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9월 28일부터 11월 5일까지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에 올린 미국 대통령 선거 관련 글 시리즈입니다.)
1. 옥스포드와 미국 대선 첫 번째 토론 (2008/09/28)
남부 미시시피주의 조그만 대학 도시인 옥스포드에서 미국 대선 첫 번째 토론이 있었습니다. 옥스포드라고 하니 제가 job interview를 하러 오래전에 방문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주립 대학교 University of Mississippi를 흔히 Ole Miss라고 부릅니다. Ole Miss의 Miss는 미시시피의 준말이 아니고 옛날 노예들이 주인마님을 부를 때 사용했던 용어라고 합니다. 1897년 첫 학생연람이 발간될 때 이름을 공모했는데 Ole Miss가 당첨되었고, 그 이후 학교 애칭으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정식 명칭보다 Ole Miss 애칭이 언론에서는 더 많이 사용됩니다.
테네시주 멤피스 공항에서 남쪽으로 1시간 반 정도 자동차로 이동해서 미시시피주 북쪽 옥스포드에 있는 Ole Miss를 방문했습니다. 도착한 다음 날 그 학교 교수님의 안내를 받아서 조그만 전통 남부식 식당에 아침식사를 하러 갔는데, 식당에 들어서니 식사를 하고 있던 모든 손님들(100% 백인)이 일제히 저를 쳐다보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매우 당황했습니다. 동양인이 그 식당을 들어오는 경우는 거의 없었을 테니 그런 반응이 나왔을 것입니다. 동네 구경 중에 흑인들의 집단거주지(Ghetto)를 볼 수 있었는데 성냥갑 모양의 군대막사를 연상시켰습니다. 노예 해방은 오래전에 되었지만 많은 흑인은 아직 하층민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습니다.
저녁때 우리나라 사람들끼리 테니스를 했는데, 솔방울이 제법 날아오더군요. 어떤 때는 백인들이 돌멩이를 던질 때도 있다고... 남부에는 아직도 눈에 보이는 인종차별이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살아본 동부, 중서부, 서부에는 눈에 드러나는 그런 차별은 없습니다.
옥스포드는 윌리엄 포크너가 마지막 저작 활동을 한 집이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조그만 가정집이더군요.^^ 안내한 유학생의 말이 하루는 서울에서 오신 한 영문학자 교수님을 그 집에 안내했더니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셨다고 하더군요.
들어가는 말이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분량을 어느 정도 채웠으니 본 주제에 대해서는 짧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다. ^^
재미없는 토론이었습니다. 크게 최근 금융 위기와 외교안보에 대해서 토론을 했는데, 언론 보도에서 읽으셨듯이 별실수도 없었고, 별 결정타도 없는 밋밋한 토론이었다는 것이 제 감상입니다. 미국 언론에서는 오바마가 미세하게 이긴 토론으로 보는 것 같은데, 그것은 매케인이 토론을 연기하려다 허겁지겁 토론에 임한 것을 고려하면 오히려 매케인이 선방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원래는 외교안보만 다루려고 했지만, 금융 위기가 초미의 관심사여서 첫 부분에 7천억 달러 구제안과 연방 재정에 대해서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 부분에서는 오바마가 당연히 점수를 땄습니다. 점수를 더 얻을 수도 있었지만, 오바마가 매케인을 완전히 뭉갤 수 있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오바마도 연방 정부의 구제안에 대해서 모니터링을 철저히 해야 한다는 태클을 걸고 있기는 하지만 원칙적으로는 찬성하고 있죠.
쟁점 자체의 구조적 한계는 외교안보 영역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매케인은 이라크 전쟁을 완전한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는 것이고, 오바마는 이라크 전쟁을 될 수 있으면 빨리 마무리 짓고 아프가니스탄에 병력을 증파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론 와중에 노련한 매케인이 오바마의 외교안보 분야의 내공 부족을 직간접적으로 찌르는 전술을 자주 사용하더군요. 대표적인 예가 오바마가 쿠바나 이란과 같은 국가 원수들과도 전제 조건 없이 만나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 매케인은 그런 발상이 경험 부족으로 말미암은 "위험한" 것이라고 공격한 것이죠. 오바마는 전제 조건이 사전 준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매케인을 자문했던 키신저도 그렇게 발언한 적이 있다는 식으로 반박했고, 키신저의 언급은 국가 정상들 얘기가 아니라는 매케인의 재반박이 있었습니다.
제 감상을 요약하자면, 첫 번째 토론의 경제 부문에서는 오바마가 약간 앞섰고, 외교안보 부문에서는 매케인이 약간 앞서서 전체적으로는 무승부의 별 재미 없는 토론이었습니다. 최근 금융 위기는 오바마에게 유리한 소재이고, 그동안 있었던 오바마의 외교안보 부문 내공 부족 논란은 매케인에게 유리한 소재임을 참작하면 서로 선방한 것으로 끝난 1회전이었습니다.
2. 미국 부통령 후보 토론 감상 (2008/10/05)
토론의 상세 내용은 언론보도에 잘 나와 있으니 생략하고, 제 감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토론의 관심사는 역시 지난주에 있었던 페일린 해프닝이 재현될 것 인지였습니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아서 공화당 지지자들이 한숨 돌렸다고나 할까요. CNN 조사에 의하면 기대했던 것보다 토론을 잘했다는 평가가 페일린은 84%, 바이든은 64%가 나왔습니다. 역설적으로 페일린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 반사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페일린이 사퇴해야 한다는 공화당 지지자 내부의 일부 의견은 한층 약화될 것으로 모두 예측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60:40으로 민주당 바이든이 우세한 토론이었습니다. 상원에서 오랜 연륜을 쌓은 바이든에게 페일린은 적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죠. 그런데 페일린은 원론적인 주장, 알래스카 이야기, hockey mom 유의 감성 등을 동원해서 어려운 토론에서 살아남았습니다. 그 점까지 고려하여 일반 대중의 시각에서 점수를 매기자면 55:45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토론 직후 CNN이 발표한 여론조사는 51%가 바이든이 잘한 것으로, 36%가 페일린이 잘한 것으로 나왔더군요. 애널리스트 6명의 평가를 보여줬는데, 공화당 지지자 1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바이든이 더 잘한 것으로 평가했습니다.
페일린이 부통령감의 인상을 그 토론에서 보여줬느냐에 대해서 저는 부정적입니다. 동문서답도 나왔고, 구체적인 부분에 들어가야 되는 부분에서도 원론적인 주장만 되풀이하는 모습도 보여줬습니다. 지난주 해프닝 이후 열심히 공부하여 어느 정도 커버는 했는데, 더 이상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 제 소감입니다. 매케인이 젊고 매우 건강한 후보라면 그나마 봐줄 만하겠는데, 연세도 그렇고 큰 수술도 받은 적이 있음을 참작하면 페일린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 될 것으로 보입니다.
2009년 9월 2일 수요일
[수필] 서울대 경제학과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3:25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19)
제가 이곳(이 교수님 게시판)에 글을 적는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만 세 개만 꼽으라면 첫째, 제 행복 추구이고(한글 글짓기를 잊지 않으려는 것 포함), 둘째, 이 선배님(가치관+인품+테니스)을 좋아하는 것이고, 그리고 셋째, 서울대 경제학과가 매력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단편적으로 저와 서울대 경제학과의 인연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서울대에 입학할 때 사회계열에서 법대와 경영대는 별도로 학생을 모집했고, 사회과학대는 학과별이 아닌 계열별 모집이었습니다. 1학년 때 성적을 갖고 2학년 진학할 때, 1지망, 2지망, 3지망으로 희망 학과를 적어내면 학과를 배정받는 식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매년 90명 정도가 경제학과로 진입했었던 것 같습니다. 매년 커트라인은 95 등에서 100 등 사이였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상위 5명 내지 10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경제학과를 희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정도면 묻지 마 지원이었죠. 법과 경영을 제외한 인문사회계에서 대한민국의 인재는 거의 싹쓸이하는 식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 엄청난 선배들을 둔 현재 경제학부 학생들은 뿌듯하게 생각하셔도 매우 괜찮습니다. ^^ 물론 현재 학생들도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1학년 성적은 정확한 등위를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세분화된 등급제였습니다. 즉, 너는 몇 등에서 몇 등 사이에 속한다는 식이었죠. 제가 성적을 받아보니 20 등에서 25 등 사이였습니다. (제 자랑 아님^^)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외교관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형들이 이미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영향도 일부 있음) 주저 없이 외교학과를 1지망으로 선택했는데, 이것이 소문이 나면서 해프닝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95 등 근처에 있는 학생들이 경제학과를 희망하는 경우, 중간에 몇 명이 빠져나가는지를 정확하게 셀 수 있으면 자신의 경제학과 합격 여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생은 저에게 와서 마음 바꾸면 자기가 떨어지니까 반드시 외교학과로 가라고 재차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1학년 때 김두희 교수님께 경제학 개론을 들었고, 2학년 때 정운찬 교수님께 경제학 원론을, 그리고 나중에 송병락 교수님께 한국경제론을 수강했습니다. 학점은 썩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김두희 교수님이 답안지에 한자를 많이 적으면 성적을 잘 주신다고 해서 가능한 한 한자를 많이 적어서 답안을 제출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경제학과의 본격적인 인연은 유학을 가서 생겼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정치학과가 거의 경제학 식으로 학생들을 훈련했기 때문에 그때 게임이론도 공부했고, 정치학을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공부하는 쪽으로 세뇌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모교에 교직을 받고 처음 연구 발표를 한 곳도 경제학과였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제도가 민주주의의 단순 과반수 원칙을 잘 지키지 못하므로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표를 그때 했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정치학의 선거제도 분야는 공공선택(Public Choice, 혹은 Social Choice)에 속하는 것으로, 경제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경제학자인 Arrow 교수의 Impossibility Theorem입니다. Collective rationality, Universal domain, Pareto efficiency, 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Non-Dictatorship이었던가요. 미국의 은사께서 C.U.P.I.D.의 화살(Arrow)로 외우면 된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미국에서 한창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동기생 한 명이 경제학과 교수로 지원해서 인터뷰하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호텔에 가서 그 동기생 모 교수를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결국 제가 공부하던 학교에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그 동기생 연구실은 제 방 바로 위 층에 있었습니다. 같은 학과면 더 쪽 팔렸을 텐데, 그래도 학과가 달라서 다행이었습니다.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는 그 친구 교수의 연구 스타일은 야행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밤늦게 제 방에 와서 밤참을 먹자고, 어떤 때는 볼링 한 판 어떻겠냐고 꾀는 적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총각 친구 교수의 꼬임에 넘어가서 한동안 밤에 잘 놀러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원래 야행성인 그 친구는 연구 활동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 학생인 저는 오히려 학업에 쬐끔 지장이 생긴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친구에게 밤에는 너하고 안 논다고 공언했죠. ㅎㅎㅎ (유학 가셔서 남들 노는 페이스에 맞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학위 못 받습니다. 스스로 노는 리듬을 찾으세요.^^) 미국 학교에서 모 교수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한 해는 그 대학 전체에서 가장 강의 잘하는 교수 최종 후보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인 교수로서 아마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그 학교에 있을 때 그 친구 교수와 테니스도 가끔 했습니다. 모 교수가 테니스도 잘 합니다. 힘이 대단합니다. 게임을 하면 제가 가끔 이기기도 했는데, 힘도 없고 폼은 엉망인데 게임은 그럭저럭 한다고 저를 놀리기도 했습니다. (모 교수 허락받지 않고 이런 얘기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욕하는 얘기가 아니니까 양해하겠죠. 뭐. 양해 안 하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이런 얘기 했다는 것을 언짢아할 수 있으니 비밀 지켜주시길 부탁해요.^^ 특히 조교분들, 아시죠?) 그런데 어떤 여름 방학인가를 지나고 나서는 게임을 해도 제가 도저히 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를 완전히 꺾어 놓기 위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더군요.
지금도 이 게시판을 기웃거리고 있지만, 제가 국제지역원(국제대학원)에 있을 때도 경제학과를 기웃거렸습니다. 그것은 테니스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대 테니스 모임의 주축이 경제학과였죠. 소속이 달라서, 또 제가 다른 일로 바빠서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가끔 참가해서 이준구 교수님과 이지순 교수님의 날렵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곤 했습니다. 사회대 교수 테니스 대회에서 제가 하부 리그이긴 하지만 상도 받고 그랬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제가 불쌍해서 그냥 끼워주셨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에 이 선배님 테니스 실력은 굉장했습니다. 폼도 그렇고, 순발력, 정확성 등에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아부 아닙니다. 요즘도 그 실력을 유지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미국 대학의 교직에 있을 때 모교의 교수로 활약하고 있던 앞의 친구 교수가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한번은 중간에 귀국해서 모 교수를 억지로 밀어붙여 경제학 원론 강의 시간에 잠깐 특강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영어로 강의하다 우리말을 아주 잘 구사하는 후배들을 상대로 우리말로 강의하니 그동안의 체증이 싹 내려가는 시원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회를 제공한 그 친구 교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전공을 정해도 사회과학에서는 정치학이 될 테지만(이공계냐 문과냐로 질문하면 이공계가 될 것 같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는 여러모로 저에게 즐거운 추억을 남겨준 매력적인 곳입니다. 그런 매력적인 학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계신 학생 여러분의 건승을 빕니다. 홧팅!
제가 이곳(이 교수님 게시판)에 글을 적는 이유가 여럿 있습니다만 세 개만 꼽으라면 첫째, 제 행복 추구이고(한글 글짓기를 잊지 않으려는 것 포함), 둘째, 이 선배님(가치관+인품+테니스)을 좋아하는 것이고, 그리고 셋째, 서울대 경제학과가 매력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단편적으로 저와 서울대 경제학과의 인연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서울대에 입학할 때 사회계열에서 법대와 경영대는 별도로 학생을 모집했고, 사회과학대는 학과별이 아닌 계열별 모집이었습니다. 1학년 때 성적을 갖고 2학년 진학할 때, 1지망, 2지망, 3지망으로 희망 학과를 적어내면 학과를 배정받는 식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매년 90명 정도가 경제학과로 진입했었던 것 같습니다. 매년 커트라인은 95 등에서 100 등 사이였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상위 5명 내지 10명 정도를 제외하고는 모두 경제학과를 희망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정도면 묻지 마 지원이었죠. 법과 경영을 제외한 인문사회계에서 대한민국의 인재는 거의 싹쓸이하는 식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그런 엄청난 선배들을 둔 현재 경제학부 학생들은 뿌듯하게 생각하셔도 매우 괜찮습니다. ^^ 물론 현재 학생들도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집단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1학년 성적은 정확한 등위를 알려주는 방식이 아니라 일종의 세분화된 등급제였습니다. 즉, 너는 몇 등에서 몇 등 사이에 속한다는 식이었죠. 제가 성적을 받아보니 20 등에서 25 등 사이였습니다. (제 자랑 아님^^)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외교관이 되고 싶었기 때문에(형들이 이미 경제학과 사회학을 전공한 영향도 일부 있음) 주저 없이 외교학과를 1지망으로 선택했는데, 이것이 소문이 나면서 해프닝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95 등 근처에 있는 학생들이 경제학과를 희망하는 경우, 중간에 몇 명이 빠져나가는지를 정확하게 셀 수 있으면 자신의 경제학과 합격 여부를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학생은 저에게 와서 마음 바꾸면 자기가 떨어지니까 반드시 외교학과로 가라고 재차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1학년 때 김두희 교수님께 경제학 개론을 들었고, 2학년 때 정운찬 교수님께 경제학 원론을, 그리고 나중에 송병락 교수님께 한국경제론을 수강했습니다. 학점은 썩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김두희 교수님이 답안지에 한자를 많이 적으면 성적을 잘 주신다고 해서 가능한 한 한자를 많이 적어서 답안을 제출했던 기억이 아직도 납니다.
경제학과의 본격적인 인연은 유학을 가서 생겼습니다. 제가 공부했던 정치학과가 거의 경제학 식으로 학생들을 훈련했기 때문에 그때 게임이론도 공부했고, 정치학을 경제학적 방법론으로 공부하는 쪽으로 세뇌되었던 것입니다. 제가 모교에 교직을 받고 처음 연구 발표를 한 곳도 경제학과였습니다.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제도가 민주주의의 단순 과반수 원칙을 잘 지키지 못하므로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표를 그때 했습니다. 벌써 10년이 넘었네요. 정치학의 선거제도 분야는 공공선택(Public Choice, 혹은 Social Choice)에 속하는 것으로, 경제학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경제학자인 Arrow 교수의 Impossibility Theorem입니다. Collective rationality, Universal domain, Pareto efficiency, 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Non-Dictatorship이었던가요. 미국의 은사께서 C.U.P.I.D.의 화살(Arrow)로 외우면 된다고 가르쳐 주셨어요.
미국에서 한창 공부를 하고 있는데, 어느 날 동기생 한 명이 경제학과 교수로 지원해서 인터뷰하러 왔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호텔에 가서 그 동기생 모 교수를 오랜만에 반갑게 만났습니다. 그 친구는 결국 제가 공부하던 학교에 교수로 부임했습니다. 그 동기생 연구실은 제 방 바로 위 층에 있었습니다. 같은 학과면 더 쪽 팔렸을 텐데, 그래도 학과가 달라서 다행이었습니다.
현재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는 그 친구 교수의 연구 스타일은 야행성이었습니다. 그래서 밤늦게 제 방에 와서 밤참을 먹자고, 어떤 때는 볼링 한 판 어떻겠냐고 꾀는 적이 많았습니다. 그렇게 총각 친구 교수의 꼬임에 넘어가서 한동안 밤에 잘 놀러다니고 그랬습니다. 그랬더니, 원래 야행성인 그 친구는 연구 활동에 전혀 문제가 없는데, 학생인 저는 오히려 학업에 쬐끔 지장이 생긴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친구에게 밤에는 너하고 안 논다고 공언했죠. ㅎㅎㅎ (유학 가셔서 남들 노는 페이스에 맞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잘못하면 학위 못 받습니다. 스스로 노는 리듬을 찾으세요.^^) 미국 학교에서 모 교수의 인기는 대단했습니다. 한 해는 그 대학 전체에서 가장 강의 잘하는 교수 최종 후보가 되기도 했습니다. 한국인 교수로서 아마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그 학교에 있을 때 그 친구 교수와 테니스도 가끔 했습니다. 모 교수가 테니스도 잘 합니다. 힘이 대단합니다. 게임을 하면 제가 가끔 이기기도 했는데, 힘도 없고 폼은 엉망인데 게임은 그럭저럭 한다고 저를 놀리기도 했습니다. (모 교수 허락받지 않고 이런 얘기 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네요. 욕하는 얘기가 아니니까 양해하겠죠. 뭐. 양해 안 하면 어떡하겠습니까? 그래도 제가 이런 얘기 했다는 것을 언짢아할 수 있으니 비밀 지켜주시길 부탁해요.^^ 특히 조교분들, 아시죠?) 그런데 어떤 여름 방학인가를 지나고 나서는 게임을 해도 제가 도저히 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저를 완전히 꺾어 놓기 위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더군요.
지금도 이 게시판을 기웃거리고 있지만, 제가 국제지역원(국제대학원)에 있을 때도 경제학과를 기웃거렸습니다. 그것은 테니스 때문이었습니다. 사회대 테니스 모임의 주축이 경제학과였죠. 소속이 달라서, 또 제가 다른 일로 바빠서 자주 뵙지는 못했지만, 가끔 참가해서 이준구 교수님과 이지순 교수님의 날렵한 모습을 보고 감탄하곤 했습니다. 사회대 교수 테니스 대회에서 제가 하부 리그이긴 하지만 상도 받고 그랬습니다. 따로 떨어져 있는 제가 불쌍해서 그냥 끼워주셨던 것 같습니다. 제 기억에 이 선배님 테니스 실력은 굉장했습니다. 폼도 그렇고, 순발력, 정확성 등에서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아부 아닙니다. 요즘도 그 실력을 유지하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미국 대학의 교직에 있을 때 모교의 교수로 활약하고 있던 앞의 친구 교수가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한번은 중간에 귀국해서 모 교수를 억지로 밀어붙여 경제학 원론 강의 시간에 잠깐 특강을 한 적도 있었습니다. 영어로 강의하다 우리말을 아주 잘 구사하는 후배들을 상대로 우리말로 강의하니 그동안의 체증이 싹 내려가는 시원한 기분이었습니다... 그 기회를 제공한 그 친구 교수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제가 과거로 돌아가서 다시 전공을 정해도 사회과학에서는 정치학이 될 테지만(이공계냐 문과냐로 질문하면 이공계가 될 것 같습니다.), 서울대 경제학과는 여러모로 저에게 즐거운 추억을 남겨준 매력적인 곳입니다. 그런 매력적인 학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계신 학생 여러분의 건승을 빕니다. 홧팅!
2009년 9월 1일 화요일
[단상] 미국에 살면 우리나라를 잘 모른다?
[작성자]
안병길晴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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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9:29
제가 아주 가끔 듣는 말 중에 "미국에 오래 사셔서 우리 사정에 어둡군요."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싫어하는 표현입니다. 미국에 살든, 일본에 살든, 우리나라에 살든, 말한 내용이 적절치 않으면 그것을 그대로 지적하면 그만이지, 굳이 어디에 사는가를 논의에 끌어들이는 것은 본질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일종의 상대방 스타일 태클 걸기로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가벼운 의제 설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한 내용에 별 잘못이 없으면 상황이 매우 어색해질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몇 년 전 한국프랑스정치학회에서 주최한 학술회의에서 제가 겪었던 일화가 있습니다. 저는 그 회의에 토론자로 참석하였습니다. 제가 토론한 논문은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문이었는데, 발표 요지는 권력구조 개편 논의보다는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가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논문이 우리 정치 현안에 대한 핵심을 잘 파악했고, 안목이 있는 논문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또한, 정치개혁에 대한 기존 연구 중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는 구체적 방안들을 보충 설명하였습니다. 그 논문을 비판하자면 별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겠지만, 정치개혁의 공론화라는 취지가 저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토론했습니다.
그런데 그 논문의 발표자가 답할 차례가 되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저에게 태클을 걸었습니다.
"안 교수님이 미국에서 들어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우리 학계와 시민단체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중지는 독일식을 채택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네가 한국을 아느냐?" 식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 나왔던 것입니다. 저는 그 발표자의 적절치 못한 토론에 대해서 반박하기 위해서 사회자에게 1분만 설명하겠다고 요청하였습니다.
"저는 지난 2월에 선거제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우리 학계와 시민단체 일부가 독일식 선거제도를 지지하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식은 전체 의석수가 고정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되는 문제가 있어서, 현실 정치인들이 합의를 보기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합의가 더 쉬운 한국형을 제시하는 연구가 있다는 것을 설명드렸던 것입니다. 제가 한국을 압니다. 저는 한국을 제법 압니다."
아마 그 발표자는 제가 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에서 상근 자문위원으로 한 달 동안 연구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 패널이 끝나자 발표자는 저에게 금방 악수를 건네면서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인사했습니다. 저는 "네, 네" 하면서 "토론이 별로라서 좋은 논문 발표를 망친 것 같다."라고 인사치레를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저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공이 별로 높지 않아서 저를 부당하게 긁는 사람이 있으면 저 자신이 참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기분이 별로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화적으로 미소 지으면서 대처하는 편이지만, 결국 그 미소도 뼈가 있는 미소가 될 수밖에 없으니 남과 부대끼게 되었다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토론자가 어디에 사느냐는 척도가 아닙니다. 미국에 앉아서도 우리나라 사정을 더 잘 알 가능성이 있고, 우리나라에 살고 있어도 우리 선거제도 개선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며칠 전에 들어온 것이 선거제도 개선방안 논의와 무슨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겠습니까?
대표적인 사례로 몇 년 전 한국프랑스정치학회에서 주최한 학술회의에서 제가 겪었던 일화가 있습니다. 저는 그 회의에 토론자로 참석하였습니다. 제가 토론한 논문은 권력구조 개편에 대한 논문이었는데, 발표 요지는 권력구조 개편 논의보다는 정치개혁에 대한 논의가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논문이 우리 정치 현안에 대한 핵심을 잘 파악했고, 안목이 있는 논문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또한, 정치개혁에 대한 기존 연구 중에서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는 구체적 방안들을 보충 설명하였습니다. 그 논문을 비판하자면 별로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겠지만, 정치개혁의 공론화라는 취지가 저에게는 더 중요했기 때문에 그렇게 토론했습니다.
그런데 그 논문의 발표자가 답할 차례가 되자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저에게 태클을 걸었습니다.
"안 교수님이 미국에서 들어오신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의 사정을 잘 모르시는 모양인데, 우리 학계와 시민단체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한 중지는 독일식을 채택하자는 것입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네가 한국을 아느냐?" 식의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반응이 나왔던 것입니다. 저는 그 발표자의 적절치 못한 토론에 대해서 반박하기 위해서 사회자에게 1분만 설명하겠다고 요청하였습니다.
"저는 지난 2월에 선거제도를 집중적으로 연구했습니다. 우리 학계와 시민단체 일부가 독일식 선거제도를 지지하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식은 전체 의석수가 고정되지 않고 경우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되는 문제가 있어서, 현실 정치인들이 합의를 보기가 어렵다는 판단 하에 합의가 더 쉬운 한국형을 제시하는 연구가 있다는 것을 설명드렸던 것입니다. 제가 한국을 압니다. 저는 한국을 제법 압니다."
아마 그 발표자는 제가 인수위원회 정치개혁연구실에서 상근 자문위원으로 한 달 동안 연구했다는 사실을 몰랐을 것입니다. 그 패널이 끝나자 발표자는 저에게 금방 악수를 건네면서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미안하다고 인사했습니다. 저는 "네, 네" 하면서 "토론이 별로라서 좋은 논문 발표를 망친 것 같다."라고 인사치레를 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저는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가능한 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지 않고 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내공이 별로 높지 않아서 저를 부당하게 긁는 사람이 있으면 저 자신이 참지 못하게 되고, 그 결과 기분이 별로 좋지 않게 되었습니다. 유화적으로 미소 지으면서 대처하는 편이지만, 결국 그 미소도 뼈가 있는 미소가 될 수밖에 없으니 남과 부대끼게 되었다는 자괴감이 들었습니다.
토론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지, 토론자가 어디에 사느냐는 척도가 아닙니다. 미국에 앉아서도 우리나라 사정을 더 잘 알 가능성이 있고, 우리나라에 살고 있어도 우리 선거제도 개선책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할 수 있습니다. 제가 미국에서 며칠 전에 들어온 것이 선거제도 개선방안 논의와 무슨 직접적인 관련이 있었겠습니까?
[수필] This is My Father's World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8:33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2/23)
한 중학교 2학년생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보러 갔었다. 바하, 비발디, 랄로 등의 주옥같은 음악을 고사리 손으로 연주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재미교포인 그 학생의 아버지는 춘추가 제법 많은 편인데, 딸이 아주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잘 연주한다고 가끔 자랑하였다. 부인 없이 어린 딸과 함께 사는 아버지로서 그만큼 딸의 바이올린 재능은 큰 보람일 것이다.
프로그램 마지막 곡의 제목이 "This is My Father's World"였는데, 아마도 그 제목에서 Father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 가족이므로 "하느님"이라는 원래 의미가 있을 것이고, 나로서 해석하자면 "아버지"라는 뜻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애지중지하는 바이올린 신동의 아버지가 바라는 세상... 바이올린 연주회가 그런 세상이 아니었나 싶다.
연주회 리셉션에서 수백 명 이상의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정성도 보았다. 아버지가 꿈꾸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딸이 되어서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기를 빌면서 리셉션장을 나왔다.
(첨부한 사진은 스탠포드 교정에서 찰칵해본 것입니다.)
한 중학교 2학년생의 바이올린 독주회를 보러 갔었다. 바하, 비발디, 랄로 등의 주옥같은 음악을 고사리 손으로 연주하는 것을 보고 들었다. 재미교포인 그 학생의 아버지는 춘추가 제법 많은 편인데, 딸이 아주 어릴 때부터 바이올린을 잘 연주한다고 가끔 자랑하였다. 부인 없이 어린 딸과 함께 사는 아버지로서 그만큼 딸의 바이올린 재능은 큰 보람일 것이다.
프로그램 마지막 곡의 제목이 "This is My Father's World"였는데, 아마도 그 제목에서 Father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을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 가족이므로 "하느님"이라는 원래 의미가 있을 것이고, 나로서 해석하자면 "아버지"라는 뜻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애지중지하는 바이올린 신동의 아버지가 바라는 세상... 바이올린 연주회가 그런 세상이 아니었나 싶다.
연주회 리셉션에서 수백 명 이상의 손님을 대접할 수 있는 음식을 준비한 아버지의 눈물겨운 정성도 보았다. 아버지가 꿈꾸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가는 딸이 되어서 아버지의 사랑에 보답하기를 빌면서 리셉션장을 나왔다.
(첨부한 사진은 스탠포드 교정에서 찰칵해본 것입니다.)
[수필] 스탠포드 이야기
[작성자]
안병길晴海
//
오전 8:23
Leland Stanford Junior Museum입니다. 며칠 전에 스탠포드 대학교에서 새로운 장학금 제도를 발표했습니다. 부모/보호자 연소득이 십만 달러 이하인 학생은 등록금 면제, 6만 달러 이하인 경우는 기숙사비까지 면제라는 획기적인 장학금 발표였습니다. 참, 부럽습니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원래 명칭은 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입니다. 아빠 엄마 스탠포드의 아들 대학이라는 이름이죠. 그 아들은 부모와 함께 유럽 여행 중 이태리에서 전염병으로 사망합니다. 그때 아빠가 엄마에게 했던 말이, "앞으로 캘리포니아의 애들은 모두 우리 애들이오!"였다고 합니다.
스탠포드 부부는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버드, MIT, 예일, 코넬, 죤스홉킨스를 방문하게 됩니다. 사업과 대륙횡단 철도의 서부 부분 건설 등으로 큰돈을 갖고 있었던 스탠포드 부부는 하버드 엘리엇 총장을 찾아가서, 대학, 기술학교, 미술관 셋 중에 어느 것이 좋겠냐고 문의했습니다. 엘리엇 총장 왈, "대학교!"... 학교 부지와 건물을 제외하고 첫 기금으로 얼마 정도 들까요? 라고 문의하자, 엘리엇 총장은 "최소한 5백만 달러!"라고 얘기했답니다. (그 당시로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하버드의 기금이 그 정도였다고 합니다.)
미국 서부로 돌아와서 스탠포드 부부는 멋있는 대학교를 설립하기로 하고, 엄청나게 넓은 땅도 기부하고 돈도 기부하였습니다. 그래서 1891년에 탄생된 대학교가 스탠포드입니다. 자식을 추념하기 위해서 학교 이름은 Leland Stanford Junior University라고 했습니다.
스탠포드 대학은 처음부터 미국 동부의 명문들과 차별화를 시도했습니다. 대부분의 명문이 남자 학교였던 시절에 남녀 공학으로 시작했으며, 보다 탈 전통적인 방향으로 학교를 일으켜 세우려 했습니다. 따라서 하버드 등의 명문과는 달리 처음부터 이공계 교육도 중시했습니다. 초대 Jordan 총장도 어류학자였습니다. 조든 총장은 22년간 총장을 하면서 스탠포드를 반석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우리나라도 돈 많은 사람들이 이런 근사한 일에 사재를 모두 들이붓는 모습을 한번 보고 싶네요. 비싼 그림 긁어모아서 나중에 대학교 지으려나...
(학생일 때 2년간 스탠포드에서 논문을 마무리 지은 적이 있어서 관심이 생겼습니다. 현재도 스탠포드 근처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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