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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1월 11일 수요일

[단상] 치킨 게임

"자동차는 우측통행, 사람은 좌측통행"이라는 질서 규범이 최근에 바뀌었다고 합니다. 이제는 사람도 우측통행을 하는 것으로 통일되었습니다. 새 질서 규범이 실제 보행 문화가 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겠죠. 이번에 귀국해서 관찰해보니 많은 사람이 여전히 좌측통행을 하더군요.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제 동네에서 산책하다 세 명이 나란히 얘기를 하면서 저를 향해서 걸어오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이번에 귀국하여 복잡한 거리, 지하철, 상가 등에서 경험했던 수많은 치킨 게임이 떠올랐습니다.

치킨 게임은 미국의 갱단이나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했던 게임으로서 두 플레이어가 자동차를 마주 달려서 담력을 시험하는 게임입니다. 만약 두 플레이어가 모두 양보하지 않으면 두 자동차가 충돌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되고, 양쪽 모두 피하면 무승부, 한 쪽이 피하고 다른 쪽이 돌진하면 피한 쪽이 패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게임이죠. 이 게임의 순수전략 균형(Nash equilibrium, 영화 "Beautiful Mind"에 나오는 그 Nash)은 한쪽은 돌진하고 한쪽은 피하는 것입니다.

이 게임을 현실 예측에 적용한다면, 일방이 양보하고 다른 쪽은 승리할 확률이 높은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끼어들기 예를 보시죠. 접촉 사고라는 최악의 결과는 잘 생기지 않죠. 대부분 한쪽이 양보하는 식으로 게임이 끝납니다. 좌측통행 혹은 우측통행으로 미리 규칙을 정해 놓는 것은 서로 부딪히는 불상사를 사전에 예방하는 효과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런 협조 규칙은 지켜질 가능성이 큽니다. 왜냐하면 지켜서 손해볼 것이 별로 없으니까요.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좌측통행하는 자동차를 보는 것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 그러나 사람이 항상 합리적인 것은 아니므로, 과거 버릇이나 습관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이전에 했던 대로 행동하기도 하죠. 이번 보행 규칙 변경이 단기간에 뿌리내리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일 겁니다.

의식하든 아니든 우리나라 사람은 치킨 게임에 탁월한 솜씨를 갖고 있습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그렇습니다. 예컨대, 좁은 공간에서 서로 꽝하고 부딪힐 것 같이 마주 걷지만 잘 부딪히지 않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한쪽이 약간 몸을 틀어서 스쳐 지나가거나 몸이 아예 접촉하지 않고 무사통과가 되죠. 미국에서는 어떨까요? 앞에서 말씀드린 마주 오는 세 명과 저 사이의 치킨 게임 결과는? 부딪히기 약 5미터 전에 제 승리로 결판이 났습니다. 제가 한국인이죠. 모세 앞에서 홍해 바닷물이 갈라지듯이 길 중간이 훤히 트였고 저는 의기양양하게 그 사이로 통과했죠. ㅋ 우리나라에서 겪은 비슷한 상황에서는 거의 부딪히듯이 통과한 경험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문화적 차이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서양 문화가 더 좋다든지 우월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서양인이나 미국인이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착하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미리 조심하는 것은 그들 조상이 오랫동안 부딪힘이 가져다주는 큰 불편을 경험했기 때문이라고 저는 추측합니다. 부딪혀서 목숨을 잃은 사례도 제법 나왔겠죠. 반면에 우리나라에서는 부딪혀도 큰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부딪히는 순간까지도 별걱정 없이 씩씩하게 마주 걸을 수도 있겠습니다. 특유의 "무대뽀(막무가내)" 정신도 영향을 미칠까요? 즉, "피하려면 네가 피해라!"라는 마음가짐이죠. ㅋ 잘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제 예상으로는 개인주의가 우리나라에서 더 뿌리를 내릴 것이고, 그렇다면 자신의 몸이 남과 부딪히는 것을 더 싫어하게 될 것이고, 그 여파로 치킨 게임의 최악 결과인 서로 부딪히는 것을 피하려고 더 조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2009년 10월 10일 토요일

[수필] 한국이 아니야! 미국이 아니다!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한국적인 사람인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도 한국 문화를 심기 위해서(실제로는 제가 한국식으로 놀고 싶어서), 미국 사람들을 꼬드긴 적도 있으니까요.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처음 시작하니 참 무미건조하더군요. 우리나라에서는 가끔 직장 동료와 일과 후 맥주도 한 잔씩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재미가 있지 않습니까? 가끔 점심을 같이하자고 권하는 것을 제외하면 제 미국 직장 동료 교수들은 "노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지요. 물론 어떤 집에서 파티를 하려고 초청할 때도 있었지만, 그것은 가뭄에 콩 나는 정도였습니다.

미시간주립대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한참 지나고 나서 그곳에 있는 한국 대학원생들과 저녁때 맥주를 마시기로 약속했습니다. 생각해보니 같이 근무하는 미국 교수도 몇 명 초청하여 한국 학생들과 친목을 도모하면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S 교수는 흔쾌히 승낙했고, S 교수가 지도하는 몇몇 미국 학생도 같이 오기로 했습니다. D 교수는 처음에 난색을 표명했습니다. 저와 아주 친했기 때문에 저는 약을 조금 올렸죠.

"와? Tenure 땜시 그러냐? 그래도 놀 때는 놀아야 될 것 아냐?"
이렇게 꼬드겼죠. 그랬더니 연구를 조금 해놓고 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날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맥주가 몇 잔 들어간 다음 노래방으로 가자고 제가 제안을 했죠. (그 시골 대학촌에 한국식 노래방이 있었습니다. 한국 학생이 500 명 정도 되어서 유지가 되었던 모양입니다.) 그랬더니 미국 교수 두 사람이 웬 Karaoke냐고, 자기들은 한국 노래 못 부른다고 극구 사양하더군요. 미국 노래도 많다고 제가 설득했습니다. 그리하야 그날 밤, 미국 교수 두 명과 미국 학생, 한국 학생들이 저와 함께 노래방에서 아예 한국식으로 놀았죠. 조금 과장해서 말씀드리자면, 나중에는 미국 교수들이 마이크를 잘 놓지 않으려고 하더군요. ^^

아마 그 미국 교수들은 속으로 이렇게 얘기했을지도 모릅니다. :)

"안 교수, 여기는 한국이 아니야!"
199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에서 활동할 때 제가 가끔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이곳은 미국이 아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을 때는 대부분 어떤 충고를 받는 자리였지요. 미국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미국식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얘기였죠. 어떤 사람은 "3년 정도 입 다물고 살아라."라고 조언한 때도 있었고, "힘을 키운 다음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라고 걱정해주는 때도 있었답니다. 모두 좋은 충고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어떡합니까? 저는 우리나라가 미국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고, 미국식으로 생각할 때도, 한국식으로 생각할 때도 있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입 다물고 살면 불행해지는 것 같았고, 힘을 키울 때까지 기다리면 제 자신이 기득권에 안주하게 될 것 같은 불안감이 생겼던 것을 말입니다.

제가 잘못 한 것일까요? 제 생각을 표현해서, 그 내용이 옳든 잘못된 것이든 주위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했다면 곤란하겠죠? 주위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면서 제 생각을 펼칠 묘책을 찾아야겠다고 자신을 반성해봅니다.

2009년 8월 4일 화요일

[단상] 문화의 차이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3/12)
사진: 승리의 V와 다람쥐, 필자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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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화와 동양 문화가 다른 면이 많은 것은 모두가 아는 사실입니다. 문화는 어느 것이 옳다는 이야기를 하기가 정말 어려운 면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회가 오랜 기간을 두고 많은 사람이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형성한 것이라서,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이 비정상적이지 않은 이상 각 문화의 합당한 존재 이유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나라의 보신 문화가 되겠습니다. 오래전에 프랑스의 브리짓 바르도라는 여인이 한국의 보신 문화를, 특히 개를 먹는 문화를 비난하면서 월드컵 유치의 자격이 없는 나라라고 편지를 돌렸다고 합니다. 프랑스 문화의 기준으로 보면 개를 먹는 문화가 이해되지 않을 것이지만 우리 문화에서는 개를 먹는 것이 보편화하여 있습니다. 어떤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대답자의 70% 이상이 보신탕을 먹는 것이 괜찮다고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개를 먹는 문화도 그 나름대로 존재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 민족이 황구를 먹는 것은 모자라는 단백질을 보충하는 한 방편으로 오랫동안 이어진 한 문화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프랑스에서 즐겨 먹는 달팽이를 잘 먹지 않듯이 프랑스에서는 개를 잘 먹지 않는 문화적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지요. 상당히 공감이 가는 주장이죠. 다만, 애완동물을 먹는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개를 음성적으로 함부로 잡아서 먹는 것을 법으로 막으면서 식용 개고기의 유통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것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화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편리한 방편으로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문화 자체를 인간성과 혼동해서는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개를 먹는다고 해서 그 문화에 속한 사회 구성원들의 인간성이 나쁜 것과 동일시한다면 그것은 "자기 민족 중심주의적" 사고방식일 것입니다. 또 문화는 정체적인 것이 아니고 항상 변할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보신 문화도 한국의 대부분 사람들이 거부한다면 없어질 수도 있겠지요. 식용 쇠고기를 먹으면서 유독 식용 개고기만은 안 된다고 합리적으로 혹은 논리적으로 주장할 수 없어서, 보신 문화가 별 무리 없이 사라지려면 결국은 사람들의 기호가 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제가 한국의 어느 대학 교정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장시간의 여행을 마친지 며칠 되지 않은 때라서 시차가 적응이 안 되어 조금 어리벙벙한 상태에서 길을 걷고 있는데 먼발치에서 한 외국인이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외국인의 표정이 제가 거주하는 곳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표정이 아니었고 무뚝뚝함 그 자체였습니다. 저는 그곳을 미국으로 착각하고 버릇대로 살짝 미소 지으며 "Hi!"라고 말하고 지나쳤습니다. 물론 그 무뚝뚝한 얼굴의 외국인은 아무 인사도 하지 않고 지나쳤지요. 지나치자마자 저는 그곳이 한국의 교정임을 깨달았고, 그 외국인은 자신이 인사를 하지 않은 것을 깨닫고 뒤늦게 "Hi! How are you?"라고 제 머리 뒤통수에다 인사를 했습니다. 제 생각에 그 외국인은 한국의 일반적인 문화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과 지나쳐도 인사를 하지 않는 문화)에 적응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에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그 외국인은 한국에 왔기 때문에 한국 문화를 따르게 되었겠지요. 아무도 인사하지 않는데 혼자 인사하는 것이 얼마나 멋쩍었겠습니까?

물론 미국 사람도 인사를 잘 하지 않는 사람이 간혹 있기는 합니다. 저와 같이 일했던 직장 동료 중 한 명은 복도에서 마주쳐도 전혀 반가운 기색도 하지 않고 인사도 먼저 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제가 혹시 동양인이라서 차갑게 대하는 것이 아닌가 했습니다만 나중에 보니 원래 그런 사람이더군요. 많은 미국 사람들은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닙니다.) 백화점이나 식료품점에서 모르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서 지나칠 때 가벼운 인사를 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그 인사 문화를 서양 사람들의 호전적 문화와 연관을 지우는 주장도 있습니다만(옛날에는 서로 싸우는 것이 예사였으니까 먼저 악수나 가벼운 인사를 하여 싸울 의사가 없음을 나타낸다는 것이지요), 제가 보기에는 인사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가벼운 인사를 하는 것이 평화롭고 친근감이 드는 것 같습니다. 제가 이미 미국식 문화에 일부 젖어 있어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문화 예찬론자는 아닙니다!)

우리의 전통문화에는 웃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살짝 웃으면 그 사람을 약간 모자라게^^ 보거나, 심지어는 비웃는 것으로 해석하여 잘못하면 싸움이 될 수도 있지요. 그래서 문화 자체가 잘 모르는 사람과의 인사를 장려하지 않는 편이었던 같습니다. 저와 지나쳤던 그 외국인도 그런 문화에 따라서 한국에서 생활하는 것으로 저는 해석하였습니다.

조금 극단적인 예가 되겠습니다만, 서울에서 제가 지하철을 탔을 때의 일입니다. 쉰 살 정도 되어 보이는 한 아주머니가 타시기에 제가 자리를 양보해 드렸습니다. 다른 분은 감사한다고 말하면서 자리에 앉았을지도 모릅니다만 그 아주머니는 저를 쳐다보지도 않고 그냥 자리에 앉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우 특이한 아주머니라고 생각하고 그 이야기를 우리나라에 계신 친지들에게 말씀드렸더니, 감사 인사를 하지 않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추측을 뒷받침하는 한 예로 우리나라에서는 식당에서 종업원이 음식을 내어와도, 손님이 고맙다는 인사를 거의 하지 않는 것으로 저는 알고 있습니다. 제가 어떤 식당에서 반찬을 갖다 주는 종업원에게 고맙다고 말했더니, 그 종업원은 이상한 듯이, 어색한 듯이 웃더군요. 주위의 손님들을 봐도 그렇게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손님들은 없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 문화에서는 젊은 사람이 나이 많이 든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식당 손님이 종업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문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는 당연해도 인사를 하는 문화적 차이가 있지요.

저는 한국에 갈 때마다 미국과는 다른 그런 문화적 차이를 많이 느꼈습니다. 다른 예로 미국 사람들은 모르는 사람과의 가벼운 신체 접촉을 매우 꺼립니다. 복잡한 백화점에서 옷깃만 스쳐도 깜짝깜짝 놀라면서, 별로 잘못한 것도 없는데 "I am sorry."를 연발하는 것이 그들 문화이지요. 어떻게 보면 너무 형식적이고 귀찮은 문화이기도 합니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팔, 다리 조금씩 스쳐 가면서 살면 뭐 어떻습니까? 그 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가벼운 신체적 접촉이라는 측면에서 너무 "다정다감한" 면이 있다고 봅니다. 서로 지나칠 때, 고의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팔을 툭 친다든지 어깨를 가볍게 스치면서 지나칠 때가 흔하죠. 지하철에선 어떻습니까? 복잡하지도 않은 시간일지라도 출구로 나갈 때 "실례합니다."라고 길을 비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친밀감" 있게 밀고 나갈 때가 잦은 것으로 압니다. 제가 일부러 지하철에서 출구로 나갈 때 "실례합니다."라고 말을 했더니 길은 모두 비켜 주시더군요. (물론 출퇴근시간에는 그런 말을 할 여유가 전혀 없겠지요.) 따라서 그때의 제 결론은 말로 양보해 달라는 의사소통이 될 수 있음에도, 문화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것을 귀찮아한다든지 어색하게 생각하는 면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지하철에서 밀고 나가지 않고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해서 앞에 서 있는 사람이 길을 비켜주는 것이 더 좋아 보입니다만... 식당에서 음식을 내어 오는 종업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면 그 종업원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요. 지나치면서 말로써 크게 인사하지는 못하더라도 살짝 웃으면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보지는 않을 것 같아요. 서로 실례한다고 양보해 주면 불쾌지수 높은 더운 날 덜 불쾌해질 것 같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