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3월 1일에 작성한 글입니다. 현 시점에서도 유효한 내용이라서 올립니다.)
국회가 필요 없는 세상이 된다면 어떻게 될까? 원래 국회란 대의정치의 편의 기구로서 만들어진 것이므로 국민의 뜻을 더 잘 대표할 수 있는 방편만 있으면 국회나 국회의원은 없어도 된다는 논리도 가능하다. 지금 미국에서는 현대 문명의 발전에 힘입어 모든 안건을 전 유권자가 직접 결정하자는 운동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인터넷을 이용한 직접 투표가 바로 그것이다. 물론 현재로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직접 민주주의가 대부분 국가에서 구체화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급속히 발전하는 정보 기술을 참작할 때, 가까운 장래에 "국회를 없애자!"라는 주장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날지도 모른다.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더라도 인터넷은 전자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대의 정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믿음 중의 하나는, 더 많은 유권자가 사회의 중요한 결정에 참여하면 더 나은 결정을 가져 온다는 것이다. 따라서 민주주의에서는 대다수 여론을 최대한 존중하는 원칙을 지켜나간다. 그런데 한 사회의 크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시민의 뜻을 어떻게 취합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가 반드시 생긴다. 인터넷은 그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는 새로운 방식으로 우리들의 곁에 어느새 다가와 있다.
인터넷이 없던 시기에는 말로 전달하든지, 신문고를 울리든지, 투서를 하든지, 종이 신문에 독자 의견을 내든지, 방송에 나가서 하소연하든지 등등의 형식으로 시민의 뜻을 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방법들은 모두 여론이 전달되는 범위가 좁거나, 전달 매체에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한계를 안고 있다. 인터넷은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특성이 있다. 인터넷은 광범위하며, 24시간 접근할 수 있다. 또한, 웹에서 대표적으로 구현하듯이, 인터넷은 일반 신문이나 방송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많은 시민의 의견 피력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인터넷을 잘만 이용한다면, 대의 정치의 가장 중요한 명제인 여론 형성과 전달에 획기적인 발전도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전자 민주주의의 장점을 살리기 위해서는 관계하는 모든 이의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근래에 주목받는 안내판 (BBS)과 인터넷 신문의 독자의견란, 혹은 포럼(뉴스 그룹)의 예를 들어 보자. 먼저,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시민은 어떤 특정 정치인이나 현안에 대해서 말하고자 할 때, 그것이 욕설이 되지 않도록 유의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인 사실에 따라 건전한 비평이나 의견교환이 될 수 있도록, 글을 적은 후 다시 정독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아도 인터넷이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있다는 우려가 나타나고 있는데, 신선한 의견이 흘러 넘쳐야 할 곳에 몇몇 사람이 욕설에 가까운 표현이나, 억지 같은 논리를 펴서 대중을 피곤하게 한다면 진정한 전자 민주주의는 머나먼 일이 될 것이다.
근래에는 정치와 관련 있는 웹 페이지들을 많이 만들고 있다. 정부나 정당, 혹은 정치인들이 인터넷을 통해서 시민과 접촉을 시도할 때는, 특히 정보나 의견의 상호 교류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청와대 웹 페이지는 대통령에게 의견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만약 어떤 시민이 의견을 낸다면, 대통령이 직접 답하지는 않더라도, 담당자가 빨리 답을 해줘야 한다. 4월 총선을 앞두고 웹 페이지를 개설한 정당이나 후보자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가진 정보는 최대한 유권자에게 보여줘야 할 것이고, 유권자가 질의/건의한 내용에 대해서는 성심껏 답해야 한다. 더 나아가서 다른 시민이 어떤 의견을 내었는지도 될 수 있으면 공개하는 것이 옳다.
인터넷은 잘만 활용하면, 국회가 없어도 괜찮은 그런 이상향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민주주의 대원칙인 대의정치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좋은 방편이 될 것이다. 아울러서, 인터넷이 민주주의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도 연구, 검토하여 진정한 전자 민주주의를 구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