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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13일 화요일

[자유] 교수님 뒷 담화 및 어느 자유주의자의 소통 노력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07)

며칠 전에 OOO님에게 약속한 글을 올립니다. Pacta sunt servanda.(Pacts should be served?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국제법의 제1 원칙이라고 볼 수 있음. @@씨 맞나요?^^)를 하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제 생각에 교수님께서 이번에도 저에게 중책을 맡기신 것은 무슨 배려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전적으로 제 추측입니다만, "안박이 뭔가 할 말이 있는가보다. 에라 잘 됐다, 나는 여행을 떠나니까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돌아와서 봐야지. 오버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 정도야 내가 똘레랑스를 베풀 수 있지."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을까 싶네요.^^ 죄송합니다. 제 마음대로 교수님의 양심의 자유를 추정해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저도 양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예 이 기회에 교수님 뒷 담화까지 감행하는 자유를 만끽하고자 합니다. 제 자유가 방종으로 판정되면 어떤 처벌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 판정은 여러분이 민주주의적으로 해주십시오. 1인 1표입니다. 댓글 중 반 이상이 방종으로 판정내리면, 그 뜻을 존중하고 교수님께서 내리시는 처벌을 받겠습니다. 제 댓글은 당연히 투표에서 제외됩니다.

1. 뒷 담화 전통 수립을 위하여!

쉿, 교수님께서 계시지 않으면 뒷 담화를 하는 전통을 만들어볼까 합니다. 작년에 교수님께서 부재중일 때 "불손"하게도 제가 뒷 담화 이벤트를 열었었죠. 그때 부산 분도 유치원 출신 ***님께서 영예의 대상을 차지했습니다. 유치원을 좋은 데를 나와야 합니다! 부상으로 고급 머스탱 자동차를 한 대 제공했습니다. 2등은? %%씨가 랜드로바를 받은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번 방학 때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랜드로바가 비포장 도로를 달릴 때는 최고입니다. 그런데 연료를 제법 많이 먹는 점이 조금 맘에 걸리기는 합니다.^^ 올해에도 이벤트를 해볼까 했는데 요즘 경기가 좋지 않아서 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습니다. 그 비싼 자동차들을 살 여력이 되지 않는 것이죠. 그래서 저 혼자 교수님 뒷 담화를 하고 끝내려고 합니다.

2. 교수님과의 만남

사실 제가 교수님을 직접 뵌 것은, 제 기억으로는 최대한 네 번입니다. 서울대에 부임해서 첫 번째로 논문 발표를 한 곳이 경제학과 경제연구소 주최 세미나였습니다. 주제는 대통령 선거제도 개선방안이었죠. 결선투표 도입해야 된다고 신나게 떠들었죠. 공공선택 분야입니다. 그 세미나에 들어오셨다면 네 번이고, 아니면 세 번입니다. 두 번은 테니스장에서 뵈었고, 한 번은 회식자리였습니다. 제가 서울대에 부임한 이후에는 테니스를 그렇게 자주 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에 있을 때는 자주 쳤죠. 서울에서는 잡다한 일이 너무 많아서 테니스를 할 여유가 별로 생기지 않더군요. 그래도 가끔 사회대 테니스 모임이 있을 때는 끼어들어서 신세를 지곤 했습니다.

3. 권위주의형 식당 종업원

교수님을 뵌 것을 뚜렷하게 기억하는 것은 1997년 사회대 교수 테니스 대회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소속도 달랐지만, 주최 측에서 사회대 출신이라서 덤으로 붙어도 괜찮다고 하여 참가했습니다. 놀라지 마십시오. 제가 그날 상도 받았습니다! ㅎㅎㅎ 실력이 좋아서 받은 것이 아니고, 2부 리그에 출전했는데 거의 다 상을 받으시더군요. ㅋ

테니스 대회가 끝나고서 저녁 회식을 하러 갔었습니다. 그 자리에 교수님도 계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쟁쟁한 학자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부푼 가슴을 안고 약속장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회식 자리와 별 차이가 없더군요.^^ 고기를 시켰습니다.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안심, 차돌박이, 꽃등심, 이런 식이었던 것 같습니다. 보통은 식당을 찾는 손님들이 어떤 순서대로 고기를 먹을지 결정하는 자유를 갖고 있죠. 그런데 어떤 교수님이 이러저러한 순서대로 고기를 갖다 달라고 하니, 담당 종업원이 그렇게 먹으면 고기맛을 제대로 아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그냥 공손히 손님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정도가 아니라 제법 고집이 있더군요.^^

여러분은 이럴 때 어떻게 하십니까? 그 자리에 있었던 교수님 대부분은 조금 기분이 나쁜 눈치는 보였지만, 별말씀을 하지 않으시더군요. 그런데 제일 막내인 제가 꼭지가 돌아버렸습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교수님들께 결례한 것이더군요. 이 자리를 빌려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기 순서뿐만 아니라, 어느 교수님이 참기름을 갖다 달라고 했는데, 쇠고기는 참기름을 발라 먹으면 제 맛을 알 수 없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정도였습니다. 권위주의형 식당 종업원이었습니다. 미국에서 그렇게 서빙을 하면 어떻게 하는지 아십니까? 종업원에게 직접 얘기하면 서로 기분이 상할 수 있으니 일단 매니저를 불러달라고 요청해서 매니저에게 항의합니다. 그런 경우는 대부분 담당 종업원을 교체해줍니다. 정중하게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요.

저는 화가 나서 미국식으로 하지 않고, 종업원에게 "개인 선호 존중"의 중요성에 대해서 초스피드 강의를 해버렸습니다.^^ 어떤 교수님께서 우스개 말씀을 하시면서 그 일은 봉합되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낯 뜨거운 장면입니다. 그 자리에 교수님이 계셨던 것이 맞았다면 정중하게 사과드립니다. (무슨 뒷 담화가 이럴까요?^^)

4. 문화의 차이

그 일이 벌어졌던 시점을 기준으로, 시간강사를 했던 1994년 봄 학기를 제외한 10년 정도를 저는 미국에서 살다 귀국했었죠. 게다가 로체스터에서 혹독한 자유주의 훈련을 받았고 현지 실습도 장기간 했기 때문에, 1997년에 귀국해서 서울에서 살아보니,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기억하지 못하는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것이 불편할 정도였습니다. 지하철에서 제 몸을 밀치고 나가는 승객님, 싸울 듯한 어투로 정치에 대해서 한 강의를 해주시는 택시기사분(그럴 때는 저 대신 강의를 드릴까 고민을 했죠^^), 불친절한 식당 종업원, 에스컬레이트에서는 양쪽을 모두 차지해서 바쁜데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답답한 상황, 기타 등등 참 불편하더군요.

엄한 집에 시집온 며느리에게 시어머니가 훈계하듯이 "입 다물고 3년" 이런 충고도 들었습니다. 저는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교수라면 영혼이 가장 자유로워야 하는 직업인데, 입을 다물고 있으면 그 영혼은 어쩌라는 것인지 이해가 잘 안되더군요. 그래서 저는 일을 하면서도 입을 별로 다물지 않았습니다. 제가 옳다고 믿은 것은 적절하게 의사표현을 했습니다. 그래 봤자, 일 개 조교수라서 별수는 없었지만요.^^ 그 당시 제가 많이 들었던 충고는 "마, 편하게 살아라!"였습니다.

5. 구조적 폭력의 문제

저는 이런 것들이 권위주의형 문화의 특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유주의에서는 각자의 스타일을 최대한 존중합니다. 남에게 객관적인 피해만 끼치지 않으면 대충 OK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 "피해"라는 것이 근거도 없고 매우 주관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런 다른 이유 없이, 기분 나쁘니까 토요일에는 노란색 옷을 입고 오지 마!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상황을 우리는 제법 마주칠 수 있습니다.

OOO님과 대화 중 그 점을 느꼈습니다. 저야 그 당시에 사회적 약자가 아닌 강자 쪽에 있었던 사람이라서, 그런 얼토당토않은 일을 당하면, 상대방에게 오히려 방종 아니냐고 제대로 항의를 했죠. 그런데 OOO님과 같이 사회적 약자로 간주할 가능성이 큰 상황에서 그런 일을 겪으면... 마음에 병이 날 수 있습니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구조적 폭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정치학에서 구조적 폭력을 많이 다뤘습니다. 인간 소외의 문제가 그것과 직결되어 있죠. 마르크스의 경우, 사람이 생산양식으로 말미암아 일할 맛이 나지 않으면, 구조적 폭력을 당하는 경우이므로 모두 단결하여 갈아엎어버리자고 주장한 것과 같습니다. 요한 갈퉁의 경우, 잘 사는 나라가 못 사는 나라의 인적 물적 자원을 착취한다고 보고, 그것을 구조적 폭력이라고 파악한 것이죠. 지금은 유행이 지났습니다만 종속이론(Dependency Theory)이 그 계통이죠.

6. 인터넷상의 구조적 폭력

저는 우리나라에도 이런 구조적 폭력 문제가 제법 남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우리 인터넷 문화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인터넷에서는 몸과 몸이 직접 부닥치지 않습니다. 글과 미디어 자료, 그리고 기타 무형의 정보전달로 모든 교류가 이뤄집니다. 따라서 언어 문제가 매우 중요합니다. 예컨대, 토론 중에 욕설을 퍼붓는 사람이 있습니다. 욕설의 미학도 있기는 있습니다. 어떤 정책이나 사안에 대해서 시원하게 욕설을 해대면 공감을 얻기도 하죠. 그러나 저는 그것마저도 별로 공감하지 않습니다. 제 선호가 그렇게 형성되어 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같은 공간에 있는 다른 네티즌을 향해서 욕설을 사용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일정 수를 넘어서면 구조적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저같이 욕설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런 욕설이 가해졌다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인신공격도 있죠.

최근에 이외수 씨가 공권력까지 동원해서 자신을 공격한 네티즌을 혼을 내겠다고 했는데, 만약 그 공격 내용이 사실이라면 저는 찬성입니다. 이것을 두고, 이외수 씨도 입이 험했다, 그 정도 똘레랑스도 없느냐, 그렇게 되면 국가가 자유 공간에 개입하는 것이라서 바람직하지 않다, 기타 등등 별의별 이유를 갖다대서 이외수씨를 말리거나 나무라기도 하지만, 사안의 핵심은 폭력의 문제입니다. 만약 이외수 씨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다면, 그 사람이 자구책을 행사하면 됩니다.

이렇게 자유주의는 각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려는 상호 견제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바람직하지, "폭력"을 용인하는 것은 별로입니다. 언어 폭력에 대해서 관용을 베푸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관용입니다. 이런 때에는 불관용이 더 맞는다고 생각해요. 국가와 국민, 혹은 시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유주의에서는 억울하게 당하지 않을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욕설을 들어서 언어 폭력을 당했다는 객관적 사실을 입증할 수만 있으면, 헌법의 기본권을 방어할 자유가 있습니다. 인권이 침해된 것으로 간주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가 무서운 것입니다. 되받아칠 때는 더 심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되받아 치는 쪽은 뚜렷한 명분이 있거든요. 그때는 똘레랑스의 수위 조절은 완전히 정당방위 자구책을 행사하는 쪽에 있습니다. 그 자유를 비난하는 자유도 있지만, 근거가 충분해야 되겠죠. 그렇지 않으면 권위주의형 소통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예컨대,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다, 즉, 욕설이 문화였다고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욕설을 해도 된다고 투표를 했겠습니까, 모든 사람이 욕설에 대해서 같은 선호를 하고 있겠습니까. 이런 경우는 자신이 생각하는 문화의 특성이라는 가상 설정에 도덕적 판단을 환원시키는 권위주의적 사고방식입니다.

욕설은 나쁘다는 것이 사회 통념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그것도 존중해야죠. 특정 사이버 공간에 욕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고 해서 전체를 그런 "욕설 공동체"로 몰고 가는 것은 일종의 집체주의적(populism) 사고방식입니다. 그것을 빌미로 욕설을 마음껏 쓰는 사람을 정치학에서는 권위주의자, 심한 경우에는 독재자라고 부릅니다.

7. 최근의 제 경험

저도 최근에 이외수 씨와 비슷한 경험을 했습니다. 제 경우는 이외수 씨 것보다 더합니다. 이외수 씨는 일종의 공인으로 볼 수 있지만, 저는 그 사이버 공간에서 필명만 존재했거든요. 저에 대한 나머지 정보는 사생활에 해당되는 것이었죠. 서로 평등한 상태였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온갖 자구책을 다 생각해봤고, 힘들게 실행에 옮기던 중에... 2009년 6월 28일 14시 33분(한국 시각)에 제 인생에 큰 변화가 옵니다. 이 교수님 때문에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래에 증거도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유주의가가 되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야. 자유와 권리가 조금이라도 침해된다면 목숨을 걸고 싸울 용기를 갖고 있어야 해. 자신의 자유와 권리뿐 아니라 남의 자유와 권리까지도."
저는 교수님께 이 뒷 담화로 제 인생을 바꾸신 책임?을 여쭙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교수님의 말씀을 읽고 용기를 내서 힘껏 노력하여 문제가 잘 해결되었습니다. 교수님, 매우 고맙습니다.

8. 다시 생각해본 "사회개선의 조그만 성냥불"

아울러서 제가 오랫동안 갖고 있었던 문제의식의 미흡한 점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가 찾아왔습니다. 이것도 교수님 말씀 때문입니다. 책임?지셔야 합니다.^^

제 제자들에게 오래전에 제안한 사회개선 운동이 하나 있습니다. 이름하여 "조그만 성냥불" 운동입니다.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를 바탕으로 장기적으로 계산하면, 착하고 바르게 사는 것이 자신에게 도움이 되므로 그렇게 살겠다고 결심하는 운동입니다. 도덕재무장 운동이 아니고, 제대로 된 건전한 이기주의자 되기 운동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제 제자들로부터도 큰 호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게임이론을 가르치면서 용의자의 딜레마 반복게임에 따르는 상황일 때, 상호배신을 상호협력으로 바꾸는 유력한 방법으로 Tit-for-Tat이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려던 것이 원래 취지였으니까요. 그래도 그 개인주의 운동이 더 알려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같은 내용으로 신문에 칼럼을 적기도 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성냥불 운동이 무슨 문제가 있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천학이라서 푸코가 본질과 현상에 대해서 무슨 얘기를 했는지 정확하게는 이해를 못 하겠습니다만, 제가 아무리 본질을 얘기해도 받아들이는 쪽에서 현상으로 해석하면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 제 책임도 분명히 있는 것이죠. "착하고 바르게 살기"가 이기주의, 개인주의라고요? 잘 믿기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따라서 일단 구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다음에 성냥불 운동은 사회지도층을 향하는 외침입니다. 엘리트들이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 대해서 각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거든요. 그런데 힘이 있는 사람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도 않고,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현재 잘사는데, 복잡하게 자신의 마음을 바꿉니까. 자유주의 세상인데요. 결국, 성냥불 운동이 자유주의에 입각한 운동이지만, 그 자유주의 때문에 공감대를 형성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는 중요한 사실을 제가 발견한 것입니다.

9. 자유민주주의 제대로 알기

짙은 구름 사이에서 한 줄기 빛이 내리는 것을 본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그 빛의 힘으로 엔돌핀이 돌아서 많은 말들을 제가 쏟아 놓았습니다. 제 글을 격려해주신 분들께 대단히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모두 교수님 덕분입니다. 이번에는 착하고 바르게 살기가 아니고,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를 시도해볼까 합니다. 대상도 사회지도층이 아니고,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해볼까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제가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더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열공을 한 다음에 적당한 시기가 되면 제 생각을 체계적으로 펼쳐 놓겠습니다. 물론 공부 중간에도 인터넷을 통해서 의견교환을 하겠습니다. 모두 지켜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교수님께 책임?을 여쭙겠습니다. 저에게 이런 보람찬 길을 보여주신 교수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면서, 이 행복한 사태를 어떻게 책임?지실 것인지 무척 궁금합니다. 이 우문에 대한 교수님의 현답을 학수고대합니다.^^

여러분, 제 뒷 담화가 방종입니까? 투표 부탁드립니다.^^
될 수 있으면 자유 쪽으로 해주시면 안될까요? 벌 받는 것, 싫거든요. ㅋ

2009년 10월 7일 수요일

[자유] 마키아벨리와 링컨에 대한 평가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07/04, 원 제목: 링컨의 정치적 조작: 말의 향연 (2)]

(1) 어릴 때 읽었던 링컨 전기

링컨이라고 하면, 일단 저는 어릴 때 김동길 씨가 쓴 링컨 전기가 생각납니다. 서울에서 대학생 큰 형님(저와 10살 차이)이 방학 때 본가로 돌아오시면서, “길아, 자 봐라. 링컨 대통령 이야기다. 읽어봐라. 훌륭한 사람이다.” 하셔서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그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습니다. 노예해방을 성취한 훌륭한 대통령으로 칭송해놨던 이미지만 흐릿하게 남아 있습니다. 요즘 그 저자께서는 제가 옛날에 읽었던 링컨 대통령 전기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언변을 보여주고 계시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그분은 자유주의자가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이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반공주의를 자유주의로 등치 하면 반응이 이럴 수 있습니다.), 특정인을 이 세상에 존재하지 말라는 충고를 했다는데, 이거 참. 무슨 신념이 그렇게 강하신지... 자유주의자는 극단적인 경우(예컨대,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는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사람에 대해서도 그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 편입니다.

절대적 선악의 구분도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못 됐다고 평가할 수는 있겠죠. 내가 존재할 자유는 있고, 남이 존재할 자유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반화시키기에는 논리적으로 무리가 있죠. 내가 있으면 다른 사람도 당연히 있어야 되는 것이 논리적으로 맞습니다. 물론 권위주의 논리는 다르죠. 권위를 가진 쪽이 없는 쪽을 압박하는 것이니까, 심한 경우에는 너 없어져!라고 할 수도 있겠죠. 실제로 지난 권위주의 정권 때 사라진 분들이 있지 않습니까? 삼가 명복을 빕니다. 또한, 생각의 자유는 그 자체 내에서는 신성불가침이기 때문에 자유주의에서는 남이 건드리지 못합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A를 악이라고 해도, 남은 최후의 한 명은 A를 선이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애로우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에서 “Universal Domain”: 어떤 선호도 허용된다.)

여기서 지적 상대주의가 도출됩니다. 그렇습니다. 자유주의는 지적 상대주의를 취합니다. 무엇인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은 자유주의자가 아니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종교가 아닌 세상에서 말입니다. 따라서 링컨 전기를 쓴 그분을 자유주의자로 평가하기는 조금 그렇죠. 아이러니입니다. 그런 분이 자유주의자 링컨 전기를 썼으니까요. 뭐, 그런 자유도 있습니다.^^

(2) 링컨에 대한 거시적, 미시적 평가

경제학을 미시와 거시로 나누는 것처럼, 링컨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나눠보면, 거시적으로는 우리가 상식으로 아는 그런 훌륭한 대통령, 큰 정치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나라가 쪼개질 수 있는 위기에서 전쟁도 잘 치렀고, 그 이후 봉합 혹은 통합(이런 경우가 통합입니다.)도 잘 마무리 지었으니까요.

그러나 링컨이 우리가 그냥 귀로 들었던 것 만큼 최고 도덕적 노예해방론자는 아니었습니다. 그 당시 노예해방론이 크게 두 부류로 나뉘는데(제가 나눈 것입니다. 제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저는 노예해방 전문가는 아닙니다.), 더 해방하자는 쪽과 해방은 하되 백인과의 차별은 이전대로 존속시키자는 쪽이 있었습니다. 전자를 “노예제 철폐론자(Abolitionist)”라고 하고, 후자는 대충 부르십시오.^^ 링컨파로 부르셔도 좋습니다. 뭐, 세세한 역사지식까지 우리가 알 필요가 있겠습니까. 큰 줄거리만 맞으면 되죠.^^ 예컨대, 링컨은 명시적으로 흑백 결혼을 반대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는 링컨 노예해방의 도덕성은 부풀려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링컨의 정치적 행보를 미시적으로 살펴보면 우리가 아는 그런 도덕군자와는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저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정치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정치인을 도덕으로 평가하는 것은 영 궁합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3) 마키아벨리(Nicolo Machiavelli): 도덕과 정치의 분리

실제로 정치와 도덕은 마키아벨리 이후로 딱 구분해버립니다. 마키아벨리를 근대 정치사상의 시조로 부르기도 하는 것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마키아벨리를 이해하려면 그 당시 이탈리아의 정치군사적 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시대였습니다. 여러 소국으로 갈가리 찢겨 있었죠. 따라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언제 쥐도 새도 모르게 국가 전체가 없어질지도 모르는 그런 살벌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머리 좋은 마키아벨리는 양다리를 걸치게 됩니다. 어떤 다리냐고요? 한쪽은 군주 쪽에 걸치고, 다른 쪽은 공화국 쪽에 걸칩니다. 매우 안전한 처세술이죠.^^ 소국들이 그렇게 많으니 종류도 많을 것 아닙니까? 그 국가들을 크게 분류해보니 군주국 아니면 공화국이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책을 양쪽으로 써서 군주국에는 군주론을 갖다 바치고, 공화국에는 공화국론을 갖다 바치는 아주 용이 주도한 머리 돌림을 보여줍니다. 마키아벨리를 전문적으로 연구한 학자들의 분석으로는 마키아벨리는 오히려 공화국을 더 선호했다고 합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군주론도 적었다고 볼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죠.

기회가 왔습니다. 메디치가에서 “장자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심의 미소를 짓고 그 유명한 군주론을 쓱 내밉니다. 군주론의 핵심은 "권모술수"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마키아벨리라고 하면 자동으로 권모술수를 떠올리는데, 마키아벨리로서는 많이 억울할 것입니다. 전형적인 부분 발췌 신공이 마키아벨리에게도 적용된 것입니다. 전체 맥락은 차치하고 극히 일정 부분의 표현을 따서 자신에게 덮어씌웠으니 어찌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정치학계에서는 마키아벨리는 마키아벨리주의자가 아니라는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키아벨리가 군주론에서 주장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국가가 망하면 군주고 백성이고 나발이고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안보론입니다. 더구나 그 이야기는 세습이 안정된 군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고, 세습이 아직 확고하게 자리를 잡지 못한 신생 군주국에 대한 보신책이었습니다. 즉, 백성에게 조금 세게 대하더라도, 나약하여 남의 나라에 잡아먹히는 그런 경우보다는 훨씬 낫다는 이야기입니다. 맞는 말이죠. 전쟁에 져서 많은 사람이 죽어나가면, 그 전에 군주가 백성을 아무리 사랑했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정치와 도덕이 구분되기 시작합니다. 도덕은 도덕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따로 분리해서 평가하는 것이 맞다!라는 근대적 주장이 도출되는 것이죠.

그렇다면 링컨은 근대 이후의 정치가이니 당연히 도덕적 잣대를 그의 정치적 행보에 갖다대면 안될 것입니다. 여러분, 정치인이 자신은 착합니다, 좋은 사람입니다, 기타 등등을 공적 자리에서 말하면 믿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것은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배경음악으로 틀어 놓고, 피카소 게르니카 좋지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정치인은 정치적 소양이나 이전에 무엇을 이루었는지를 보고 엄하게 다뤄야 합니다. 왜냐하면, 정치가 공금을 만지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국민이 세금을 거둬서 줍니다. 공금이죠. 그것을 권위라는 무형의 칼로 이렇게 나눠주고, 저렇게 나눠주는 것이 정치입니다. 따라서 국민이 눈을 싯(!)퍼렇게 뜨고 감시를 잘 하지 않으면, 언제 “in 정치인 포켓”이 될지 모릅니다. 조심해야 됩니다.

아, 이야기가 또 이렇게 되었네요. 휴~ 링컨 한번 만나기 너무 어렵네요. 하기야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니 배알하기가 쉽겠습니까. 우리가 참아야죠. 내일 계속 이야기합시다. 미안합니다~ ㅋㅋㅋ

후기 1. 제가 인터넷에 찾아보니 라이커 교수님의 그 책이 디지털 자료로 있군요. 관심 있으신 분은 예습하셔도 좋고요. 몇 페이지 안됩니다.^^ http://tinyurl.com/riker-ahn

후기 2. “관습헌법” 좀 가르쳐주세요. 특히 법 쪽에 계신 분들~ 부탁해요. //

2009년 8월 8일 토요일

[자유] 약자는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4)

주말이군요. 사람이 머리가 별로 좋지 않으면 고생한다는 말이 있는데, 제가 이번에 그 말에 맞아떨어지는 글 적기를 했습니다. 어제 올린 이 시리즈 세 번째 글을 작성할 때는 캘리포니아 시간으로 목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제 블로그는 캘리포니아 시간 기준이 아니고, 우리나라 시간 기준이거든요. ^^ 그래서 금요일 새벽에 글이 올라간 것입니다. 하루 지났으니 오늘은 토요일이죠. ㅜ.ㅜ 주말에는 가벼운 말씀을 드리려고 했는데...

머리 굴리기를 했습니다. 어떻게 교묘하게 빠져나갈 길이 없을까... ㅎㅎㅎ 있었습니다. 어제 글 끝에 "가정" 이야기를 했죠. ㅋ 주말이니까, 가볍게 가정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렇게 빠져나옵니다. 제가 영악하다고요? 에이, 너무 그렇게 빡빡하게 하시면,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자주 하신, "너무 깨끗한 물에는 물고기가 많이 살지 않는다!"라는 말씀으로 다시 슬쩍 비켜나겠습니다. ^^

소재는 가벼운 가정이지만, 주제는 그렇게 가볍지는 않습니다. 저는 가족은 공동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큰 사회집단에 공동체라는 말을 적용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시는 분들이 제법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면 이해관계가 서로 부딪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룻쏘의 공동체 같은 개념이 현실화되기 어렵다는 견해죠. 그런데 가족은 일단 혈연으로 끈끈하게 연결된 가까운 사이이고, 좁게 잡으면, 아빠, 엄마, 형제자매로 단출하여서, 모든 구성원이 공동으로 바라는 무엇을 그려낼 수도 있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가족마저 가끔 공동체가 아니고 이익집단의 속성을 드러낼 때가 있습니다. 예컨대, 돈 문제가 걸리면 그렇습니다. 어떤 가족 결정을 해서 어떤 구성원은 힘들어지는데, 다른 가족은 편해질 때도 공동체로 똘똘 뭉치는 것이 아니고, 다투거나 시기질투할 수 있죠. 가장 작은 사회집단인 가족이 이런데, 큰 정당이 무슨 "공동체"라고, 우리 도덕/윤리 교과서 내용과 비슷한 정치적 구호를 외치면, 저로서는 우습다고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관심 있는 분은 주요 정당의 정강이나 강령을 훑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정당들이 있습니다.

가장 간단한 가족 구성부터 살펴볼까요? 남편과 아내가 있습니다. 남편은 권위주의자이고, 아내는 자유주의자라고 합시다.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요? 집에서 아내는 집안일을 열심히 하고, 남편은 폼 잡는 모습이 저는 떠오릅니다.

겉으로 별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죠. 특히, 남편이 돈을 엄청 잘 벌면, 자유주의자 아내의 마음은 불편해도, 생활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입니다. 마음! 이것, 참 아리송한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 하여서, 남편이 무슨 말을 하든, 어떻게 행동하든, 아내가 마음 속에서 남편은 자유주의자!라고 생각하면 모두 해결된다고도 볼 수 있겠죠. 그러나 그런 해탈 경지에 이른 자유주의자는 별로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기적 개인주의자이니까요.

이 사례가 전형적인 약자 자유주의자와 강자 권위주의자가 만난 모습입니다. 여자가 약자인 것은 우리 헌법에 나오므로 별 이의가 없을 것 같은데... ㅎㅎㅎ 이 글을 읽는 어떤 남편분은 즉각 반론을 제기하시는군요. 내 아내는 그렇지 않다! 내 아내가 얼마나 힘도 세고, 말도 잘하는지 모르시는군요. 기타 등등 이유를 대면서 저를 비판하십니다. ㅜ.ㅜ 제가 잘못했습니다. 그런 예는 제외하겠습니다. ^^ 일반적으로 여자가 약자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남편은 강자 권위주의자입니다. 자유주의자는 권위주의자를 싫어합니다. 개념 정의상 그렇지 않습니까? 따라서 합리적 자유주의자는 그런 불편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한 머리 굴리기를 일단 해야 합니다.

여러 다양한 상황이 가능한데, 권위주의자에게 "너, 권위주의자!"라고 대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공적인 관계에서는 괜찮은 작전이지만, 사적 관계에서는 부작용이 심하게 생길 수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제대로 된 전략입니다. 맞대응 전략(Tit-for-Tat Strategy)이라고 있습니다. 제 책 제7장에서 제법 자세하게 소개하는 전략인데,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잘해주고, 그다음부터는 남편이 잘해주면 잘해주고, 잘해주지 않으면 잘해주지 않는 것입니다. ㅋㅋㅋ 남편이 계속 잘해주지 않다, 잘해주면 다시 잘해주는 것도 포함합니다.

맞대응 전략의 탁월한 효능은 이미 연구, 분석되어서 학계 정설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미시간 대학(늑대 Wolverine 학교!)의 액셀로드(Axelrod) 교수님이 잘 설명해주셨습니다. 간단하고, 나이스하고, 적절히 응징하고, 관용도 보여주는, 전략적으로 안정적인 좋은 방안이라는 것이죠. 무엇을 위하여? 이기주의자 사이에 상호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훌륭한 전략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전략을 인터넷 생활에서 항상 사용합니다. 인터넷에 이기주의자들이 득실거리죠. ^^ 제가 편하려고, 제 행복 추구를 위해서 그 전략을 활용합니다. 액셀로드 교수님이 틀렸다는 것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저는 부부 사이에 분업할 수 있고, 필요한 경우에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전업 주부라면, 대부분 가사일을 맡는 것이 적절하다고 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이 마초 행세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남편이 자발적으로 요리, 설거지, 청소 등을 거들면 좋죠. 또한, 아이가 있으면, 아내를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육아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맞벌이에 아이가 없는 자유주의자 아내와 권위주의자 남편을 생각해보시죠. 이런 때 자유주의자 아내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맞대응 전략을 적용할 수 있을까요? 이론을 현실에 곧바로 적용하면 부작용이 날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배신 전략을 썼으므로, 나는 응징에 들어간다! 각오해라!" 부부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가면... 부부 싸움이 납니다. 서로 불편해집니다.

응용의 미학을 발휘해야 합니다. 남편이 청소로 깨끗해진 공부방을 무척 좋아하면, 별말 없이 청소를 슬쩍 건너뛰는 겁니다. ㅋ 아니면, 남편이 쇠고기를 무척 좋아하는데, 장을 볼 때 닭고기 위주로 장을 보는 것이죠. 적절한 설명도 해줘야 합니다. "닭고기가 쇠고기보다 몸에 덜 해롭다고 하죠?" 기타 등등... 싸우지 말고,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져서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심할 때는 절절한 심정을 담은 편지를 보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아야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협력해오지 않으면... 알아서들 하시기 바랍니다. ㅜ.ㅜ

제가 각 맞벌이 남편과 아내가 어떤 선호를 가졌는지, 구체적인 타입은 무엇인지, 문제가 되는 쟁점이 무엇인지, 일일이 따져서 전략을 보여 드리지는 못하니 독자께서 양해하시기 바랍니다. 원리는 나름대로 설명했으니, 각자 머리를 잘 굴리시면 되겠습니다. ^^ 제 머리를 빌리고 싶으신 분은 연락해주세요. 공짜 점심은 없으니, 적절한 보상을 제공하시기로 합의하시면 빌려 드립니다. 그런데 큰 기대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제 머리 성능이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ㅋ

머리 굴리기에 더해서 남의 힘을 빌려올 수 있으면 빌려오는 것이 좋습니다. 아내와 남편이 외딴섬에 사는 것은 아닐 테니 연결된 분들이 반드시 있죠. 대표적인 예가 아내의 부모, 남편의 부모가 계십니다. 그런 분 중에 자유주의자가 있으면, 당근 연합 전선을 펴서 권위주의자에게 세력을 과시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만약, 모두 권위주의자이거나, 귀차니스트이거나, 점자니스트라면, 그분들 중 가장 자유주의에 가깝거나 아내의 뜻에 동감해줄 수 있는 분부터 자유주의 진영으로 모셔야 합니다.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힘을 모으는 연합에서 눈사람 만들기를 참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처음에는 작게 시작하지만, 나중에는 크게 만드는 것이죠. 꼬마 눈사람 노래를 들으시거나, 제가 올려 드리는 "똥퍼 내줘(표현 죄송! Tombe la Neige, 똥버 라 네줘, 내리네 눈이)"를 보고 들으시면서 편안한 주말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

Tombe la neige - SALVATORE ADAMO

사진 출처: http://cfs7.tistory.com/image/29/tistory/2008/08/14/11/36/48a39a22d52d7

2009년 8월 7일 금요일

[자유] 약자는 강자를 어떻게 이길 수 있나요? (3)

권위주의자와 자유주의자가 맞짱 토론을 하면 누가 이길까요? 권위주의자가 이길 가능성이 큽니다. 왜 그럴까요? 권위주의자는 스스로 권위가 있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아는 지식이 절대적 진리에 가깝다고 믿는 속성이 있습니다. 반면에 자유주의자는 지적 상대주의를 바탕에 깔고 있어서 상대방이 옳을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죠. 권위주의자는 자신이 믿는 바를 계속 주장하고, 자유주의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지칩니다. 자유주의자의 최후 방어선은, 상대방도 옳을 수 있고, 자신도 옳을 수 있다는 정도가 될 것입니다.

어떤 사회에서 자유주의자가 혼자서 고군분투하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면, 맞짱 토론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심지어 독불장군이라는 공격을 받을 수 있죠. 사실은 권위주의자가 독불장군인데, 거꾸로 누명을 쓸 수도 있습니다. 권위주의자들의 집단 공격으로 왕따가 되는 현상이죠. 자유주의자들은 서로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분열되면 좋은 먹잇감이 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약자일 때 특히 조심해야 합니다.

권위주의자가 얼마나 골치 아픈 존재냐면,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끝장 토론을 관찰하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입한 한 인터넷 동호회에 매우 특이한 토론자가 있습니다. 제삼자로서 관찰해보면, 거의 일방적으로 반대편 의견이 우세한데, 끝까지 자신이 맞다고 주장합니다. 그것이 가능합니다. 의제설정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A라는 토론 범위가 있다고 하죠. 제법 긴 시간 의견교환을 하여 중지가 모였다고 합시다. 그러면 그 토론자는 A'라는 쟁점으로 옮깁니다. 그런 의제 전환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고 말려들면, 토론이 끝나지 않고 계속 진행됩니다. 여러 낮밤이 지나도 계속 할 수 있죠. ^^ 인간사나 인간관계에 연결된 변수가 매우 많아서 얼마든지 가능한 정치적 조작입니다.

이럴 때 민주주의 친구가 도울 수 있습니다. 의견교환이 어느 정도 이뤄진 다음, 1+1=2와 같은 정답을 찾을 수 없으므로 투표하자!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자유민주주의 해법입니다. 그런데 권위주의자에게는 이것도 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재미있죠? 권위주의자는 자신이 권위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자신을 제외한 모든 토론자가 반대의견을 내놓아도, 자신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죠. 이런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독재자가 됩니다.

자유주의에서는 독재자가 될 가능성이 짙은 사람의 존재도 인정합니다. 생각은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생각 자유는 절대적이죠. 사람 머리 속에서 벌어지는 것은 자유주의에서는 건드리지 않습니다. 권위주의에서는 건드립니다. 북한의 주체사상이 그런 것이고, 지난 시절 우리의 국민교육헌장도 비슷한 속성을 갖고 있죠.

생각 자유는 절대적이지만, 표현의 자유는 상대적입니다. 헌법에서도 이 점을 명확하게 적어놓았습니다. 적극적으로 말할 자유와 소극적으로 듣지 않을 자유가 부딪힐 수 있어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유주의는 표현 자유를 최대한 허용하기 때문에, 그 제한은 매우 조심스럽게 해야 합니다.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로 제한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앞의 막무가내 토론자의 예를 대입해봅시다. 충분한 의견교환을 한 다음, 토론 주제에 대한 결론에 대부분 토론자가 동의한다면, 그것을 다수의견으로 발표하고 토론을 끝내야 합니다. 그 막무가내 토론자의 주장은 소수의견으로 남는 것이죠. 만약 막무가내 토론자가 의제 전환을 통해서 토론을 계속 끌고 가려고 하면 상대를 해주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점잖게 한마디만 하면 되죠.
"당신의 의견을 소수의견으로 존중합니다. 절대적으로 틀렸다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적으로 우리 의견이 더 적절한 것이 이번 토론의 결론입니다."

이렇게 민주적으로 잘 봉합하려면, 권위주의자보다 자유주의자 숫자가 더 많아야 합니다.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를 뜻하니까요. 여기서도 힘을 합칠 필요가 있다는 것이 명확하게 드러나죠. 그런데 자유주의자들은 자유분방하기 때문에 서로 의견이 어긋날 때가 잦습니다. 이때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사회 전체가 자유주의로 흘러 넘치면 갑론을박하면서 난형난제하는 재미를 만끽하면 됩니다. 그러나 권위주의자가 여기저기서 출몰하는 상황이면, 자유주의자들은 일단 그 재미를 접어두고 전열을 정비해야 합니다. 힘을 합치지 않으면 권위주의자들의 폭압에 심하게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누가 더 자유주의적인가를 잘 따져야 합니다.

이 글 시리즈 2편에서 두 교수님에게 감히 당부한 말씀이 바로 그것입니다. 권위주의라는 적 앞에서 분열되면 곤란하다는 것이죠. 특히, 그 분열이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견해차면 더 그렇습니다.

내일은 어떻게 머리를 굴려서, 자유주의 세력을 확장할 것인지에 대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정치뿐만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에서도 이 문제의식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권위주의자들이 다수인 가정이나 직장에서 자유주의자가 어떻게 전략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바람직한지 생각해볼 만합니다. 자유주의자 여러분, 힘내십시오. 서로 격려해서 엔돌핀이 돌도록 노력합시다.

그림 출처: http://images.chron.com/blogs/nickanderson/archives/and0820blog.jpg
권위주의 정부를 풍자했습니다.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이 재미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