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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8월 7일 일요일

[자유민주]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한 의견 교환

대전에 사시는 김상한 씨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 대한 의견을 보내 주셨습니다. 제 의견과 함께 소개합니다. 소중한 의견을 또 보내 주신 김상한 씨께 감사드립니다.

(김상한 씨 의견)

오늘도 더운 하루였습니다.

오늘 읽은 책은 장자크루소의 사회계약론입니다.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학생인만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사회계약론은 짧지만 함축적인 내용이 많다고 하여 자세하게 풀이되어 있는 책으로 골라서 읽었지요.

다만 궁금한 것이 있다면 안병길 박사님께서는 저서에 "장자크 루소는 전체주의적인 맥락이 있어 초등 윤리교육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말씀하신 듯합니다. (물론 책을 읽은지 좀 되어 기억이 가물가물.....)

하지만 제가 읽은 사회계약론은 다각도에서 정치를 바라보았다는 인상이 강했습니다.

자유를 주장하는 듯하더니 강제적으로라도 자유롭게 되어야 한다 하고, (아마 이 부분이 전체주의적 마인드가 아닐지....) 직접민주주의를 옹호하는 듯하더니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 하고, 일반의지를 위해서는 당파가 없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당파가 없을 수 없다 하고, 당파가 있으려면 차라리 많은 당파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합니다. (이 부분에서는 한나라당 쪼개기가 연상이 되었습니다)

자유와 평등에 관하여, (보통 주권이라 해석 가능한)일반의지에 관하여, 이것저것 살펴보니 꽤나 민주주의에 대해 탄탄한 구성을 가진 책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물론 장자크루소가 이 책을 쓴 시대를 투영해 보았을 때 더없이 좋은 민주주의 교과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면을 보아 장자크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올바른 지표를 보여주는 저서임과 동시에 사회를 보는 다양한 시각도 제공하는 훌륭한 사회과학교과서로 적당하다 판단하였습니다.

다만 궁금한점은 안병길 박사님께서 장자크루소의 사회계약론에 어떤점이 문제가 되어 초등 윤리교육에 부적합하다 판단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초등학생들이 아직 무비판적이기때문에 방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회계약론을 비판적으로 취사선택 할 수 없다는 점이 걱정이신 것인지 아니면 전체주의적인 모습을 내포하고 있는 사회계약론이 어린 학생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을 걱정하시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물론 필요에 따라 독재도 인정된다는 점에서 움찔했지만.....)

사회계약론을 다 읽고 책을 덮으면서 생각해보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정치제도는 과연? 하면서 말이죠. 생각보다 많은 부분이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지요. 루소는 불가능하다고 본 입법권과 행정권은 독립을 이루었고 (장자크 루소는 '귀족정치'라고 말했지만)대의민주주의도 이루었습니다. 최고의 이상향이라고 본 직접민주주의 또한 직접민주주의적 요소의 작용(예를들어 촛불?)이 정치적 의사결정의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으니 어느 정도 이루어진게 아니겠습니까. 이런저런 생각의 끝에는 세상에 훌륭한 인재가 많아서 끊임없이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움직이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색을 한 뒤에는 또 생각했지요. 200년도 더 된 책에서 말한 이상향이 이루어진지 얼마 되지 않았구나....하고 말이죠. 또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등장할 때가 머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현대과학의 발달과 사회과학의 발달은 충분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200년 전보다 분명 발전한 이상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안병길 박사님의 사회계약론에 관한 평과 핵심을 듣고 싶어집니다. 혹 제가 책을 읽으며 놓친 부분이나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하는 부분을 지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제 의견)

상한 씨, 

근대 정치학에서 중요한 책들을 연속으로 읽고 있네요. 좋은 시도입니다. 

상한 씨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느낀 것은 적절합니다. 정치사상가는 말을 많이 남기죠. 그래서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도 합니다. 루소도 그렇습니다. 제 책에서 루소를 비판하기도 했고, 평등 부분에서는 '루소 일병 구하기'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한 것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루소가 가장 중시했던 개념이 "일반 의지"입니다. 그것을 저는 매우 비판적으로 평가했습니다. 루소의 정치사상을 집체주의적이라고 평가하는 것도 바로 그 개념 때문이기도 하죠.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이외의 상위개념을 처음부터 상정하는 것은 제대로 된 자유주의를 구현하는 데 장애가 됩니다. 상한 씨가 섬뜩하게 느꼈다는 "강제된 자유"도 비슷한 평가가 가능합니다. 

중세 질서와 제왕의 권위를 깨뜨리는 근대 정치사상으로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일정 부분 기여했지만, 핵심 개념이 자유주의에 배치되는 원리를 내포하고 있다는 시각으로 저는 루소를 봅니다. 따라서 루소보다는 다른 사회계약론이나 자유민주주의 사상을 더 중점적으로 우리 교과서에 소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지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2009년 8월 2일 일요일

[자유, 공개서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님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님께,

우리나라 교육에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장관님께 안부 인사드립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안병길입니다. 우리나라 도덕/윤리 교육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고자 이렇게 공개서한을 띄웁니다.

저는 현재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 인터넷 자유민주주의 선언>이라는 잠정제목으로 책을 적고 있습니다. 지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서 이번 주말이면 전체 초고가 나올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나라 지인에게 부탁한 초등, 중등, 고등학교 도덕과 윤리 교과서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확인한 결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설명이 우리 교과서에 매우 부족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지학사 출판)에 자유와 권리라는 단어가 딱 두 번 나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자기의 자유와 권리만을 주장하면, 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무질서를 바로잡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

이 부분을 제외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인용하는데,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원리나 개념 설명이 아니고, 애국심과 준법정신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내용 대부분은 "공동체 의식"을 부추기는 설명이었습니다.

위에 인용한 부분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헌법에 대못을 박아놓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서 자유와 권리는 가장 중요한 기초인 핵심 개념입니다. 따라서 자유와 권리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때 자유는 방종이 아니며, 권리는 남용 혹은 오용된 권리가 아닌 정당한 권리입니다. 헌법에 명시한 그 자유와 권리입니다. 역사상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전쟁,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 3.1 운동, 4.19 민주혁명, 한국전쟁, 그리고 우리 민주화 투쟁 등입니다.

이런 기초를 먼저 설명하고, 방종과 적절치 않은 권리 주장을 설명해야 하는데,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는 마치 자유와 권리 주장이 사회불안의 요인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방종을 어떻게 구분하는지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악법도 지키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헌법에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 법이 자신에게 이롭고, 또 그것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이율배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분위기는 중등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지학사 출판)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자유와 민주의 근본 원리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고, 공동체 혹은 유교적 질서 개념을 원용한 도덕 설명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196쪽부터 3쪽에 걸쳐서 루소(Rousseau)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많은 정치학자는 과거 소련이나 현재 북한과 같은 집체주의(Populism)의 연원을 제공한 사상가로 루소를 평가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사상가로 더 중요한 위치를 인정받는 홉스, 로크, 죤 스튜어트 밀, 벤자민 프랭클린도 있는데 말입니다. 조금 심하게 평가하자면, 도가 지나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고등학교 시민 윤리 교과서(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정도서 편찬 위원회)는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하고, 로크를 인용하고,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을 소개했습니다. 136쪽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유 민주주의 질서는 권위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실현되었다."라고 제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권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로크와 밀도 적절하게 인용했습니다. "국가의 가치는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의 가치에 있으며, 개인을 경시하는 국가는 존립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137쪽)"

그러나 시민 윤리 교과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공동선, 시민 공동체, 국가 공동체, 운명 공동체, 민족 공동체 등으로 "공동체"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칼 포퍼나 윌리엄 라이커 등 많은 정치학자가 집체주의(Populism,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한 개념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들이 루소를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교과서에는 공동선이나 공동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습니다. 그냥 좋은 것으로 대충 상정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허상이면, 교과서 전체의 맥락이 무너집니다.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자유민주주의 공동체는 허상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명제가 논리적으로 증명되어 있습니다. 애로우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입니다. 그 정리를 증명하여 애로우 교수는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우리 국가의 대국민 자유민주주의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내용도 매우 부실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기적 개인주의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이타주의와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토양이라는 설명을 교과서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공동체 잣대를 들이밀면서, 착하게, 바르게, 관용하면서, 전체를 위해서 살 것을 가르칩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려면, "공동체를 위해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사회 집단이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루소가 주장하는 그런 공동체는 흔히 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아닙니다. 종교에는 있습니다. 가족도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그만 시나 읍 정도만 되어도 그것을 공동체로 보기 어려울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교과서는 공동체와 공동선을 줄기차게 가르칩니다.

교과서가 주장한 윤리적 내용은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서 출발한 자유민주주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매우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유와 방종은 저항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고, 자유와 자유가 맞부딪히면 권리에 대한 제한이 생긴다는 식으로 매우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가상의 공동체는 필요 없는 개념입니다. 오히려 권위주의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 국가는 자유민주주의 대국민 교육 내용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으로, 시민이 자율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더 성숙시키는 쪽으로 교육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관님은 우리 도덕/윤리 교과서가 권위주의 내용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내용을 더 포함하도록 고치실 의향은 없습니까? 이 공개질의에 장관님이 공개 답변해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장관님의 건승과 우리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8월 2일
안병길 드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

(이 공개서한은 출처를 http://ahnabc.blogspot.com으로 밝히시고 마음껏 퍼가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