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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일 일요일

[자유, 공개서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님께

교육과학기술부 장관님께,

우리나라 교육에 불철주야 고생하시는 장관님께 안부 인사드립니다. 저는 자유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국민 안병길입니다. 우리나라 도덕/윤리 교육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고자 이렇게 공개서한을 띄웁니다.

저는 현재 <자유민주주의 바로 알기: 인터넷 자유민주주의 선언>이라는 잠정제목으로 책을 적고 있습니다. 지금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어서 이번 주말이면 전체 초고가 나올 것 같습니다.

며칠 전에 우리나라 지인에게 부탁한 초등, 중등, 고등학교 도덕과 윤리 교과서를 받았습니다. 그 내용을 확인한 결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개념 설명이 우리 교과서에 매우 부족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컨대,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지학사 출판)에 자유와 권리라는 단어가 딱 두 번 나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자유와 권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저마다 자기의 자유와 권리만을 주장하면, 사회는 무질서와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무질서를 바로잡고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누구든지 법과 규칙을 지켜야 합니다. "

이 부분을 제외하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은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에 없습니다. 소크라테스를 인용하는데, 그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원리나 개념 설명이 아니고, 애국심과 준법정신을 강조한 것이었습니다. 또한, 다른 내용 대부분은 "공동체 의식"을 부추기는 설명이었습니다.

위에 인용한 부분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헌법에 대못을 박아놓은 자유민주주의 이념에서 자유와 권리는 가장 중요한 기초인 핵심 개념입니다. 따라서 자유와 권리를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때 자유는 방종이 아니며, 권리는 남용 혹은 오용된 권리가 아닌 정당한 권리입니다. 헌법에 명시한 그 자유와 권리입니다. 역사상 자유와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 수많은 희생이 있었습니다.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전쟁,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인권운동, 3.1 운동, 4.19 민주혁명, 한국전쟁, 그리고 우리 민주화 투쟁 등입니다.

이런 기초를 먼저 설명하고, 방종과 적절치 않은 권리 주장을 설명해야 하는데, 초등학교 6학년 도덕 교과서는 마치 자유와 권리 주장이 사회불안의 요인인 것처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방종을 어떻게 구분하는지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악법도 지키라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헌법에는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명기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자기 자신에게 해로운 법이 자신에게 이롭고, 또 그것을 지키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이율배반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분위기는 중등학교 3학년 도덕 교과서(지학사 출판)에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자유와 민주의 근본 원리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고, 공동체 혹은 유교적 질서 개념을 원용한 도덕 설명이 대부분입니다. 심지어 196쪽부터 3쪽에 걸쳐서 루소(Rousseau)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많은 정치학자는 과거 소련이나 현재 북한과 같은 집체주의(Populism)의 연원을 제공한 사상가로 루소를 평가합니다. 자유민주주의 사상가로 더 중요한 위치를 인정받는 홉스, 로크, 죤 스튜어트 밀, 벤자민 프랭클린도 있는데 말입니다. 조금 심하게 평가하자면, 도가 지나쳐서 북한의 주체사상을 교과서에서 가르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고등학교 시민 윤리 교과서(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정도서 편찬 위원회)는 그래도 조금 낫습니다.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 인간의 존엄성을 설명하고, 로크를 인용하고, 프랑스 대혁명과 미국 독립전쟁을 소개했습니다. 136쪽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에서 자유 민주주의 질서는 권위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엄청난 희생을 치르고 실현되었다."라고 제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유와 권리를 설명하기 위해서 로크와 밀도 적절하게 인용했습니다. "국가의 가치는 국가를 구성하는 개인의 가치에 있으며, 개인을 경시하는 국가는 존립하지 못한다고 하였다. (137쪽)"

그러나 시민 윤리 교과서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어는 공동선, 시민 공동체, 국가 공동체, 운명 공동체, 민족 공동체 등으로 "공동체" 개념입니다. 이 개념은 칼 포퍼나 윌리엄 라이커 등 많은 정치학자가 집체주의(Populism, 전체주의와 공산주의)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한 개념으로 평가했습니다. 그들이 루소를 비판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교과서에는 공동선이나 공동체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습니다. 그냥 좋은 것으로 대충 상정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허상이면, 교과서 전체의 맥락이 무너집니다. 경제학과 정치학에서 자유민주주의 공동체는 허상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명제가 논리적으로 증명되어 있습니다. 애로우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입니다. 그 정리를 증명하여 애로우 교수는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대로, 우리 국가의 대국민 자유민주주의 교육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고, 내용도 매우 부실하다는 것이 제 판단입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이기적 개인주의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과서는 이타주의와 공동체를 강조합니다.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자유민주주의를 활성화하는 데 매우 중요한 토양이라는 설명을 교과서가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공동체 잣대를 들이밀면서, 착하게, 바르게, 관용하면서, 전체를 위해서 살 것을 가르칩니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려면, "공동체를 위해서!"라고 답할 수밖에 없는 논리입니다. 그런데 사회 집단이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루소가 주장하는 그런 공동체는 흔히 볼 수 있는 객관적 사실이 아닙니다. 종교에는 있습니다. 가족도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그만 시나 읍 정도만 되어도 그것을 공동체로 보기 어려울 때가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교과서는 공동체와 공동선을 줄기차게 가르칩니다.

교과서가 주장한 윤리적 내용은 건전한 이기주의와 개인주의에서 출발한 자유민주주의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매우 논리적이고 일관성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자유와 방종은 저항 개념으로 구분할 수 있고, 자유와 자유가 맞부딪히면 권리에 대한 제한이 생긴다는 식으로 매우 조리 있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애매모호한 가상의 공동체는 필요 없는 개념입니다. 오히려 권위주의 분위기를 조장할 수 있는 개념입니다.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 국가는 자유민주주의 대국민 교육 내용을 반드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된 교육으로, 시민이 자율적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더 성숙시키는 쪽으로 교육 방향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관님은 우리 도덕/윤리 교과서가 권위주의 내용을 버리고, 자유민주주의 내용을 더 포함하도록 고치실 의향은 없습니까? 이 공개질의에 장관님이 공개 답변해주실 것을 정중하게 요청합니다.

장관님의 건승과 우리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09년 8월 2일
안병길 드림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국민

(이 공개서한은 출처를 http://ahnabc.blogspot.com으로 밝히시고 마음껏 퍼가실 수 있습니다.)

댓글 17개:

  1. 이 의견은 교육과학기술부에 공개 국민제안으로 제출했고, 접수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성냥불 한 개 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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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안 박사님. 박수를 보냅니다.

    중학교 교과서의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항목을 보니까, 딱 하워드 진의 오만한 제국에서 읽었던 내용이 생각나는군요. 한 하버드 법대 생이 법과 질서를 강조하는 연설을 하자 박수갈채가 터져나왔다죠. 알고보니 히틀러가 한 연설을 다시 읽어준 거라고.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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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홍기호님 감사합니다. 저는 우리 교과서를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자유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을 수 있는지 신기합니다.

    법과 질서, 지켜야죠. 개인주의에 따라서 자발적으로 지켜야죠. 자기 자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있지도 않은 공동체를 위해서 지키라고 하면 감동이 일어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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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중학교 교과서가 아니라 초등학교 교과서였는데 제가 잘못 썼네요. 대동소이하긴 합니다만..

    이미 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만, 인권위 관련 속보 한 가지 전해드립니다.
    http://www.ytn.co.kr/_ln/0103_200908011701115825
    ICC 투표권 자체가 박탈될지도 모른다는군요.
    급락에 급락을 거듭하는 인권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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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안경환 교수님(전 인권위원장)이 연이는 비보를 접하고 얼마나 마음이 상하겠습니까. 슬픕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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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안박사, 이런 좋은 글은 많은 사람이 볼 수 있는 곳에 게시가 되어야 하는데... 예로 오마이뉴스에 보내면 실어 줄 걸. 이 게 취향에 안 맞는다면 다른 곳을 찾아서... (i skimmed through the draft of your book, yet haven't had time to read carefully for comments. so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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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선배님, 오마이, 프레시안, 모두 보냈습니다. ^^
    한다면 합니다요. ㅋ
    (It's quite ok. Please don't mind it. Than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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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뭐 꼭 윗글과 상관이 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어제 잠시 놀란 일이 있었지. 고등학교 동창이랑 어디를 다녀 왔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보다 52만표를 더 많이 득표했다니까 밎지 않더군. MB가 국민의 절대 지지 속에 당선된 것으로 굳게 믿고 있었어. 그래도 지방에서 명문이라 소리듣던 고등학교 나오고, 대학도 요즈음 말로 SKY 중 하나 나온 친구인데 이렇게 fact를 모르고, 얘기를 해 줘도 부정하려 드니... 좀 미안한 얘기지만 한국의 수준이지 뭐... 아래에 딴지일보 관련 게시물에서 보듯이 외국인의 글도 제 입 맛대로 엉터리 번역하는 신문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신문인 나라인데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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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그래도 저는 희망을 갖고 삽니다. 선배님 같은 분이 계시기 때문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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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사실 현 정부를 움직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현 정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인간의 자유와 권리에 가장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해야 할 사람들 아닌가요?
    보수 이데올로기에서 그걸 빼면 맹탕이 되고 마니까요.
    그런데도 국사 교과서만 갖고 시비를 걸고 도덕 교과서는
    그 지경으로 방치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안박사, 멋진 일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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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메일 보냈습니다.
    선생님 덕분에 요즘 제가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진정한 보수가 무엇인지, 자유민주주의 핵심 개념은 무엇인지, 청와대에 들어가서 특강을 한번 하고 싶습니다. 물론 저 같은 듣보잡(그 듣보잡은 아닙니다!)을 초청하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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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갑자기 드는 의문이, 왜 '철학'이나 '정치'라는 교과목이 아니라 '도덕', '국민윤리'라는 이름의 과목인지...이런 이름의 과목이 다른 나라에도 있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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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그것이 다 권위주의의 유산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윤리라는 과목은 있죠. 철학의 일부분으로 가르칩니다. 미국에서는 도덕이라는 과목은 없죠. 서구에도 없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정치경제사회 과목으로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습니다. 철학은 기본으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그렇게 하고 필요하면 고등학교 선택과목으로 철학을 고려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윤리는 대학교 정도 되어야 세부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맞다고 봅니다.

    어쨌든 제 입장에서는 현재 정치 교육이 시대착오적이고, 권위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는 정치학자들에게 연락해서 고견을 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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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고등학교교 '철학' 교과서, 있습니다, 있구요. 다만 가르치지 않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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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윗 리플이 수정이 안되네요;;) 윤리 혹은 도덕과 별개로 고등학교 철학 교과서가 나와 있습니다. 출판사는 지학사였던 것으로 기억하구요. 그런데 아마 고등학교에서 가르치면 그 학교 웃기는 학교로 낙인찍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입시 과목 안 시킨다고...

    전공자인 제 눈에 그 교과서가 내용은 그닥이었습니다만 하여튼 철학 교과서 있고 아마 과목도 개설할 수는 있을 겁니다.

    예전에 주변 사람들이랑 이런 얘길 한 적이 있죠. 철학 과목 개설하면 아마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들이 논술 가르친다고 좋아할 거라나 뭐라나...ㅎㅎ

    앗 근데 만약에 익명이 덧글 달면 안되는 것이라면 삭제해주셔도 무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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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386시절 철학 전공하신 분들이 사교육쪽 논술로 많이 빠지셨죠...그래서 [철학 전공 = 논술 강사] 이 공식이 종종 성립한다고 합니다. 그 동네에선... 저도 가끔 가보라는 소리 듣고...;;;;;

    아무튼 일선 학교에서 정치도 그렇고 철학도 그렇고 제대로 가르쳐보았으면 좋겠네요

    눈팅족 올림 ㅠㅠ
    (흑 덧글 주렁주렁 달아서 죄송합니다 ㅠㅠ;; 합쳐주셔도 되고 삭제하셔도 무방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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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모두 소중한 의견인데 어떻게 삭제하겠습니까?
    어제 어떤 지인과 의견교환을 했는데, 사범대가 폐쇄적인 것이 문제가 된다고 하더군요. 사범대 출신이 아니면 교사가 되기 어려워서 더 그렇다고 하네요. 그러고 보니 저 같은 사람도 정치사회나 도덕 과목 교사가 되는 길이 열리면 좋겠네요. 저는 중고등학생도 가르쳐보면 좋겠습니다. 정치학 박사면 자격은 있는 것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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