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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5일 토요일

[정치, 8.15] 해방과 분단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28)

(왼쪽부터, 이승만, 김구, 박헌영, 김일성, 여운형, 하지, 스티코프)

(0) 석사 논문: “한국의 세계체제 편입에 관한 연구: 1945~46년을 중심으로”

제가 입대한 때는 1986년 늦은 가을이었습니다. 그 당시 석사전문요원이라고 해서 4개월을 영천에서 훈련받고 2개월을 전방에서 소대장 실습을 마치면 소위로 임관하는 동시에 예편하는 병역 특례가 있었는데 제가 그 혜택을 받았습니다. 현역으로 3년을 고생하신 이 교수님에 비하면 “짝퉁” 병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영천에서 훈련받을 때 정신교육 시간이 제법 많았는데, 교관들의 밑천이 떨어지면 후보생 중에서 추천을 받아서 대신 그 시간을 보내게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정치학 전공자를 찾게 되었고, 그때 제가 몇 시간을 시리즈로 해방 직후의 정치상황에 대해서 나름대로 설명했었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제 석사학위 논문 주제가 해방 직후부터 모스크바 삼상회의 발표(신탁통치안) 직후까지의 우리 정치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80년대 중반에 그 시기를 연구하다 보니 애로사항도 많았습니다. 해방 직후의 좌파 자료들이 중앙대 한국학 연구소에 제법 있었는데, 우리 학교 국제문제연구소의 자료 열람 요청 공문을 갖고 가도 보여주지 않는 식이었습니다. 결국, 좌파 신문인 <해방일보>는 영문 요약본을 읽고 다시 우리말로 번역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까지 벌이면서 겨우 논문을 마무리 지을 수 있었습니다.

(1) 해방 직후 정치 판세

그 연구의 동기는 커밍스(Bruce Cumings)의 연구를 평가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수정주의 학파의 대표적 학자인 커밍스는 그의 저서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해방 직후 우리나라가 좌파 세상이었는데, 우파가 미국을 등에 업고 남한을 “먹었다”는 주장을 제법 정교한 사회학적 연구로 제시했습니다. 그래서 해방 직후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겨서 나름대로 실증 연구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미 국무부와 미 군정청 자료를 비롯하여 해방 직후 신문, 잡지, 자료집, 심지어 삐라까지 참조했습니다. 제 결론은 커밍스 연구도 의미가 있지만, 좌파가 일방적으로 우세한 국면은 아니었고, 좌우가 엇비슷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예컨대 커밍스는 좌파 자료집인 <조선해방연보>에 나온 숫자들을 자신의 연구에 그대로 사용했는데, 그 자료집에 나온 좌파 조직들 구성원 숫자를 모두 합치면 그 당시 한반도의 성인 수에 비해서 너무 큰 숫자가 나옵니다. 잠재적 세력을 정치세력화하기 위해서, 상대적으로 더 잘 조직된 좌파 조직들이 세를 과시하려고 만든 자료에 대한 질적 분석에 있어서 커밍스는 미흡했습니다.

제가 알기로 그 시기와 관련된 연구에서 처음으로 언급된 자료가 제 석사 논문에 나오는데, 그것이 <선구>라는 잡지의 그 당시 여론조사입니다. 1차와 2차에 나뉘어서 행해진 여론조사였는데, 정치세력 판도를 묻는 내용이었습니다. 대통령으로 누가 적합한가? – 이승만, 내무부장은? – 김구, 군사부장은? –김일성, 이런 대답이 다수를 보여주는 흥미있는 여론조사였습니다. 그 자료를 포함하여 광범위한 자료들을 나름대로 참조하여 분석해보니 좌파와 우파가 엇비슷한 세력 분포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다만, 우파가 상대적으로 정치세력화가 늦어졌기 때문에 커밍스는 좌파가 매우 우세했던 것으로 과대평가한 측면이 있습니다.

(2) 김일성과 공산주의 항일투쟁

해방 직후사를 쳐다보면 자연스럽게 일제 강점기를 참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특히, 김일성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야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하죠. 지금 중고교 교과서가 김일성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제가 잘 모릅니다. 제가 받은 중고교 교육에 의하면 김일성은 본명 김성주로서, 만주에서 활동했던 그 유명한 독립투사 김일성 장군과는 다른 인물이다는 식이었죠. 또한, 북한의 김일성 독립운동 경력은 날조된 허구라고 설명하였죠.

하와이대 서대숙 교수의 김일성 연구는 매우 훌륭합니다. 서 교수의 연구만 참조해도 북한 김일성의 정체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석사 논문을 쓰면서 알게 된 것은 김일성에 대한 북한의 선전도 틀렸고, 제가 받은 중고교 교육도 틀렸다는 것입니다. 김일성이 항일 무력항쟁을 한 것은 맞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뻥튀기했듯이 그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중국 공산군과 협력하면서 만주에서 소대 규모 정도의 대원을 이끌고 항일 활동을 했으며, 나중에 일본군의 추적을 받아 궤멸하면서 소련 쪽으로 피신하여 소련군에 속하게 된 것이 객관적 평가입니다. 앞에 말씀드린 정신교육 시간에 김일성이 항일 무력투쟁했다고 설명하니 많은 군 동료 후보생들이 놀라는 표정이었습니다. 그 내용으로 강연을 마치고 나니 저도 조금 걱정되더군요. 보안대에서 저를 잡으러 올 수도 있겠다는 기우였죠. ^^

항일 운동으로서 공산주의와 북한 정권 수립 후의 북한 노동당 공산주의는 그 성격이 확연히 다릅니다. 일제 강점기의 좌파는 항일의 수단으로서 공산주의 혹은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것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이념뿐만 아니라 “돈 문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상해임시정부가 항일 자금 문제 때문에 내분을 많이 겪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 당시 공산주의자들도 돈 때문에 알력이 많았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앙아시아 자유시에서 벌어졌던 참변입니다. “자유시 사변”으로 알려졌는데, 소련의 지원 자금을 둘러싼 공산주의자들 사이의 알력도 한몫했던 유명한 참극입니다. 소련이 공산주의 항일 세력의 큰 자금줄이었지요. 상해임시정부나 조선공산당 세력은 모두 이념보다는 항일 독립운동이 최우선이었다고 평가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 당시 세계 정치 판도가 영국의 헤게모니가 깨지면서 공산주의 소련과 자본주의 미국의 양대 세력으로 재편되는 와중이었기 때문에 독립운동도 좌우로 나누어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습니다.

(3) 38선 획정과 분단

1945년에 일본이 패망함으로써 우리나라는 독립했습니다. 38선이 어떻게 그어졌느냐는 1980년대에 그 평가가 완료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설은 미소의 정치적, 군사적 고려가 복합적으로 작동하여 38선을 탄생시켰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일본이 예상보다 빨리 무조건 항복하자 한반도를 어떻게 처리해야 될 것인지 고민에 빠집니다. 정치적 고려 상 한반도를 포기할 수는 없는데, 그 당시 군사적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죠. 소련은 8월 초에 드디어 태평양 전쟁 참전을 선언했고, 8월 15일 일본의 패전 발표 직후 한반도 진주를 시작합니다. 이에 비해서 미국 병력은 바다 멀리 떨어져(오키나와?) 있었죠. 그래서 미국 국방성에서 군사적 한계를 고려한 한반도 분할을 기획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동원 가능한 병력이 모자란 것을 참작하여 서울 이남을 구상하기도 했는데, 결국 수도인 서울은 포함해야 한다는 의도가 관철되어 북위 38도 선을 긋습니다. 그리고 소련의 동의를 얻습니다.

38선을 두고 남과 북에서는 좌와 우의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집니다. 중간에 좌우를 합작하는 노력도 있었습니다만, 미소가 냉전으로 치닫는 구조적 한계를 국내 세력들이 극복하지 못하고/않고 1948년 남과 북에는 별도의 국가가 탄생합니다. 즉, 민족은 하나인데 국가는 둘인 한 민족 두 국가 체제가 한반도에 도입된 것입니다. 이 기형적 구조는 아직 해소되지 않고 우리 민족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남이나 북이나, 국제정치를 잘 활용한 세력이 최종적으로 권력을 잡았다는 것입니다. 북에서는 소련군 장교 직을 갖고 있었던 김일성이 반대 세력을 숙청하였고, 남에서는 미국 정치학 박사출신인(프린스턴대) 이승만이 반대 세력을 제압하였습니다. 북에서는 조만식, 중국 공산당 쪽 공산주의자들(연안파), 김일성파 외의 소련 쪽 공산주의자들이 사라졌고, 남에서는 김구, 여운형, 공산주의자 등이 없어지거나 지하로 잠적했습니다. 남한의 경우, 김구가 국제정치적 감각이 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개인적으로 있습니다. 머리 싸움에서 김구가 이승만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4) 분단의 고착화

북에는 김일성 독재체제가, 남에서는 이승만 독재체제가 자리 잡았습니다. 그 와중에 북은 동원체제를 본격적으로 가동하여 한국전쟁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침략전쟁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1960년대 말 혹은 70년대 초까지 북한은 오히려 남한보다 군사, 경제적으로 우월했지만, 그 이후 상황은 역전됩니다. 북한은 김일성의 영구 집권을 위해서 주체사상으로 인민들을 세뇌시켰고, 급기야는 아들 김정일에게 권력을 세습시켰습니다. 지금 현재는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남한은 세계 11위 정도의 경제력을 갖고 있고, 북한은 핵 실험까지 했지만, 인민들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목불견의 상황입니다.

2009년 8월 12일 수요일

[자유] 왜 보수와 진보로 싸우는가?

현재 정치 상황에서 제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보수와 진보의 싸움입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이념 전체의 정체성을 걸고 보수 대 진보로 싸우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보수, 중도, 진보는 자유민주주의가 건설적으로 발전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성장이나 분배에 대한 장기 발전 방향이나 정책으로 갑론을박, 난형난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서로 잡아먹을 듯이 싸우는 것은 제가 보기에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상대 진영 정체성 거부하기 싸움을 하다 보니, 역설적으로 각 진영에서는 과도하게 이기적인 정체성 사랑 혹은 자부심을 보이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자기네가 정통이라는 것이죠. 스스로 그렇게 외치면 권위가 서는 지 저는 의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판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없고, 절대선도 없습니다. 그런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정치판은 파시즘이나 과거 소련이나 북한 같은 공산주의를 채택한 권위주의 정치판입니다. 따라서 자기네 입장이 절대적으로 혹은 매우 옳다고 주장하면, 오히려 권위주의가 아닌지 의심해도 좋을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분단국가라는 구조적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민족은 하나인데, 국가는 남과 북, 둘입니다. 해방 이후부터 이 구조적 결함은 우리 정치를 왜곡시켰습니다. 그래서 북에는 김일성 독재가, 남에는 박정희 독재가 성립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닙니다. 북한은 아직도 독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벗어날 것입니다. 역사상 왕정이 아닌, 독재가 100년을 넘긴 예가 없습니다. 북한이 그 기록을 깨면 매우 특이한 사례로 남겠죠. 남한은 우여곡절 끝에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쟁취 민주화 항쟁으로 겉으로 보이는 권위주의 정치에는 한 매듭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권위주의 청산은 아직 멀었다고 저는 봅니다. 아직 자기네가 거의 절대적으로 옳다고 강변하는 정치단체나 정치인이 제법 있죠. 그 세력이 미미한 존재가 되어야 정치판의 권위주의 청소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정치를 보십시오. 미국의 민주당이 공화당 전체를 악으로 몰지는 않습니다. 영국 보수당이 노동당 전체를 무슨 괴물 보듯이 하지 않습니다. 독일의 사민당도 우파 기독교 당 전체를 청소할 듯이 째려보지는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 정치가 아직 선진 정치 문턱에도 못 간 것으로 평가해도 정치인들은 아무 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정치인들부터 각성해야 합니다. 보수, 중도, 진보를 막론하고, 싸움을 하려면 제대로 된 싸움을 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그 순기능을 인정하는 보수, 중도, 진보, 그 자체를 두고 공격하고 이전투구를 하면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일당독재가 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림 출처: http://mediagirl.org/graphics/political-compass.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