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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3일 목요일

[수필] 라면 이야기

(서울대 이준구 교수님 게시판, 2008/07/27)

86년 아시안 게임에서 육상 불모지 대한민국에 세 개의 금메달을 선사한 임춘애 선수... 라면 먹고 뛰었고, 우유 마시고 뛰는 선수가 부러웠다는 서글픈 얘기에 모든 국민의 가슴에는 환호와 함께 울적함도 남았더랍니다. 그만큼 라면은 서민적 음식이죠. 배고팠던 시절에는 전혀 건강식이라고 할 수 없는 라면이 국민의 건강을 지켰던 역설도 있었습니다.

라면이라고 하면 군대 이야기가 빠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다시 쑥스럽지만 제가 겪은 군대 라면의 유쾌한 추억을 되살려 봅니다.^^ 군대에서 추운 겨울밤 출출할 때 라면을 끓여서 여러 사람이 함께 먹으면 참 맛있죠.

군 생활 중 휴전선 GOP 근무 실습을 할 때, 특별 면회를 나간 적이 있습니다. 원래 휴전선 경계 근무를 하면 원칙적으로 면회가 되지 않는데 급한 개인용무가 생겨서 특별 면회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제가 면회를 나간다는 소식이 소초원들에게 전해지자, 두 명이 저에게 돈을 주면서 부탁을 하더군요. 사탕을 사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군대 음식이 이상하게도 당분이 모자라는 것 같더군요. 푸석푸석한 찐 밥도 그렇죠. GOP 소초(소대)는 취사를 각 소초별로 하기 때문에 그래도 나은 편이었지만, 춥고 배고픈 군 생활 자체가 단 것에 더 끌리게 하였는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두 명의 부탁만 들어줄 수는 없다는 것이죠. 만약 그 두 명에게만 부탁한 사탕이 전달되면 사탕이 소초내에서 일종의 희귀재가 될 것이고, 그러면 예기치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부탁을 거절했습니다.

부사관 한 명과 함께 외출을 나와서 볼일을 끝내고 돌아갈 시간이 되자 소초원이 부탁한 사탕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상점에 들어가서 사탕 큰 봉지를 몇 개 주워들었죠. 그런데 제 눈에 라면 상자들이 들어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소초에 라면이 떨어졌었거든요. 어떻게 갖고 갈 것인지 계산도 하지 않고 반가워서 라면 세 상자를 덜렁 샀습니다.

소초에서 내려올 때 40분 정도 걸었는데, 다시 올라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깜깜해지더군요. 함께 온 부사관은 라면 상자들과 사탕 봉지들을 보더니 반가워 하기는 하는데 옮기는 것을 선뜻 도와주겠다는 말은 하지 않더군요. 저를 더 초조하게 만든 것은 저녁때가 되었는데도 그 부사관이 GOP로 귀환할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어떤 경비 소대 내무반에 잠시 기다리라고 해놓곤 다른 부사관들과 어울려서 근처 마을에서 소주 파티를 벌였던 것입니다. 저는 그 라면 상자들을 메고 야밤 산길로 올라갈 것을 생각하니 망연자실해졌습니다. 그래서 그 술좌석에 찾아가서 슬쩍 이야기했죠.

“저... 어두워지는데, 그만 가셔야 되지 않을까요?”
“어,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요? 조금만 더 기다리세요.”

그런데 그 대화를 한 뒤 몇 시간이 지나도록 도저히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정이 거의 되어서 다시 그 술좌석에 가서 눈치를 주니 그제야 전화를 한 통 하더군요. "닷찌"를 한 대 내려보내라고... “닷찌”는 군대의 소형 트럭입니다. 미국 자동차 회사 Dodge가 아닐까 싶네요. 소형 트럭을 타고 쌩하니 GOP 중대 본부까지 오기는 했는데, 그다음도 고민이었습니다. 그 부사관은 중대 본부 소속이라서 우리 소초까지는 같이 갈 필요가 없었죠. 그렇다면 저를 트럭으로 소초까지 데려다 주면 좋은데 그렇게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혼자서 라면 세 상자를 메고 소초까지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지 고민 중인데, 그 부사관이 소초에 전화를 해서 라면 사왔으니 몇 명 보내라고 그러더군요. 덕분에 저는 아무것도 짊어지지 않고 편하게 소초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 날 아침 사탕은 소초장을 포함해서 모두 똑같이 나눴습니다. 라면 세 상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야식용으로 요긴하게 사용되었습니다. 밤에 철책 근무를 선 다음 교대해서 들어오면 끓여 먹는 식이었죠. 그런데 밤에 라면을 끓일 때마다 심지어 자고 있었던 저를 깨워서 같이 먹자고 해서 저는 약간의 곤욕을 치렀습니다. 라면 주인이 저라는 것이었죠. 그래서 저를 꼭 끼워서 먹어야 덜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어떤 때는 안 깨우면 좋겠던데 계속 깨우더군요. 소초원들의 양심과 정성이 고마워서 밤에 함께 라면을 먹고 아침에는 팅팅 부어오른 얼굴이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야식으로 같이 라면을 먹었던 그 소초원들은 지금 어디에서 뭘 하는지 궁금하네요...

영화 “식객”인가요. 라면을 맛있게 먹는 비결로 반드시 배고플 때 먹으라는 상식을 전수한 것 말입니다. ㅎㅎㅎ

사진: 뽀글이 라면
http://www.zinagan.com/files/attach/images/982/076/074/%EB%BD%80%EA%B8%80%EC%9D%B4_%EB%9D%BC%EB%A9%B4_s5we.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