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에 제 책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법 - 대통령도 모르는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가 출판될 예정입니다. 책 4장 첫 절 <자유민주주의란 무엇인가?>의 밑그림이 되었던 1997년의 한 인터넷 동호회 토론을 소개합니다. 그 절 초고의 일부분이기도 합니다.
(인터넷 동호회, 1997/07/06 ~ 7/17)
[설명] 1987 년 6 월 민주화 항쟁으로 우리 국민은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여 절차적 민주주의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 이후 전두환 정권의 후원으로 탄생한 노태우 정권은 절차적 민주주의 달성의 첫 과도기로, 1992 년 대선에서 승리한 김영삼 정권은 두 번째 과도기로 필자는 평가한다. 보는 시각에 따라서 그 과도기를 자유민주주의로 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필자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초기단계로 간주하여, 적어도 1997 년 당시는 부족한 점이 있었어도 자유민주주의로 간주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토론에 참여한 많은 회원은 필자와 달리 자유민주주의로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을 개진했다. 권위주의 정권이 자유민주주의를 이용해서 진보정당도 허용하지 않는 등, 국민을 억누르고 있다는 인식이었다. 또한, 그들은 우리 정치의 장래가 어두운 것으로 전망했는데, 필자는 그렇지 않고 점진적으로 민주주의가 공고화될 것으로 예측했다. //
[회원 1] (의견 내용은 아래 필자 답에 포함되어 있음.)
[회원 2] 법치도 없고, 정부를 비판하면 용공으로 몰고, 권력자 개인 의지 = 합법 = 자유민주주의 도식에서 어떻게 자유민주주의 지향을 찾을 수 있나?
[회원 3] 민주적이지 못한 사회에서 가진 자들은 필요한 지식과 정보를 가지지 못한 자에게 나눠주지 않는다. 그렇게 지식과 정보로부터 소외된 인간들은 다시 의사결정 능력에 대해서 신뢰받지 못할 인간이 된다. 가진 자들이 여러 사회이익을 챙기려는 속셈이다.
[필자] 회원 1 씨 글들에 답합니다.
(회원 1: 나는 자유민주주의에 확신이 없다. 자본주의와 맞물리면 더욱 그렇다. 그 둘의 결합은 극복의 대상이다. 그 이유는 체제내적 모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사회주의를 염두에 두는 것은 아니고 열린 자세를 취하고 싶다. 자유민주주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아주 긴 글을 올리셔야 토론이 될 것 같습니다. 현재로서는 토론을 할 만한 단서가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주장의 구체성이 없습니다. 회원 1 씨의 주장을 제가 잘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단, 하나 말씀드리자면, 자유민주주의 기본이 상대주의입니다. 따라서 자유민주주의를 절대적인 것으로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좋은 이념이나 체제가 있으면 당연히 그쪽으로 가야 합니다. 현재 자유민주주의보다 상대적으로 더 우월한 대안이 있습니까? 계속 찾는 노력을 기울이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분들도 존중하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입니다. 물론 존중한다고 해서 반드시 채택되는 것은 아니지요.
(회원 1: 봉건제에서 자본주의로 이행은 부르죠아와 프롤레타리아가 연대해서 “전면전”을 벌인 결과이지, 봉건제 내에서 점진적 개선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부르죠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의 연대에 의한 “전면전”이요? 글쎄요... 그런 학설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통설은 아닐 겁니다, 아마... 또 “점진적 개선”도 있었고 “혁명적 변화”도 있었습니다.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지, “개선”이 중요한 잣대가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진보정당이 없는 자유민주주의에 대해서 부정적인 회원 1 의 주장은)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문장으로 보입니다. 진보정당이 안정적 자유민주체제의 필요조건입니까? 충분조건입니까? 필요충분조건입니까? 저는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당연히 필요충분조건도 아니지요.
[회원 4] 필자가 말하는 자유민주주의는 무엇인가? 정치에서는 의회주의, 경제에서는 자본주의인가?
[필자] 자유민주주의 = 자유주의 + 민주주의 (내용 X)
(우리 정치현실이 진보정당의 활동과 존립을 불가능하게 한다.)
불가능이요? 지금 현재 “진보정당의 활동과 존립을 불가능하게 하고 있다.”라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구체적으로 적어주세요. 제가 생각하는 이유와 같은지 다른지 비교하게요. 화두를 이렇게 바꿉시다. “남한의 정치현실에서 진보정당의 활동과 존립은 그 가능성이 크지 않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정치사상 자유를 구속하는 정치현실)
어떻게 구속하는데요? 절대적으로 구속합니까? 미국에는 공산당이 왜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하십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한국을 미국으로 이해하는 것은 아니니까.
[회원 3] 자유주의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필자] 자유민주주의 = 자유주의(liberalism) + 민주주의(democracy)에 대해서 일부 설명이 되면, 그다음 제 발제문에서 “개인 대 개인 관계에서 자유주의”를 간략하게 정의하고 토론을 제안하려고 했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굳이 “자유주의”와 “민주주의(혹은 민주)”를 구분해서 토론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발제문에서는 “개인 대 개인 관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나름대로 정의하고 토론제안을 드리고자 하는데, 지금 댓글도 두 개나 밀려 있고, 제 생업에 관계된 일도 있어서 언제 발제문을 올릴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안을 합니다. 그 주제에 대해서 토론하시고 싶은 분은 나름대로 “개인 대 개인 관계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정의하고, 그에 따라서 자신이 그러한지 아닌지 등에 대해서 의견을 주셔도 아주 좋은 의견교환이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정의를 하지 않으시고 사회통념으로 “자유민주주의 개념(일상 대화에서 어떤 용어를 쓰면, 정의를 안 해도 무슨 뜻인지 아는 개념)”을 사용해도 전혀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각 사용자가 사용하는 개념 의미가 차이 나면 서로 대화해서 조정할 수도 있겠지요? (이하 생략)
[필자] 어떤 상황을 설정하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어떤 회원님이 제안하신 글에서 “자유적”이란 표현을 쓰셨는데, 저는 “자유주의적” 혹은 “자유민주주의적”이란 표현이 제가 원래 가진 의도입니다. 다분히 말장난 같지만, “자유적”은 “개개인 마음대로”라는 뜻을 풍기고 “자유주의적”은 “개개인 마음대로이지만 상대방 마음대로도 참작하면서”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은 어떨까요? 친구들끼리 만나서 무엇을 할까 결정하는데, 예를 들어서 다음 주에 등산을 갈 것인지, 오늘 경마장을 갈 것인지, 술을 마시러 갈 것인지, 술을 마시면 어떤 곳에 가서 마실 것인지, 공부를 같이할 것인지, 잠을 잘 것인지, 집에 가서 모두 효도를 할 것인지 등등에 대한 가능성을 두고 의견교환도 할 수 있고, 또 각각의 예로 결정이 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의견교환과 행동의 결정에 있어서 얼마나 자신이 자유민주주의적인가에 대해서 글을 주시면 아주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저는 여기서 그만 적겠습니다. 저는 발제문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또 하나 빠졌군요. 위의 예에서 항상 어떤 친구의 결정대로 따라가는 친구관계는 자유민주주의적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또 자신의 생각은 따로 있는데, 그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다든지 표현을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자유민주주의적이지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어떤 결정을 적절한 절차를 밟아서 했는데, 그것을 존중하지 않는 것도 자유민주주의적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기타 등등입니다. (“가능성”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은 절대적으로 그렇지는 않다는 뜻입니다.)
[익명 0] 진보정당이 자유민주주의의 필요조건도 충분조건도 아니라는 것은 필자의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정부기관은 관변단체를 활용하여 진보운동 집단을 빨갱이, 공산주의자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가?
[필자] “제가 왜 그런 현실을 모르겠습니까?” 자유민주주의 원칙은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또한, 국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생존”입니다. 각 국가의 생존에 관련된 특수상황은 어느 국가에서나 있는 법입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공고화로 가는 과도기에 있다고 저는 봅니다. 안보논리가 항상 “생존”이라는 이슈를 건드릴 수 있는 상황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특수한 과도기 상황에서는, 진보정당을 기성 권력층이 견제하기 쉬운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고는 말을 못합니다. 말씀드렸지요, 자유민주주의는 절대주의를 취하는 것이 아니고, 상대주의를 취하는 것이라고요. 그 영역만 볼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과 원칙도 보는 객관적 시각을 키우시기 바랍니다.
필요조건, 충분조건 이야기는 회원 1 씨도 동의했지만, 일반적으로 이야기해서 자유민주주의에서 정당은 시민이 선택하는 것이지, 반드시 어느 정당이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민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로막는 벽이 있다고 하시겠지만, 가로막는 예도 있고, 그렇지 않은 예도 있습니다. 명분 없이 가로막는 것만으로 특정정당이 존재할 수 없다면, 그것은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기성 정치권이 안보논리로 진보정당을 가로막는 측면 + 정치인들 사이 권력투쟁 + 진보정당 활성화를 바라지 않는 시민 선호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진보정당이 없는 것으로 저는 봅니다. 국가나 정부가 무조건 틀어막아서 그렇게 된 것이라고는 보지 않습니다. 적어도 현 정부하에서는 그렇습니다.
미국은 진보정당을 시민이 아예 선택하지 않은 측면이 큽니다. 매카시즘 같은 해프닝도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시민은 자신들이 “필요로 하지 않아서” 혹은 “선호하지 않아서” 진보정당을 아주 미미한 존재로 만들어버렸다고 저는 봅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에서는 절대적으로 “옳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시민이 상대적으로 “좋아하는” 것을 추구하는 기본속성이 있습니다. 선거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누가 절대적으로 옳은지 모르잖아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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