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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2월 8일 화요일

[자유] 자유, 민주, 그리고 참여 성냥불을 켭시다!


(2010년 초 도서출판 동녘에서 발간 예정인 제 책 <성냥불 자유민주주의(가제)> 원고 마지막에 나오는 글입니다.)

우리는 보통 “자유”라고 하면  포근하고 아름다운, 좋은 것이라는 이미지를 주로 갖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자유는 우리의 기본을 규정하는 매우 중요하고 소중하면서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갖기 위해서는 그만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때로는 결단과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역사를 훑어보면 자명한 것입니다. 자유와 인권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은 멀리는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남북전쟁이 있고, 가까이는 우리의 한국전쟁이 있습니다. 모두 수 많은 목숨이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스러져 갔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박정희 독재 시절과 전두환 군부정권 시절에 민주화를 위해서 엄청난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런 분들의 피와 땀이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이 정도의 자유민주주의를 누리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 역사에는 그 끝이 없습니다. 칼 포퍼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공산주의가 역사의 끝을 단정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습니다. 열린 사회에서는 자유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끝이 있는 것이 아니고, 더 발전하거나, 정체하거나, 퇴보하거나 셋 중 하나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는 우리나라 자유민주주의가 계속 발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에는 아직 닫힌 생각을 하는 분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충분한 근거 없이 나만 옳다고 막무가내로 주장하는 분은 닫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분은 자유민주주의자가 아닙니다. 특히 사회지도층에서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더욱 충실하게 자유와 평등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사회지도층은 자유와 평등의 열린 마음으로 사회를 쳐다보는 새로운 눈을 떠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이기심에 의해서도 사회적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결론이 도출됩니다. 사회적 강자가 장기적으로도 잘 살려면 그 방법이 더 유력한 길입니다.

자유와 권리 지키기에 대한 귀차니즘을 버려야 합니다. 그것이 모두를 위해서 더 좋은 길입니다. 길거리를 지나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는 방종으로 의심할 만한 일을 당하면, 자유인지 방종인지 따져보는 용기를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그냥 귀찮아서 봐준다는 식으로 방종을 내버려두면 “엉터리” 자유가 우리를 억압하게 됩니다.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잘 압니다. 단기적으로는 힘드실 것입니다. 귀차니즘과 점자니즘의 향수도 느끼실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노력하면 장기적으로는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누리실 것이고, 우리의 자손들은 더 자유롭고 평등한 자유민주주의를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더 쾌적한 환경에서 이 금수강산을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조금만 신경 쓰는 것은 그렇게 큰 비용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보수든 진보든 자유민주주의 근본 정신에 투철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심지어 진보가 보수의 가면을 써도 좋고, 보수가 진보의 가면을 써도 괜찮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기본인 자유, 평등, 참여에 대해서 제대로 된 뜻만 가지고 있으면 괜찮습니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공적은 권위주의이지, 진보나 보수가 아닙니다.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스스로 건전한 이기심과 개인주의를 담금질하셔서, 여러분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신경 쓰고 노력하시면 좋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자 여러분, 힘내시기 바랍니다!


2009년 8월 2일 일요일

[자유, 공개서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님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님께,

우리나라 교육에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장관님께 안부 인사드립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안병길입니다. 우리나라 도덕/윤리 교육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고자 이렇게 공개서한을 띄웁니다.

저는 현재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 인터넷 자유민주주의 선언>이라는 잠정제목으로 책을 적고 있습니다. 지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서 이번 주말이면 전체 초고가 나올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나라 지인에게 부탁한 초등, 중등, 고등학교 도덕과 윤리 교과서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확인한 결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설명이 우리 교과서에 매우 부족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지학사 출판)에 자유와 권리라는 단어가 딱 두 번 나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자기의 자유와 권리만을 주장하면, 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무질서를 바로잡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

이 부분을 제외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인용하는데,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원리나 개념 설명이 아니고, 애국심과 준법정신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내용 대부분은 "공동체 의식"을 부추기는 설명이었습니다.

위에 인용한 부분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헌법에 대못을 박아놓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서 자유와 권리는 가장 중요한 기초인 핵심 개념입니다. 따라서 자유와 권리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때 자유는 방종이 아니며, 권리는 남용 혹은 오용된 권리가 아닌 정당한 권리입니다. 헌법에 명시한 그 자유와 권리입니다. 역사상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전쟁,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 3.1 운동, 4.19 민주혁명, 한국전쟁, 그리고 우리 민주화 투쟁 등입니다.

이런 기초를 먼저 설명하고, 방종과 적절치 않은 권리 주장을 설명해야 하는데,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는 마치 자유와 권리 주장이 사회불안의 요인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방종을 어떻게 구분하는지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악법도 지키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헌법에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 법이 자신에게 이롭고, 또 그것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이율배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분위기는 중등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지학사 출판)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자유와 민주의 근본 원리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고, 공동체 혹은 유교적 질서 개념을 원용한 도덕 설명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196쪽부터 3쪽에 걸쳐서 루소(Rousseau)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많은 정치학자는 과거 소련이나 현재 북한과 같은 집체주의(Populism)의 연원을 제공한 사상가로 루소를 평가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사상가로 더 중요한 위치를 인정받는 홉스, 로크, 죤 스튜어트 밀, 벤자민 프랭클린도 있는데 말입니다. 조금 심하게 평가하자면, 도가 지나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고등학교 시민 윤리 교과서(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정도서 편찬 위원회)는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하고, 로크를 인용하고,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을 소개했습니다. 136쪽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유 민주주의 질서는 권위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실현되었다."라고 제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권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로크와 밀도 적절하게 인용했습니다. "국가의 가치는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의 가치에 있으며, 개인을 경시하는 국가는 존립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137쪽)"

그러나 시민 윤리 교과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공동선, 시민 공동체, 국가 공동체, 운명 공동체, 민족 공동체 등으로 "공동체"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칼 포퍼나 윌리엄 라이커 등 많은 정치학자가 집체주의(Populism,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한 개념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들이 루소를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교과서에는 공동선이나 공동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습니다. 그냥 좋은 것으로 대충 상정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허상이면, 교과서 전체의 맥락이 무너집니다.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자유민주주의 공동체는 허상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명제가 논리적으로 증명되어 있습니다. 애로우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입니다. 그 정리를 증명하여 애로우 교수는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우리 국가의 대국민 자유민주주의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내용도 매우 부실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기적 개인주의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이타주의와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토양이라는 설명을 교과서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공동체 잣대를 들이밀면서, 착하게, 바르게, 관용하면서, 전체를 위해서 살 것을 가르칩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려면, "공동체를 위해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사회 집단이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루소가 주장하는 그런 공동체는 흔히 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아닙니다. 종교에는 있습니다. 가족도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그만 시나 읍 정도만 되어도 그것을 공동체로 보기 어려울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교과서는 공동체와 공동선을 줄기차게 가르칩니다.

교과서가 주장한 윤리적 내용은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서 출발한 자유민주주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매우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유와 방종은 저항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고, 자유와 자유가 맞부딪히면 권리에 대한 제한이 생긴다는 식으로 매우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가상의 공동체는 필요 없는 개념입니다. 오히려 권위주의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 국가는 자유민주주의 대국민 교육 내용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으로, 시민이 자율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더 성숙시키는 쪽으로 교육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관님은 우리 도덕/윤리 교과서가 권위주의 내용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내용을 더 포함하도록 고치실 의향은 없습니까? 이 공개질의에 장관님이 공개 답변해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장관님의 건승과 우리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8월 2일
안병길 드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

(이 공개서한은 출처를 http://ahnabc.blogspot.com으로 밝히시고 마음껏 퍼가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