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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수필] 그날 관악산에는 보름달이 떴었다...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9/10/04)

[부제] 술이 공통분모인 이야기 네 개

이 이벤트를 주최하신 이 선생님께서 술을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이 글을 적을까 말까 제법 주저했습니다. 기본 점수가 깎이더라도 하고 싶은 말은 한다는 자유인지 방종인지 직관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이 주제로 제가 이기면 더 빛이 날까요? 아니면, 이겨도 져도 창피를 당할까요? 미래에 벌어질 일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복골복이겠죠. ^^

1. 처음 술 마시기

제가 마신 첫 술은 옆집 독일인 가족 이야기에 등장한 100년 된 술이었습니다. 그때 고등학생이었죠. 그런데 그것은 위스키 싱글 딱 한 잔이어서 술을 마셨다기보다 맛을 본 것으로 봐야겠습니다.

서울대 합격 통보를 받고 고3 담임 선생님 댁에서 술을 마신 것이 첫 경험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축하주로 정종 됫병을 내놓으셨죠. 막 권하시더군요. 그래서 겁도 없이 막 마셨습니다. 그냥 술술 넘어 가더군요. 술 권하는 사회였습니다.

문제는 집에 돌아와서 발생했습니다. 천정이 빙빙 돌더군요. ㅋ 제 방이 2층에 있었는데, 사태가 심상찮음을 알아채신 아버지가 올라오셨습니다. 꿀물을 들고 계셨습니다. 아버지가 2층에 올라오시는 것은 집 수리할 때밖에 없었을 정도였는데, 졸업도 하지 않은 고등학생 막내가 술에 떡이 되어서 마음을 졸이셨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야단은 맞지 않았습니다.

2. 그날 관악산에는 보름달이 떴었다...

청운의 꿈을 품고 서울로 올라와서 관악사 라동에 짐을 풀었습니다. 1980년 서울대 기숙사인 관악사는 가, 나, 다, 라, 마동까지 있었습니다. 여학생 기숙사는 없었습니다. 미팅을 하고 싶었는데, 아무도 미팅을 주선해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고등학교 선배가 미팅 자리가 비었다고 쪽수를 채우라고 하더군요. ㅜ.ㅜ 그래서 첫 미팅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바닷가 출신입니다. 고등학생 시절 여자 친구 사귀면 서울대에 못 간다는 어른들의 엄포에 억눌렸던 한심한 청춘이었죠. 헤르만 헤세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를 읽으면서, 아! 나도 골드문트처럼 사는 부분도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시무시한 엄포가 금방 머리에 떠올라서 감정을 삭이려고 노력했습니다. 인간의 감정이 잘 삭여집니까. 특히 사춘기의 본성은 눌러도 스프링같이 다시 튀어오르죠. 그런 때는 바닷가로 갔습니다. 혹시 압니까. 지나가는 여학생이 저에게 먼저 말을 걸어올 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ㅋㅋㅋ

예쁜 조개 껍데기를 많이 주웠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어여쁜 녀석을 골라서... 대학생이 되면 첫 미팅 상대에게 주려고 했습니다. 당연히 관악사 라동에서 부린 짐 속에 있었죠. 첫 미팅 상대에게 그 조개 껍데기가 전달된 것은 물론이었습니다. 애프터를 신청했습니다. 그것은 누나의 조언을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했지만, 아주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니었으나 싫은 것도 아니었으므로, "마! 이 정도면 됐다!"를 속으로 외친 결과였습니다. 촌뜨기 주제에 최상급 여학생을 사귀는 것은 미리 포기한 셈이었죠. ㅜ.ㅜ

누나의 조언은... 대학생이 된 막냇동생에게 누나 왈, "길아! 미팅 나가서 세 가지를 지켜라. 첫째, 맘에 들든 안 들든 전화번호를 물어보고 애프터도 신청해라! 둘째, 커피 값은 네가 내라! 셋째, 헤어질 때 여학생이 싫다고 하지 않으면 집 근처까지 데려다 줘라!"였습니다. 순진한 저는 누님 조언대로 다 했습니다. 누님이 여자라는 사실을 제가 깜빡했었던 것이죠. ㅜ.ㅜ

애프터는 제가 서울 지리를 잘 몰랐기 때문에 그 여학생 집과 가장 가까운 지하철 역으로 했습니다. 남영역이었습니다. 드디어 애프터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그날이 고등학교 선배들이 환영식을 해주는 날과 겹쳤습니다. ㅜ.ㅜ 낮부터 소주를 먹이는데, 꾀를 한껏 부렸지만, 기본은 마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애프터 시간을 지키려고 정신은 바짝 차렸습니다. 몰래 도망쳤죠. ㅋ 약속 시간에 무려 30분이나 일찍 남영역에 도착했습니다!

제가 술이 약합니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붉어져서 함께 마시는 이들이 놀리기도 했습니다. 그날도 그랬죠. 시간은 30분이 남았죠. 남영역 계단에 술이 약간 취한 상태에서 앉아 있으니 저절로 졸음이 왔습니다. 잠깐 졸고 있는데, 웬 청바지를 입은 여학생이 저를 툭툭 치는 것이었습니다. 미팅을 할 때는 분명히 치마를 입은 여학생이었는데, 사람이 아니 옷이 바뀐 것이었습니다.

"저... OO 씨 맞습니까?"
"낮부터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셔요?"
그 한마디만 하고 획 하니 뒤돌아서서 가더군요. 쫓아갔습니다. 저녁이라도 드시고 들어가시라고 했는데, 안 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뒤로 돌아서 서울대 정문에 도착했습니다. 그때는 학교 안에 들어가는 버스가 없었습니다. 밤에 정문에서 관악사까지 산길로 올라가는데 보름달이 휘영청 떴더군요. 완전 처량했습니다. ㅜ.ㅜ

관악사 라동 앞에서 전화했습니다. 들어오지 않았다는 답. 또 했습니다. 또 들어오지 않았다는 답. 세 번째 시도에서 통화가 되었습니다. 별로 할 말이 없더군요. 미안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미팅을 계속 하실 겁니까?"
"같이 영화 보러 갈 사람이 생길 때까지 하려고요."
"그럼 제가 영화를 같이 보러 다닐 테니 앞으로 미팅을 하지 않으시는 것은 어떨까요?"
"글쎄요..."
저는 "글쎄요."가 No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는 연락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주위 분들에게 물어보니, Yes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하시더군요. ㅜ.ㅜ

(끝이 약하다는 어느 성냥불 조원의 조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미팅 이야기로 보강합니다. 두 번째 파트너는 미팅할 때 바지를 입고 왔는데, 애프터에는 치마를 입고 왔었습니다. 그런데 막 신경질을 내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 평소에 치마를 입지 않는데 그날 입었더니 친구들이 놀렸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저에게 신경질을 냈는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ㅜ.ㅜ)

3. 술, 노래, 그리고 휘파람

세월이 흘러서 졸업도 하고 유학도 다녀와서 사회인이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면 노래방도 가고, 가라오케도 갔습니다. 제가 노래를 잘 못 부릅니다. ㅜ.ㅜ 술도 잘 못 마시고, 노래도 잘 못 부르니 다른 장기라도 있어야 될 것 같아서 휘파람을 개발했습니다. 친구들 말이, 제가 술을 조금 마신 다음 휘파람을 불면 그래도 들어줄 만하다고 하더군요. 아마도 그들이 취해서 그랬을 겁니다. ㅋ

하루는 강남의 어느 대형 가라오케 술집을 갔습니다. 넓은 홀에 스테이지가 있더군요. 제 차례가 되어서 올라갔습니다. 다음 노래를 불렀습니다.



간주 부분에 휘파람을 불었습니다. 이상하게 그날은 제법 되더군요. ^^ 노래가 끝나고 자리에 돌아와서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어떤 손님이 저에게 와서 자신의 맥주를 따라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면서 그 노래를 참 좋아하는데, 자기가 부를 테니 간주가 나오면 휘파람을 불어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헉...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날은 같은 노래에 같은 휘파람을 두 번 불었습니다. ㅋ

4. 삐끼와 조(석?X)우하다.

삐끼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호객꾼을 지칭하는 말이지요. 주로 술에 취한 사람을 상대로 술집으로 유인한 다음 바가지를 씌우는 사람을 뜻합니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삐끼를 보면 저는 기분이 매우 나빴습니다. 밤에 귀가하면서 지나는 어떤 사거리에는 삐끼와 국가기관이 혼재해서 공존공생하고 있었습니다. 즉, 삐끼가 술 취한 사람을 상대로 호객행위를 하는 것을 보고도 바로 옆의 경찰은 전혀 단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호객행위는 엄연한 불법행위입니다. 경찰은 국가기관입니다. 국가가 약자를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는 광경을 보면 왠지 화가 났습니다.

하루는 그 사거리에 삐끼들이 떼로 몰려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날은 기분이 아주 좋지 않아서 관할 파출소에 들어가서 신고했습니다. 그런데 경찰들은 제가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전혀 출동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파출소 안에 있는 공중전화를 들고 112에 신고했습니다. 제 실명을 밝히고 그 사거리에 호객꾼이 많으니 단속하라고 신고했습니다.

범죄신고 112는 중앙에서 통제하기 때문에 금방 출동합니다. 출동한 경찰이 저에게 다가와서 누가 삐끼냐고 물어보기에 한 명을 지칭했습니다. 문제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즉석에서 대질심문이 이루어졌습니다.

경찰: “당신 호객꾼 맞아?”
P: “아닌데요”
P: (저를 바라보면서) “아저씨, 나 알아요?”
경찰: (저에게) “호객꾼 아니라고 하잖아요. 바쁜데 그렇게 허위신고해서 되겠어요?”
안: (경찰에게)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근무에 지장을 주어서 대단히 미안합니다.”
안: (P에게) “미안하게 됐습니다. 제가 잘못 봤습니다.”

저는 억울했습니다. 그래서 그 추운 겨울날에 벌벌 떨면서 눈을 부릅뜨고 그들을 쳐다보면서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감히 호객행위를 하지 못하고 제 눈치만 계속 봤습니다. 그 와중에 이상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사람이 많이 왕래하는 그 사거리에서 어떤 중년남자가 중년여자를 때리는 장면이 펼쳐졌습니다. 엄연한 폭력행사였음에도 아무도 말리지 않고 그냥 지나치는 것이었습니다. 말리고 싶었는데 워낙 우락부락한 남자라서 제가 다칠 것 같아서 망설였습니다.(저도 이 선생님처럼 겁이 많습니다. ^^) 그때 번득 아이디어가 하나 생각났습니다.

“힘 좋은 호객꾼을 동원하면 되겠구나!”
그래서 P를 불렀습니다.

“내가 술을 한 잔 살 테니 저 무지막지한 인간을 말려주게나.”
“정말 술 사주시는 겁니까?”
“약속은 지키는 사람이네.”
저와 P가 그 폭력을 막았습니다. 소란스러워져서 경찰이 왔지만, 그 중년남자를 연행하지는 않더군요. 조금 지나자 여자가 졸도했습니다. 아니, 졸도한 척했습니다. 폭력을 피하기 위해서 연기를 하는 것이 역력했습니다. 우리가 말리고 경찰이 등장하자, 그 남자는 여자를 끌다시피 택시에 태우더니 어디론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여자는 처음에는 타지 않겠다고 하더니 나중에는 스스로 택시에 올랐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저는 모릅니다. 그들이 부부 사이인지 무슨 다른 관계인지 저는 모릅니다. 다만, 약자가 강자에게 당하는 것을 국가가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광경을 다시 한 번 목격했을 뿐이었습니다.

약속대로 그 P와 저는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삐끼더군요. 술을 시키고 말을 해보니 저와 동향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배에게 술 한 잔 사주는 셈치고 환담하면서 술을 몇 잔 들이켰습니다. 그런데 이 인간이 술병을 채 비우기도 전에 다른 술병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화가 났습니다. 그래서 더는 마시지 않겠다고 하고, 계산서를 가져오라고 해서 일단 계산한 다음 다시 관할 파출소로 향했습니다. 이번에는 파출소에서 출동했습니다. 제가 신고한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112에 신고하면 관할 파출소에 통보됩니다.) 저를 경찰차에 태운 다음 그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집입니다. 호객꾼을 고용하여 장사하는 집입니다. 단속하십시오.”
“단속할 근거가 없습니다. 영업시간 제한이 풀렸기 때문에 단속할 수 없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정말 단속할 것이 없을까요?”
“잠시 문 앞에서 기다리세요. 우리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경찰이 문을 두들기면서) “문 열어!”
의도하지 않았던 닌자 역할이 의도한 트로이의 목마로 바뀌는 순간이었습니다. ^^ 왜 영업시간 제한이 없는데 그 집이 문을 닫아놓고 있었겠습니까? 경찰이 출동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셔터를 내린 것이지요.

결국, 저와 술집 사장, 그리고 호객꾼은 파출소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건의 전모가 확인되었고 경찰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처리해 드릴까요? 고발하시겠습니까?”
“저는 고발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약자를 등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야단치고 훈방하시기 바랍니다.”
술에는 장사가 없습니다. 술 마시는 것이 불법이 아니라면, 술 취한 약자는 국가가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것이 원래 사회계약이었습니다. 사전에 그런 약자가 흔히 발생하지 않도록 국가가 노력할 수도 있습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술집이 문을 닫도록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술집에서 각 손님에게 일정량 이상의 술은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일정 시간대에는 주류를 팔지 못하도록 할 수도 있습니다. 술 취한 사람을 등치려는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국가가 해야 할 일이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 계약이 그랬다고 생각합니다.

이 해프닝은 졸고 "국가와 사회적 약자(http://tinyurl.com/ahn-socialcontract)"를 적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덧 붙임: 삐끼를 만들어내는 사회구조 문제를 들면서 제가 신고한 것을 비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사회구조 탓만 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삐끼의 방종이나마 지적하는 인간의 노력이 사회개선에 적어도 성냥불 정도의 도움은 된다고 저는 판단했습니다.)

이상, 성냥불 조 5회전 출품작이었습니다. 많은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8월 11일 화요일

[수필] 90. 독일 소녀에 대한 회상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5/27)

프랑스 얘기가 나오니 오래전 옆집에 살았던 독일 가족이 생각나는군요. 고등학생 시절 옆집에 독일인 가족이 이사를 왔었습니다. 기술 고문으로 독일 함부르그에서 파견된 아빠와 엄마, 그리고 딸과 두 아들로 구성된 "파란 눈"의 가족이었습니다. 단독 주택을 더 좋아해서 아파트를 임대하지 않고 평범한 중산층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동네로 이사를 왔던 것입니다.

외국인 가족을 구경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파란 눈" 이웃사촌이 생겨서 호기심이 대단히 발동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용기를 내어 혈혈단신으로 옆집 문을 두들겼습니다. 그 당시 감정을 나타내자면, (예쁜 독일 소녀에 대한 끌림 + 독일 문화에 대한 궁금증 + 영어 회화 실전연습) 정도가 되겠습니다. ^^ 가끔 찾아가면 그 집 부부는 우유를 섞은 맛있는 홍차와 독일 비스킷을 내놓고, 영어가 미숙한 저에게 독일에 대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한 시간 정도 친절하게 그리고 "천천히" 해주셨죠.

그 독일인 집과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는 희한한 일이 생겼습니다. 제 공부방이 이 층에 있었는데 하루는 우연히 옆집 마당을 쳐다보니, 수상한 아저씨가 두리번 두리번거리며 서성이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 것입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는데 그 아저씨가 사라졌습니다. 그 집으로 들어간 것이었죠. 그 가족을 아는 사람인지, 혹시 도둑인지 고민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그 집으로 전화했습니다. 지인이라면 전화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죠. 전화를 안 받더군요. 조금 지나서 그 아저씨가 마당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제가 말을 걸었습니다.

"아저씨, 독일인 가족 아시는 분이세요?"

당황하는 기색이 완연했던 그 아저씨는 어버버 하면서 재빨리 그 집을 떠났습니다. 조금 뒤, 독일인 가족이 귀가했고, 또 조금 뒤 경찰차가 등장했습니다. 도둑이 들었던 것이죠. 옆집을 방문해서 자초지종도 설명하고, 경찰에게 서투른 통역 서비스도 제공했답니다. 독일인 엄마가 패물 함을 보여주면서 자기들도 이상하게 생각했다더군요. 일부 분실한 것이 있는데, 가장 값비싼 패물들은 온전해서 의아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도둑의 행보에 브레이크를 걸어서 피해를 최소화시켰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여러 번 하더군요.

그날 저녁에 고맙다고 저를 초청해서 귀한 술을 한 잔 권하더군요. 고등학생은 술 마시면 안 된다고 극구 거절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100년 된 술이라고 딱 한 잔만 마시라고 해서 꿀꺽했는데 독해서 식도가 타는 줄 알았습니다.^^ 그 술에서 난 화장품 향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나중에 부모님께 부탁해서 그 독일인 가족을 초청하여 저희 집에서 잔치를 벌인 적도 있었습니다. 한 상 가득 차려내니 신기한 듯이 계속 사진을 찍고 난리였습니다.

도둑 해프닝이 벌어진 다음에는 그 집을 무단 방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워졌습니다. 저는 예쁜 외국인 소녀와 친하게 지내고 싶었는데, 그렇게는 잘 안되더군요. 제 영어가 짧아서 그런 고도의 "작업"을 하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목표는 그 독일 소녀였는데, 중후한 외국인 아저씨, 아줌마 친구를 사귀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1년이 지나서 그 가족이 독일로 돌아가야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자리에서 후일 외교관이 되면 독일로 가서 다시 찾아뵙겠다는 인사를 했는데, 그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이런 에피소드로는 TV의 사람 찾기 소재는 안 되겠죠? ㅎㅎㅎ

(대문에 건 그림과 글 내용이 일치하지 않아서 죄송합니다. ㅠ.ㅠ)

2009년 8월 9일 일요일

[수필] 충녕대군이 세자가 된 이유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5/21)

요즘(2008년 5월) 사극 "대왕 세종"을 즐겨 보고 있습니다. 양녕대군이 폐세자되는 장면에서 왜 효령이 충녕의 형인데 세자가 되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정답이야 충녕대군의 여러 훌륭한 자질이 태종의 마음에 들었을 것이라는 당연한 추정은 할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유별난 근거가 있었는지 궁금증이 발동한 것이죠.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을 찾아봤습니다. 인터넷에 실록 서비스가 아주 잘 되어 있습니다. (http://sillok.history.go.kr/) 그런데... 그런데... 그 근거 중 중요한 것에 "술"도 있었습니다. 효령대군은 술을 한 방울도 못 마셨더군요. 그래서 실격. 이 교수님께서 왕자였다면 세자는 되지 못하셨을 것으로 생각하옵니다. ㅜ,ㅜ 학자의 길을 걸으신 것이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

태종 35권, 18년(1418 무술 / 명 영락(永樂) 16년) 6월 3일(임오)
“옛 사람이 말하기를, ‘나라에 훌륭한 임금이 있으면 사직(社稷)의 복(福)이 된다.’고 하였다. 효령 대군(孝寧大君)은 자질(姿質)이 미약하고, 또 성질이 심히 곧아서 개좌(開坐)5150) 하는 것이 없다. 내 말을 들으면 그저 빙긋이 웃기만 할 뿐이므로, 나와 중궁(中宮)은 효령이 항상 웃는 것만을 보았다. 충녕 대군(忠寧大君)은 천성(天性)이 총명하고 민첩하고 자못 학문을 좋아하여, 비록 몹시 추운 때나 몹시 더운 때를 당하더라도 밤이 새도록 글을 읽으므로, 나는 그가 병이 날까봐 두려워하여 항상 밤에 글 읽는 것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나의 큰 책(冊)은 모두 청하여 가져갔다. 또 치체(治體)를 알아서 매양 큰 일에 헌의(獻議)하는 것이 진실로 합당하고, 또 생각 밖에서 나왔다. 만약 중국의 사신을 접대할 적이면 신채(身彩)와 언어 동작(言語動作)이 두루 예(禮)에 부합하였고, 술을 마시는 것이 비록 무익(無益)하나, 그러나, 중국의 사신을 대하여 주인으로서 한 모금도 능히 마실 수 없다면 어찌 손님을 권하여서 그 마음을 즐겁게 할 수 있겠느냐? 충녕은 비록 술을 잘 마시지 못하나 적당히 마시고 그친다. 또 그 아들 가운데 장대(壯大)한 놈이 있다. 효령 대군은 한 모금도 마시지 못하니, 이것도 또한 불가(不可)하다. 충녕 대군 【휘(諱).】이 대위(大位)를 맡을 만하니, 나는 충녕으로서 세자를 정하겠다.”

사진 출처: http://ojsfile.ohmynews.com/STD_IMG_FILE/2008/0412/IE000893682_STD.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