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은 최근 박근혜 위원장을 유신 독재의 폐해와 연결하여 비판하거나 사과를 요구하는 것은 연좌제이며 지나친 정치적 행위라고 주장했다. 김 위원은 연좌제라는 의제를 설정하여 박 위원장을옹호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가 독재자라서 그 딸이 부당하게 공격당하는 것은 억울하다는 것이다. 일리가 있는 어법이다. 부모가 아무리 못나도 자식은 훌륭할 수 있으니까. 박근혜 위원장을 단순히 ‘독재자의 딸’로비판하거나 공격하는 것에 대한 제법 쓸 만한 방어술이다.
이 의제 설정은 유신 독재에 대한 평가나 정치철학을 묻는 매우 적절한 문제 제기를 슬쩍 피해 나갈 수도 있을것이다. 예컨대, “자유민주주의와 민주화를 가혹하게 탄압한 유신 체제에 대한 평가/사과 요청”을 “아버지의 독재에 대한 자식의 사죄 요구”로 슬쩍 비틀어서 연좌제로 받아치는 식이다.
‘독재자의 딸’이나 ‘연좌제’가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그런 것은 정치인들이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서 활용하는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핵심은 최근 모 방송사의 예능 프로그램에서 문재인 이사장이 에둘러서 표현한 적이 있다. 유신 시절 문 이사장이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되어 있었을 때 박 위원장은 청와대에 있었다는 회고이다.여기서 ‘청와대’는 대통령 아버지의 관저라는 의미도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곳에서 박 위원장이 유신 독재의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다. 퍼스트레이디는 단순한 내조만 하는 것이 아니고, 고도의 정치적 의미가 있는 자리임은 자명하다.
독재는 자유민주주의 공적 제1호이다. 박 위원장은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유명 정치인이며,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의 유력 주자이다. 그런 인사가 유신 독재체제에 퍼스트레이디로 적극 협조했다면 국민에게 일단 공식적으로 사과하여 용서를 구하는 것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정치나 공직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풀었어야할 과제였다. 나는 아직 박 위원장이 그렇게 했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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