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 신영기 교수님이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등장한 것이 작년 가을이었습니다. 신 교수님을 환영하는 뜻에서 올린 장난기 있는 글입니다. 신 교수님이 저와 동향이라서 생각해낸 퀴즈입니다. ^^ 2008/10/07)
아래와 같은 허접한 퀴즈를 올리게 되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신 교수님이 혜성같이 게시판에 등장한 것을 축하하는 마음에 만들었습니다. 몇 달밖에 되지 않았지만 게시판 "애송이 선배"로서 신 교수님에게 드리는 환영 퀴즈입니다. 신 교수님, 다음 세 음악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계속해서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
Boney M : Rivers of Babylon
Beautiful Sunday - Daniel Boone
"Hallelujah" from Handel's Messiah, Helmut Rilling
Bach-Collegium Stuttgart
2009년 8월 14일 금요일
[수필] 미국 친구 브랜던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12:41
(2004년 7월 18일 일요일 오후 9:09, 미국 출장 중 작성했습니다.)에이스트로닉스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 글을 읽으실 때는 아마도 월요일 아침일 것으로 생각합니다요. ^^
이번 출장 중에 미국에서 묶은 여관이 Chantilly에 있는 AmeriSuites입니다. Suites는 보통 조그만 부엌이 갖춰져 있거나, 거실 혹은 작업 공간이 별도로 달린 여관을 뜻합니다. 가족 여행 때 많이 이용하죠. 가스레인지는 없고 전자레인지, 작은 냉장고, 싱크대, 찬장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그 지역 호텔을 찾아보니 방값이 상당히 비싸더군요. 그래서 찾고 찾아서 하루에 $78(세금 제외) 정도의 여관을 예약했었습니다. 다른 호텔들은 $250까지 있더군요. 요금을 고려하면, 기대했던 것보다 더 깨끗하고, 작은 책상도 있었고, 아침 식사도 "거하게" 제공하더군요. (와플, 소시지, 빵, 과일, 시리얼, 음료수...)
도착한 그 다음 날 밤, 마음이 갑갑해서 근처에 있는 Bar를 찾았습니다. 바텐더가 오늘 소개할 브랜던 씨입니다. 무슨 맥주를 원하느냐고 브랜던이 물어봐서 "혹, 캐나다 맥주는 있는지요? (대장금 식으로)"라고 되물어봤죠. 그랬더니 몰슨(Molson)이 있다는 반가운 답이 왔습니다. 캐나다를 대표하는 맥주로는 몰슨과 러배츠(Labatt's)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러배츠를 더 좋아하는데, 없는 곳이 많답니다. (미국에서는 미국 맥주를 별로로 취급합니다. 버드와이저가 그런 경우죠. 많은 미국인이 버드는 "별로"라고 생각합니다. 호주 맥주인 Foster는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죠.)
빨간 모자를 쓴 동양인을 친절하게 대하는 브랜던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그래서 브랜던과 서빙을 담당하고 있던 베니사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몰슨을 한 모금씩 마셨습니다. 디지털 카메라를 꺼내서 브랜던에게 한 장 찍어 달라고 부탁했더니 흔쾌히 찍어 주더군요. 나중에는 브랜던의 친구 폴과도 "찰칵"했습니다. 브랜던에게 그 사진들을 받고 싶으냐고 물어봤죠. "Yes." 그래서 브랜던의 전자우편 주소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진들은 보내줘야겠죠? 브랜던의 친절이 고마워서 친구인 폴에게 제가 한 잔 샀습니다. 폴과 브랜던이 너무 고마워 하더군요. 그 다음 날 다시 한번 놀러 오겠다고 브랜던과 약속하고 여관으로 돌아와서 단잠을 잤습니다.
그 다음 날은 상당히 피곤한 날이었습니다. 영어로 계속 떠들었으니 얼마나 제가 힘들었겠습니까? 그래도 전날 한 약속이 생각나서 예의 그 Bar로 향했죠. 작별 인사를 해야 되니까요. 브랜던이 일을 하지 않고 그냥 서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더군요. 다른 바텐더가 몰슨을 가져 오면서 브랜던이 사는 것이라고 얘기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국만리에서 곱슬머리 백인이 사주는 생맥주를 얻어 마시는 "쾌"가 저에게 생긴 것입니다! 너무 피곤해서 오래 있지는 못했습니다. 브랜던이 마시던 음료수를 제가 다시 사주면서 "빅"을 만들고 금방 일어나서 여관으로 돌아왔습니다. 물론 브랜던과 계속 연락하자고 굳게 약속했죠. ^^
마음을 열면 다른 마음이 열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더운 날씨에 습기에 짜증이 날 때도 잦겠지만, 그래도 인생은 살아볼 만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왕 주제넘은 말씀을 마지막에 드렸네요... 월요일 밤이나 화요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안병길 드림
2009년 8월 8일 토요일
[수필] 프랑스어에 대한 추억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12:22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5/26)
(집에서 푹 잘 쉬고 있습니다.^^ 아래에 독일어, 프랑스어 얘기가 나와서 프랑스어와 관련된 기억 하나를 옮겨봅니다.)
캐나다도 미국과 같은 연방제 국가입니다. 크게는 영연방에 속해 있고, 자체적으로도 여러 주가 합쳐서 연방국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서양에 연하고 있는 퀘벡 주는 아직까지도 프랑스 영향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오래 전에 퀘벡 시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는데, 관광 안내원이 퀘벡시 내에 있는 장군들 동상에 대해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주더군요. 영국과 프랑스가 캐나다를 차지하려고 붙었는데, 결국 프랑스가 졌죠. 그런데 패장인 프랑스 장군의 동상이 영국 장군의 동상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퀘벡은 캐나다 연방에서 이질적인 지역입니다. 퀘벡 주는 더 많은 자치권 보장을 연방 정부에 계속해서 요구해왔습니다. 분리주의자들도 있습니다.
퀘벡 주의 간판 대도시인 몬트리얼에 놀러 갔을 때, 대학생 시절에 배웠던 프랑스어를 한번 실습해보고 싶었습니다. 잠깐 휴식차 던킨도너츠에 부모님과 들러서 코코아 세 잔 주문을 과감하게 프랑스어로 해봤습니다.
"트롸 쇼콜라, 실 부 플레! (Trois chocolat, s'il vous plait!)"
못 알아 듣더군요. 종업원에게 몇 번 얘기해봤지만, 허사였습니다. 옆에 있던 손님이 안타까운지 대신 주문해주시더군요. 이렇게요.
"Three chocolates, please!"
그랬더니 종업원이 금방 알아 듣고 주문을 받아서 가더군요. ^^ 부모님 앞에서 제 프랑스어 실력도 한번 보여드리려고 했던 알량함이 무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퀘벡 백화점에서 어머니와 함께 이곳 저곳을 구경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스카프 가격을 한번 물어보라고 저에게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 스카프에는 왜 가격표가 없었던지... 몬트리얼에서 실패담이 떠올라서 이번에는 영어로 물었습니다.
"How much is this?"
종업원의 답: "Cinquante deux. (Fifty two.)"
어렵쇼, 영어를 알아 듣는데 프랑스어로 답했던 것입니다. 저는 알아 듣기는 했는데 슬쩍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죠.
"How much is this?" - "Cinquante deux."
이 기싸움이 다섯 번 정도 반복되었습니다. 지나가던 손님이 통역을 해주시더군요.
"Fifty two!"
그 스카프는 결국 안 샀습니다. ㅎㅎㅎ
저는 프랑스를 방문해본 적은 없습니다. 들리는 말로 프랑스에서는 영어로 얘기하면 못 알아 듣는 척 하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도 있던데, 퀘벡에서 경험을 참조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경의 괜찮은 호텔에 숙박한 적이 있는데, 예상 외로 중국인 종업원들이 영어를 잘 못하더군요. 유학 시절 중국에서 온 학생들은 영어를 잘하는 편이라서 중국 보통 사람들도 영어를 구사해야 하는 이들은 제법 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니더군요. 중국이 올림픽을 앞두고 손님접대 언어 훈련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Edith Piaf - La Vie En Rose - 1954
Edith Piaf - Non, je ne regrette rien (1961)
(집에서 푹 잘 쉬고 있습니다.^^ 아래에 독일어, 프랑스어 얘기가 나와서 프랑스어와 관련된 기억 하나를 옮겨봅니다.)
캐나다도 미국과 같은 연방제 국가입니다. 크게는 영연방에 속해 있고, 자체적으로도 여러 주가 합쳐서 연방국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 대서양에 연하고 있는 퀘벡 주는 아직까지도 프랑스 영향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오래 전에 퀘벡 시를 구경하러 간 적이 있는데, 관광 안내원이 퀘벡시 내에 있는 장군들 동상에 대해서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주더군요. 영국과 프랑스가 캐나다를 차지하려고 붙었는데, 결국 프랑스가 졌죠. 그런데 패장인 프랑스 장군의 동상이 영국 장군의 동상보다 더 크다는 것입니다. 그 만큼 퀘벡은 캐나다 연방에서 이질적인 지역입니다. 퀘벡 주는 더 많은 자치권 보장을 연방 정부에 계속해서 요구해왔습니다. 분리주의자들도 있습니다.
퀘벡 주의 간판 대도시인 몬트리얼에 놀러 갔을 때, 대학생 시절에 배웠던 프랑스어를 한번 실습해보고 싶었습니다. 잠깐 휴식차 던킨도너츠에 부모님과 들러서 코코아 세 잔 주문을 과감하게 프랑스어로 해봤습니다.
"트롸 쇼콜라, 실 부 플레! (Trois chocolat, s'il vous plait!)"
못 알아 듣더군요. 종업원에게 몇 번 얘기해봤지만, 허사였습니다. 옆에 있던 손님이 안타까운지 대신 주문해주시더군요. 이렇게요.
"Three chocolates, please!"
그랬더니 종업원이 금방 알아 듣고 주문을 받아서 가더군요. ^^ 부모님 앞에서 제 프랑스어 실력도 한번 보여드리려고 했던 알량함이 무산되는 순간이었습니다.
퀘벡 백화점에서 어머니와 함께 이곳 저곳을 구경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스카프 가격을 한번 물어보라고 저에게 명을 내리셨습니다. 그 스카프에는 왜 가격표가 없었던지... 몬트리얼에서 실패담이 떠올라서 이번에는 영어로 물었습니다.
"How much is this?"
종업원의 답: "Cinquante deux. (Fifty two.)"
어렵쇼, 영어를 알아 듣는데 프랑스어로 답했던 것입니다. 저는 알아 듣기는 했는데 슬쩍 기분이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다시 물었죠.
"How much is this?" - "Cinquante deux."
이 기싸움이 다섯 번 정도 반복되었습니다. 지나가던 손님이 통역을 해주시더군요.
"Fifty two!"
그 스카프는 결국 안 샀습니다. ㅎㅎㅎ
저는 프랑스를 방문해본 적은 없습니다. 들리는 말로 프랑스에서는 영어로 얘기하면 못 알아 듣는 척 하는 경우도 많다는 얘기도 있던데, 퀘벡에서 경험을 참조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북경의 괜찮은 호텔에 숙박한 적이 있는데, 예상 외로 중국인 종업원들이 영어를 잘 못하더군요. 유학 시절 중국에서 온 학생들은 영어를 잘하는 편이라서 중국 보통 사람들도 영어를 구사해야 하는 이들은 제법 할 것으로 기대했는데 아니더군요. 중국이 올림픽을 앞두고 손님접대 언어 훈련은 잘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Edith Piaf - La Vie En Rose - 1954
Edith Piaf - Non, je ne regrette rien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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