우리나라에서 겪은 비슷한 상황에서는 거의 부딪히듯이 통과한 경험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서양 문화가 더 좋다든지 우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서양인이나 미국인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착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미리 조심하는 것은 그들 조상이 오랫동안 부딪힘이 가져다주는 큰 불편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부딪혀서 목숨을 잃은 사례도 제법 나왔겠죠.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부딪혀도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딪히는 순간까지도 별걱정 없이 씩씩하게 마주 걸을 수도 있겠습니다. 특유의 "무대뽀(막무가내)" 정신도 영향을 미칠까요? 즉, "피하려면 네가 피해라!"라는 마음가짐이죠. ㅋ 잘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제 예상으로는 개인주의가 우리나라에서 더 뿌리를 내릴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의 몸이 남과 부딪히는 것을 더 싫어하게 될 것이고, 그 여파로 치킨 게임의 최악 결과인 서로 부딪히는 것을 피하려고 더 조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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