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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17일 목요일

[자유] 토론 사례: 과학이란? (하)

* (사진은 맞대응 전략을 심층적으로 분석한 Robert Axelrod 교수의 책 표지입니다.)
이 시리즈 글을 작성하면서 제가 걱정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쿤과 포퍼를 언급한 회원이 제가 맞대응으로 채택한 일부 강한 표현에 대해서 더 강한 맞대응을 해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저는 인터넷 토론에서 맞대응(Tit-fot-Tat) 전략을 주로 씁니다. 객관적 근거 없이 저를 과학에 무지한 사람으로 몰아부친 회원에게 보여준 반응을 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쿤과 포퍼를 언급한 회원에 대해서 조금 강한 표현을 쓴 것은 그 회원이 문제제기를 바람직하지 않은 방식으로 했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쿤과 포퍼를 적절하게 언급했다면 상황은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처음에 넘겨 짚기한 것도 그렇고, 중간에 오히려 제 방식이 토론을 소모적으로 만들 수 있다고 태클을 건 것도 저로서는 맞대응 대상입니다.

다행히 우려했던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반론 기회를 주기 위해서 이 글 시리즈를 제 블로그에 올린다고 인터넷 동호회에 안내했습니다. 그 회원이 블로그에 와서 관련 글을 읽고 동호회 게시판에 코멘트를 했는데, 더 강한 맞대응은 없었습니다. 쓸데없는 감정 겨루기가 되지 않도록 배려한 그 회원에게 감사합니다.

반면에 제삼자인 어떤 회원이 저에게 태클을 걸었습니다. 허락받지 않고 글을 펀 것은 아니냐, 그리고 당사자가 기분 나쁘게 여길 표현이 있던데 상대방을 존중하는 기본 매너를 지키는 것이 좋겠다는 태클이었습니다. 제 응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글을 퍼간 것이 아니고, 제 아마추어적 연구를 위해서 부분 인용을 했습니다. 다시 자세하게 살펴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 학문의 자유도 존중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로서는 기본 매너는 충분히 지켰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맞대응을 하는 경우에는 조금 강한 표현을 썼습니다. 상대방이 세게 나오는데 제가 유하게 나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평소 소신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지적하시면 제가 어떤 근거와 의도에서 그런 표현을 사용했는지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
토론에서 저에게 먼저 부적절한 태클을 걸지 않으면 상대방에게 가능한 한 강한 표현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저는 노력하는 편입니다. 그것도 맞대응 전략의 속성입니다. 저에게 태클을 건 제삼자 회원은 제 기분이 먼저 나빠졌을 가능성도 함께 고려해주면 좋겠습니다.

토론 중 의제 설정은 여러 번 할 수 있습니다. 또한, 토론에 참여한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어느 쪽 의제 설정이 더 효과를 발휘하는지에 따라서 토론의 내용이 확연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쿤과 포퍼를 언급한 회원도 일종의 의제 설정을 시도한 것이라고 저는 봅니다. 제가 설정한 의제에 따라와야 하는 법은 없죠. 제 의도는 이공계 분들이 자연과학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이론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아닌지를 들어보는 것이었지 복잡한 과학철학적 논쟁을 하자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쿤과 포퍼로 인하여 토론이 과도하게 열리는 것을 나름대로 정당하게 막으려고 노력했던 것입니다. 누구 의제 설정이 옳고 그른지는 알 수 없다고 봅니다. 각자 옳다고 생각하겠죠.

천동설이나 플로지스톤 이론이 폐기된 혹은 반증된?(falsified?) 과학 이론이라는 합의가 있더라도 제가 처음에 던진 질문의 궁극적인 답이 당연히 될 수는 없죠. 그러나 보조자료는 됩니다. 제가 소개하지 않았지만 토론 중에 "절대적 진리"에 대한 여러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 의견들을 들었고, 제가 추구했던 보조자료도 구한 셈이니 저로서는 그 정도면 만족합니다. 다음 의견이 이번 토론을 일리 있게 요약한 설명이라고 생각합니다.

"... 과학자들 누구도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과학자들이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 역시 상당한 오해의 소지가 있으며, 따져 볼 것도 없이 과학자들 중에 스스로 절대적 진리를 추구한다고 하는 이도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
**
토론 중에 상대방이 잘못 알고 있다는 확신이 들어도, 될수록 상대방에게 "네가 틀렸다."라는 식으로 직접 지적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자신이 틀렸을 가능성을 항상 열어놓는 것이 좋죠. 인간은 신은 아닙니다. 예컨대 행태경제학을 언급한 제 글에 대해서 어떤 회원은 행태주의 이론은 이미 유행이 지나간 것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다른 회원은 다음과 같이 그 의견에 대해서 평했습니다.
"... 말씀하신 '행태주의 이론'이 '행태경제학(behavioral econ)'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래전에 한물갔다는 말로 봐서는 행태경제학과는 관련이 없어 보이네요."
상대방을 존중하는, 바람직한 자유주의적 자세입니다. 어투도 단정적이지 않습니다. 앞에서 예로 든, "과학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저에게 강변한 회원의 태도와는 판이합니다. 제가 올린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학에서 행태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심리학의 행동주의와 구분하기 위한 측면이 큽니다. 경제학에서 행태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저는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과문하기는 합니다. 행동경제학 혹은 행태경제학이라고 하더군요. 정치학 행태주의와 행태경제학이 연관은 있지만, 내용은 상당히 다른 것으로 저도 알고 있습니다."
제 의견에서도 토론 상대방이 틀렸거나 오해했다고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아는 정보를 설명했을 뿐입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기 때문에 그랬습니다. 처음 회원은 Behaviorism을 행태주의로 지칭하는 보충 의견을 올렸습니다. Behaviorism은 행동주의, Behavioralism을 행태주의로 흔히 번역하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어서 관련 정보를 다음과 같이 다시 흘렸습니다.

"정치학에서는 심리학의 Behaviorism을 행동주의, 정치학의 Behavioralism을 행태주의로 흔히 번역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http://en.wikipedia.org/wiki/Behaviorism "Behaviorism or Behaviourism, also called the learning perspective (where any physical action is a behavior) is a philosophy of psychology based on the proposition that all things which organisms do including acting, thinking and feeling can and should be regarded as behaviors."
http://en.wikipedia.org/wiki/Behavioralism "Behavioralism (not to be confused with the learning theory, behaviorism) is an approach in political science which seeks to provide an objective, quantified approach to explaining and predicting political behavior."
http://www.kyoboacademy.co.kr/academy/product/bookInfo.laf?barcode=9788918031552&ejkGb=KOR 『정치학 이해의 길잡이』시리즈 2권《정치이론과 방법론》편. 1. 행태주의와 경험과학 연구 : 전제, 영역과 설계 - 김웅진"
제가 이렇게 간접적인 방법을 쓴 것은 미미한 감정적 태클이라도 토론에서 가능한 한 피하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뭔가 필요한 정보를 그 회원이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죠. 토론 상대방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먼저 직접적으로 "깔" 필요가 없습니다.

토론이나 의견교환을 할 때는 표현에 조심하는 것이 좋다는 평범한, 그렇지만 잘 지켜지지 않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상식을 말씀드리면서 이번 시리즈를 마칩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용 부분 출처:
* http://kids.kornet.net/cgi-bin/Boardlist?Boardname=garbages&Position=Last
** http://kids.kornet.net/cgi-bin/Boardlist?Boardname=Politics&Position=Last

2009년 9월 16일 수요일

[자유] 토론 사례: 과학이란? (중)

또 다른 문제제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http://kids.kornet.net/cgi-bin/Boardlist?Article=garbages&Num=85890)

"영구기관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 과학적으로 절대적 진리인가요? 아니면 상대적 진리인가요? 절대적 진리가 되려면 무조건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구기관은 무조건 불가능한가요?"
어제 말씀드린 토론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영구기관에 큰 관심을 보여온 동호회 회원이 있습니다. 그 회원이 영구기관에 대해서 설을 풀면 많은 회원이 비판하거나 빈정거렸죠. 그 관심사를 활용하여 제가 의제 설정을 한 것은, 어제 말씀드린 "자연과학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이론"이 있느냐는 문제를 토론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제 예상을 넘어서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http://kids.kornet.net/cgi-bin/Boardlist?Article=garbages&Num=85892)

"넘겨 짚기로 불편하게 해드릴까 걱정도 되지만.. 플로지스톤에 대한 언급이나 '절대적 진리'에 대한 궁금증에서 토마스 쿤에 대한 일반적 오해가 느껴지는군요. ..."
"토마스 쿤에 대한 일반적 오해"라는 부정적 표현이 나왔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야 불편하든지 말든지 할 것이니, "넘겨 짚기"에 대한 보충 설명을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또한, "플로지스톤 이론이 과학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비과학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제 질문에 대해서 그 회원은 자신이 과학을 정의할 "깜냥"은 안 되고, 플로지스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도로 "대충 얼버무리겠습니다.^^"라고 얼버무렸습니다. ^^ 아울러서 "일반적 오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해명했습니다.

"'일반적 오해'라는 말은 '인위적 실수'라는 말 처럼 애매한데,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토마스 쿤이 과학의 다원성을 지적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이 상대적 입장이 아니라고 주장했다지요. 그쯤 되면 오해하는 것이 사람들인지, 쿤 자신인지 애매해지는 상황인데 저는 자연과학 발달의 패러다임 이론을 다원성으로 이해하는 것은 당시 인문 사회 분야의 분위기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이지, 자연과학 이론의 속성이 그러하기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인문 사회 분야의 반향은 대단했지만 정작 자연과학자들은 시큰둥했던 것으로 압니다. ..."
사실, 토마스 쿤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은 제가 질문한 것과 관련은 있지만 토론의 본질은 아니죠. 생각은 열려 있는 것이 좋지만 토론 자체는 닫혀 있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사회과학에서도 현실은 열려 있지만, 모형은 닫혀 있습니다. 예컨대 게임 모형이 현실처럼 열려 있다면 과학적 분석이 거의 불가능할 것입니다. 토론도 마찬가지입니다. 토론의 범위가 한정되어야 어느 정도 의견교환이 이뤄진 다음에 적어도 잠정 결론이라도 내릴 수 있겠죠. 그렇지 않고 토론 범위가 열려 있다면, 몇 년 동안 토론해도 다람쥐가 쳇바퀴를 도는 모습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회원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토론 범위가 열릴 수 있다고 저는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막으려고 노력했습니다.

"회원님이 설명하신 일반적 오해가, 오해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네요. 제가 쿤 책을 읽어봤고 여러 해석도 봤지만, 이런 해석도 가능하고 저런 해석도 가능하다는 생각만 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토론을 할 때 지레짐작이나, 넘겨 짚기는 가능한 한 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플로지스톤 이론이 falsify된 과학 이론이라고 생각해요. 회원님은 동의하시나요?"
토론 상대방의 뜻을 넘겨 짚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하여 토마스 쿤으로 왈가왈부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토마스 쿤은 일종의 과학철학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해석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죠. 쿤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하다 보면 배가 산으로 갈 수 있겠습니다. 원래 의제 설정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서 저는 플로지스톤 이론과 falsify 개념을 꺼내들었습니다. 제 질문에 대한 응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 그런데 falsified theory라는 말을 들으니 또 지레 포퍼가 생각나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보고 들은 게 많지 않아 그런가 봅니다.
매 답글에 번번히 yes/no 질문을 하시는군요. 이번엔 저도 대답 전에 질문하나 하자면 falsified theory 는 theory 인가요? 저는 말장난 같이 느껴지는데요. ㅎㅎ"

토마스 쿤은 성공적으로 막았는데, 이번에는 포퍼를 들고 나왔습니다. 제 해석으로는, 또 다시 토론 범위가 열릴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말장난"이란 표현이 있어서 토론에 물타기가 들어올 수 있다고도  보았습니다. 또 막아야죠.

"falsified theory 는 falsified theory입니다. 회원님은 falsified theory는 theory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그렇다면 왜 그런가요?
저는 회원님과 말장난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제가 그렇다는 말입니다. 회원님이 말장난을 하든 하지 않든 그것은 회원님이 알아서 하실 일입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당대의 다른 천문이론에 비해 행성의 역운동을 '더 잘' 설명했기 때문에 주류 이론이 된 것으로 압니다.'
이것은 회원님의 의견입니다. 천동설은 falsified theory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회원님은 천동설을 '주류 이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천동설은 지금 우리가 이야기하는 theory입니까, 아닙니까?"
제 의견에 대해서 그 회원은 "falsify된 과학 이론"을 제가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자신이 "포퍼가 어쩌구, falsified theory가 theory냐 하는 헛소리들을 한 것"이라고 견해를 밝혔습니다. 조금 허무하죠. 자신의 의견을 스스로 "헛소리"라고 했으니 진지하게 토론에 임한 저는 힘이 저절로 빠졌습니다. ^^ 제가 falsify라는 용어를 사용하자 금방 포퍼를 언급한 사람이 이렇게 나왔으니... 그렇게 마무리되면 좋았을 텐데, 다음과 같은 엉뚱한 넋두리를 덧붙였습니다.

"... 충분한 설명 없이 질문만 하시면 답변하는 입장에서는 상당히 곤란합니다. 지금처럼 쓸데 없이 말도 길어지구요, 넘겨 짚는 것을 피할 수 없어져서 괜히 소모적인 논쟁이 되기도 하겠지요."
적반하장으로 가는 낌새가 나타났습니다. 용어 정의와 함께 이것도 막아야죠.

"회원님, clarifying question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넘겨 짚거나 지레짐작하는 것보다 clarifying question을 던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요? 넘겨 짚으면 오히려 소모적이거나 감정적으로 될 수 있다고 저는 봅니다.
falsify는 다음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런 의미로 사용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Falsifiability"
그다음에는 theory가 뭔지 모르겠다, 혹은 애매하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저로서는 흥미있는 elusiveness라고 봤습니다. 또 막아야죠. 그래야 제가 설정한 원래 의도를 살릴 수 있으니까요.

"흠... 이번에는 theory이군요. 좋습니다. 제가 의미했던 theory는 다음에서 설명하는 scientific theories를 의미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Theory ..."
결국, 그 회원은 천동설이 과학 이론이라고 한 셈이라고 스스로 인정은 했지만, 사족으로 "같은 문서의 '교육적 정의'에 따르면 이론이라고 부르기 좀 애매하겠군요."를 붙여서 마지막 여운을 남겼습니다. 저는 더 이상 토론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여 많이 배웠다는 인사를 하고 토론을 마무리했습니다.

배우기도 많이 배웠고, 소기의 성과도 있었습니다. 제가 의제 설정을 해서 천동설과 플로지스톤 이론이 폐기된(defunct) 혹은 반증된(falsified) 과학 이론이라는 견해를 펼칠 수 있었고, 그 점에 대해서 제대로 반박하는 회원이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름대로 재미있는 토론이었습니다. 내일 마무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2009년 9월 15일 화요일

[자유] 토론 사례: 과학이란? (상)

토론을 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이 여럿 있지만, 제가 보기에 가장 유의해야 하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저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완전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공부를 많이 했더라도 자신이 모르는 부분이 혹시 있을지도 모른다는 개방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지식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일 것입니다.

십수 년 동안 인터넷 소통을 하면서 자신의 지식을 과신한다든지, 과도한 일반화의 실수를 범하는 것으로 보이는 사례를 많이 접했습니다. 지난주에도 제가 활동하는 동호회에서 과학에 대해 토론하면서 그 점을 또 느꼈습니다. 초등학생과 토론해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지식의 바다가 한없이 넓고, 학력이 낮아도, 전문 분야가 아니더라도, 논리적으로 맞는 의견을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현재 학자가 아닙니다. 이전에 한 사회과학분야의 학자였던, 인터넷 토론을 즐기는 아마추어가 현재 저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것입니다. 더구나 저는 자연과학을 전공한 사람도 아닙니다. 따라서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의 구체적 연구 내용을 잘 알지 못합니다. 천동설, 지동설, 플로지스톤, 산소, 다윈, DNA, 뉴턴, 아인슈타인 등에 대해서 저보다 훨씬 잘 아는 이공계 분들이 많죠. 그런 분들에게 제가 자연과학 운운했다면 조금 오버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죠.

그러나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이나 과학입니다. 과학적 연구방법론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이죠.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연구방법론이 매우 세부적으로는 다를 수 있겠지만(연구 대상이 다르므로), 전체적인 틀로서 둘 다 과학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것은 객관적으로 인정받는 것입니다. 주관적으로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기는 있을 것입니다. 특히 자유주의에서는 완전히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생각은 자유이고, 표현의 자유도 있으니까요.

인간사를 다루는 사회과학은 과학이 아니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사람을 만났습니다. 제 짐작에는 이공계 공부를 한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런 이는 자신의 과학에 대한 주관적 견해나 과학에 대한 특정 시각을 맹신한 사례라고 저는 봅니다. 다음 의견을 보시죠. (http://kids.kornet.net/cgi-bin/Boardlist?Article=Politics&Num=42281)

"... 인간을 비롯하여 인간들로 구성된 조직 등 사회과학의 대상들에 관한 이론들은 자연과학의 이론들처럼 보편타당성을 추구하는 이론이라기보다는 개별성과 특수성에 기반한 상대적인 이론이라고 보는 게 현실적인 시각입니다. ... 경제학 이론들도 역사적인 관점에서 17세기 이후부터 지금까지 당대에 어떠한 경제학 사조들이 유행했나를 보면 절대적으로 옳은 경제학이론이라는 게 나올 수 없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
저는 이 의견을 읽고 제가 아는 과학과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질문했습니다.

"자연과학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이론이 있나요? 제가 잘 몰라서 질문합니다."
경제학에는 절대적으로 옳은 이론이 없다는 것은 제가 동의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과학이 "개별성과 특수성에 기반한" 것이라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었고, 자연과학에서 "절대적으로 옳은" 과학 이론이 있는 것인지 의문이 생겨서 던진 질문이었습니다. 이어진 토론에서 자연과학에 절대적으로 옳은 이론이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대세는 자연과학에도 절대적으로 옳은 이론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추측을 뒷받침하는 의견이 대세라서 저는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다음에 제가 관련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http://kids.kornet.net/cgi-bin/Boardlist?Article=Politics&Num=42292)

"산소가 발견되기 전에는 산화를 플로지스톤 이론으로 설명했다고 들었습니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산소가 발견되기 전에는 과학 이론으로 인정받기도 했겠죠?"
이것은 질문입니다. 제가 어떤 주장을 한 것도 아니고, 그때까지는 플로지스톤(Phlogiston) 이론을 과학 이론이라고 설명한 것도 아닙니다. 이공계 회원이 많으므로 플로지스톤 이론에 대해서 어떻게 보느냐를 문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한 회원의 답이 제 예상을 넘어섰습니다. (http://kids.kornet.net/cgi-bin/Boardlist?Article=Politics&Num=42293)

"청해님(제 인터넷 필명)은 과학이라는 개념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다. 과학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가설을 세우고 실험 또는 논리로 가설을 검증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따라서 예로 드신 연금술이나 종교 이런 분야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기 때문에 과학이라 칭할 수 없는 것입니다. ..."
저는 이 의견을 읽고, 이 글 서두에서 말씀드린, 토론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매우 모자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제가 과학에 대해서 무지하다는 듯이 단정한 다음, 플로지스톤 이론을 연금술로 주장하는 강변을 늘어놓았습니다. 플로지스톤 이론은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defunct(폐기된) 과학 이론이고, 브리태니카 백과사전에는 그 이론의 대표적인 물리학자/화학자가 연금술을 공격한 것이라고 버젓이 설명합니다.

참조 1: http://en.wikipedia.org/wiki/Phlogiston_theory
The phlogiston theory (from the Ancient Greek φλογιστόν phlŏgistón "burning up", from φλόξ phlóx "fire"), first stated in 1667 by Johann Joachim Becher, is a defunct scientific theory that posited the existence of a fire-like element called "phlogiston" that was contained within combustible bodies, and released during combustion.
참조 2: http://www.britannica.com/EBchecked/topic/108987/chemistry/259704/Phlogiston-theory
This shift was partly simple self-promotion by chemists in the new environment of the Enlightenment, whose vanguard glorified rationalism, experiment, and progress while demonizing the mystical. However, it was also becoming ever clearer that certain central ideas of alchemy (especially metallic transmutation) had never been demonstrated. One of the leaders in this regard was the German physician and chemist Georg Ernst Stahl, who vigorously attacked alchemy (after dabbling in it himself) and proposed an expansive new chemical theory. Stahl noted parallels between the burning of combustible materials and the calcination of metalsthe conversion of a metal into its calx, or oxide. He suggested that both processes consisted of the loss of a material fluid, contained within all combustibles, called phlogiston.
그런데 그 회원은 막무가내로 설사 위키피디아가 플로지스톤 이론을 과학 이론이라고 불러도, 연금술의 연장임에 틀림이 없다는 엄청난 주장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제가 과학에 대해서 오해한 것이 명백하다고 본다는 선언을 하더군요. 뭐, 그렇게 생각할 자유가 있기는 하죠. 표현은 방종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회원이 과학에 대한 이해가 매우 부족한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맞대응을 해줬습니다. 제 맞대응에 대한 응답은 아직 없습니다.

이 토론과 관련해서 또 다른 문제제기를 제가 했습니다. 내일 계속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