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도 더 된 오래전에 어떤 음악방송에서 해방 이후 걸작 가요를 뽑는 프로그램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최고의 가요로 뽑힌 노래가 장애인 가수 이용복이 부른 "달맞이꽃 (김희갑 작곡)"이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자, 조용필, 패티김이 부른 노래가 아니라서 놀랐고, 제가 평소에 좋아했던 애잔한 노래가 1등이라서 놀랐습니다. 최근 동영상이 있네요.
이용복 씨가 부른 번안곡인 "1943년 3월 4일 생"도 유명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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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진실 _ 4대강 사업의 진실 by 푸른영상 from simock on Vimeo.
대학교 1학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일전에 말씀 드렸던 지리산 종주 도전이었습니다. 경제학과 80학번인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김영산 교수와 친구 한 명과 함께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종주를 해보겠다고 배낭을 짊어지고 구례 화엄사로 갔습니다. 라면을 끓여 먹고 화엄사에서 출발한 것이 큰 착각이었습니다. 화엄사에서 노고단까지 만만하게 봤는데, 그것이 아니더군요. ㅜ.ㅜ 계속 오르막이라서 깔딱고개와 코재를 넘어 노고단에 도착했을 때 세 명 모두 체력이 바닥이 났습니다. 그래서 대충 텐트를 치고 저녁도 간이식으로 겨우 해결한 다음 뻗었는데… 밤에 폭우가 쏟아졌습니다. 텐트 안으로 물이 들어와 도저히 산행을 계속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홍도로 가자! 목포에 도착하니 밤이더군요. 저는 목포가 제법 큰 도시라서 도심지는 번화할 줄 알았는데, 1981년 목포는 전혀 아니더군요. 도심의 한 여인숙에 들어가서 자려고 방을 보니, 돈을 내고 잘 만한 곳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텐트를 치기로 했습니다. ㅋ
저는 수재형은 아니었습니다. 한양대 김 교수가 수재형이었습니다. 슬슬 놀면서 공부해도 전교 1등을 한 번씩 했습니다. ^^ 중학교 2학년 때까지 1등을 유지했는데, 3학년에 올라와서 제가 조금 난조에 빠지고, 다크호스도 등장하여 3학년은 2등으로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추첨을 하니 동성고등학교에 배정되더군요. 울 뻔했습니다. 큰형과 작은형은 경남고, 셋째 형은 부산고, 그러면 저는 부산고로 가면 균형이 잡힌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지 않아서 속상했죠. 어릴 때 마음이 그랬습니다. 평준화가 되었다 해도 이전 명문고에 가고 싶었던 것은 인지상정이었으니까요.
고등학교에서도 범생이로 착실하게 살면서 서울대만 바라봤죠. 3학년 때 약간 주춤했지만 수석으로 졸업하기는 했습니다. 이 선생님께서 하신 수석과는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인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일 때는 몸이 조금 약해서 열공하는 친구들에 비해서 공부하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대신 방학 때를 포함해서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항상 있어서 방에 불을 켜놓고 잘 때가 잦았죠. 뒷집 여학생이 하루는 제가 잘 때까지 공부해보겠다고 결심하고 제 방을 살폈는데, 결국 조명등이 꺼지지 않아서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들리더군요. 저는 불 켜놓고 쿨쿨 자고 있었는데 말이죠. ㅎ
초등학교는 두 군데를 다녔습니다. 2학년 때 이사를 해서 바닷가 학교로 옮겼죠. 제 기억에 1, 2학년 때까지는 여학생 친구를 좋아한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했던 것 같습니다. (당연한가요? ㅋ) 제가 주동하여 친구들과 여학생 집에 쳐들어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남학생은 여학생과, 여학생은 남학생과 짝을 하고 싶으면 손을 들어보라고 하신 사건이 큰 변화를 불러 왔습니다. 눈을 감고 손을 들라고 했으면, 눈을 감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저만 끝까지 눈을 감았고, 저만 손을 들었더군요. 그리고 모두 저를 비웃는 것이었습니다. “아! 좋아도 좋다고 표현하면 안 되는구나!” 이런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초딩, 중딩, 고딩의 무미건조한 범생이 인생이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ㅜ.ㅜ 그 담임 선생님과 친구들은 책임져야 합니다. ㅋ
저는 어릴 때 복숭아 나무 과수원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유치원 때인지 국민학교 1학년 때인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어느 날 스케치북을 들고 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복숭아 밭에 갔던 기억이 아직 납니다. 어머니께서는 예쁜 한복을 입으신 채 점심 도시락을 차리셨고, 아버지는 열심히 복숭아 밭을 메셨습니다. 저는 옆에서 복숭아 나무를 그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