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Notice) | 방 명 록 (GuestBoard)

2009년 7월 30일 목요일

[단상] 인터넷과 가면 놀이

인터넷 게시판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누면 실명제 공간과 비실명제 공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실명제 공간에서는 가면 놀이가 가능하지 않죠. 그런데 비실명제 공간에서는 가면 놀이가 가능합니다. 그 공간은 다시 익명이 허용되는 곳과 허용되지 않는 곳으로 나뉠 수 있습니다. 익명이 허용되지 않는 비실명 공간의 가면 놀이는 기껏해야 필명을 사용하는 정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따라서 이 가면은 실제로는 완벽한 가면이라고 할 수 없겠습니다.

인터넷 인생이 십수 년이 되다 보니 별의별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중에 가면 놀이와 관련된 해프닝이 생각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래전에 모 게시판에서 높은 수준의 내공을 보여주던 한 필명이 있었습니다. 항상 재미있는 글들을 많이 올려서 인기도 좋았습니다. 저는 처음에 여자 대학생 혹은 대학원생인 줄 알았습니다. 문체나 화법이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 필자는 여자도 아니었고, 학생도 아니었습니다. 우연히 그 사실을 제가 알게 되었죠. 그 이후에 제가 발제를 해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방법"에 대한 토론이 있었는데, 그 필자가 또 여학생인 척 글을 올렸습니다. 토론이 과열되면서 가면 뒤의 실제 인물에 대한 얘기가 오가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그 필자가 어느 학회의 뉴스레터에 한 수학 문제에 대한 수필을 실었는데, 대충 다음과 같은 표현이 나왔었던 모양입니다. "필자가 자주 가는 인터넷 게시판의 회원인 X가 이 문제를 제기하였다. 그 문제는 다음과 같이 풀 수 있다..."

그런데 그 X가 필자 자신이었다는 것이 위의 토론 과정에서 밝혀져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X는 게시판을 자진 탈퇴하고 사라졌습니다. 가면 놀이의 씁쓸한 결말이었습니다. 가면이 가식이 되어버린 경우죠.

익명이라는 진짜 가면을 쓰게 되면 심한 경우에는 욕설이 오고가는 목불견이 생기기도 하지요. 가면도 잘 쓰면 많은 사람에게 즐거움을 안겨주면서 자신의 행복추구도 할 수 있겠습니다.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은 가면은 벗겨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가면을 쓰더라도 벗겨질 경우를 염두에 두고 가면 놀이를 해야 합니다. ^^

댓글 12개:

  1. (고향) 선배님, 그래서 저는 언제나 실명을 씁니다. 닉네임을 쓰더라도 신분이 드러나게 쓰지요. 다만 디씨 인사이드 같은 아주 무서운 곳에서는 익명을 씁니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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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고향)후배님, 바람직한 대응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씨 같은 곳에서 벌거벗고 있으면 먹이감이 되기 딱 좋죠.^^ 부산대 앞에 "오래된 시계"라는 오래된 커피숍이 있었는데, 아직 있는지 모르겠네요. 부산대 근처에도 명물이 많죠? 시간나면 별도 포스팅으로 그 명물을 소개해주시는 것은 어떨까요? 저는 바닷가에서 주로 놀아서 산 쪽은 잘 모르거든요. 산성 막걸리가 유명하다고 듣기는 했는데, 먹어본 적은 없습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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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저도 사이버싸움 구경은 진짜 많이 한거 같아요.
    그런데 현재가 아니라면 저는 현실에서 노는게 더 재미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인지 웹커뮤니케이션에 그리 많은 흥미를 보이진 않네요..

    처음에 닉네임을 티라미슈라고 했으면 사람들이 절 더 좋아해주었을텐데...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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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ㅎㅎㅎ 티라미슈... 조금 느끼하지 않나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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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가면놀이는 아니지만 인터넷 뒤에 숨어서만 할 수 있는 일화들입니다....

    1) 예전에 다니던 사이트에서 혼혈인에 대해서 다른 사람과 싸운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잡종'이라느니 하는 표현을 써대면서 '우리민족'의 순수혈통을 흐리므로 추방해야 한다느니 하는 과격한 주장을 해대길래, 열이 받아서 밤샘 싸움을 몇번 한 끝에 결국 그쪽과의 인연은 거의 끊어진 기억이 있습니다. 한때는 저도 그쪽 단체에서 촉망받는 어린이였는데...쿨럭;;그리고 이때가 중간고사 기간인지라 성적은.....은하수를 건너 안드로메다로 날아간죠;;하하 =_=

    2) '반기련'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반기독교연합 대충 이런 뜻인데, 여기 들어가보면 가관도 가관이 아닙니다. 아무리 기독교에 한이 맺힌게 많다고 해도 그렇지 게시글,댓글마다 욕이 빼곡합니다. 온갖 조롱과 욕이 난무하는데, 과연 그분들이 현실에서도 그러할지 궁금합니다. 저도 기독교쪽에는 약간 회의적인 입장이라 이 사이트에 들어가봤는데, 대화의 질이 너무 떨어져서 발길을 끊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을 독선적이라고 욕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그들도 결국에는 하나의 독선으로 빠진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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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우리나라에 규식씨가 지적한 문제를 아직 흔히 만날 수 있는 것이 큰 문제입니다. 의견이 다르면 다른 것인데, 아예 상대를 인정하지 않거나, 심지어 악으로 몰아버리죠. 그러면 권위주의가 되는 것입니다. 전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혼혈 문제도 꽉 막힌 사람들이었네요. 우리도 사실은 혼혈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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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제 기억에는 그런 커피숍이 예전엔 있었던 것 같은데 최근에는 들어본 일이 없는 것을 보니 없어진 것 같습니다.

    저희 학교는 이제 명물이 별로 없습니다. 상가시설 때문에 시계탑도 철거했거든요- _-)

    산성 막걸리는 아직도 명물입니다만은 요즘 신입생들은 잘 가지 않는 듯 합니다. 호기심으로 한번쯤 갈까요?

    별도의 포스팅을 하고 싶지만 ^^;; 좀 그렇습니다. 빈약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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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우울한 이야기이군요. 갈수록 명물이 사라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형찬씨가 명물이 되셔서 그 빈 공간을 채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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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네, 하지만 일부 기독교인들도 정말 권위주의적인 행태를 보여줍니다. 그냥 버스를 기다릴 뿐인데, 저에게 접근해서
    예수님 안 믿는다고 소리를 빽 지르는 할머니라든가.....저도 가끔 이러면 화가 날 때도 있지만 대개 꾹 누르고 합리적으로 대화를 이끌어서 저는 불가지론자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하나...이런 대화는 세시간도 부족한지라 피하곤 하죠. 수십번의 반복 경험을 통해 이런 대화라는 것이 저나 기독교인이나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오로지 저를 교회로 끌고 가려는게 목적이고, 저는 그들의 말은 15년째 듣고 있으니 다 "아는" 얘기일 뿐이고...해서 요즘은 피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을 실현하기 힘들 때도 있구나......하는 걸 이런 일을 통해 느낍니다.ㅠㅠ

    제가 알기로는 우리민족의 기원은 바이칼호로 알고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어떻게 보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본 책 중에 그런 내용이 있었거든요. 샤머니즘의 유사함이라든지 동명성왕 전설과 흡사한 전설이 그 부근에도 있다구요. 또한 학계에서는 이단으로 취급받는 '한단고기'에도 유사한 얘기가 쓰여있구요.(초딩 때 읽은 책이라 정확한 기억은...)

    저희학교 명물은 전국최다의 예비역 군단....남자가 (몹시, 너무, 지나치게, 극도로)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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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아, 포인트를 놓쳤습니다. 저런 이유로 현재 한반도에 정착한 우리민족은 지극히 당연하게 혼혈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한 삼국유사에서 석탈해에 대한 부분만 하더라도 일본에서 건너왔으며, 김수로왕의 부인인 허황옥도 인도 지방 출신이라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혈을 무슨 절대악이며 불순물인양 매도하는 모양새가 보기 싫었습니다.

    그런데 박사님. 저는 모든 민족은 어차피 혼혈일 것이기 때문에 민족주의라는 것은 사실 허상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말하자면 민족주의가 존재하게 하는 근원은 실상 민족이 아니라 국가나 여타 공동체가 아닌가 생각하곤 합니다. 최근 영어캠프에서 만난 한인2세는 양친이 모두 한국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확실히" 캐나다 사람일 뿐이라고 하더군요. 공동체에서 멀어질 수록 민족의 개념이 무의미해진다는 하나의 증거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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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그래서 민족이라는 개념이 왠지 모르게 이질적인 생각이 듭니다...하지만 또 왠지 모르게 외국인보다는 한국인이 대하기 편하죠. 언어장벽이라든가 하는 부분을 넘어서라도, 일정 금액으로 아프리카 어린이를 돕거나 한국인을 돕거나 할 수 있는데, 아프리카 어린이를 일정 금액으로 더욱 많이 도울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한국인 불우이웃에게 더 많은 성금을 냈더군요.......;; 이런 부분을 보면 어쩌면...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만....결국 이 부분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주제가 얽혀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두 부분을 열심히 공부해야겠죠.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들 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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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민족 문제는 정치학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문제입니다. 언어, 종족, 영토 등을 참작하죠. 근대 이후 민족 개념은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민족 개념입니다. 따라서 규식씨 생각이 일리가 있습니다. 국가가 정치 그 자체이니까요. 미국도 미국 민족이라는 용어를 쓸 때가 있습니다. American nation이라고 하죠. 그런데 미국에는 별의별 사람이 모두 모여있음을 고려하면, 미국 민족은 100% 정치적 개념입니다. 종족(ethnicity)을 기준으로 하는 민족주의는 인구가 제법 많은 국가의 경우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잘못하면 종족우월주의에 빠질 수도 있고요.

    우리나라는 외침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저는 혼혈이라고 생각해요. 몽고, 만주족, 거란족, 일본, 기타 등등... 신라계에 흉노족 계통(김일제)도 있다고 하잖아요. 단일 민족이라는 구호는 정치적 수사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석해야 개방적으로 될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폐쇄적이라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저는 개방적인 것이 더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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